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21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21화
221화. 현대의 인연 (3)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앞에 놓고 박무훈은 고민에 빠졌다.
맞은편의 백다연 검사를 볼수록 백단영이 떠올랐다. 이름이 비슷하다기보다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놀라운 외모도 외모였지만, 그 외모마저 어딘지 모르게 백단영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무림의 백단영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심부름센터 일을 하다가 만난 검사라니.
“설마…….”
“왜 그러시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무훈은 그녀를 힐끔 보면서 어제 낮에 보았던 사만국 사장을 떠올렸다. 그자도 사마극과 닮은 분위기였는데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박무훈은 백다연 검사에게 천향무후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장르 소설을 읽는 사람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까. 그것도 이제는 유행이 지난 무협을 말이다.
“이틀 동안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 센터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드려요.”
백다연이 다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어떤 증거를 찾으신다던데…… 찾았습니까?”
“아직 몰라요. 내일 자료를 취합해서 보내주면 제대로 살펴봐야죠.”
“사만국 사장이 타겟입니까?”
“네. 그자는 마약에 조폭 연루 등……. 죄질이 나빠요. 지금은 회사 비자금의 해외 은닉 혐의를 받고 있지만요.”
백다연이 생맥주잔을 들었다.
박무훈은 그녀와 잔을 부딪쳤다.
어째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무림 세계에서 무림삼화는 미모와 무공을 겸비하지 않았던가. 현실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백단영과 백다연이 모두 검사란 사실이 신기했다. 휘두르는 칼의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난 그 자랑 악연이 있어요. 지난번에 마약 연루 혐의로 체포했다가 체내에서 마약이 검출되지 않아 풀어줬거든요. 압수 수색 때도 마찬가지고요. 위에서는 이만 접으라는데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을 내버려 두려니…….”
“하여간에 고마웠어요. 덕분에 증거가 될 만한 자료들을 모았으니.”
그녀는 맥주를 들이켰다.
무훈은 백다연을 보고 있자니 백단영이 그리워졌다. 다시 무림 세계로 들어가려면 이틀이 지나야 한다.
눈앞의 백다연은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검사와 심부름센터 직원이 얽힐 일이 자주 있을 리 없으니, 아마 이 인연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사실 박무훈은 자리가 다소 불편했다. 검사와 마주 앉아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서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점점 좌불안석이 된 박무훈은 빨리 자리를 파하고자 맥주를 쭉 들이켰다. 포크로 치킨을 뜯어 먹으면서 내심 눈앞의 미녀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일이 터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치킨집 내부로 양복을 입은 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조폭은 아니고 평범한 샐러리맨들이었으나, 대여섯 명에 달하는 자들이 박무훈이 앉은 탁자를 둘러쌌다.
좁았던 치킨집이 더 복잡해졌다. 박무훈과 그녀를 제외하고는 다른 손님이 없었기에 별다른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영문을 모르는 치킨집 주인만 눈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박무훈이 양복 입은 사람들을 훑었다. 눈에 익은 사람도 한둘 보였다. 바로 선도물산 직원들이었다.
백다연 역시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직원들을 훑어보고 있을 때, 사만국 사장이 등장했다.
사만국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두 사람 앞에서 자리를 잡았다. 박무훈과 백다연과 사만국이 탁자의 각 면을 차지하고 앉은 국면이 전개됐다.
“호오, 우리 검사님께서 치맥을 즐기시는구만.”
잠시 당황했던 백다연의 안색도 평소처럼 돌아왔다.
“사만국 사장님께서도 치맥이 취미이신 줄 처음 알았네요.”
사만국이 손을 흔들자 생맥주가 한잔 전해졌다.
의도적으로 잔을 두 사람에게 부딪힌 사만국이 맥주를 마시고는 흉흉한 눈길을 백다연에게 보냈다.
“우리 검사님, 이것 좀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백다연과 사만국의 시선이 허공에서 만나면서 불꽃이 튀었다. 박무훈은 두 사람의 기싸움을 한발 물러난 입장에서 흥미롭게 구경했다.
“아무리 제 팬이라 절 따라다닌다지만, 그래도 선을 지키셔야지요.”
사만국의 비웃음에 백다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와 손을 잡으시면 앞으로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겁니다. 그래도 제가 여러 방면에 깔아놓은 인맥이 상당합니다.”
“아마 그 인맥에 있는 사람들은 조만간 인연을 끊으려고 할걸요.”
백다연도 지지 않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던 사만국이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주시죠.”
꼼짝 않는 백다연을 노려보던 사만국이 다시 그녀를 달랬다.
“현직 검사가 불법을 저질러도 되는 겁니까? 압수영장 없이 몰래 잠입해서 수사라……, 외부로 알려지면 당신도 잘릴걸요? 좋게 해결하죠. 휴대폰을 내놓으면 없던 일로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앞으로 저를 수사하지 않는다면 더 좋은 일이고.”
“검사를 협박하나?”
백다연의 싸늘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사만국이 손을 들고 능글맞은 웃음을 터트렸다.
“저런, 협박이라뇨, 사정하는 겁니다. 나도 불법을 저질렀지만 검사님도 불법을 저질렀지 않습니까. 서로 좋게 넘어갑시다. 외부로 알려져서 좋을 일 없다는 것은 검사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박무훈은 사만국이 이틀간 했던 일을 모두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정하고 이곳에 들이닥친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백다연이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꺼냈다.
“너도 휴대폰 내놔.”
사만국이 박무훈을 향해 위협했다.
저항할 처지가 아닌지라 백다연의 눈치를 보며 박무훈 역시 휴대폰을 꺼냈다.
사만국이 두 휴대폰을 수거한 다음 부하 직원에게 넘겼다.
“휴대폰에서 최근 이틀간 찍은 사진을 모두 지워.”
휴대폰을 받아든 직원 한 명이 옆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과 연결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 검사님, 앞으로 서로 좋은 관계 부탁드립니다. 자꾸 이러시면 저도 어쩔 수 없다는 정도는 아시겠지요?”
백다연이 사만국을 노려보며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사만국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검사님, 다음번엔 선남선녀로 한번 만나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알고 보면 저도 꽤 괜찮은 남자입니다.”
“농담은 그 정도로 하시죠.”
백다연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휴대폰이 다시 돌아왔다.
목적을 달성한 사만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검사님, 오늘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협박하면서도 마치 예의 바른 학생처럼 사만국이 백다연에게 꾸벅 인사한 후 부하 직원을 이끌고 사라졌다.
백다연이 긴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틀간의 작전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아쉬움이 절절히 엿보였다.
“미안하게 되었군요.”
그녀의 사과에 박무훈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저야 뭐…… 어차피 일만 한 처지라…….”
일이 어떻게 되든 심부름센터는 돈을 받았을 테고 박무훈은 일당을 챙겼다. 그가 아쉬울 일은 없었다.
“일어나죠.”
백다연이 맥주 값을 계산했다.
먼저 문을 나서는데 뒤쪽에서 백다연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젠장, 녀석이 자기 맥주 값까지 넘기고 갔어.”
치킨집 앞에서 백다연을 보낸 박무훈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마극과 백단영을 이곳 현대에서도 만난 것 같은 이상한 기분 때문에 그는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한참 그들의 얼굴과 분위기를 떠올리다가 박무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신경 끄자.”
그는 휴대폰을 한쪽에 던지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피곤이 몰려왔다. 잠을 자려고 몸을 뒤적이던 박무훈은 문득 어제 사진을 컴퓨터에 옮겨놓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어? 그러면 절반을 살린 것 아닌가?”
그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
나흘이 지나 박무훈은 다시 무림 세계의 무흔으로 돌아왔다.
석실에 쪼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눈을 뜬 그는 옆에서 운기 중인 백단영을 주목했다. 이상하게도 현실에서 보았던 검사 백다연이란 여자와 그 외모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잠시 백다연과 사만국을 떠올리던 그는 다시 이곳의 문제로 눈을 돌렸다.
이곳에서는 음천마령과 사마극을 제거해야 한다. 지하 미로 어딘가에 있을 은옥상과 남궁이화에 대한 걱정 또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곳 석실에서 나가면 그녀들부터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단영의 운기조식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음천마령과 싸울 때 내공을 많이 소모했던 모양이었다.
조용했던 석실 외부에서 간간이 폭음과 진동이 전해졌다. 누군가가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절로 급한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 또한 내공이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무흔은 중간중간에 틈을 내어 내공 회복을 진행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백단영이 운기조식을 끝냈다.
“무흔? 어떻게 됐어?”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자신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백단영을 보며 무흔은 백다연을 기억에서 지웠다.
“음천마령은 어떻게 상대할 거야?”
백단영 역시 이곳 싸움의 핵심이 음천마령이란 사실에 주목했다.
“현재 음천마령이 노리는 사람은 저예요. 다른 사람은 음천마령을 건드리지 않으면 큰 위험이 없죠.”
무흔의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물론 음천마령이 사마극의 지시를 다시 받으면 달라지지만.
“그리고 음천마령의 기운은 저에게 큰 타격을 주지 않아요. 아가씨께서도 느꼈겠지만 그건 아가씨에게도 마찬가지예요. 기운이 유사해서.”
“그건 알아. 하지만 나 또한 전력을 다해 공격해도 음천마령에게 타격을 주기 쉽지 않아.”
무흔과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연합했건만 음천마령을 제거할 수 없었으니 난감한 것은 사실이었다. 더구나 음천마령의 가공할 음공은 이곳 지하 미로를 뒤집어 놓을 듯한 위력이 있지 않던가.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엄청난 적이 바로 음천마령이었다.
생각에 잠겼던 무흔이 결심을 굳혔다.
“그렇다면 우리도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야겠어요.”
“뭔데?”
백단영은 무흔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새로운 무공이 튀어나왔음을 기억했다. 고민하더니 새로운 무공을 창안한 것이 틀림없었다.
“예전에 물 위를 달리는 수상비를 가르쳐드렸잖아요?”
“그렇지?
“무흔천상보의 전신인 추혼천상보는 원래 운경각 삼 층 서고에 있던 이름 모를 비급에서 익힌 거랍니다. 추혼천상보를 제가 개량한 보법이 무흔천상보이고요. 그런데 최근에 마교의 마마환영비를 연구하다 보니 새로운 기법이 떠오르더라고요.”
“뭔데?”
“왜 이 보법에 천상보란 이름이 붙었을까…….”
천상보(天上步). 하늘 위를 걷는 보법. 말만 들어도 놀랍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