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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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14화
214화. 염탐 (4)
두 사람이 무흔을 인도한 곳은 주변에 텃밭이 딸린 작은 가옥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텃밭에는 이상한 약초가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독의가 독과 약을 다루는 자이니 이처럼 텃밭이 딸린 곳을 선호하는 성향이 당연해 보였다.
연연의방 뒤쪽에 있는 텃밭에도 귀의가 키우던 약초가 가득했던 사실을 떠올리며 무흔은 이곳이 확실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고맙네. 다 왔구먼.”
“그럼 몸조리 잘하십시오.”
두 사내가 꾸벅 인사하고는 저편으로 사라졌다.
무흔은 조심스럽게 가옥 앞으로 다가갔다.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아직 천마궁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삐걱-
문을 연 무흔은 내부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이어 몰래 따라왔던 백단영과 남궁이화도 순식간에 내부로 들어왔다.
창으로 비치는 빛을 통해 가옥 내부의 정경이 눈에 보였다.
“흐악!”
가옥 내부에는 갖가지 독극물이 가득했다. 특히 전갈과 뱀이 담긴 수많은 통은 그들에게 섬찟한 기분을 전했다.
백단영이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 확인한 무흔은 실소를 머금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역시 독을 다루는 자라 주변에 독극물이 천지였다. 물론 무흔이나 백단영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남궁이화는 다르다.
“남궁 소저, 여긴 위험 물건이 많으니 함부로 손대지 마세요.”
“나는?”
“아가씨는 상관없잖아요.”
“초마단이란 단환을 찾아야 해요. 대략 오십 개가량 있다던데.”
무흔의 시선은 각종 약재가 쌓여있는 서랍장으로 옮겨졌다.
“우와, 무슨 약이 이렇게 많아?”
약인지 독인지 알 수 없으나 엄청난 수의 약재가 가지런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독의는 매우 꼼꼼한 사람인 것이 확실했다.
서랍장을 뒤지기를 한참 만에 백단영이 초마단이라 적힌 양피지와 함께 검은 단환 수십 개를 찾아냈다.
“이것 맞아?”
무흔은 초마단 한 알을 꺼내 세밀히 살핀 다음 그곳에서 본 것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게 내공을 두 배나 순식간에 증강시켜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거라고?”
“그렇다네요.”
그 효능으로 따지면 예전에 익혔던 혈우파천만겁공과 비슷했다. 다만 혈우파천만겁공은 내공만 소모하는 반면 초마단은 이지를 상실하게 만드는 극약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모두 없애버려야겠어.”
백단영이 초마단을 모두 꺼내어 주머니에 넣었다.
문득 무흔은 이대로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곧 독의가 초마단을 가지러 여기에 올 것이고, 초마단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대로 골치 아프다.
“비슷한 단환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이 좋을 듯해요.”
약제 서랍을 뒤지던 무흔은 비슷한 단환을 찾아냈다. 연하단이라고 적힌 이 단환은 색깔과 크기가 초마단과 똑같았다.
무흔은 재빨리 연하단을 초마단 서랍으로 옮겼다.
“그건 무슨 약이지?”
백단영의 물음에 무흔이 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연하단(軟下丹)요. 쉽게 말하면 설사약이죠.”
그들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가옥을 빠져나왔다.
만변귀공 덕분에 이런 잡스러운 소매치기, 잠입, 은신에 익숙한 터라 무흔은 그들이 다녀간 흔적을 대부분 없앴다.
초마단을 없애는 작업은 간단했다. 그들은 숲속에서 삼매진화를 이용해 초마단을 태웠다. 초마단에 불이 붙으면서 기이한 냄새가 퍼지며 독의의 과업이었던 초마단이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초마단은 독의가 사마극에게 내밀었던 하나뿐이다.
***
전투에서는 항상 칼받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소규모 전투이건 대규모 전투이건, 국가 간이건 문파 간이건 최전방에서 시간을 벌거나 적군의 움직임을 제한해주는 그런 부대가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마교에도 있다.
마교의 칼받이는 그 무력이 상당히 강하다. 이들의 주축은 마교가 아닌 중원에서 넘어온 자들이다. 대개 무림 공적으로 지목되어 무림맹이나 정파에 쫓겨 심산유곡을 전전하다가 그마저도 어려워지자 마교에 몸을 의탁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사파인이었고, 아주 드물게 정파에서 사고를 치고 도망쳐온 자들이 있기도 했다.
마교는 이들이 무림맹과의 전투에서 활약해줄 것을 기대하고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덕분에 꽤 명성 있는 강자들이 많이 몸을 의탁했고, 이런 자들로 이루어진 부대는 부대 자체의 협력은 뒤떨어질지라도 개개인의 무공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흐흐, 무림맹이라고? 그것도 용봉대?”
“완전히 발라주지. 애송이들이 뭘 알겠나?”
혈살이마존 송상군과 반도석이 의욕을 불태웠다. 이들은 강호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무림맹에 쫓겨 마교에 신변 보호를 요청한 상태였다.
“흐흐, 그때 그년들이 누구였지? 모용예와…….”
“백단영. 양이설이란 여자도 있었지.”
송상군과 반도석은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무림맹에 쫓겨 개봉으로 왔다가 무려일화라던 중원 최고의 미녀 모용예를 납치했었다. 그때 같이 납치했던 여자가 백단영이었나. 양이설이 끼어들면서 놓쳤던 안타까운 사건이 다시 떠올랐다.
“크크, 용봉대라면 다시 만나겠군. 이번에야말로 절대 놓치지 말자고.”
혈살이마존은 이곳 마교에 온 자들 가운데서도 최강의 고수에 해당했다. 최소 마교 서열 삼십 위권에는 들어갈 실력이었기에 마교에서 제대로 자리 잡으면 부귀영화를 누릴 위치에 있었다.
“좋아, 좋아. 이번에 공을 세워서 서열 권에 제대로 진입해보자!”
두 사람은 의욕을 불태우며 전투에 참여했다.
그들 외에 다른 중원인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용봉대원이 비록 기재라 하나 아직 어린 녀석일 뿐이다. 무림 공적으로 쫓기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이 햇병아리에게 쓰러질 수 있나.
수십 명에 달하는 이들은 마교 본산 입구로 몰려갔다.
멀리서 천애령을 넘어온 용봉대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 본산의 입구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양쪽이 모두 격렬하게 싸운 가운데 최강고수인 장후성의 용트림이 시작된 날이었다.
***
사마극은 사냥을 시작했다.
용봉대가 들어오고 있었기에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일단 용봉대는 중원에서 넘어온 칼받이로 막게 했다.
장후성의 무위를 이미 경험했던 그는 칼받이로는 용봉대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용봉대에는 대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주인 풍사검객과 서옹까지 있으니. 무림맹에서 손꼽히는 고수로 불리는 풍사검객은 마교 서열 십 위권 내에 들어갈 무공을 지닌 강자다.
그래도 그 칼받이에 마교 고수 몇을 붙였으니 당분간은 본산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줄 터였다.
그동안 그가 해야 할 일은 마교를 빨리 안정화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그에게 반기를 든 은옥상의 제거다.
“은옥상은 어디에 있나?”
“그게 행방이 묘연합니다.”
사마극의 질문에 마극삼비의 일인인 풍이 대답했다.
안면을 찌푸리며 사마극은 주변 전각을 둘러봤다. 본산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기가 쉽지 않다.
“쥐새끼 같은 것들.”
한바탕 욕설을 퍼부은 사마극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모두 흩어져서 찾는다. 단 발견하면 싸우지 말고 바로 연락한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십여 명의 주요 정예들이 머리를 숙였다.
부하들을 보낸 후 남은 인원은 단 한 명. 바로 음천마령이었다. 음천마령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음천마령만은 홀로 둘 수 없다.
역시 그의 생각이 적중했다.
수색대를 보낸 지 한 시진가량 지났을 때 흔적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옥소마희의 전각에서 옥소마희와 은옥상 소교주가 발견되었습니다.”
“천마궁 북쪽 숲에서 무림맹으로 보이는 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모두 셋입니다.”
사마극은 그 세 명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둘로 나누어져 있다 보니 어느 쪽 사냥이 나을지 고민이 됐다. 중요도만 따진다면 그는 은옥상을 상대해야 한다. 하지만 백단영의 무공이라면 그가 가지 않았을 때 피해가 커진다. 게다가 백단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최선의 결과는 은옥상을 없애고 백단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 두 목표를 모두 완성하려면 그의 몸이 두 개여야 하니 문제다.
고민하던 그가 다시 질문했다.
“난세마동은 어디에 있나?”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은옥상 소교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만, 발견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일단 우리 편부터 모은다.”
명령을 내린 사마극은 부하들이 올 때까지 전략을 구상했다.
용봉대가 밀려오는 이상 마교 내부의 희생을 최대한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자신과 음천마령이라면 저들이 모두 합쳐도 능히 상대할 수 있다.
사마극은 천마궁을 떠올렸다. 천마궁 지하에는 복잡한 지하 미로가 존재한다. 자신은 그 미로를 환하게 알고 있으나 은옥상은 그렇지 못하다. 백단영은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를 것이다. 그녀가 진법에 미숙하다는 것은 만혈대에서 이미 경험했다.
그렇게 본다면 최상의 전투 장소는 천마궁 지하였다.
과거 백 년 전 정마대전 당시에도 마교는 부족한 전력을 만혈대의 지하 미로를 이용해서 만회했었다. 지금 그는 은옥상에 비해 전력이 밀리지 않지만 최소한의 손실이 필요하기에 지하 미로는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어차피 용봉대는 숫자가 많지 않아 이 넓은 본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다. 용봉대마저 지하 미로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고.
“은옥상을 끌어들이면 자연스럽게 백단영과 무흔도 들어올 것이다.”
결심을 굳힌 사마극은 은옥상에게 보낼 서찰을 작성했다. 그 서찰에는 천마궁에서 보자는 선전포고가 담겨있었다.
***
옥소마희의 전각에서 은옥상 또한 고민을 거듭했다.
마교 외부에서 급하게 돌아가는 정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용봉대가 나타난 이상 이제는 단순히 마교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용봉대는 그녀의 조력자인 무흔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녀의 처지에서 용봉대는 도움이 되면서도 골치 아픈 그런 존재였다.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실내를 계속 오가는 은옥상을 향해 옥소마희가 넌지시 물었다.
“무흔을 기다리십니까?”
“그래, 맞아.”
무흔의 엄청난 무력을 보았기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흔이 합류할 때까지 사마극과의 일전을 미루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곳 전각에 숨어 있게 됐다. 사마극 옆에 음천마령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사마극과 홀로 대결할 만큼 그녀는 무모하지 않았다.
그렇게 합리화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무흔에 대한 사심도 컸다.
“한빙소에서의 일은 끝났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은옥상은 얼마 전 어렴풋하게 귓전을 울렸던 무흔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환청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도 그 전음은 너무 이상했다. 무흔이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알려온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먼 곳에서 전음이 전해질 수 있다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소식을 모르니 답답해.”
은옥상은 고개를 저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다. 외부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기에.
그때 북령이 한 사내를 데리고 등장했다. 바로 사마극의 호위이자 마극삼비의 일인인 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