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3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3화
풍운마룡 군천악 (4)
“후우욱!”
남궁장천은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기감에 잡히는 것은 허상이었다.
검이 다시 출수되는 순간에 이미 천악의 신형은 자신의 오른쪽 사각을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그와 동시에 가격당하는 일격에 다시 한 번 2장이나 밀려났다.
밀려나면서도 남궁장천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제왕검법의 3절초 제왕파산(帝王破山)이었다. 산을 무너뜨리는 기세를 검에 실어 날렸다.
강기가 실린 공격이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천악의 신형을 반으로 쪼개버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투투투투! 카아앙!
강기가 실린 창룡검에서 금성철벽(金城鐵壁)을 두드리는 듯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할 줄 알았던 천악이 팔을 들어 검을 막아버렸다. 남궁세가의 3인은 인간의 몸으로 강기를 막아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말았다.
“금강불괴(金剛不壞)인가?”
금강불괴라고 해도 흠집은 날 것이다. 그런데 천악의 팔목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옷이 베어진 것이 전부였다.
꽈악!
천악이 창룡검을 잡아서 앞으로 당겼다.
강력한 힘이 검날을 타고 전달이 되자 남궁장천이 천악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딸려나갔다.
검법을 익힌 자에게 검은 수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물며 대결에서 검을 놓아버리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남궁장천은 전신의 내공을 다 써서 검을 틀어버리려고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삭! 차악!
천악은 잡은 창룡검을 옆으로 흘려버리고 남궁장천의 오른쪽 어깨 옆으로 미끄러지듯이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천악의 오른팔이 남궁장천의 빈 목을 뒤에서 감았다. 왼팔이 받침대가 되어 남궁장천의 목을 완전히 감아버린 것이다.
“으윽!”
남궁장천은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설마 이런 식으로 공격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천악의 팔을 벗어나기 위해 발을 움직이려고 하자 천악의 왼발이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꼬아버렸다.
근육이 심하게 뒤틀리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남궁장천은 절망했다. 팔과 다리, 목을 모두 한꺼번에 감싸버린 것은 바로 코브라트위스트였다.
“커어어억!”
목의 경동맥을 조르면서 들어오기에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이 시대의 무인들의 특징은 체술(體術)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를 잡고 급소를 조르는 것을 하찮게 보고 있는데 실상 이런 기술에 당하면 빼도 박도 못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남궁장천은 숨을 못 쉬자 기절을 하고 말았다.
천악이 기절한 남궁장천을 살며시 들어서 남궁혁성에게 인도했다.
남궁혁성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였지만 단순히 기절했다는 것에 더 놀라고 말았다. 검왕을 죽이는 것도 아니라 단순히 기절을 시키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한 번도 이런 황당한 일은 경험해 보지 못해서 뭐라 표현 할 수 없었다.
“자네는 괴물인가?”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면 기분은 안 좋군요.”
“나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이길 사람은 다섯 명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했네. 그런데 지금 압도적으로 이긴 사람이 내 눈앞에 있는데 이걸 믿어야 할지 의심이 될 정도네.”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싸운 것인가? 자네 정도라면 아버지의 공격을 받아줄 수도 있지 않았나?”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상대의 공격을 받아준다고 해도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천악은 상대의 실력을 감안하지도 않고 금세 제압을 해버렸다. 그것도 기절이라는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말이다.
남궁혁성은 그것에 화가 났다. 우상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가 너무 쉽게 진 것이 억울했다.
“가주님에게 적당히 하는 것은 모욕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의 무공은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하는 것을 장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차아앙!
남궁태희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차가운 얼굴에서 한 줄기 분노가 느껴졌다.
“당신에게 도전하겠어요.”
“도전을 받아들입니다.”
천악은 거절하지 않았다.
남궁혁성이 당황했다. 아버지조차 압도적으로 이긴 천악에게 남궁태희가 도전을 해봤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또한 천악이 너무 쉽게 승낙을 하자 어이가 없었다.
“태희야, 무슨 생각인 거냐! 그리고 자네, 태희의 도전을 받아들이다니 제정신인가?”
“오라버니는 나서지 마세요. 저는 이 사람에게 남궁세가의 검을 보여줄 테니까요!”
너무 쉽게 진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고 보면 지금 상황이 잘 해석되었다. 검왕조차 천악에게 기절을 당한 마당에 그보다 못한 남궁태희가 과연 천악에게 남궁세가의 검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천악은 어리광을 부리는 태희가 왠지 귀엽기까지 했다.
“좋습니다. 바로 시작하죠.”
남궁태희가 검을 들어 천악을 겨냥했다. 그 순간 천악의 신형이 바로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나타났다.
타악!
가볍게 남궁태희의 뒷목을 치자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일격에 기절시켜버리고 냉정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천악이었다. 어리광을 받아줄 정도로 그의 아량은 넓지 않았다. 단호하게 손을 써서 앞으로 이런 무모한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 좋았다. 굳이 봐줄 이유가 없었다.
남궁혁성은 한순간 끝나버린 허무한 대결에 정신이 멍했다. 동생이 비무를 신청했고 상대가 받아들인 상황이었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아버지와의 대결과는 또 다른 충격에 휩싸였다. 남궁태희는 무림의 젊은 사내라면 누구나가 원하는 우상이었다. 그런 그녀의 가벼운 투정조차 천악은 냉정하게 잘라버린 것이다.
“자네, 정말 냉정하군.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되는데 아닌가요?”
처음부터 감정의 고저가 전혀 없이 예의바른 천악이었다. 말투에서 사람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남궁혁성은 벽하고 말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동생은 여자야. 여자아이의 그 정도 투정도 받아줄 수 없는가, 자네는?”
“제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궁 소저와 저는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상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인이라면 상대방에게 얕보이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만약 남궁 형님이었다면 받아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저와 교감을 가졌으니까 말입니다.”
남궁혁성은 도리어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천악은 진짜 보통의 사내가 아니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천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군.”
1각 정도 흐르자 남궁장천이 의식을 회복했다.
“으음!”
몸에 무리한 힘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내상이나 외상은 없었다. 그저 다시 운기조식(運氣調息)하면 원래의 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남궁장천은 일어서서 하염없이 하늘을 보다가 천악을 보았다.
“하하!”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강호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붙는 숙명이라 생각해서 승패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자신의 진실된 마음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좋은 교훈을 얻었네.”
“다행입니다.”
남궁태희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남궁장천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조금 화가 났다.
“내 딸은 여자일세. 너무 매정하군.”
“그 말은 좀 전에 형님에게도 들었습니다.”
“자네의 성격을 조금이나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 오늘의 수확인 셈인가?”
“저도 제 성격을 종잡을 수 없는데 아신다고 하니 조금 당황스럽군요.”
남궁장천은 그런 천악의 말이 무섭기까지 했다. 이런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서 확고한 신념이나 목표가 없다는 소리였다. 이건 무림의 입장에서는 재앙일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에게 미움을 받은 무림이 평온할 수 있을까?
“오늘은 이만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모처럼 움직였더니 피곤하군.”
“그럼 쉬십시오.”
천악은 미련 없이 돌아서서 남궁세가를 나왔다.
남겨진 남궁장천이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버님, 저는 그가 저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그의 사람 됨이 어떤지 아느냐?”
“차갑습니다. 지독히 이기적인 것이 느껴집니다.”
“바로 맞췄다. 그는 방관자인 동시에 혈풍(血風)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다. 가만히 있을 때는 잔잔한 파도와 같지만 건드리면 재앙을 일으키는 존재가 바로 저 군천악이라는 청년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살도록 놔두는 것이 좋다. 무림에 드러나는 것을 되도록 자제하고 은원이 생기지 않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그리고 오늘 일은 비밀이다.”
“그게 무슨……?”
“쪽팔리잖느냐!”
‘큭!’
남궁혁성은 하마터면 소리내어 웃을 뻔했다. 설마 남궁장천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하긴 천하의 검왕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면 누가 믿어줄까.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오늘 있었던 비공식 비무는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태희가 걱정이구나. 자존심이 강한 아인데 말이야!”
“앞으로 고생깨나 할 겁니다.”
“난 모르겠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
“아버님, 저도 태희한테는 약한 것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차라리 절 죽이십시오.”
“어허, 나보고 패륜을 저지르라고 강요하다니, 네가 정녕 나를 악의 구렁텅이로 집어넣는구나.”
농담은 이 정도로 끝을 내는 것이 좋았다. 더 하면서 부자개그콤비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다.
“무림맹에서 천악을 데리러 올지도 모릅니다.”
“그렇겠지. 무림맹이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할 텐데…….”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평화로운 세상에 살아가다 보니 무림맹의 힘은 점점 비대해졌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위험하고 잔인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중소문파를 아우르는 무림맹은 그 자체로 거대한 나라였다. 황실조차 무림맹의 일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니 그 힘은 가히 무소불위(無所不爲)했다.
어쩌면 누구도 막지 못한 힘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실상일 뿐일지 몰랐다. 남궁세가에 일어난 일만 해도 그렇다. 음지에서 힘을 키운 세력이 서서히 무림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비대해졌지만 내실이 흔들리고 있었다. 겉으로 커진 것은 둘째치고 무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무공보다 권력의 단내에 젖어 들고 있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이미 쥐고 있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위험한 요소가 나타나는 것을 바라는 이들이 아니었다.
무림맹은 협의를 지향하지만 지극히 독선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을 남궁장천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