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4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40화
240화. 무림다루 (1)
표우량의 몸이 견디지 못하고 물에 잠겼다.
그렇게 잠겼다가 뜨기를 몇 번, 그제야 백단영은 매질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상태로 보아 표우량은 이제 떠오르지 못할 것 같았다. 오늘로 사마련을 호령하던 련주는 물귀신이 됐다.
콰아앙-
백단영이 동강 난 유람선에 장력을 뿌리자 배가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꽤 컸던 유람선이 지금은 모두 조각조각 나서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조각배를 타고 호숫가로 돌아가던 우문혁은 유람선이 부서지는 폭음에 깜짝 놀라 시선을 옮겼다. 혈각마신과 백단영의 싸움 결과에 관심이 없을 수 없기에 저절로 눈이 돌아갔다.
그리고 이어진 광경. 전설의 무공 등평도수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됐다.
입을 쩍 벌린 우문혁의 입으로 날파리가 들어갔건만 그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무공의 신이 있다면 바로 저 두 사람이리라. 그들의 화려한 무공이 그의 머리에, 그의 가슴에 각인됐다.
그때 백단영의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음악!]
우문혁은 소스라치게 놀라 입으로 음악 반주를 넣었다. 그 또한 음공의 고수였으니 기본적인 악기나 노래에 나름대로 조예가 있었다.
호수 위로 잔잔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음공의 달인이 내공을 실어 배경으로 까는 음악이니 꽤 장중하게 멀리 퍼져나갔다. 우문혁은 무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생각에 실로 격한 감동에 빠졌다.
***
이제는 일이 끝나면 서초동으로 넘어오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것도 나흘마다 찾아오는 천향무후 접속일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행사가 됐다. 비록 자정이라는 늦은 시각이었으나, 박무훈과 백다연은 밤늦게 문을 연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접속 아이콘을 눌렀다.
현실에서 눈을 마주치고 무림 세계에 들어가면 그만큼 더 호흡이 잘 맞았다.
밤 10시가 되자 박무훈은 평소처럼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있다 보면 밤늦게 일을 끝낸 백다연이 알아서 찾아왔다. 검사란 직업이 무척 바쁘다는 사실을 박무훈은 실감하는 중이었다. 오늘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있다 보면 백다연이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 찾아올 것이다.
“오늘은 어디에 앉을까.”
항상 두 사람이 앉는 자리가 있긴 하다.
창가 쪽 구석진 테이블. 습관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박무훈은 손을 흔드는 백다연을 발견했다. 어째 오늘은 그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재빨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그는 커피가 나오자 그녀에게로 갔다.
“오늘은 일찍 끝났네?”
“항상 늦게 끝나면 진작에 때려치웠지.”
물론 검사를 그만두고 로펌에 가봐야 더 바쁘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두 사람은 서로 편안하게 말을 놓았다. 원래는 자연스럽게 무림에서의 버릇이 옮겨져 박무훈만 높임말을 썼으나 점차 허물없이 지내게 됐다.
이런 관계는 무림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졌다. 다만 무림에서는 아직도 타인이 볼 때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자정까지 시간이 길어지자 무흔은 그녀에게 선택권을 줬다.
“여기에서 자정까지 죽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까?”
커피를 쭉 들이켜던 백다연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갈 곳이 있어.”
“어디?”
“나, 무훈 씨 집을 구경 가고 싶은데?”
“컥!”
박무훈은 커피를 마시다가 사레 걸린 듯 기침을 했다.
지금 자신이 사는 곳은 작은 원룸이다. 비좁은 데다 정리마저 엉망이라 도저히 누구를 데려갈 장소가 못 된다. 게다가 야밤에 그의 집을 방문하겠다는 것은 약간은 순수한 의도라고 볼 수 없었다.
“왜 그래?”
“혼자 사는 원룸에 와서 뭐 하려고…….”
재빨리 거절한 박무훈이 대신에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반대로 제안했다.
“대신에 너희 집으로 가면 안 될까?”
“절대 안 돼.”
백다연 역시 부모에게서 독립한 후 홀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다. 적어도 그 오피스텔이 박무훈의 원룸보다는 넓고 깨끗하리란 사실을 알기에 그의 제안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그런데도 매몰차게 거절하자 박무훈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 못 한 탓이다.
“싫으면 말고.”
쿨하게 물러서는 백다연의 속셈을 알 수는 없었지만 당연히 박무훈은 마음을 정했다.
정했으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움직여야 한다.
박무훈은 차가 없다. 백다연은 차가 있지만 대부분 집에다 두고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지하철?”
커피숍을 나온 박무훈은 부근의 지하철역을 가리켰다.
무림에서의 습관처럼 박무훈의 팔짱을 낀 백다연이 그를 다른 쪽으로 이끌었다.
“아니, 택시.”
마침 승차장에 대기 중인 택시가 있어 둘은 재빨리 올라탔다.
“집이 꽤 어지러울 텐데…… 내가 아침에 바쁘게 그냥 나와서.”
“괜찮아.”
“오늘 무슨 일 있어?”
“아니, 없어.”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 그녀의 심정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은 금방 그의 원룸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예상만큼 어지럽지 않아 후다닥 치운 다음 백다연을 안으로 들였다. 서 있기도 좁은 원룸이라 그들이 앉을 자리는 침대밖에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 사네?”
“이게 무슨. 그냥 돼지우리야.”
“흐응, 맨날 여기에 누워서 접속하는 거지?”
“그게 제일 편하잖아.”
냉장고를 열어보니 편의점에서 산 맥주캔이 보였다.
“한 잔?”
백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맥이라도 시키려고 했으나 많이 먹기 부담된다는 그녀의 말에 과자 한 봉지를 뜯어놓고 맥주캔을 부딪쳤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무림 세계로 이어졌다.
“사마극은 살아있겠지?”
“아직 목적을 달성했다는 메시지를 보지 못했으니 살아있겠지.”
백다연이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가 먼저 잡으러 가야 할까?”
“찾아올 거야. 기다려봐.”
백다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어떻게 장담하지?”
“내가 사만국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거든.”
다행히 그동안 모은 정보를 이용해서 사만국의 해외부동산 현지 조사에 들어갔었다.
그곳에서 부동산 구입 계약서를 포함한 각종 환전 서류를 확보해서 우회적으로 국내 정보를 추적했다. 그녀의 작전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서 오래지 않아 사만국의 실체가 드러날 상황이다.
“이대로는 사만국 사장도 빠져나갈 틈이 없어. 그 자식의 유일한 희망은 무림이지.”
무림에서 백단영을 어떻게든 해치우면 사마극이 승리한다. 그 승리의 대가로 GOD 작가에게 현실의 일을 무마해달라고 한다거나 또는 그 이상을 요구할 거라는 것이 백다연의 추측이었다.
그녀의 추측이 옳다면 사마극이 빨리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은 사만국의 편이 아니니까.
맥주를 마시며 시계를 보던 백다연이 휴대폰을 꺼냈다.
“시간 다 됐어.”
박무훈과 백다연은 침대 위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함께 침대에 앉아 접속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번에 접속하고 나면 둘 사이는 또 어떻게 바뀔까.
박무훈은 약간은 기대를 품고 접속 아이콘을 눌렀다.
***
그해 여름은 더웠다.
서옹의 말로는 일평생 이만큼 여름이 더웠던 때도 없었다고 했지만 원래 기억 보정이란 게 있으니.
하지만 무흔이 생각하기에도 분명히 엄청나게 더운 것이 확실했다.
덥다 보니 무흔의 새로운 사업이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다.
무림객잔, 무림다루, 무림주루.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그와 백단영의 사업은 이제는 개봉을 넘어 정주와 낙양에까지 새로운 지점을 추가하고 있었다.
개봉 무림맹 앞의 무림다루.
올해 초에 새로 개장한 이곳은 무림다루의 본점으로 이름을 날렸다.
개봉의 무림다루는 모두 세 군데였다. 시전 중간에 위치하여 가장 먼저 문을 열었던 일호점과 지난겨울에 새롭게 공사를 마무리한 이호점, 그리고 낙양으로 이어지는 관도 상에 세워진 삼호점이 있었다.
이 가운데 무림맹 앞의 이호점이 가장 크고 특별하게 지어졌기에 본점이 됐다.
이곳 본점 지하에는 거대한 석빙고를 설치해서 이곳을 통해 여름에도 얼음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몇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다.
이처럼 더운 여름에는 얼음을 보관하는 석빙고야말로 무림다루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무림다루 앞에 긴 줄이 만들어졌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였건만, 무림다루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이들이 더위를 무릅쓰고 기다리는 이유는 이곳에서만 파는 특별한 차를 먹기 위해서였다.
과일 빙수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이 음식은 한여름에도 얼음을 제공했다.
마치 눈처럼 곱게 갈린 얼음에 각종 과일을 버무린 과일빙수는 개봉의 모든 사람의 입맛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뙤약볕에 수 시진을 기다리더라도 이것만 먹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자연스럽게 무림다루 외부로 길고도 긴 줄이 생겨났다.
하북삼절의 첫째인 팽덕문과 셋째인 팽우문은 무림맹을 방문하려고 개봉에 들렀다가 무림다루 앞의 긴 줄을 봤다. 하북삼절은 예전에 황하색신을 호송하며 무흔과 만났던 그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줄을 선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이게 대체 무슨 줄입니까?”
지나치던 팽우문이 관심을 보이며 줄을 선 사람에게 물었다.
줄을 서 있던 일가족이 대답했다.
“아직 모르십니까? 여기 차가…… 하여튼 차 비슷한 게 있는데 더울 때 먹으면 맛이 끝내줍니다.”
“차요? 술 아니고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팽우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밀하게는 차도 아닌데…… 하여튼 그런 게 있습니다.”
팽우문의 호기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팽덕문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그동안 계속 함께 다녔어도 방계인 그에게 직계인 팽덕문은 여전히 어려운 사람이었다.
“형님, 우리도 먹고 갈까요?”
긴 줄을 보고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팽덕문이 이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었지만, 줄의 길이가 엄청 나서 도무지 언제 먹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연신 땀을 훔치면서 참다못한 팽덕문이 슬슬 짜증을 냈다.
“아우야, 우리가 어디 가서 이렇게 기다려본 적 있었냐?”
“없지요. 하북삼절이라 하면 보통 주인장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왔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렇게 기다리라면 황궁에도 안 들어가. 하북팽가를 뭘로 보고.”
사실 팽덕문의 불평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중원 어디서나 하북팽가 또는 하북삼절이라 하면 항상 대접을 받았으니까. 이처럼 길게 줄을 서는 푸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제가 가서 주인장에게 한 말해볼까요?”
팽덕문의 내심을 읽은 팽우문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