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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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38화
238화. 혈각마신 (2)
혈각마신의 표우량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천산광소 우문혁의 내심이 그에게는 훤히 보였다. 부련주라는 자리를 엄청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떤가? 부련주는 허울뿐인 자리다. 련주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솔직히 사마련은 협의체라 지분을 가진 각 방파의 문주보다 못했다.
“이 일만 해주면 부련주 지위를 주겠네.”
표우량의 권유에 우문혁의 입이 찢어졌다.
‘쯧쯧 그렇게 내심을 숨기지 못해서야…….’
표우량은 상대를 깔보면서 전략을 물었다.
우문혁은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거느리는 천산혈복이 능히 천향무후를 씹어 먹을 테니까요.”
천산혈복은 천산광소가 거느리는 정예 부대로 서른 명의 강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경신술과 보법에 능한 이들은 연합진에서 그 특유의 속도로 위력을 발휘했다.
천산혈복을 동원한다는 말에 그나마 안심이 된 표우량이 격려의 말을 추가했다.
“하하, 역시 부련주답네. 난 부련주만 믿고 있겠네.”
물론 혈각마신이 믿는 최후의 보루가 더 있었다. 그는 항상 동정호 호수 중앙에 띄운 선상에서 상대를 맞이했다. 물 위라면 어떤 고수가 와도 함부로 그를 해하지 못했으니까.
***
무흔이 일행을 끌고 동정호에 나타난 것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였다.
더 일찍 올 수도 있었으나 막 봄에 접어든 중원 곳곳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면서 움직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는 과거처럼 바쁠 일도 없어졌다. 도망친 사마극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언제 든 때가 되면 알아서 눈앞에 등장할 것이니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 덕에 봄기운이 한창인 지금에야 동정호에 도착했다.
“우와!”
역시 명소로 이름 높은 동정호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주위로 꽃들이 만발했다.
백단영을 비롯하여 남궁이화와 양이설이 꽃밭에서 꽃놀이하는 동안, 무흔과 대호는 한쪽 옆에 앉아 술을 들이켰다.
동정호의 푸른 물을 바라보며 시야를 넓혔다. 내일부터는 혈각마신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상한 녀석들이 다가왔다.
무흔은 안면을 찌푸리며 기감을 끌어올렸다.
주위를 가득 메운 꽃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누군가가 수풀에 숨어 접근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숫자도 많았다.
무흔은 인상을 찌푸리며 백단영과 동료들에게 눈치를 줬다. 이제는 양이설과 대호 또한 만만찮은 고수가 되어 이미 낯선 자의 접근을 알아채고 있었다.
사실 무흔이나 백단영의 무공은 이런 식의 허접한 습격에 동요할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당연히 긴장감도 없었다. 접근하는 개개인의 무공 수준은 대충 일류 수준. 많은 수가 몰려오더라도 그들을 상대하기 힘들다.
그들이 조용히 자리에 모여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바로 옆까지 몰려와서 포위망을 구축한 녀석들이 마침내 얼굴을 내밀었다.
“으흐흐. 꼼짝 마라!”
녀석들이 검을 빼 들고 그들을 위협했다.
무흔 일행이 반응이 없자 검날이 목까지 다가왔다. 그래도 무흔은 전혀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흐흐, 별것 아니잖아?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녀석들 가운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며 빈정댔다.
근육질의 중년 장한. 체구는 꽤 크고 훌륭했다. 외공이 상당히 발달한 녀석으로 풍기는 기운이 다른 녀석들에 비해 특출했다. 마교 서열로 따지면 대충 오십 위 권은 될 것 같다.
“음…… 넌 누구지?”
무흔은 술잔을 내려놓고 정체를 물었다.
우두머리가 크게 광소를 터트렸다.
“으하하, 난 천산광소 우문혁이다. 내 부하들은 천산혈복이라 하지.”
천산의 피 먹는 박쥐 떼라.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긴 했다. 한때 사마련의 암습 부대로 이름을 날렸던 자들이다.
세어보니 천산혈복은 정확히 서른 명이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무흔의 질문에 우문혁이 순순히 대답했다. 이미 잡은 물고기라 생각한 듯했다.
“우리 련주께서 천향무후의 목을 원하신다.”
“련주라면…… 사마련주인 혈각마신?”
“어허! 네놈이 함부로 올릴 이름이 아니다.”
무흔의 목에 검날이 바짝 겨누어졌다.
여전히 무흔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우문혁을 쳐다봤다.
상대의 무공 파악은 이미 끝났다. 남은 것은 상대의 성격. 다혈질에 직선적으로 보이고 음모를 꾸밀 잔재주는 별로 없을 듯하긴 한데.
무흔은 여유롭게 우문혁을 향해 물었다.
“여기 온 것이 너의 생각이냐? 아니면 혈각마신의 생각이냐?”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우문혁은 상대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목에 칼에 들어왔으면 당연히 벌벌 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문혁은 찜찜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내, 내 생각이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무흔이 피식 웃으며 목에 들어온 칼을 손가락으로 쓱 제쳤다. 신기하게도 목에 댄 검이 속절없이 옆으로 비켜났다.
무흔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며 일어섰다.
그런 무흔을 보고도 포위한 부하들은 저지하지 못 했다. 이상하게도 무흔을 바로 옆에서 위협하던 천산혈복들은 검을 무흔에게 향할 수 없었다. 마치 엄청난 기운이 검을 내리누르고 있는 듯했다.
“너 별호가 천산광소라고? 소리 잘 지르냐?”
다소 장난기가 들어간 무흔의 질문에 우문혁이 안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뭔 소리냐? 내가 원래 사자후를 연마해서 천산광소란 별호가 붙었거늘.”
예상대로 미친 웃음소리를 끝내주게 잘 지르나 보다. 사자후도 일종의 음공이 아니던가? 옥소마희를 가르친 무흔 역시 음공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럼 한번 질러 봐라. 네놈 실력 좀 보자.”
무흔이 태연하게 상대에게 시연을 부탁했다.
우문혁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다소 혼란스러웠으나, 자신의 무공을 드러내어 상대의 기를 죽일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우문혁이 자세를 잡으면서 말했다.
“잘 봐라.”
이어서 주위의 꽃동산을 쓱 훑어본 우문혁이 광소를 질렀다.
“크하하하!”
내공이 실린 광소가 주위를 강타하며 아름드리 핀 꽃에 폭풍을 일으켰다. 갑자기 노란색과 분홍색의 꽃잎이 휘몰아치며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졌다.
“우와아!”
백단영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늘에서 쏟아진 꽃비를 맞은 두 여인의 머리와 어깨에 꽃잎이 가득 쌓였다. 흡사 꽃으로 만든 사람을 보는 듯했다. 사실 그녀들 자체가 한 떨기 꽃이었으니 꽃으로 모자를 쓴 듯한 그녀들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무흔은 애초에 우문혁을 죽여버릴 생각이었는데 꽃단장하게 된 백단영과 남궁이화의 예쁜 모습을 덕분에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대단하군.”
“천산광소라는 별호가 괜히 얻어진 게 아니지.”
무흔의 칭찬에 우문혁이 거들먹거리며 좋아했다.
무흔은 그를 쓱 훑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천산광소 이 녀석은 단순한 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을 이용해서 혈각마신을 잡으면 된다.
“나도 사자후를 좀 할 줄 아는데 한번 볼 생각 있어?”
상대가 사자후를 언급하자 우문혁은 눈을 부릅떴다. 같은 종류의 무공을 한다는 것은 의외로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이 흔해 빠진 검법이나 장법이 아닌 이상.
“조, 좋다.”
우문혁이 대답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무흔은 주변을 쓱 둘러봤다. 마침 오 장가량 떨어진 곳에 장정의 허리통 굵기의 나무가 서 있었다.
그는 그쪽을 향해 사자후를 일으켰다.
“으하하하!”
마치 한 마리의 사자가 포효하는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우지직!
천산광소 우문혁의 넋이 나갔다.
거대한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 더 놀라운 점은 나뭇가지가 머리카락처럼 휘날리면서도 주변의 꽃나무에는 미풍조차 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쿵!
급기야 뽑힌 나무가 옆으로 드러누웠다.
우문혁이 감탄사조차 발하지 못하는 가운데 주위를 포위했던 서른 명의 천산혈복이 검을 회수하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엄청난 무공을 보니 자신들이 실수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릅떠진 눈을 감지 못한 우문혁의 눈동자가 놀란 표정 그대로 무흔을 향했다.
무흔이 상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 다시 이야기 좀 해보자. 여기 온 게 혈각마신의 뜻이야? 아니면 자네 뜻이야?”
그제야 우문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혈각마신이 갑자기 그에게 부련주 직위를 제안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상대하기 힘드니 그를 떠밀었던 셈이다.
아무리 부련주가 좋더라도 목숨을 잃고 나면 쓸모없지 않은가.
“그, 그게…….”
머리만 긁적이던 우문혁이 갑자기 머리를 숙였다.
“대, 대협! 죽을죄를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