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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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33화
천수암제의 꿍꿍이 (1)
풍운장원으로 돌아온 천악에게 금은혜가 바로 들러붙었다. 계약서를 가지러 금천상가에 갔다 온 사이 천악이 없어졌으니 금은혜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천악은 사흘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이제야 돌아온 것이다. 금은혜는 돌아온 천악이 아무 말도 없자 서운하기는 했지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묵묵히 기다렸다.
“여기 계약서예요.”
천악이 계약서의 내용을 빠짐없이 읽어나갔다.
금은혜는 사심없이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의 내용은 정확하고 명확해야 했다. 모호하게 작성하는 것은 상행위를 술수로 이용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같은 놈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계약서의 추가 내용하고 냉기 스크롤에 대한 가격을 정하면 되겠군.”
“그런데 여기 이 부분이요.”
“독점을 원하는 것인가?”
“솔직히 그래요. 이 사업은 다른 상회가 할 수 없으니까 이윤이 그만큼 많이 남는 거예요. 그러니 독점계약에 도장을 찍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계약서에 쓰여 있진 않았지만 금은혜는 독점을 원한다는 말을 하였다. 다른 상회에서도 다 할 수 있으면 그만큼 이윤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했다. 현대의 시장에서라면 정부의 규제가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이 시대에는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은 전수가 잘 되지 않는다. 즉, 독점을 대부분 허용한다는 소리였다. 단, 쌀이나 소금은 황궁에서 적극적으로 규제를 하는 편이었다.
“스크롤 한 장당 가격보다는 전체 이익의 2할을 주면 좋겠어.”
“그렇게 하세요. 솔직히 우선은 시범적으로 냉동수레를 운용해 볼 거예요. 반응을 보고 난 후 더 많이 만들든지 할 생각이에요.”
“그게 좋겠군.”
“냉동수레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요?”
아무래도 천악이라면 냉동수레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수레의 무게를 생각하면 나무로 만드는 것이 좋겠지. 가죽으로 외부를 감싸면 냉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어. 나무의 진액이나 수액으로 틈을 메우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렇네요. 참고할게요!”
천악은 냉기 스크롤의 사용방법과 더불어 사용 공간의 크기, 적용시간 등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사용방법은 너무 간단했다. 그저 스크롤을 찢으면 되었다.
“시험 삼아 한번 해보면 안 되나요?”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상인으로서 계약 전에 당연히 성능을 확인해 봐야지. 한번 해보아라.”
금은혜가 냉기 스크롤 한 장을 꺼내 찢어보았다.
치이익!
종이가 찢기자 천악의 방 안에 차가운 기운이 퍼져나갔다. 냉기 스크롤이 발산하는 냉기의 온도는 0도 정도였다. 두 장을 한꺼번에 사용하면 온도가 좀더 떨어지겠지만 기본적인 차이는 별로 없었다.
“아, 정말 이럴 수도 있네요. 대단해요.”
차가운 기운으로 인해 금세 금은혜의 볼이 붉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감탄하기에 바빴다.
천악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고 마법을 해제시켰다.
“이 종이에 대한 것은 절대 비밀이다. 또한 나에 대한 것도 반드시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이 깨지거나 날 귀찮게 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계약은 파기될 거고, 그 이후에 난 무척이나 화가 날 것이다.”
“물론이에요. 전 생각보다 입이 무거워요. 그리고 비밀은 반드시 유지될 거예요.”
“그건 그렇고… 단단한 철을 구할 수 있나?”
대장간의 기초공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처음 뼈대를 구성하고 배수로 공사를 집중적으로 하는 바람에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곧 대장간이 완성될 것이다.
처음에 천악은 시멘트를 생산해 그걸 건축 주재료로 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시멘트의 좋지 않은 성분을 생각하고는 그냥 흙이나 기타 재료로 만들기로 했다. 돌이나 바위를 가지고 건물을 만드는 기술은 천악보다 인부들이 더 뛰어났다. 그러니 그런 일까지 일일이 지시할 필요는 없었다. 천악은 자연친화적이면서도 화려하고,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아름다운 집을 만들고 싶었다.
배수로 공사가 끝나가고 있으니 펌프를 만들 생각이었다. 특히 펌프의 날은 강도가 뛰어나야 했다. 물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펌프의 날은 강도가 약하면 휘어져서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수압이 관건일 것이다. 수압을 얕보다 큰코다칠 수 있었다. 강력한 수압은 어떤 강철도 뚫어버릴 수 있었다. 특히 펌프는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기에 마모되지 않도록 강도 높은 철로 만들어야 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 금천상가는 철광산도 가지고 있어요. 묵철이라는 희귀한 철광석도 가지고 있으니 문제없어요.”
“철광산은 나라에서 운영한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상가에서 가질 수 있게 됐지?”
“에이, 몰라요! 우리 아버지가 구문제독이에요. 그 정도 힘은 있어요.”
“그렇군. 그럼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일 내에 가져올 수 있겠지?”
“그럼 계약 성립이군요?”
“그래, 계약 성립이다.”
* * *
장원의 별채 안에서 신일, 충호, 전칠이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먹고 놀라는 천악의 말이 있었지만 조금씩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조금이라 움직여서 체력을 키울 생각인 것이다.
그 옆에서 무걸개 추상락이 가만히 앉아 아이들을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흘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일생 최대의 치욕적인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있다보니 어느새 아이들과는 친해졌다.
아이들이 몸을 건강하게 하고 싶다는 말에 기초적인 운동을 알려주었다. 그는 세 아이들이 아직 근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초체력을 기르고,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내가 고작 이 정도였다니……!”
솔직히 자만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결에서 지고 이기고는 병가지상사라고 하지만 천악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사건은 정신적으로 심한 상처를 남겼다.
“에이, 몰라!”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기에 그냥 있었다. 그는 거지답게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누룽지를 씹어 먹고 있었다.
뿌드득! 뿌드득!
그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은 아무도 몰랐다. 왜냐하면 그의 엄청난 식성 때문이었다. 무공을 밥보다 좋아하는 그가 잠시 쉬는 동안에는 보통사람 10인 분에 해당하는 음식을 먹었으니 그게 고민하는 모습으로 보이겠는가.
“저, 아저씨… 이렇게 하면 정말 건강해지나요?”
신일이 추상락에게 물었다. 추상락이 가르쳐준 운동은 그저 손발을 움직이는 간단한 행동이었으므로 그런 질문을 한 것이다.
“너희들은 굶주려 있어서 체력이 보통 아이들보다 약해. 하지만 내가 가르쳐주는 것을 꾸준히 따라하면 건강해질 수 있을 거다.”
“다행이네요.”
신일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할 생각이었다. 그에게는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체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추상락이 궁금했다.
“뭐가 다행이지?”
“장주님께서 한 달 동안 몸을 건강하게 만들라고 했어요. 그걸 지키지 않으면 쫓겨날 수도 있어요.”
추상락은 천악이 아이들에게 상당한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굶주림에 지치고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놈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그날의 악마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도저히 아이들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인간과 동일인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뭔가 있어. 그저 아무 조건 없이 친절을 베풀 위인이 아니야.’
도저히 좋은 의도로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조심하거라. 그 사람은 마냥 맘 좋은 사람만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장주님은 좋은 분이세요. 우리가 건강해지면 무공도 가르쳐주실 거라고 했어요.”
신일은 천악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추상락이 장주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하자 즉시 발끈했다.
‘쯧쯧… 아이들이란!’
추상락은 아이들이 너무 순진해서 그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추상락은 어른으로서 진실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장주가 너희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서 엄청난……!”
“뭘 한다고?”
어느새 나타났는지 추상락의 등 뒤로 천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추상락은 입으로 더 내뱉었다가는 엄청난 위험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등뼈가 시린 와중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구레나룻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엄청나고 훌륭한 무인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생각과는 다르게 입은 따로 놀고 있었다.
천악을 보자 그때의 공포가 그의 두뇌를 장악했다. 도저히 생각대로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천악은 신일을 비롯한 아이들이 하는 운동을 보았다. 기본적으로 천악이 살던 이전 세계의 국민체조와 비슷한 운동이었다.
식사와 더불어 간단한 운동은 몸을 풀어주고 근육에 힘을 저장시켜준다.
“좋은 방법이다. 네가 생각한 거냐?”
신일에게 천악이 묻자 즉시 대답했다.
“저기 추 아저씨가 가르쳐주셨어요.”
“잘 됐군. 오늘부터 추상락이 너희들의 조교가 될 것이다.”
“조교요?”
“조교란 내가 지시한 일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시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란 뜻이지.”
“아, 그렇군요.”
추상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종의 시범 무인을 말하는 듯했다. 추상락은 개방의 장로였다. 무공 시범이나 보이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니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저, 저는 그래도 개방의 장로입니다.”
“그래서?”
“제 위치가 그런 시범이나 보여주는 위치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 나이도 있고 위치를 생각해서 대접을 조금 바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천악의 차가운 질문은 계속되었다.
말을 하면서도 물 흐르듯 땀을 흘리는 추상락은 고개를 숙였다. 천악을 말로 설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넌 내 하인이다. 하인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구차한 이유라든지 타당성 따위를 따지는 위치가 아니란 말이지. 내가 하늘이 붉다 하면 넌 그 다음부터 하늘은 붉은색이라고 하면 되는 거다.”
숨을 쉴 수조차 없는 압력이 추상락의 정신을 압박했다. 막무가내식의 말투, 아마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추상락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여기 오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억울하면 한 번 더 덤벼도 좋다. 단, 주인에게 들이대는 하인은 그냥 두지 않는 게 내 신조니까 알아서 판단해라.”
추상락이 몸을 부르르 떨며 사양했다. 그날의 고통은 절대로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잘못 말했다가는 정말 골로 가는 수가 있었다.
“아이들을 잘 보살펴 줘라. 아이들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시에는 네가 대신 맞을 줄 알아라.”
“무, 물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추상락은 천악의 조교가 되어 그가 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개방의 무걸개가 고작 조교가 되다니, 개방의 개왕이 알았다면 뒤로 졸도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