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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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9화
남궁혈사(南宮血死) (3)
남궁장천이 산공독이라 말하는 소리를 연회장에 있는 모든 무인들이 들었다. 그들도 서둘러서 내공을 끌어올려 보았다.
“헛!”
내공이 모이지 않는다!
무인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내공이 사라진 무인이 과연 무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가! 지금은 이류고수가 덤빈다고 해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무인들이 모두 우왕좌왕하며 불안감을 표출할 때 백여 명의 정체 모를 무인들이 연회장으로 들이닥쳤다. 남궁세가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무인들은 이미 그들의 손에 의해 저 세상으로 하직한 상태였다.
“피를 보기 좋은 날이군요.”
선두에 서 있던 무인이 정중하게 말하였지만 연회장의 무인들은 그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정체 모를 무인들은 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살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사악!
“커어억!”
“으아아악!”
“안 돼!”
그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내공이 정상이라고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따라서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상태에서 그들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백여 명이 일제히 살수를 펼치자 순식간에 쉰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부상자들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쓰러진 상대에게 칼을 다시 한 번 찔러 넣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무리들이었다.
남궁장천은 잔인한 학살 장면을 보며 이를 갈았다. 설마 했는데 동생은 진정으로 세가의 사람들과 세가에 초대한 무인들을 모두 죽이려 했다. 배신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아무리 그래도 혈육이었다. 혈육이 혈육을 서슴없이 죽이다니! 동생 남궁장혁은 이미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패륜에 물든 피의 마물이라 해도 무방했다.
“네놈이 진정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구나.”
“아니, 내가 악마다. 이제 죽어주셔야겠군.”
휘이익! 카아앙!
남궁장혁의 검은 빠르고 무거웠다. 검이 충돌을 하자 불꽃을 튀며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남궁장천은 검을 막으며 뒤로 주르륵 밀려나갔다.
“커억!”
입으로 올라오는 핏물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검왕은 남궁장혁의 단 한 수에 내상과 동시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몸이 정상이었다면 당연히 검을 막고 반격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다시 이어지는 남궁장혁의 공격을 방어할 기력조차 남지 않았다.
“안 돼!”
남궁혁성이 즉시 검을 날려 제왕검법의 마지막 절초인 제왕군림을 펼쳐내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6성을 넘으면서 웬만한 이는 감히 받아내지 못할 위력을 선보였다.
검기에 실린 가닥가닥의 광폭한 기운이 남궁장혁의 옆구리를 노렸다.
“흥!”
남궁장혁이 바로 옆으로 공격해 오는 남궁혁성의 공격을 방어해 나갔다.
남궁혁성은 다른 무인들과 다르게 산공독에 중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 중독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애송이 놈이 감히 어디서!”
“닥쳐랏! 악마 같은 놈!”
남궁혁성에게 남궁장혁은 숙부였지만 지금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는 놈이 인간으로 보이겠는가.
카아앙! 파팟!
검과 검이 부딪치고 다시 검이 위에서 아래로, 또는 옆에서 전후좌우로 휘저어 나갔다.
남궁혁성은 또래에서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지만 그가 상대하는 남궁장혁은 이미 검왕에 필적할 만한 실력을 갖춘 절대고수였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5초가 채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파아앙!
검에 실린 강력한 기운에 부딪치자 남궁혁성이 힘을 잃고 2장이나 날아가서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부들부들!
쓰러진 남궁혁성이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강하다!’
쿨럭쿨럭!
남궁혁성도 남궁장천과 마찬가지로 내상을 입었는지 입에서 연신 핏물이 흘러나왔다. 기침을 할수록 핏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연회장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곳곳에 쓰러진 무인들의 시체가 연회장 바닥을 붉게 적셨고, 흘러내린 핏물이 도랑을 이루어서 움직이는 자들의 신발을 붉게 적셨다.
대부분이 산공독에 중독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일부 중독되지 않는 무인들은 정체불명의 악적들과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수적으로나 실력으로나 너무 밀리고 있었다.
사방에 잘려나간 머리와 목 없는 시체가 뒹굴었다. 죽어나간 무인들이 바로 옆에서 웃고 떠들던 형제들이었건만 무인들은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 잠시의 망설임으로 인해 자신도 바닥에 쓰러진 시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남궁장혁은 쓰러져 있는 남궁장천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흐르는 비릿한 미소는 잔인한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이제까지 억눌려 있던 살성의 부활이었다. 그는 자신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진 형을 보면서 통쾌한 전율을 느꼈다.
“마지막이닷!”
기를 운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혈맥에 타격을 입었고, 전신의 근육들이 고통으로 몸서리치고 있는 남궁장천이었다. 그러니 몸을 움직일 기력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남궁장천에게 검을 찔러 넣는 남궁장혁!
남궁장천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천악은 남궁장천의 뒤로 혼절해 있는 남궁소희를 보았다. 너무나 살벌한 살육 장면에 정신이 이기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다. 천악은 남궁장천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남궁소희의 마지막 외침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꽈악!
찔러 들어오는 검을 한 손으로 잡아버린 천악이었다.
남궁장혁은 자신의 검이 타인의 손에 잡힌 것에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뿌리는 검속은 누구보다 빠르고 강력했다. 그런 검을 맨손으로 잡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자살행위였다.
당연히 상대는 검에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가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검이 상대의 손에 잡혀서 꿈쩍을 하지 않았다.
“이이익!”
남궁장혁은 전신에 모아진 진기를 검에 쏟아 부었다.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빼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엄청난 반탄력이 검면을 타고 전해지자 분신과 같은 검을 다시 잡을 수 없었다.
“커억!”
검을 놓친 상태로 뒤로 밀려난 남궁장혁의 표정은 악마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천악은 상대의 말을 들어줄 만한 아량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슈우욱!
천악은 순식간에 공간을 무시하며 남궁장혁의 앞에 나타났다. 남궁장혁의 안법(眼法)으로도 구분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죽어라.”
천악의 손이 가볍게 남궁장혁의 목을 잡았다. 잡은 순간 자그마한 힘이 손목을 타고 남궁장혁의 목에 전해졌다.
빠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더불어 남궁장혁이 혀를 내밀고 죽어버렸다. 30년 동안 절치부심한 남궁장혁의 최후는 너무 허무했다.
쓰러져서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남궁장천과 남궁혁성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럴 수도 있는 건가?’
‘보이지도 않았다!’
검왕 남궁장천의 눈에도 천악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공간과 공간을 완전히 무시한 채 건너 뛰어버린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마치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천악이 외공만 익힌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상을 초월한 괴물이었다. 두 사람은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저 정도로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천악이 기절해 있는 남궁소희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묵묵히 살육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다른 이의 안위를 챙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소희의 외침을 들어준 것뿐이다.
천악의 눈에 악전고투를 하는 남궁태희의 모습이 들어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검을 들고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인들과 대결하는 장면은 인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 자체만 놓고 본다면 블록버스터 급 영화를 보는 것처럼 화려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이보게, 지금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뭘 하는 건가? 어서 저들을 도와주게.”
남궁장천이 간신히 말을 했다.
자신을 구한 것은 둘째치고, 그 이후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일방적인 살육 현장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게 어디 정상으로 보였겠는가.
남궁장천은 아무리 생각해도 천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다른 이를 도와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남궁장천이었다.
천악이 남궁장천을 바라보았다.
처음 천악을 보았을 때 남궁장천은 호감이 가는 인상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자세히 눈을 들여다보니 전혀 감정이 없는 듯 차가운 사람의 눈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눈을 보고 있자 남궁장천은 절로 몸이 떨렸다.
‘허어, 도대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분하게 말을 하는 천악이 오히려 무섭기까지 한 남궁장천이었다. 살육이 벌어지는 이곳과는 별개의,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인 듯한 목소리였다.
“저들은 모두 무고한 사람일세.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렇군요. 하지만 나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잘 모릅니다. 그저 나에게 검을 들이댄 자는 반드시 죽여버린다는 것만 알 뿐이지요. 아무튼 나에게 검을 들이댔으니 저들을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세 명의 무인이 천악을 향해 검을 들이대자 천악의 손이 바람처럼 움직여 세 명의 목을 꺾어버렸다.
빠각!
천악에게 검을 들이댄 순간 무인들의 운명은 결정되어졌다.
천악의 움직임은 가히 공간이동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르고 군더더기조차 없었다. 번갯불에 콩이 볶아지듯 빠른 신법이었다.
천악의 야수권은 이미 형을 지나 무형의 경지에 이르렀다. 움직이는 자체가 무공이었고 강력한 공격이었다.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불과 1각 만에 백여 명의 무인들 중에 살아남은 무인은 고작 서른 명밖에 되지 않았다. 천악이 나머지 무인들의 목을 다 꺾어버린 것이다. 쓰러진 시체들은 모두 기괴하게 목이 꺾여 있었다.
정체불명의 무인들 중 수장 격인 중년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순간에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수하들이 모두 죽어나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 명의 목이 꺾여 차가운 바닥에 누워버렸다.
“네놈은 누구냐?”
“오늘 그 말을 아주 많이 듣는군.”
“허억!”
눈 깜짝할 새 수하들을 바닥에 눕힌 놈이 어느새 자신의 바로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목을 잡아 꺾으려고 하였다. 기겁을 한 중년인이 빠르게 뒤로 몸을 뺐다.
중년인은 목을 쓰다듬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빠른 대처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이승을 하직할 뻔했다. 무상의 보법인 혈룡보(血龍步)가 아니었으면 목이 낫 모양으로 부러졌을 것이다.
“호오, 나의 손속에서 벗어나다니 제법인데.”
천악은 처음으로 흥미가 동했다.
나머지 놈들이야 이제 중독되지 않은 이들이 제압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정체불명의 무인들 스무 명이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다른 무인들 모두를 제압할 리 없었다.
천악은 정체불명의 무인들을 상대할 때 모두 같은 정도의 힘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막아낸 자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뜻밖에도 중년인이 자신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다.
“너는 보통이 아니구나. 분명 느껴지는 기운은 별로인데 말이야.”
천악은 중년인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그다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강했다. 물론 천악이 생각하는 강함은 보통 무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본교에서 네놈 같은 놈이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교? 그럼 종교집단인가? 뭐 아무튼 상관없다. 나는 네놈들의 배후 같은 것은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나한테 덤비면 모두 죽는 것뿐이야.”
혈룡검 구도락이 바로 중년인의 이름이었다.
구도락은 식은땀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직접 겪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교 서열 30위인 내가 공포를 느낀단 말인가!’
강호의 서열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검왕이라고 해도 자신이 힘을 발휘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자부했건만,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청년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대로 돌아가면 자신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교에서 패배는 바로 죽음이었다.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놈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자 구도락은 화가 치밀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무인은 때론 만용을 부린다.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고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 바로 무인이었다. 구도락도 그러한 무인이었다.
“마지막으로 네놈만은 죽여주마!”
-강신합일(降神合一)!
-옴마냐(나에게) 그라하메(힘을) 하살라마하(주시옵소서)!
구도락이 중얼거리면서 무언가를 말하자 서서히 붉은 기운이 몸에서 뻗어 나왔다. 핏빛보다 더 붉은 기운이었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핏!
“커억!”
천악은 상대방이 완전하게 힘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천악은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으… 아직… 컥!”
강신합일은 말 그대로 신의 힘을 빌려 쓰는 주술이다. 몸 안의 신의 힘을 빌려 쓰는 것으로 일단 사용하면 진기의 고갈로 인해 모든 무공을 잃어버려 최후에나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주술의 힘이 발휘되기 전에 천악의 손이 구도락의 핏빛 강기를 뚫고 들어와서 목을 꺾어버렸다.
‘비겁한……!’
무인이라면 상대의 힘을 발휘할 시간을 주는 것이 마땅하거늘!
말을 하기도 전에 힘이 빠져나가 버린 구도락의 몸이 축 늘어져 버렸다.
“하품이 날 정도로 느려. 그렇게 느리게 힘을 발휘할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썼어야지.”
구도락의 몸에서 발산되는 핏빛 기운은 말 그대로 강기 수준이었다. 강기의 벽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것은 같은 강기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구도락이 발산한 기운은 강기의 힘보다 더욱 강한 기운이었건만 천악의 수법에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비겁이고 뭐고 따질 필요 없었다.
천악은 나머지 무인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렸다. 무인에게 감상은 허울 좋은 명예에 목숨 거는 녀석들이나 갖는 거라고 생각하는 천악이었다. 순전히 개인적이지만 이런 귀찮음 때문에 무공을 사용함에 가장 간단한 수법을 쓰는지도 몰랐다.
연회장 안에 모인 무인들이 모두 천악을 괴물 보듯이 바라보았다. 모두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나타난 의문의 청년은 그들이 생각하는 상식 밖의 강함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