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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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16화
216화. 복수 (2)
마교의 칼받이 군단을 맞이한 용봉대에서 가장 돋보인 인물은 당연히 장후성이었다. 불사신룡이라는 거창한 별호답게 그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가로막는 자를 도륙했다.
눈앞의 상대가 한때 무림 공적이었던 나쁜 놈임을 알게 된 그는 검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피가 뿌려졌다. 자연스럽게 그를 막아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용봉대의 대주이자 또 다른 강자인 풍사검객과 서옹은 위기에 빠진 용봉대원을 도왔다. 덕분에 그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칼받이 군단에서 최강 전력은 혈살이마존이었다.
송상군과 반도석은 다년간 공적으로 쫓겨 다닌 경험 덕분에 단숨에 이 전투의 강자가 누구인지 파악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장후성과 대주들을 피해 다니며 용봉대의 그저 그런 자들을 공격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마다 뛰어든 풍사검객에게 저지되어 성과는 미미했다.
그때마다 두 사람은 빠져나와 다른 약자를 찾아 싸움을 걸었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매우 효율적인 전술이 됐다.
“저기 봐.”
송상군이 용봉대원 한 사람을 공격하고 반도석에게 슬쩍 눈짓했다. 반도석의 시선이 절로 그쪽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검을 휘두르며 용맹을 떨치고 있었다.
“아는 여자?”
“예전에 우리가 박살 냈던 창의문이라고 있었잖아?”
그들이 박살 낸 소규모 문파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반도석은 금방 생각해내지 못했다.
송상군이 재빨리 부연 설명을 붙였다.
“객잔에서 시비가 붙어 결국 문주까지 개박살냈던 사건. 똑바로 살라고 훈계하던 그 문주 말이야.”
눈동자를 굴리던 반도석이 그제야 피식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 딸이야.”
반도석의 눈이 다시 한 여인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모용예를 납치했던 그때 방해를 놓았던 것도 저년이야.”
송상군이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이래저래 많이 얽혀 있는 여자였다.
서로 의사를 교환한 두 사람은 달려드는 용봉대원을 쳐내고는 몸을 날려 먹잇감을 양이설에게로 옮겼다.
순식간에 양이설의 좌우로 혈살이마존이 붙었다.
양이설은 처음에 혈살이마존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철천지원수다. 금방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 그녀는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혈살이마존! 잘 만났다!”
양이설은 검을 힘껏 움켜쥐고 분노를 터트렸다. 가문의 원수이자 동시에 어머니와 자신을 겁탈했던 악마인지라 절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자들 아닌가.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서 열심히 검법을 수련하는 이유도 이 두 악마 때문이었다.
혈살이마존이 음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흐흐, 내가 그렇게 그리웠다면 진작 말하지 그랬느냐? 언제라도 즐겁게 해줄 수 있거늘.”
“그 입부터 도려내 주마!”
눈에 불을 켠 양이설의 검초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녀 혼자서 둘을 상대하기는 어렵다. 옆에 있던 대호가 금방 전세를 파악하고 양이설에게 붙었다.
자연스럽게 한 명씩 담당하는 죽음의 대결로 변했다.
혈살이마존의 무공은 중원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구대 문파 장문인 정도를 빼면 거의 대적할 자가 드물다. 그런 무공을 지니고 있기에 과거에 무차별적으로 만행을 저질렀다.
혈살이마존은 당연히 햇병아리 여자 하나는 쉽게 농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옆에 끼어든 남자 또한 그들이 보기에 별것 아닌 존재였다. 아마 이 여인의 미모에 혹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덤벼드는 부나방이리라.
양이설은 막상 혈살이마존을 만나자 숨이 턱 막혔다. 하루도 잊은 적이 없는 원수이고 칼을 갈아온 악한이건만 과거 생각이 떠오르자 절로 심장이 졸아들었다. 게다가 자신을 겁탈했던 자를 눈앞에서 다시 만난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는 무흔을 믿었다. 무흔에게서 배웠던 무공을 믿었다. 무흔은 그녀에게 창의문 검법을 다시 손봐주었고 무상벽라검법을 가르쳐 주었다. 거기에 훗날 혈살이마존을 만나면 써보라며 무상벽라검법에 없던 마지막 초식까지 덧붙여 가르쳤다.
“난 이길 수 있어!”
양이설은 입술을 깨물었다. 머릿속에 그동안 배웠던 수많은 검초를 다시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 가장 효과적인 검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대호 또한 눈앞의 상대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챘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혈살이마존이 양이설의 사문인 창의문을 멸문시킨 마두라는 정도는 안다.
당연히 그도 죽을힘을 냈다.
채챙-
장력과 검기가 서로 엉키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일으켰다. 삽시간에 그들의 전투는 이곳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되었다.
“허억! 이것들이!”
양이설을 상대하는 송상군이 예상외로 강력한 그녀의 무위에 연신 뒷걸음질 쳤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강호의 평범한 무인이었던 그녀가 지금은 절정고수로 탈바꿈해 있었다. 더구나 끝없이 펼쳐지는 검초의 다양함은 강호 경험이 풍부한 그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예상과 다르게 고전하게 된 송상군은 동료인 반도석의 상태를 살폈다. 반도석 역시 처음 보는 녀석을 만나 고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양이설이 죽기 살기로 공격을 펴고 있다는 점이었다.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펼치는 검초의 날카로움은 송상군으로서도 쉽게 막아내기 어려웠다.
혈살이마존은 잔뼈가 굵은 고수다. 무공이 불리해도 온갖 잡다한 방식을 동원해서 상대를 거꾸러트릴 줄 아는 자다. 정말 그들이 양이설과 제대로 붙어볼 각오를 했다면 양이설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혈살이마존은 잔머리를 굴렸다.
이 싸움은 엄밀하게 사문의 명운이나 목숨이 걸린 그런 전투가 아니었다. 또 눈앞의 상대를 죽이려고 괜히 힘을 뺐다가 자칫 다른 용봉대원에게 걸려 오히려 죽게 될 위험도 있었다.
결론은 바로 나왔다. 상대가 쉽지 않은 이상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애송이가!”
송상군은 거칠게 욕설을 퍼부으며 양이설을 몰아붙였다. 양이설이 조금만 물러나 주면 그 틈을 노려 바로 꽁무니를 뺄 요량이었다.
하지만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독이 오른 양이설이 더 매섭게 공격을 퍼부었다.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양이설에게 송상군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순간 양이설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바로 무흔이 최후의 절초라며 알려줬던 무상벽라검법의 마지막 초식이었다.
서걱-
그녀의 검이 허공을 가르면서 송상군의 한쪽 팔이 날아갔다.
“커윽!”
순간의 방심에 팔이 떨어져 나간 송상군의 충격은 엄청났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이 이런 상황에 빠지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강호의 이름 없는 무명 잡배에게 말이다.
고통에 몸을 움츠리는 순간 다시 검이 그의 등을 갈랐다.
화끈한 검기가 몸을 파고들면서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순식간에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바닥에 쓰러지자 양이설의 검이 목을 겨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양이설의 분노한 목소리에 송상군은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네놈이 멸문시킨 창의문의 딸이다. 지옥으로 보내주마!”
그녀의 검이 송상군의 목을 찔렀다.
원수를 갚아 흥분한 상황에서도 양이설은 다른 한 명의 원수를 생각해냈다. 그녀의 옆에는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호를 압박하는 반도석이 있었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최강의 검초를 펼쳤다. 그녀의 한 서린 검날이 반도석의 허리를 벴다. 반도석은 대호를 신경 쓰다가 뒤에서 날아온 양이설의 검을 피하지 못했다.
“아악!”
그제야 양이설은 소원을 이루었음을 깨달았다. 창의문이 멸망한 이후 어떻게든 복수를 해보고자 강호를 전전하며 떠돌았던 과거가 생각났다. 그리고 무흔을 만난 이후 복수만을 생각하며 무공 수련에 매진했다. 그 보상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양이설은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이제 목적을 이루었기에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바로 옆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건만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혈살이마존의 시신만 바라보았다.
다행히 대호가 그녀의 옆을 지켜주었다.
***
무흔은 백단영을 비롯한 모두를 한빙소가 있는 동굴로 끌어들였다.
은옥상의 안전이 염려되었던 북령은 빨리 천마궁으로 가지 않는 무흔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다급해진 북령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휘적휘적 동굴 내부로 걸어 들어가면서 무흔은 앞을 가리켰다.
“여긴 왜요?”
“필요하니까.”
“지금 소교주님께서 급하다니까요.”
북령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무흔은 점점 깊숙이 안으로 들어갔다.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조용히 그들을 따랐다.
한참을 들어가니 기온이 뚝 떨어지며 눈앞에 커다란 연못이 나타났다. 바로 한빙소다.
“여기가 절대마령이 잠들어 있던 곳이야.”
“그런데요?”
여전히 북령의 목소리가 뾰족했다.
무흔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기에 몸을 담궈 내력을 일으켜봐.”
“그게 무슨…….”
태평스러운 무흔에게 핀잔을 주려다가 북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무흔이 뭔가 뜻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한빙소를 빙 둘러 안으로 들어가는 무흔을 따라 북령을 비롯한 세 여인은 계속 동굴 깊숙이 진입했다.
“이곳으로 가면 기관진식이 나와. 그 기관은 천마궁 지하와 연결되지.”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무흔이 이 동굴 내부를 탐사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 이 사실은 정작 마교인인 북령도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우리는 이 지하 미로로 천마궁에 잠입하는 건가요?”
그제야 무흔의 뜻을 이해한 북령이 다시 물었다.
“아니, 내 생각대로라면 사마극은 이 미로 내부에서 전투를 벌일 거야.”
“설마…….”
북령은 은옥상을 천마궁으로 부른 사마극의 제안을 떠올렸다. 정상이라면 굳이 복잡한 지하 미로를 사마극이 전투장으로 삼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마극 수하와 전투를 벌이게 될 테니, 그때까지 지하 미로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아. 또 여차하면 위험할 때 도망쳐야 하니까 지금 이 길도 꼭 기억해두고.”
정작 무흔의 당부를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어두운 동굴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마침내 자연동굴이 끊어지고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무흔이 가볍게 손을 젓자 석문이 열렸다. 석문 안에는 말 그대로 지하 미로가 건설되어 있었다.
“여기부터는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으니까 돌아다닐 때 조심해야해.”
무흔은 일행에게 경고하면서 빠른 속도로 지하 미로를 통과했다.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지하 미로를 지나면서 예전 만혈대의 지하 미로를 떠올렸다. 당시 그곳에서 만났던 사마극과 마교인은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지하 미로와 기관진식은 그 내부 구조를 모른다면 그만큼 위험에 처한다. 다행히 무흔은 기관진식에 어느 정도 숙달되었고, 이곳 미로 또한 탐사하여 구조를 파악해 놓았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무흔을 보며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감탄을 터트렸다. 북령 역시 마교 본산 아래에 이런 구조물이 존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지라 놀라움이 컸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여기가 천마궁 지하쯤 되지.”
무흔이 마지막 석문을 열며 말했다.
그그긍-
석문이 열리고 무흔이 무심코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 강력한 충격파가 그를 강타했다.
콰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