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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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4화
귀갓길에 생긴 일 (2)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풍기는 곳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코를 막아도 들어오는 지독한 냄새의 향연에 기겁을 했을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잘 지어져 있다고 보기에 어려운 장소에서 늙은 거지와 중년의 거지가 앉아 있었다.
늙은 거지는 평소에 술을 많이 마셨는지 코가 시뻘겋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누런 이가 보는 이로 하여금 역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허름한 마의는 언제 입었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때가 타 있었다.
곳곳에 구멍 난 옷 사이로 보이는 피부는 절대로 사람 피부라 생각되지 않았다. 덕지덕지 붙어 있던 때가 건조한 날씨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갈라져 있었다. 대패로 밀면 세숫대야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엄청난 때갑(때의 갑옷)이었다. 웬만한 무공은 때갑으로 충분히 방어가 될 듯 보였다. 하북 팽가의 피갑추가 호신강기를 부순다는 말이 있지만 때갑만은 부수지 못할 듯했다.
반면에 중년의 거지는 거지답지 않게 굳건한 체격에 갑옷을 방불케 하는 탄탄한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각진 얼굴과 탄탄한 피부가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태상방주님, 부르셨습니까?”
“허허, 사부라고 부르라고 했잖느냐.”
“알겠습니다, 사부님.”
늙은 거지가 바로 개왕 궁휼이었다.
개방의 방주 위의 최고로 높은 신분을 자랑하는 늙은 거지가 바로 궁휼이다. 그는 개방의 무공을 극성으로 익힌 최고의 무재였으며 강호십대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과 더불어 명성을 갉아먹는 별호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구걸대마왕(求乞大魔王)이라는 별호였다.
지금은 구걸을 하러 다니지 않지만 개왕(쾬王)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부터 그의 구걸 실력은 어떤 이들을 만나도 통할 정도로 경천동지할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강호에 손꼽히는 장법인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을 대성한 그의 명성보다 그가 직접 만들은 구걸예도(求乞禮度)가 더 유명할 정도였다.
-구걸예도-
첫째, 구걸의 시작은 비굴이다. 그 어떤 시련에도 비위를 맞출 수 있는 강심장을 가져야 한다.
둘째, 내가 가장 처연하다. 처연함을 무기로 상대의 연민을 이끌어내야 한다.
셋째, 인생막장이라는 막무가내 정신으로 중무장해야 한다.
넷째, 허리를 구부리는 자세와 손이 올라오는 자세는 필히 수만 번 연습해야 한다.
다섯째, 엄살은 거지만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무기다. 살짝만 닿아도 세상에서 제일 아픈 표정을 지어야 한다.
구걸오도(求乞五道)라고까지 불리는 구걸신공(求乞神功)을 무기로 궁휼은 구걸대마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의 이름도 스승이 나라에서 불쌍한 백성들에게 주는 쌀(궁휼미) 이름에서 착안한 것이니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거지다웠다.
궁휼도 처음에는 스승이 이런 이름을 지어줘서 상당히 원망을 했지만 스승의 마지막 말에 수긍을 해버리고 말았다.
“궁휼아, 그래도 ‘미’ 자는 여자이름 같아서 뺏느니라!”
“사부님, 그런데 왜 부르셨습니까?”
“상락, 이놈아! 너도 이제 개방의 일을 해야 될 것이 아니냐? 매일 무공 수련만 하니 어디 너를 거지라고 할 수 있겠느냐!”
“저는 아직 무공을 대성하지 못했습니다.”
중년 거지는 개방 역사상 최연소 장로인 무걸개 추상락이었다. 그의 별호에 무(武) 자가 붙은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무공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여태껏 구걸을 해본 적이 없었다. 거지들의 생명줄인 구걸과 개방에서 자랑하는 정보수집과 염탐, 추적 등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는 오직 무공만을 익히고 있었다. 그는 밥 먹는 것도 마다하고 무공만 익히는 진정한 무공광(武功狂)이었다. 사부인 궁휼조차 그것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런 무걸개가 마흔의 나이임에도 장로 자릴 차지하고 앉은 것은 순전히 신룡무림대회(神龍武林大會)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벌어진 신룡무림대회에서 무걸개는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었다. 개방은 개왕 이외에는 인재가 없다는 무림맹 내의 시선을 완전히 해소시켜버린 사건이었다. 무걸개가 개방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개방인들의 인식 때문에 개방의 방주 이하 장로들이 만장일치로 그를 최연소 장로에 등록시켰다.
하지만 그 약발도 이제는 많이 희석되어버린 상황이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강호 활동은 고사하고 개방에서의 기초적인 일들도 아예 하지 않는 그 모습에 개방 방주도 속을 썩고 있었다.
강호 활동을 해야 위명(偉名)을 떨칠 것이 아닌가! 혼자 무공 수련만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가 말이다.
방주가 참다못해 태상방주인 궁휼에게 부탁을 하였다. 무걸개가 강호 활동을 하도록 명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무걸개는 다른 이의 말은 다 듣지 않아도 사부인 궁휼의 말만은 들었다.
“너도 이제 마흔이다. 개방의 일에도 참여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 곳에만 있다고 무공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니 강호에 한번 나가보아라.”
“그냥 나가면 되는 겁니까?”
“그냥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 요즘 중원에 별다른 일은 없지만 암중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안휘성의 합비로 가보아라. 그곳 분타주가 알아서 할 일을 줄 거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너는 모르겠지만 요즘 풍운마룡이라는 아이가 강호에 신성처럼 등장했다고 하더구나. 한번 부딪쳐 보고 심성이 어떤지 판단해 보아라.”
“한번 손속을 겨뤄보겠습니다.”
“적당히 하거라. 너의 힘은 아이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니라.”
“물론입니다.”
무걸개 추상락은 궁휼 자신조차도 뛰어넘는 무의 재능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또 무공을 익히기 위해 태어난 이상적인 골격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나이대에 적수가 없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그래, 말해 보거라. 내 힘닿는 데까지 해결해 주마.”
제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사부의 미덕이었다.
“아무리 제가 밥보다 무공을 좋아한다고 해도 식사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띠잉!
‘이놈이 여태껏 내 말을 똥구멍으로 들었구나.’
거지 주제에 밥을 어떻게 먹느냐는 말을 하니 듣는 사부로서 복장이 터졌다.
“이놈아,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구걸해서 먹으면 될 거 아니냐?”
“구걸이요? 전 구걸 같은 거 잘 못 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돈이라도 좀 주십시오.”
“돈이라니, 내가 돈이 어디 있어? 내 별호가 뭐냐?”
“개왕이십니다.”
“아니, 그것 말고.”
“구걸대마왕입니다.”
“그걸 알면서 나한테 돈을 달라 하느냐? 어서 가서 너도 구걸신공을 배우도록 해라. 너도 나의 구걸예도를 배웠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추상락은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그나마 풍운마룡과 손속을 겨루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 * *
소풍 나온 3인은 소호의 외곽에서 밤을 지새우고 난 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소호의 외딴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객잔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객잔들 주변으로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천악의 마차가 대로로 진입하자 사람들이 ‘와!’ 하는 감탄을 터뜨렸다. 보는 것만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사두마차의 위용이었다.
“저것 봐. 말은 둘째치고 마차가 저렇게 고급스럽다니!”
“돈으로 처바른 것 같은데 뭘 그래.”
“흥! 부러우면서 그딴 소리하지 말라고.”
사람들은 감탄을 하면서 시기와 부러움을 동시에 나타내었다. 또 보통사람은 한번 구경하기도 힘든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다.
진삼은 마부로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자신을 보고 하는 감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자부심이 생기고 있었다.
마차는 소호객잔의 앞에 섰다. 마차의 문을 열고 천악이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천악의 모습은 평범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품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두 여인의 모습을 보고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사내들은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를 보듯이 황홀한 시선으로 두 여인을 바라보았으며, 여인들은 자신들이 따라갈 수 없는 외모를 지닌 두 여인에 대해 질투심을 드러내었다.
“선녀다! 저런 미인들이라니……!”
“내 눈이 오늘 호강하는구나.”
“앗!”
옆에 연인이 있음에도 멍하니 침을 흘린 사내들은 옆구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흥! 그래 봐야 나보다 못해.”
질투심을 느낀 여인의 모습에 사내들이 기겁을 했다.
천악을 바라보는 사내들의 표정은 더욱 사나웠다. 저런 미인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데리고 다니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하늘의 실수라고 생각을 했다.
‘저런 놈이 뭐가 잘났다고……!’
‘나라면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겉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천악이 타고 온 마차를 봤기 때문이다. 천악이 필시 보통 신분의 사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관대작의 아들일지도 모르기에 모두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천악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그저 시끄럽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천악을 따라 금은혜와 남궁태희가 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 내부의 시선도 밖과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두 여인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두 여인이 너무 아까웠다. 천악을 별 볼일 없는 녀석으로 생각을 한 것이다.
점소이조차 멍하니 두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악이 그런 점소이의 정신을 일깨웠다.
“자리가 없나?”
“아, 아닙니다. 2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점소이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천악을 안내했다. 그 뒤로 두 여인이 천악의 뒤를 따랐다.
2층의 창가 자리로 점소이가 안내를 해주었다. 천악은 자신의 식성에 맞게 음식을 시켰다.
오향장육(五香醬肉)과 같은 돼지고기 요리를 중원인들은 약간 느끼하게 조리해서 먹는 것이 특징이라 그의 입맛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일일이 지적을 해주었다.
“느끼하지 않게 기름기를 빼서 가져와. 그리고 이 근처에서 잡히는 물고기 요리도 좋겠지. 송서계어(松鼠桂魚) 같은 것도 있으면 좋고, 아니면 그와 비슷한 요리를 가져오도록. 술은 도수가 낮고 맛이 은은한 것으로 가져오는 게 낫겠지. 어떤가, 주문은 가능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주방에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밖에 내 하인이 있는데 그가 원하는 대로 갖다 주도록.”
진삼은 말과 마차를 지키고 있기에 음식을 밖으로 갖다 줘야 했다.
천악은 남의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일단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 챙겨주는 편이었다.
점소이는 사실 천악의 까다로운 식성에 당황했다. 대부분은 여인들이 주로 음식을 주문하는 편인데 눈앞의 공자는 여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맘대로 주문해 버린 것이다.
“너희들도 알아서 시키도록.”
그 말을 끝으로 천악은 입을 다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냥 우리는 오라버니가 시키는 것으로 먹을래요. 전 오라버니가 좋다면 뭐든지 다 좋아요.”
금은혜의 아부성 발언이 작렬했다.
남궁태희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녀는 이제껏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었지만 천악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저도 오라버니와 같은 것으로 할래요.”
그렇지만 남궁태희는 금은혜처럼 사내 앞에서 애교를 부리지는 못했다. 그녀가 살아온 생애에 ‘애교’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점소이는 두 여인이 남자에게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말에 더욱 놀라고 있었다.
‘와, 대단하다. 저런 여인들이 서로 잘 보이려고 애쓰다니!’
청년의 놀라운 능력을 사내의 한 사람으로서 부러워해야 했다. 자신이라면 저런 여인이 말을 붙여준 것만으로 감격했을 텐데 말이다.
“주문 끝났다. 빨리 가서 가져와라.”
“아, 죄송합니다.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천악이 멍하니 있는 점소이의 정신을 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