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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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0화
풍운마룡 군천악 (1)
남궁세가에서 발생한 혈사로 인해 무림이 시끄러웠다. 정체불명의 고수들이 산공독을 이용해 남궁세가를 무너뜨리려고 했으며, 가주의 회갑연에 참석했던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무림 고수들을 모두 죽이려 한 사실에 놀라면서 분노했다. 무인들의 내공을 사라지게 만들고 죽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졸한 암수(暗數)라는 게 보편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산공독으로 인해 무공을 쓸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 청년이 과감히 나섰다.
풍운마룡 군천악!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의 신위는 가공했다. 그의 한 수에 무인들의 목이 꺾여 나갔고, 고작 1각 만에 정체불명의 고수들을 다 죽여버리는 가공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히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가진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속은 너무 잔인했다. 가차 없는 손속과 망설임 없이 부숴버리는 광폭한 기질에 남궁세가에 있던 무인들 모두 기겁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무림에 새로운 신룡이 출현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의 잔인한 수법에 의해 뜻하지 않게 마룡이라는 별호가 붙어버렸다. 천악이 풍운장원의 장주이기에 풍운마룡이라는 별호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남궁세가에서 일어난 혈사, 즉 남궁혈사로 인해 무림인들은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중원 모처에 세상에 해를 가하는 암중의 무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말이다.
그리하여 무림맹에선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였다. 남궁세가에 침입했던 적들이 모두 죽어버렸기에 그들의 배후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 * *
천악은 소문이 어떻게 돌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진가철방에서 철을 다루는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기술의 습득은 하루아침에 익혀지는 것이 아니었다. 반복적으로 같은 일을 하면서 몸이 저절로 익혀나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기술 습득은 학문을 익히듯 지식을 외우고 두뇌에 저장하는 것과는 달랐다.
철 제련은 미세한 작업의 연속이다. 자로 일일이 재는 것과는 다르게 감각으로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탕! 탕! 탕!
망치와 철이 두들겨지면서 하나의 철기가 완성된다. 철은 두드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두드릴수록 강해지고 두드릴수록 얇아진다.
“제법이구나. 철은 살아 있는 생명이다. 소중하고 또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또한 불의 세기를 잘 조절해라. 불의 온도는 스스로 몸에 익히는 방법밖에 없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진 노인은 천악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처음엔 상당한 재산을 가진 부자이기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데 주저함이 없고, 가르침에는 순수하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교만한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감정이었다.
“불의 세기를 말할 때 단계가 있다.”
“무엇입니까?”
진 노인은 불의 강도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불의 처음은 바로 적화(赤火)의 단계였다. 이 단계는 일반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는 불의 단계이며, 그 위의 단계가 바로 장인들만이 다룰 수 있는 청화(靑火)로, 청화는 쇠를 녹이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의 불은 백화(白火)라고 하여 명장만이 다룰 수 있는 경지였다. 진 노인도 백화의 경지에 들어 있었다.
천악이 백화의 경지에 들려면 가문의 비법을 알려주어야 했다. 며칠간 망설이던 진 노인은 천악의 열의와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백화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 비밀은 조개껍데기에 있었다. 조개껍데기의 성분과 흙 속에 들어 있는 적토의 성질이 어우러져 백화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천악은 비법을 알려준 진 노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천악은 받은 만큼 상대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대신 당한 것은 몇 배로 갚아주는 잔인한 성정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금은혜는 저 괴물 같은 사람이 왜 이런 허름한 철방에서 고작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가철방 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던 금은혜는 불평을 터뜨리고 있었다.
‘저 계집은 왜 이곳에 오는 거야?’
금은혜는 진가철방으로 다가오는 남궁태희와 남궁혁성을 봤다. 같은 여자이기에 여자의 미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금은혜도 상당히 아름다웠지만 남궁태희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약간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남궁혁성이 금은혜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금 소저를 보게 되다니 오늘 운이 좋습니다.”
“반갑네요.”
무표정하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남궁태희 역시 인사를 했다. 금은혜도 마지못해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무슨 일이죠?”
“군 아우를 보러 왔습니다.”
세가 내에서 벌어진 혈사가 강호에 퍼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웬만한 일이라면 감추려고 했겠지만 이미 세가에 초대된 무림인들이 모두 보았으니 소문이 나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그 폭풍의 중심에 있는 것이 풍운마룡 군천악이었다.
남궁혈사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군 오라버니는 지금 바쁜데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금은혜는 군천악을 따라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군천악은 자신이 배우는 일을 방해하는 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상대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지극히 자신 위주였다. 배우는 것에 자만하지 않고 열심인 것은 좋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으로선 피곤할 뿐이었다.
“그런데 금 소저는 군 아우와 어떤 사이입니까?”
남궁혁성은 그 점이 궁금했다. 구문제독부의 금지옥엽이 계속 군천악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물론 서로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구문제독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야 물론 아주 가까운 사이지요.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요?”
생명이 천악 손에 달렸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충분했다.
“그렇군요.”
남궁태희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아미가 살짝 꿈틀거렸다. 그녀는 속으로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혈사 당시에 느꼈던 무력감과 압도적으로 강함을 선보이던 군천악의 모습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 신위를 선보인 군천악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까지 그것이 왜 그런지 몰랐는데 금은혜의 말을 듣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금은혜는 남궁태희의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오호, 이년이 감히 남의 것에 찝적대?’
한때 금은혜는 산 하나를 없애버린 군천악이 겁이 나서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무시무시하다는 표현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강함, 그 누가 되더라도 깔아뭉갤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군천악이라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였다. 황제조차도 그가 마음에 안 들면 그날로 제삿날이고, 나라조차도 망국(亡國)으로 만들어버릴 능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겁이 났다. 이런 자가 자신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는 것에 말이다. 금은혜는 며칠 동안 풍운장원의 외원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며 지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냈다. 천악의 마음을 얻는다면 세상에 제일 강한 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강하고 독선적이지만 그에겐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감정이 생기자 서서히 그녀는 본래의 성격을 되찾았다.
‘내가 찍었다. 넌 안 돼!’
그녀는 자신의 것을 남과 나눌 정도로 아량이 넓지 않았다. 그런 독선적인 마음은 천악과 조금 일치했다.
천악은 대장간 일을 마무리하고 나가자 철방 앞에 남궁혁성과 남궁태희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 그들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우, 오랜만이야!”
“그렇군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군천악은 여전했다.
남궁혁성은 차분하면서도 예의바른 군천악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세가에서 보여준 패도적이기까지 한 무위을 생각하면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무공을 쓰지 않으면 서생처럼 보이겠지만 일단 쓴다면 야차(野次)처럼 변할 수 있는 것이 무인이니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동안 왜 세가에 오지 않았나? 한동안 소희를 달래느라 고생깨나 했네.”
“어수선했을 텐데요. 제가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소희는 이제 괜찮습니까? 그날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며칠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평온을 찾은 것 같네.”
“소희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군요.”
남궁혁성은 군천악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남궁소희 때문에 움직인 것을 알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누가 죽든 상관하지 않았던 그가 남궁소희의 외침을 듣고는 바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린애 취향인가?’
변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군천악이 남궁소희를 생각하는 마음은 조카를 보는 마음과 비슷했다.
남궁태희가 있음에도 전혀 꿈쩍하지 않는 군천악을 보고 남궁혁성은 혀를 찼다. 그도 남궁태희가 군천악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변한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이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동생 태희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군 공자! 저는 안 보이나요?”
남궁태희는 자신을 전혀 아는체하지 않는 천악을 향해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원하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그녀의 생에 이런 무관심은 처음이었다. 천악을 서점에서 맨 처음 보았을 때 자신에게 감정의 빛을 띤 것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전혀 자신을 상대로 어떠한 감정의 빛도 띠지 않았다.
“남궁 소저도 반갑습니다.”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 격이었다.
군천악의 성격을 아는 금은혜가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상대가 싫어하는데 구걸하면서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은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금은혜가 도전을 해보려는 것이다.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그의 성격을 알기에 자신이 매달리면 어느 정도 넘어오리라 확신한 것이다.
‘네년처럼 딱딱하게 대해서는 넘어올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그때는 고마웠어요.”
“예.”
천악은 남궁혈사 때 자신의 의지로 나선 것은 아니라서 그다지 감사의 인사를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남궁태희는 어렵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녀는 가족 이외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데도 서툴렀다.
만약 천악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남궁태희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면 이렇게 딱딱하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황송하다는 표정과 더불어 감격을 했을지도 모른다.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말을 받아줄 생각도 하지 않는 천악의 태도에 남궁태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람!’
“그런데 자네는 여기서 무얼 하는 건가?”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러려면 미리 기술을 배워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배우고 있습니다.”
“허어!”
어릴 때부터 무공만을 익혀도 천악의 나이대에 가질 수 있는 무공 실력이 되지 않는다. 식사와 잠도 거르지 않고 무공 수련을 해도 불가능하건만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남궁장천으로선 천악의 실제 나이를 모르니 그리 생각하는 것이지만 직접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의문점이 풀릴 리 없었다.
“솔직히 무공을 익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낮도깨비 같은 짓인지 모르겠네.”
“무공보다는 다른 것이 좋아졌을 뿐입니다.”
다른 무인들이 들었다면 기절했을 것이다.
무공을 익히고 다음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무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열망이다. 무공은 중독성이 상당히 강하다. 하나를 익히고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설수록 끝이 없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한 단계를 넘어설 때 느끼는 그 쾌감은 무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감정보다 더 짜릿하다 할 수 있다. 즉, 좌절과 고통, 그리고 절망을 느끼면서 무인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도중에 포기하는 자가 있을지 몰라도 일정 수준에 든 무인들은 무공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저를 보러 오셨습니까?”
“일보다는 그저 세가에서 자네의 도움에 감사해 한다는 말을 전해 주기 위해서 찾아왔네. 아버지께서 자네를 한 번 만나고 싶어하시기도 하고. 세가에 같이 갈 수 있겠나?”
다른 때 같으면 강압적으로 가자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천악은 남궁세가를 구해 준 은인이었다. 만약 그날 남궁세가에 천악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귀찮군.’
솔직한 심정이었다. 천악은 얼마 전부터 귀찮은 파리들이 근처에서 맴도는 것을 알았다. 다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더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놔두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직접적으로 귀찮게 한다면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천악은 남궁혁성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네. 세가에서 섭섭지 않은 보상을 해줄 것이네. 물론 자네가 그런 것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부디 거절하지는 말아주게.”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