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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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2화
풍운마룡 군천악 (3)
천악은 비밀이라고 하여 자신의 무공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야수권은 말 그대로 권법의 하나였지만 그것을 익힌다고 모두 천악과 같은 경지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드래곤 하트의 힘과 무식할 정도의 수련을 견뎌낸다면 만에 하나의 가능성은 있겠지만, 가능성으로 따지만 여타의 무공들도 다 가능성은 존재했다.
“원래 저는 무공을 독학으로 익힌 상태였습니다. 그 뒤에 스승님을 만나 무학의 이론을 전수받고 저 나름의 무공으로 발전시킨 겁니다. 솔직히 스승님께는 검법을 배우기보다는 무공의 뜻을 깨우치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당시에 천악은 실전감각을 위주로 무공을 익히면서 힘을 중점적으로 이용해서 무공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무상검제를 만나면서 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쳤다. 그러나 무상검제로 인해 무공의 극을 이루기는 했지만 또다시 힘이 최강이라는 생각은 잘 바뀌지 않았다.
“대단하군. 홀로 익힌 무공으로 자신만의 경지를 개척하다니 말이야!”
남궁장천은 진정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독학으로 익힌 무공은 둘째치고 천악의 마지막 말을 들으면 스스로 무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즉, 일대의 종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경지에 들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남궁장천은 검왕이자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제대로 비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세가 내에서도 적수가 없을뿐더러 공식적으로 상대할 자들도 많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괴물 같은 천악이 나타났다. 한 번쯤 대결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무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자네와 한번 겨루어보고 싶네.”
“원하신다면 저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대결해 보고 싶다는 상대 앞에서 무작정 거절하면 나중에 더 귀찮아질 것 같았다.
“하하! 시원스레 대답해 줘서 고맙네. 만약 자네가 나를 노망난 노인으로 봤으면 어쩌나 하고 염려했네.”
‘그럼 난 이미 치매다.’
실제 나이가 예순다섯 살이고, 과거에 이 정도 사는 사람은 무림인들뿐이니 당연한 소리일지 몰랐다.
사람의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자신의 뇌, 즉 정신연령이 중요하다. 나이를 먹어도 정신연령이 낮으면 그게 어디 나이다운 사람일 수 있는가. 세월이 지나면서 연륜이 쌓이는 것과는 별개로 천악은 아직 정신연령이 스물다섯 살에 머물고 있었다.
자신조차 잊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다시 들추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금 시간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스물다섯 살의 나이를 말이다. 그래서 천악은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남궁세가엔 가주만이 드나들 수 있는 개인 연무장이 따로 존재한다. 가주를 비롯해서 그의 직계가족이나 제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남궁세가의 전각들 사이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가주실 근처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가주의 개인 연무장이다.
남궁장천은 딱 두 사람만 불렀다. 바로 남궁혁성과 남궁태희였다. 이들이 다음 남궁세가를 이끌어갈 기대주들이기에 고수들 간의 대결을 보는 것이 공부가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남궁장천이 세가를 상징하는 애검 창룡검(蒼龍劍)을 들었다.
남궁장천의 애병이며 가문 제일의 기보가 바로 창룡검이었다. 창룡검은 남궁세가가 형성될 때 초대 가주가 그 시대의 장인인 신공 장인기에게 부탁을 해서 만든 명검이었다.
창룡검에는 바로 금속 중의 금속인 만년한철(萬年寒鐵)이 쓰였다. 사람들은 만년한철을 통으로 쓰면 제일 강하다고 착각을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창룡검에는 만년한철과 더불어 금속의 성질을 강화시키기 위해 주석을 집어넣었다. 주석의 영향으로 인해 창룡검은 은은한 청색의 빛을 띠게 되었다.
창룡검을 손에 넣은 남궁세가의 가주들은 역대로 강호의 검호(劍豪)로 통했고, 검왕이라는 칭호를 세습될 수 있도록 했다. 검왕은 남궁세가의 자부심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아직 세가의 검법을 다 통달했다고 볼 수 없네. 그저 아직도 완전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지. 나는 일대종사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을지 몰라.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네. 남궁세가의 검법은 바로 천하제일검법이라 불릴 정도로 심오하고 깊다는 것이지.”
“저는 남궁세가의 검을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아네. 지금 현 강호의 절대지존들인 일성이마의 실력은 스스로 무공을 창안해 낼 정도로 대단한 경지를 밟고 있지. 나는 그들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남궁세가의 검법은 그들이 지금 개척한 검법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그것을 지금 증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네.”
검왕 남궁장천은 남궁세가의 검법에 대한 자부심을 밝혔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남궁혁성과 남궁태희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자신들 역시도 남궁세가의 검을 천하제일검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그런가? 기세가 느껴진다 했더니 그런 뜻이었군.’
천악은 검에 대한 이론을 무상검제에게 배웠다. 물론 배웠을 뿐 익히지는 않았다.
검은 모든 무기에서 우선시 되는 제일의 무기로 꼽히는 가운데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처음 익히는 데는 검이 편하고 쉽지만 결국 정점에 서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검의 특징이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천하제일의 검법, 천하제일의 도법, 천하제일의 장법, 천하제일의 권법…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무공을 보면 자신의 무공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무공을 자신이 익히면 천하제일이 될까? 그건 아니다. 물론 일세의 무공을 익힐 경우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오를 수는 있지만 그게 다다. 그 이상은 평범한 사람은 오를 수 없다. 스스로의 무공에 자부심을 가진 자,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 하늘이 내려준 기운을 타고난 자, 일반적인 무인이 가질 수 없는 오성을 가진 이들이 익혀야 그나마 천하제일인에 근접하는 것이다.
남궁장천은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당한 강점이다. 상대의 무공을 경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의 무공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익혔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가 익힌 야수권은 초식이나 무공의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제 생각이 온몸으로 표현이 될 뿐입니다.”
“무초식(無初式)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야수권 자체가 무공의 형식이 없는 무공이었으니 제가 어떻게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게 딱 정확한 표현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설전은 그만두고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창룡검을 뽑아 든 남궁장천은 날카로운 눈으로 천악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악이 어리다고 해서 그를 경시하지 못했다. 아마 천악의 신위를 보지 못했다면 남궁장천조차 천악을 그저 어린 놈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장천은 자신의 눈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진 천악을 인정하고 있었다.
꿀꺽!
남궁혁성은 침을 삼키며 상황을 주시했다.
‘아버님의 기가 이 정도로 대단했다니……!’
그저 검을 들고 기를 가다듬었을 뿐인데 지켜보던 자신의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만약 정면에서 그 기를 받았다면 자신이 천악처럼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군 아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검왕의 기운을 받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천악이 정말 괴물 같았다. 같은 또래에서 이만큼 격차가 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남궁태희가 받은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빙화이기 전에 검을 수련한 무인이었다. 검을 들고 그녀는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미모를 가꾸는 것보다 검을 수련하여 경지를 개척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여인이지만 검호로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는 그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이런 마음이 한 달 전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또한 지금 다시 한 번 좌절을 맛보았다.
‘도대체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럼 지금껏 내가 수련한 것은 대체 뭐냔 말이야?’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2대 검법이 바로 창궁무애검법과 제왕검법이다. 강호의 무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무공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상승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연검법(大衍劍法)!
대연검법은 남궁세가의 모든 검법의 기초를 마련하는 무공이며, 그 쓰임의 폭이 상당히 넓었다. 남궁세가의 기초검법으로 알려지며 남궁세가의 무인들이라면 모두 익힌 대연검법은 기초검법이되 상승무공의 무리를 가지고 있었다. 큰 뿌리가 튼튼해야 작은 뿌리들이 마음 놓고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남궁장천은 제왕검법을 익혀 나가면서 그 뜻을 깨우쳤다. 대연검법이야말로 남궁세가의 진정한 검의 뜻이라는 걸 말이다. 대연검법을 깨우치면서 제왕검법이 완벽해질 수 있었다.
남궁장천이 제왕검법을 펼치기 위해 검을 비스듬히 들어올렸다.
검을 사용함에 초식은 상황에 맞추어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무턱대고 절초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고, 자칫 절기의 단점이 노출될 수 있는 약점도 존재했다. 사용을 하되 시기적절하게 틈을 노리며 상대와의 호흡에 신경을 써야 한다.
“히얍!”
검의 속도는 빨랐다. 그리고 정확했다. 그러나 상대하는 천악이 요소요소의 맥을 끊어버리듯이 공격해 왔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단 한 수에 목이 뚫려 피를 뿜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악에게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었다.
귀신처럼 빠른 신법이 펼쳐지자 눈앞에 있던 천악의 모습이 남궁장천의 시야에서 벗어나버렸다. 너무 빨랐다.
‘전에 봤던 그 신법이구나!’
천악의 기를 찾으려고 노력했음에도 그 기조차 완전히 갈무리되었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남궁장천은 검을 잡고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휘익!
바람이 흔들리며 옷자락이 펄럭였다. 남궁장천의 옆으로 바람이 일렁이자 그 즉시 검을 휘둘렀다.
사악!
검이 출수되고 다시 원래의 방어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이 짧아야 상대방에게 사각을 내주지 않고 오래오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검왕의 경우 출수와 회수의 간격은 극히 짧다. 그 순간을 파고들 수 있는 무인은 중원을 통틀어서 다섯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정확하게 공격해서 득을 볼 수 있는 자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슈우욱! 파아앙!
“큭!”
남궁장천은 자신의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강맹한 충격에 뒤로 1장이나 밀려나 버렸다. 온몸이 번개에 맞은 것처럼 찌릿해서 다시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그런데 천악은 그 틈을 주지 않았다. 천악의 손속은 확실했다. 상대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방심해서 기회를 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비무를 하는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천악이었다.
‘이럴 수가!’
남궁장천은 단 한 수 만에 제왕검법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나가 떨어져 버렸다.
보고 있었던 남궁혁성과 남궁태희조차 기겁했다.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대결을 기대했건만 너무 일방적이었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특별히 강기(剛氣)나 권환(拳環)을 사용하지 않는 천악이었다. 그것은 낭비였다. 귀신의 신법이라고 불리는 귀영보(鬼影步)와 야수권의 조화,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제압하고 남음이 있었다.
천악의 신법은 너무 빨랐다. 눈으로나 기감으로도 파악하기 불가능한 미지의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이형환위(移形幻位)와 같은 잔상이 생기는 것보다도 더 빨랐다. 극의(極意)에 이른 신법은 모든 무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남궁장천은 깨달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