무림 속의 엑스트라 2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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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25화
225화. 섭혼귀령 (4)
챙!
남궁이화의 검이 무흔의 검과 충돌했다. 이미 남궁이화의 전음을 바탕으로 그녀의 조짐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덕분이다.
기습에 실패한 남궁이화가 백단영과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다시 백단영의 가슴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연스럽고 빠른 동작이었다.
남궁이화를 만난 감격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백단영은 이번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다시 묵천신검이 끼어들어 남궁이화의 검을 막았다.
그제야 경악한 백단영이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면서 연검을 들었다.
“이화! 어떻게 된 거야?”
“죽어!”
번개처럼 다시 거리를 좁힌 남궁이화가 무상벽라검법을 펼쳤다. 예리한 검기가 순식간에 백단영의 움직임을 제압하고 위기로 몰아넣었다.
채채챙-
백단영이 다급하게 응수했다.
다행히 남궁이화의 검법이 백단영에게도 익숙한지라 대응이 어렵지 않았다. 검이 부딪히면서 백단영은 남궁이화의 내공이 평소와 달리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역시 음천마령과 싸웠던 여파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두 여인 간에 공방이 벌어졌다.
남궁이화는 격렬한 공세를 펼쳤고 백단영은 정신없이 방어했다. 그나마 남궁이화가 비천삼검을 펼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대단하네!”
정작 무흔은 어쩌지 못하고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기만 했다. 적어도 내력 면에서 백단영이 우위인지라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남궁이화를 어떻게 제압해야 할까. 지금은 화난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으니 쉽지 않은 국면이지만, 정작 제압하더라도 문제였다.
무흔의 생각에 남궁이화는 섭혼귀령에게 이지를 제압당한 것이 분명했다. 정신을 회복하는 방법은 섭혼술 술사를 제거하면 된다. 술사는 남궁이화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테니 분명히 부근 미로 어디에선가 공방을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정작 무흔 자신은 섭혼술에 대항할 수 있을까. 내력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면 섭혼술은 무의미하다. 마교 서고에서 읽었던 마중마공에 짧게나마 적혀있던 섭혼술을 떠올렸다. 비록 스스로 섭혼술을 사용할 단계는 아니나 저항은 가능해 보였다.
점차 막바지에 달해가는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무흔은 기감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통로 저쪽에서 강력한 인기척을 감지했다.
“모두 셋. 강자 하나에 그저 그런 녀석 둘.”
두 놈은 굳이 그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자였고, 하나가 문제였다. 아마 그 하나가 섭혼귀령일 것이다.
무흔은 통로 중앙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일갈했다.
“나와라! 섭혼귀령!”
“오호호!”
역시 요사스러운 웃음과 함께 세 사람이 등장했다. 중년미부인 섭혼귀령과 산적과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두 녀석.
“나의 존재를 눈치채다니 대단하구나.”
섭혼귀령이 무흔에게서 열 걸음가량 앞에 멈추었다. 그녀는 무흔을 요모조모 훑어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네가 은옥상을 옆에서 돕고 있다는 그 남자지? 흐음, 잘 생겼네.”
그녀가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는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바라만 봐도 홀려버릴 듯한 눈빛에 무흔은 일순간 당황했으나, 심지를 바로잡고 경고를 날렸다.
“남궁이화에게 행한 섭혼술을 풀어!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오호호호!”
섭혼귀령이 다시 요사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감히 나, 섭혼귀령에게 명령이라니, 간덩이가 부었나 보군?”
역시 마교의 서열 9위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대치하는 동안 끈적끈적한 압박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 기운은 다른 고수들과 달리 이질적인 것이었다.
무흔은 슬쩍 뒤를 확인했다. 남궁이화와 백단영이 여전히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마지막 경고다. 풀어라!”
무흔의 싸늘한 눈빛은 실로 섬뜩했다.
섭혼귀령은 일순간 몸이 위축되었으나 자신을 믿었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두 사람의 조력자까지 있다.
“호호, 뭘 그렇게 서둘러……..”
그 순간 무흔의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슈슉-
그의 오른손에서 수강이 한 자가량 뻗어 나왔다.
섭혼귀령은 자신을 덮쳐오는 하얀 비수의 정체를 금방 알아냈다.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상대는 그녀의 생각을 한참이나 넘어서는 고수였다.
수강이 이마를 향해 날아오자 섭혼귀령은 혼비백산하게 몸을 숙이며 전력을 다해 장력을 뿌렸다.
콰앙-
무흔이 가볍게 왼손 손바닥을 뒤집어 섭혼귀령의 장력을 무산시켰다. 동시에 무흔의 신형이 재차 섭혼귀령을 따라붙었다.
섭혼귀령은 무흔의 무공이 생각보다 훨씬 더 높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그녀는 무흔을 향해 양손으로는 장력을 뿜어 무흔의 접근에 저항했다.
자세를 잡고 뒤에 서 있던 산적과 기생오라비 또한 섭혼귀령의 위기를 알아챘다. 그들은 섭혼귀령을 구하기 위해 연합공격에 들어갔다.
이를 내버려 둘 무흔이 아니었다.
그는 섭혼귀령의 장력을 가볍게 무력화시키면서 수강으로 두 녀석의 허리를 베었다. 순간 한 자 남짓하던 수강의 길이가 쭉 뻗어 나가며 마치 검강과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서걱-
“으악!”
산적과 기생오라비에게 무흔은 감히 상대가 불가한 강자였다. 산적의 허리가 토막 나고, 기생오라비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한 방에 두 부하가 망가지는 것을 본 섭혼귀령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무흔은 그녀가 상상치 못하던 고수였다.
그때 최후의 방책을 떠올린 섭혼귀령의 눈빛이 빛났다.
최후의 수단이자 그녀를 서열 9위에 올려놓은 섭혼대법이었다.
빡-
순간 섭혼귀령의 안면이 한쪽으로 픽 돌아갔다.
빡-
이번엔 반대쪽.
무흔이 그녀를 벽에 몰아붙이고 양쪽 귀싸대기를 날렸다. 섭혼귀령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뺨을 얻어맞은 충격에 주저앉았다.
무흔이 그녀의 멱살을 붙잡고 잔인하게 다시 물었다.
“어디서 잔재주를 피워? 마지막 기회다. 남궁이화를 풀어라.”
섭혼귀령은 눈을 깜박거리며 간신히 무흔을 바라봤다.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에서 붉은 귀기가 사라졌다.
그녀의 온몸으로 강력한 압박이 들어왔다. 무흔은 내력을 끌어올려 기운으로 그녀를 찍어눌렀다.
“으으.”
섭혼귀령은 무흔이 사마극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정말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의 머리를 지배했다.
푹-
“으윽!”
뭘 생각할 여지도 없이 무흔의 수강이 섭혼귀령의 한쪽 어깨에 박혔다. 그녀의 한쪽 팔이 너덜거렸다. 사실상 한쪽 팔이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됐다.
겁에 질린 섭혼귀령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 할게요.”
무흔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다른 쪽 어깨에도 수강을 박았다.
“으악!”
섭혼귀령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석실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하, 한다니까요!”
그제야 무흔은 섭혼귀령이 멱살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는 섭혼귀령을 남궁이화와 백단영이 싸우는 곳으로 데려갔다.
“으으으.”
섭혼귀령이 남궁이화를 향해 몇 차례 눈을 깜박였다. 순간 검을 휘두르며 사납게 날뛰던 남궁이화가 그대로 무너졌다.
백단영이 급히 그녀를 안고 상세를 살폈다.
섭혼술에서 깨어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시전자가 풀어주는 방법과 시전자를 죽이는 법. 무흔이 섭혼귀령을 죽이면 남궁이화는 섭혼술에서 풀려난다. 다만 이렇게 하면 그 후유증이 심해지는 단점이 있다. 그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섭혼귀령이 직접 풀도록 한 것이다.
“나, 나를 놓아줄 거지?”
섭혼귀령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무흔은 그녀를 노려보다가 멱살을 놓아주었다. 섭혼귀령이 간신히 뒷걸음질 쳤다. 이미 무력화된 그녀의 양팔이 너덜거렸다.
“다음에 또 만나게 되면 죽일 테니까 안 보이는 곳으로 도망쳐라.”
무흔은 그녀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남궁이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섭혼귀령이 후다닥 미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때요? 괜찮을 것 같아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게다가 내력 소모도 심해서 일단 안정을 취할 장소부터…….”
무흔은 백단영의 뜻을 이해하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하 미로 곳곳에는 석실이 많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면 석실 내부로 몸을 숨기는 것이 최선이다.
벽 한쪽에 은밀하게 숨겨진 장치를 누르자 석벽이 움직였다.
그그긍-
역시 기관진식을 배워놓으니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무흔은 남궁이화를 안고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백단영은 그 옆에서 남궁이화의 안색을 살폈다.
***
현실로 돌아온 박무훈은 이틀 후에야 백다연 검사에게 연락했다.
원래는 복잡한 일에 괜히 엮이기 싫어 그냥 모른 척하려 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켤 때마다 다운 받아둔 사진 파일이 갈등을 일으키게 했다.
결국 그는 행동에 나섰다. 무훈은 김주신 센터장에게 연락해서 어렵게 전화번호를 얻어 그녀에게 연락했다.
박무훈은 백다연을 서초동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만났다.
백다연의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각에 약속이 잡혔다.
“얼마나 살아남았어요?”
커피를 받고 자리에 앉자마자 백다연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녀의 행동으로 보면 그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짐작됐다. 이틀 동안 그와 그녀가 작업했던 일이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그 일부가 남았다는 사실은 새로운 반전을 의미했으니까.
박무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첫날 장부 서류 찍은 것 절반과 금고에 들어있던 서류 찍은 것은 모두 살아남았어요.”
“어떻게 남았죠? 전 제 휴대폰을 다시 살려봤는데 지운 파일을 살릴 수 없었거든요.”
“아…… 그게.”
박무훈은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벌써 이삼 년이 지난 구식 휴대폰이다.
“이게 용량이 적어서 사진을 모두 저장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때는 예전에 찍은 것들을 지우고 작업해야 하니까 만일을 대비해서 전날 찍었던 사진을 옮겨둔 겁니다. 부족할 때 바로 지울 수 있게. 물론 결국 용량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성능이 나쁜 휴대폰을 사용한 것이 천운이었던 걸까.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만큼 남았으면 핵심 자료를 건질 수 있을지도 몰라요.”
백다연의 표정이 밝아졌다. 은은하게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백단영의 모습과 겹쳐져서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박무훈은 사심을 접고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고맙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마침내 백다연이 손을 내밀었다.
“그럼 그 파일은 어디에 있어요? 휴대폰에 넣어서 가져왔나요?”
“아뇨, 여기요.”
박무훈은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USB에는 컴퓨터에서 다시 옮긴 사진 파일이 저장되어 있었다.
백다연이 USB를 자신의 휴대폰에 연결하여 사진을 옮겼다. 사진 분량이 많아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박무훈은 백다연을 보았다.
오늘 그녀는 검은 바지 정장 차림이었다.
입고 있는 옷과 분위기만으로도 검사라는 느낌이 팍 왔다. 하지만 그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이상하게도 백단영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을 찾아냈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 사진이 전부죠?”
옮긴 사진을 확인하던 백다연이 다시 물었다.
“네, 그 사진 중에…….”
박무훈이 손을 뻗자 백다연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놓고 머리를 맞댄 채 사진 파일을 점검했다.
그 순간 박무훈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고 몸이 경직됐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 바로 그곳에는 그가 천향무후에 접속할 때 누르던 그 아이콘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