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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21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19화

219화. 현대의 인연 (1)

 

 

 

무흔에서 박무훈으로 돌아온 그는 시계를 보았다.

밤 12시. 평소와 마찬가지로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물론 지금은 그가 무림 세계로 넘어갔던 바로 그 시점이기도 했다.

이제는 현대와 무림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 일상생활처럼 익숙해졌다. 사실 나흘에 한 번씩 접속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전부였으니 현실 생활에 지장을 줄 일은 없었다.

침대 위에서 뒤적거리던 박무훈은 오랜만에 GOD 작가와 톡을 하고 싶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 GOD 작가님, 계신가요?

- GOD 작가 : 무슨 일이십니까?

여느 때처럼 즉시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할수록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 사마극을 죽이고 히로인인 백단영을 살리면 이 접속도 끝이 나나요?

- GOD 작가 : 그렇습니다.

- 반드시 제가 사마극을 죽여야 합니까?

- GOD 작가 :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백단영만 살면 됩니다.

- 그럼 사마극을 제가 죽여도 되고 백단영이 죽여도 되고 또는 다른 사람이 죽여도 되는군요.

- GOD 작가 : 사마극이 살아있어도 됩니다. 앞으로 백단영을 죽이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말입니다.

결론은 사마극을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갑자기 사마극이 개과천선한다거나 이런 식의 결말은 개연성 파괴임이 분명하니까. 사마극의 성격으로 봐도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해보니 사마극을 죽이지 않고 백단영을 살리는 방법이 한 가지 있을 법하긴 했다. 사마극과 백단영이 맺어지면 된다. 사마극이 백단영을 좋아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무흔이 싫었다.

“어쩔 수 없네.”

지금 상황에서 사마극을 죽이려면 음천마령이 방해가 된다. 박무훈은 다시 질문을 보냈다.

- 음천마령을 파괴할 방법은 없습니까?

- GOD 작가 :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기보다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어차피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던 박무훈도 굳이 치트키를 쓸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마지막 질문. 아주 가끔이었지만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가던 의문이 생각났다.

- GOD 작가님 중요한 것 하나 질문드립니다.

- GOD 작가 : 물어보세요.

- 혹시 그 무림 세계에서 현대와 그곳을 오가는 사람이 저뿐입니까?

- GOD 작가 :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 있습니까?

- GOD 작가 :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톡이 끊어졌다.

박무훈은 방금 GOD 작가와 했던 톡을 다시 검토했다. ‘저도 모릅니다’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이 둘은 묘하게도 어감이 다르다.

“있는데 알려줄 수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없어서 알려줄 수 없다는 뜻인가?”

생각해보면 소설 천향무후를 리메이크하면서 GOD 작가가 꼭 그에게만 도움을 요청했다는 보장은 없었다. 다른 사람도 그와 비슷한 조건으로 섭외했을 수 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괜히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잖아도 지금 지하 미로에서 음천마령을 어떻게 처리할지, 은옥상을 어떻게 살릴지, 사마극을 어떻게 죽일지 그게 고민되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나흘 뒤에 다시 접속할 때까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 할 상황이다.

박무훈은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이불 속으로 깊이 몸을 묻었다.

생각해보니 내일 아침에 일이 있다고 일찍 출근하라던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의 직장은 심부름센터 아르바이트다. 물론 그가 다니는 심부름센터에서는 특별히 위법적인 일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주로 귀찮고 잡다한 일이 많고 가끔 일손이 부족하다는 곳에 대타를 뛰는 그런 일이다.

“나중에 고민하자.”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아침 7시.

박무훈은 하품을 연신 해대며 심부름센터 문을 열었다.

센터장인 김주신과 유일한 직원인 이성준은 이미 떠날 채비를 마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주신 센터장은 그보다 10살가량 많은 마흔 살이고, 이성준은 그와 동갑이었다.

이성준은 그보다 대략 이삼 년 정도 먼저 이 업계에 뛰어들어 지금은 베테랑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그는 아르바이트생이고 이성준은 직원이었지만 사실상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박무훈 역시 나름대로 일을 잘했기에 김 센터장이 자주 이 업계에 짱박으라고 꼬셨다. 그래도 대기업 취업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박무훈은 아르바이트생으로 남아 있었다.

사실상 하는 일은 그와 이성준이 비슷했다. 봉급은? 아! 말을 말자. 눈물이 난다.

“아침부터 어디로 가나요?”

“잔말 말고 따라와라.”

김 센터장이 늦었다고 닦달했다.

이런 일이 흔치 않은 경우이긴 했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어서 박무훈은 두말하지 않고 센터장의 고물 카니발에 올랐다. 어차피 가는 길에 내용을 설명해줄 테니까.

이성준이 운전하는 동안 김주신이 오늘 할 일을 설명했다.

“오늘은 이삿짐을 나를 거다.”

“예? 이삿짐요?”

이삿짐 나르는 아르바이트는 대표적으로 힘든 일에 속한다. 그런데 갑자기 심부름센터에서 이삿짐 아르바이트라니?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앉아있자니 상세한 설명이 따라왔다.

“내가 예전에 경찰 일할 때 인연을 맺었다던 검사님 있잖냐? 지금 서울중앙지검에 계신.”

“아, 차장 검사님요?”

박무훈은 이름까진 기억나지 않았으나, 김 센터장과의 술자리에서 가끔 과거 무용담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사람이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도 끈끈한 인연을 이어간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는 순전히 김 센터장만의 착각인 듯했지만.

“그 검사님께서 얼마 전에 해외로 자금을 빼돌린 외환관리법 위반 첩보를 받아서 말이지. 그걸 수사했는데 결국 혐의를 찾지 못했어. 사실상 포기 상태에서 그 아래에 있는 2년 차 신참 검사가 마지막으로 단서를 잡기 위해 수사 중이거든.”

해당 기업은 국내 중견기업으로 알려진 선도물산. 해외에서 각종 물품을 들여오거나 내다 파는 무역업과 각종 하도급 건설에 관여하는 건설업이 주 업종이었다.

이 선도물산의 사장은 삼십 대 후반으로 연예계나 클럽을 비롯한 유흥 쪽으로 발이 넓다고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조폭 쪽에도 선이 닿아 있다는 소문마저 있었다. 과거에는 마약을 한 혐의로 한차례 수감된 바 있고, 최근에도 마약 밀수 혐의를 받고 있는 망나니였다.

검찰에서도 이를 알고 사장을 소환해서 마약 검사를 했으나 검출에 실패했다. 

“마침 이번에 선도물산이 새 사옥으로 이사를 하거든. 기업 이사. 우리는 오늘과 내일 이틀간 인부로 변장해서 이사를 도우면 돼. 이사하면서 관련 장부를 찾는 게 목표야.”

“그냥 압수 수색하면 안 되나요?”

그래도 티비에서 본 바가 있어서 박무훈이 질문을 던졌다.

“그게 어려운가 봐. 이미 한차례 소환해서 마약 검사에 실패했고 압수수색도 한차례 했는데 성과가 없었거든. 그렇다 보니 또 압수 수색하기 어려운 거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대략 이해됐다.

“그런데 이렇게 습득한 자료도 증거가 되나요?”

“그거야 우리가 신경 쓸 바 아니고, 우리는 검찰 쪽 사람들과 같이 이삿짐센터 직원으로 변장해서 도울 거야. 내일까지. 더 궁금한 것 있어?”

심부름센터나 이삿짐센터나. 박무훈은 입을 닫았다. 사실 궁금한 것이 엄청 많지만 센터장이라고 알 것 같지도 않았다. 다른 일 때와 마찬가지로 시키는 일만 하면 충분하다.

창밖으로 차들이 휙휙 지나갔다. 박무훈은 이삿짐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무림 세계를 떠올리면서 눈을 감았다.

 

***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선도물산 본사였다. 선도물산은 서울에 본사가 있고, 부산에 지사를 두고 있다고 했다.

본사는 테헤란로에 있는 빌딩에 입주해서 모두 3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3개 층의 임대가 만료되어 몇 블록 떨어진 새 사옥으로 이사 간다고 했다.

부근에 도착하자 카니발에 사십 대의 평범한 남자가 올라탔다.

“검찰 수사관 김상철입니다. 오늘 내일 수고 좀 해주시고요, 궁금한 점은 모두 저를 통하시면 됩니다. 여러분께서 해주실 일은…….”

김상철 수사관이 할 일과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검찰의 개입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비상시 이삿짐센터 직원이라 우기고 그게 안 통하면 인력시장을 통해 노가다를 지원한 사람이라 주장하라나.

검찰에서 동원된 사람은 모두 셋에다 박무훈네 심부름센터에서 셋. 모두 여섯 명이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박무훈 쪽에서는 검찰에서 일대일로 붙을 것이니까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물론 이사는 이삿짐센터에서 알아서 하겠지만, 이삿짐을 옮기러 온 것으로 보여야 하는 만큼 힘을 좀 써야 합니다. 자, 그리고 마스크를 쓰세요. 먼지가 많이 나는 일이라 마스크를 써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장황한 주의사항 브리핑이 끝나고, 그들은 마스크를 쓴 다음 차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사람이 더 붙었다. 한 사람은 박무훈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삼십 대 중반 남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박무훈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 여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삿짐 직원과 같은 작업복 차림이었고, 여자는 야구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자세한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검찰에서 파견한 사람이라고 했지.’

박무훈은 검찰에서 나온 사람의 눈치를 봤다. 아마 저들 중 한 사람과 짝을 이루어 온종일 이삿짐을 정리할 것으로 보였다.

그들이 옮겨야 하는 사무실은 팔 층부터 십 층까지. 층마다 두 사람씩 배치되었고, 박무훈은 검찰 쪽에서 나온 젊은 여자와 가장 위층인 십 층을 맡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젊은 여자가 박무훈에게 물었다.

“성이 어떻게 되죠?”

“박 씨입니다.”

“그럼 박 대리라고 부를게요.”

“저는?”

“백 대리라고 부르세요.”

십 층으로 올라가자 미리 온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책상 위의 컴퓨터를 분해하고 네트워크 선을 제거하는 등의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십 층에 배정된 이삿짐센터 사람은 모두 셋. 검찰에서 파견된 여인과 박무훈까지 합하면 모두 다섯이었다.

아마도 아래층에도 이만큼의 인원이 이사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얼핏 보이는 선도물산 직원은 두 사람이었다.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사원 두 사람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서 이삿짐 꾸리는 것을 감시 중이었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가정집 이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여 쉽게 적응했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이삿짐센터 직원과 어울렸다. 사무기기를 한쪽으로 모으고 각종 서류철을 분류하여 박스에 넣는 작업을 했다.

사무실에 적인 팻말을 보니 이곳은 비서실이고 그 옆이 사장실이었다.

검찰에서 찾고 있는 서류는 사장실이나 기획실, 회계부서에 있으리라 예상되어 그와 백 대리의 활약이 상당히 중요했다.

탕비실에서 잡다한 물건을 정리한 백 대리가 사장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박무훈도 꾸리던 박스를 내버려 두고 그녀를 따라 사장실로 들어갔다.

인테리어가 꽤 화려한 사장실은 사장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고 남에게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그런 유형처럼 보였다. 사장의 모습을 추측해 본다면 번쩍번쩍한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으리라.

사장실에는 각종 물품의 샘플이 보관된 장식장이 있어 백 대리가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담기 시작했다.

“저기 사장 책상 아래의 서랍장 보이죠? 저기 들어있는 것을 잘 살펴야 하고요, 저쪽에 책장도 주의해야 해요. 안에 있는 내용물을 박스에 포장하다가 비슷하다 싶으면 휴대폰으로 내용을 찍고요. 아셨죠?”

이미 오는 도중에 한차례 설명을 들었던지라 박무훈은 알겠다는 손짓을 했다.

이사용 플라스틱 박스를 가져온 박무훈은 조심스럽게 사장의 책상 위에 있는 물품을 챙겨 담았다.

문득 책상 위에 있는 명패에 눈이 갔다.

선도물산 대표 사만국.

흔치 않은 성씨인 데다 이름도 다소 특이하다.

박무훈은 명패를 박스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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