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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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12화
212화. 염탐 (2)
“물론 무흔검법의 최고 단계는 단지 초식을 반복 수련한다고 해서 익힐 수는 없어. 나도 처음에는 다른 검법을 수련하는 것처럼 숙련도를 높여보려다 한계에 부딪쳤으니까.”
백단영의 물음에 무흔은 아는 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검법과 달리 무흔검법은 완벽하게 익힌다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비록 그는 쉽게 성공했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다. 하루 만에 검법의 오의를 깨달아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깨달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니까.
그 부분은 무흔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배우고 싶어.”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동시에 외쳤다. 무림인이라면 그것도 검법을 익히는 자라면 당연히 극에 이른 검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
“내가 시범을 보여줄 테니까.”
무흔은 그녀들의 앞에서 묵천신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백단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잡은 무흔을 바라봤다.
묵천신검이 허공을 갈랐다. 지극히 단순한 동작. 하지만 모든 검법의 오의를 포함하고 있는 궁극의 초식이었다. 얼핏 보면 그 초식은 삼재검법과 닮았다. 그러나 그 초식에서 밀려오는 산악 같은 압력은 상대를 숨 막히게 했다.
초식을 펼치는 무흔 뿐만 아니라 백단영과 남궁이화도 그 속에서 작은 우주를 봤다.
“아, 어려워.”
백단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초식은 아직 자신이 감히 어떻게 해 볼 무공이 아니란 느낌이 먼저 들었다. 남궁이화의 반응 역시 그녀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 초식을 본 중요성만은 모두가 알았다. 무공에서 어떤 틀을 깨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작점은 아주 단순한 깨달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로운 초식을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그녀들도 그런 시작점에 놓일 수 있다.
무흔은 무흔검법의 마지막 초식뿐 아니라 몇 가지 잡다한 무공을 전수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무공을 토해내는 무흔을 보며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살아있는 운경각의 서고를 만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학습시간이 끝났을 때, 문득 무흔은 한빙소가 떠올랐다.
“이 동혈은 절대마령이 잠들어 있던 곳이야. 구경할 생각 있어?”
동혈로 시선을 옮기던 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마령의 강력함과 아직도 절대마령 하나가 온전하다는 사실에서 그녀들도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동혈 내부로 들어갔다.
***
장후성은 가장 선두에 서서 천애령의 협로를 건넜다.
아침에 들린 남궁이화의 목소리는 마치 환각과도 같았다. 그 목소리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그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남궁이화와 백단영이 없어져서 그 둘을 찾느라 난리였기에 그 목소리에 진실이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풍사검객과 서옹을 설득하여 천애령을 건널 것을 주장했다.
절대마령이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 물론 그는 남궁이화를 믿었기에 절대마령이 없으리란 점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오빠, 정말 마교로 들어갈 거야?”
옆에 모용예가 따라붙으며 반복적으로 물었다.
떠날 때부터 이곳에 올 때까지 그녀는 비슷한 질문을 계속했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장후성이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그리고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미리 들어가서 길을 뚫었으니까.”
끊임없이 전진하며 장후성은 그녀를 달랬다.
천애령 중간에 도착했을 때 장후성은 변화된 지형을 확인했다. 지난밤에도 이곳에서 절대마령과 대치했었다. 절대마령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 절대마령이 보이지 않았다.
협로가 절반가량 무너지고 그 길은 더욱 좁아져 있었으나 통과는 어렵지 않았다.
장후성이 협로를 지나려 할 때 다시 모용예가 그를 붙잡았다.
“여기를 건넜다가 뒤쪽을 절대마령이…… 아니, 마교인이 막아도 우리는 고립될 수밖에 없어. 현실적으로 생각해봐. 자칫하면 우리 모두가 죽어. 아무리 오빠라도 사마극에게서 모두를 구해줄 수는 없잖아?”
“난 사파를 처단하기 위해 무공을 익혔어. 이런 기회에서 뒤로 물러날 생각은 없어. 특히 동료가 위험한데 나 혼자 편하게 있을 수는 없지.”
장후성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무너진 협로를 조심해서 건너갔다.
모용예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가운데 장후성은 협로 가운데 서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한 절벽 밑은 짙은 회색의 토양이 펼쳐져 있었다. 한번 떨어지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곳이다.
“조심해라.”
심호흡을 거듭하며 장후성은 전진했다.
바로 뒤를 모용예가 따라가고, 용봉대가 뒤따랐다. 일행의 가장 뒤편에서 구진광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마교의 영역에 들어선다. 지난밤에 보았던 사마극을 떠올리자 그는 숨이 턱턱 막혔다.
***
한빙소의 검은 물은 모두에게 두려움을 불러왔다.
빛이 없는 이곳에서는 검은 물이지만, 밝은 외부였다면 아마 이 물은 짙은 푸른색을 띠지 않을까.
“여기에서 절대마령이 무려 백삼십여 년을 잠들어 있었단 말이지.”
백단영이 한빙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한담을 경험해봤기에 이곳에 잠들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 백삼십 년 동안 절대마령은 끊임없이 한빙소의 기운을 흡수하여 내력을 증강했을 것이다.
그것이 절대마령의 기괴한 내공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생각해보니 운경각에 남아 있던 세 물주머니를 보고 무흔의 행방을 추적해서 이곳까지 왔다. 그 점을 돌이키며 그녀는 한빙소 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더불어 무흔이 이곳에 그녀를 데리고 온 이유도.
동굴의 기이한 분위기, 귀신이 나올 듯한 동굴 저편의 어둠, 내부에 무엇이 잠겨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까만 물. 그녀는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옆을 보니 무흔이 그녀를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의 의도가 짐작되자 백단영이 손을 저었다.
“무, 무흔 너, 설마?”
“효과는 있을 겁니다. 해보실래요?”
“으악!”
백단영이 기겁하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하기야 이 어두운 동굴 안에서 저 시커먼 물에 몸을 담그라면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저 물속에 백 년 동안이나 시체 같은 놈들이 잠겨있었다고 생각하면.
백단영의 반응에 무흔은 은옥상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교주가 되려는 그녀의 집착이 대단하거나.
“으으, 그래도 못해.”
연신 손을 내젓는 백단영과 달리 남궁이화가 오히려 한빙소로 다가갔다.
“은공, 나도 가능할까요?”
무흔은 손을 저었다.
“한빙소에서 기운을 제대로 흡수하려면 귀혼마령대법을 알아야 해요. 남궁 소저는 천단비화신공을 익혀 열담의 기운을 흡수한 거라 한빙소랑 무관해요. 반면 한빙소는 한담과 유사한 성질이 있어서 반야금강선공으로도 일부 효과를 볼 수 있거든요.”
무흔의 설명에 남궁이화가 백단영을 떠밀었다.
“나라면 하겠어. 무공이 강해질 수 있는데 뭘 망설여.”
“그, 그래도 저기는 좀…….”
백단영이 울상이 됐다.
싫다면 굳이 밀어 넣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사마극과의 싸움이 곧 벌어질 예정이라 조금이라도 내공을 얻을 수 있다면 유리하기에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남궁이화가 백단영을 설득하면서 한동안 둘이서 툭탁거렸다.
“흐아.”
백단영도 이런 기회를 놓치기는 아까워 한숨만 내쉬었다. 하긴 마교의 본산에 언제 다시 들어올 기회가 있을까.
이윽고 용기를 낸 백단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안에 정말 아무것도 없어?”
“글쎄요, 안에 절대마령으로 진행 중인 시체가 잠겨있을지도…….”
무흔의 농담에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지 손을 한빙소에 넣고 상태를 살폈다.
“여긴 한담보다 더 차가워.”
“시체가 있는 곳이라…….”
백단영이 소리를 지르더니 마침내 결심을 밝혔다.
“좋아, 죽기야 하겠어? 내가 들어가 볼게.”
“그럼 나는 나가 있을 게요?”
“절대 안 돼!”
백단영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밝은 천상문 한담과 달리 이 어두운 한빙소에 홀로 몸을 담글 배짱은 없었다. 옆에서 지켜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무흔은 그녀를 한차례 쳐다보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으악!”
비명과 함께 갑자기 난리가 났다.
무흔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순간 백단영이 그에게 날아오더니 그의 품에 안겨 부들부들 떨었다.
“으아아! 저, 저기 물속에 뭐가 있어!”
무흔은 물을 살폈으나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물속에 있는 바위 때문에 그러는 것 아녀요? 여기 한빙소에는 한담과 달리 튀어나온 바위가 많아요.”
“그, 그런 거야?”
백단영은 겨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그녀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무흔의 옆구리를 남궁이화가 쿡 찔렀다.
“은공, 잘 봤어요?”
“네? 뭐, 뭐를요?”
남궁이화가 턱으로 백단영을 가리켰다.
“응?”
그 순간 그를 향해 물이 쫙 뿌려졌다.
“무흔! 너 계략이었지? 일부러 물속에 바위 있는 거 안 가르쳐줬지?”
무공고수가 뿌리는 물은 달랐다.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마치 암기처럼 날아와 그의 옷에 팍팍 박혔다.
“네?”
“너! 죽을 줄 알아!”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긴지. 무흔은 돌아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잠시 진정할 때까지 상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이윽고 백단영이 운기를 시작하며 조용해졌다.
사실 이곳은 절대마령이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겉으로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곳이지만 보기와 다르다.
“남궁 소저, 저희 아가씨를 지켜줘요.”
“어디 가시게요?”
무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빙소를 건너 동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탐사했던 지하 미로를 다시 살펴볼 생각이었다. 엄밀하게는 지하 미로를 지나 천마궁을 염탐해볼 생각이었다.
동굴 깊숙이 뛰어든 무흔의 경신법이 점점 빨라졌다.
한번 살폈던 곳이라 이곳 지하 미로도 익숙해져 설치된 기관진식이 그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수상비를 지하 미로에서 펼치면 사실상 바닥에 전혀 발을 대지 않고 미로를 통과할 수 있으니까.
순식간에 무흔은 지하 미로를 지나 천마궁으로 잠입했다.
“사마극이 돌아왔나?”
무흔은 사마극이 돌아왔다면 자신의 전각보다 예전 교주가 머물던 이곳에서 일을 도모하리란 예상을 했다. 역시, 앞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