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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23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3화

귀갓길에 생긴 일 (1)

 

 

남궁혁성은 지금 죽을 맛이었다. 그의 앞에 무서운 인물이 험상궂게 인상을 쓰고 그를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자신을 이처럼 노려보는 인물은 강호에 얼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얼마 없는 무인 중에서 가장 무섭다는 무인이 눈앞에 있으니 그로인해 사색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는 바로 천수암제 당지독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검왕 남궁장천조차도 한 수 접어준다는 절대경지의 무인이었다.

 

그의 한 수에 절정고수를 비롯해 수십의 무인이 한 줌의 독수를 흘러내린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감히 누가 천수암제 앞에서 당당할 수 있으랴! 죽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기는 것이 명줄을 오래오래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당지독은 인상 자체가 완고하고 괴팍하게 생겼다. 얼굴이 웃지 않으면 인상 쓰는 것처럼 보인다. 또 만약 그가 웃는다 해도 결코 좋은 성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그 군천악이라는 놈이 외출을 했다 이 말이지?”

 

“그렇습니다. 한 사흘 정도 저희 세가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호오!”

 

당대의 절대고수인 자신의 말이 이렇게 쉽게 무시되다니, 역시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순 없는 건가?

 

남궁세가에 와서 자신이 부탁을 하면 당연히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군천악을 찾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남궁혁성의 말을 들으니 지금 그의 말이 흐지부지 무시되어버렸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또 남궁세가에서 뭔가 숨기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남궁혁성은 천수암제에게 직접 말을 전하라 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남궁장천도 직접 당지독에게 말을 하기 껄끄러웠는지 아들에게 미룬 것이다.

 

남궁혁성은 차마 군천악이 놀러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자신의 동생과 금룡화 소저와 같이 놀러갔다는 말을 천수암제에게 사실대로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약 말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독에 녹아버릴 것 같았다.

 

“설마 나에게 숨기는 것이 있는 건 아니겠지?”

 

절레절레!

 

“아닙니다. 제가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합니까?”

 

“그래, 너도 내 성격을 아는 녀석이니까 잘 알아들었겠지.”

 

당지독은 그 와중에 남궁혁성의 말을 곱씹었다.

 

‘네가 날 그렇게 봤구나.’

 

‘휴우!’

 

무사히 넘어갔다는 것에 남궁혁성이 안심을 했다. 괜히 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지면 더 진땀이 났을 것이다.

 

남궁혁성은 한 고비 넘어갔다는 안이한 생각을 너무 쉽게 하고 말았다. 당지독은 이 정도로 그냥 넘어가는 인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강호에 나왔는데 어디 요즘 후기지수들의 실력 좀 볼까?”

 

그저 지나가는 투의 말이었다. 아니, 자세히 듣지 않으면 그냥 놓쳐버릴 정도로 가벼운 말이었다. 그런데 정작 듣는 남궁혁성에게는 귓속에서 천둥이 치는 듯이 들렸다. 말을 하는 입장과 듣는 입장이 그렇게 달랐다.

 

삐질!

 

남궁혁성의 등 뒤로 식은땀이 샘물 솟듯이 뿜어져 나왔다.

 

당가 내에서도 당지독의 지도수련은 금지되어 있었다. 당지독의 손속이 너무 위험했으며 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람을 아주 반병신을 만들어놓으니 지도수련이라는 명목이 붙은 가혹행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젊은 무인들도 처음에는 십대고수 중 최상위인 천수암제의 가르침이라는 것에 환호했었다. 그러나 그 환호는 고작 반 시진이라는 지옥 같은 시간 만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의 혹독한 지도수련을 받은 당가의 식솔들조차 고개를 저었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오늘 남궁 남매는 전설을 두 번이나 경험하게 생겼다. 그나마 남궁태희는 전설로 인해 극상승의 경지를 경험했지만 남궁혁성은 생명이 위협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어서 빨리 대련을 빙자한 가혹행위를 벗어나야 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당지독이라는 똥은 무서웠다.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남궁혁성의 뇌리에 꽉 차 있었다.

 

“자네가 요새 검룡이라고 불린다며?”

 

“그 무슨! 제 나이가 이제 서른이 넘었습니다. 검룡은 이제 다음 대 아이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검룡이 아니라고 하는 남궁혁성이었다. 자신은 이미 후기지수들의 나이대를 넘었으니 그냥 모른 척 넘어가라는 말이었다.

 

“지금 내 앞에서 나이 타령 하는 것이냐?”

 

“헛! 아닙니다! 천수암제 어르신!”

 

“내 친히 시간을 소비하며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것이니 고맙게 여기도록 해라.”

 

하마터면 남궁혁성은 입에서 욕이 나올 뻔했다.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빼도 박도 못 하게 된 상황이었다. 당지독이 직접 말을 하였으니 결정을 해야 했다. 여기서 더 거절을 했다가는 진정으로 천수암제의 분노를 경험해야 했다.

 

“지도해 주시는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냐! 오랜만에 재밌게 해보자꾸나.”

 

맘에도 없는 말을 하는 남궁혁성이었다.

 

당지독의 저 웃는 인상을 보자 남궁혁성도 오기가 생겼다. 저 능글맞은 웃음의 한 조각이나마 무너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바에는 이판사판이다. 나도 강하다.’

 

자기 최면을 거는 남궁혁성이었다.

 

‘이놈, 어디 애교를 부려보아라.’

 

당지독은 요즘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가 직접 손을 쓴 지가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감히 누가 천수암제의 손속을 받고 싶어하겠는가. 당연히 당가 내에서 고이 처박혀서 궁상을 떠는 것밖에는 하지 못했으니 당지독도 답답하게 살고 있었다.

 

무인이 쌓인 것을 푸는 방법에 대련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어엿한 두 주먹과 두 발이 있는데 굳이 대화로 푸는 것은 무인들이 할 짓이 아니었다.

 

남궁혁성은 그날 군천악의 놀라운 신위를 보고 좌절감을 맛보았다.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고민을 했다. 남궁태희보다 어쩌면 더욱 놀랐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당시의 좌절을 극복하고 노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남궁세가의 소가주 아닌가. 아버지와 가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자, 와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그래야지. 무인은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니까.”

 

남궁혁성이 정중하게 검을 출수할 기수식을 취했다.

 

당지독도 뒷짐을 지던 한 손을 풀고 들어오라고 하였다. 당지독의 몸에서는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궁혁성은 검의 찔러 넣을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곳을 공격해도 다 막힐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게 이제 중 1인인 천수암제 어르신의 진면목인가?’

 

새삼 군천악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알 수 있었다.

 

그냥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이것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시험이었다.

 

대련 시엔 후배가 먼저 공격하는 것이 당연했다.

 

“히얍!”

 

기합소리와 함께 남궁혁성이 검을 출수했다.

 

큰 초식보다는 자신이 갈고 닦은 검의 기운을 보여주려 했다. 검의 궤도는 짧고 쾌속하게, 극점을 통과하도록 힘을 집약시켰다.

 

한 손을 들고 있었던 당지독의 입에서 작지만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당가 내에서도 저 정도로 단련된 녀석들은 저 또래엔 없었다. 차기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더니 명불허전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검이 당지독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왔다. 당지독은 피하는 것보다 상대의 기세를 받아넘기며 다시 튕겨버렸다.

 

“윽!”

 

반탄력이 검에 느껴지자 남궁혁성이 신음성을 질렀다.

 

‘완벽한 이화접목(移花接木)이다.’

 

극속의 검법에 남궁세가의 특징인 중검의 묘리까지 가미한 공격이었건만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혔다.

 

남궁혁성도 이 정도는 예상한 일이기에 머뭇거리지 않고 다시 검을 출수했다. 순식간에 일곱 번의 검을 휘둘렀다. 초식을 사용할 틈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었다.

 

검의 절초는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지만 반대로 허점을 노출시킬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이제 절정의 반열에 든 남궁혁성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대결의 묘리를 최대한 발휘했다. 아직 당지독은 자신의 공격을 받아주고만 있다. 조금 더 있으면 당지독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검의 날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당지독은 검을 막아내면서 남궁혁성을 평가를 했다.

 

‘제법 날카롭구나.’

 

남궁혁성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정수를 검에 담았지만 번번이 허무하게 막혀버리자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남궁세가의 제왕검법을 출수해야 했다.

 

제왕검법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남궁세가의 비전심법인 천뢰제왕신공(天雷諸王神功)을 운용해야 한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천지 간의 가장 강한 기운인 뇌전(雷電)을 응축시켜 폭발적으로 뿜어내었다.

 

-제왕의 기운이 하늘을 가른다! 제왕파천(帝王破天)!

 

우우우웅! 콰콰콰과광!

 

제왕무적검강(帝王無敵劍剛)이라는 최강의 초식을 펼치기에는 아직 남궁혁성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을 하였다.

 

6성의 제왕검법이 펼쳐지자 당지독의 표정도 조금 더 진지해졌다. 고수라고 해서 신체에 검이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찌르면 피가 나고 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

 

제왕검법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검법이다. 단, 완벽한 경우여야 했다.

 

당지독의 눈에 남궁혁성이 펼친 제왕검법의 허점이 보였다. 제왕검법의 제왕파천이 당지독의 몸을 반으로 잘랐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당지독의 몸은 이미 남궁혁성의 오른쪽 사각으로 사라진 이후였다.

 

사삭!

 

이형환위를 방불케 하는 사천 당가의 보법은 암룡혈보(暗龍血步)였다. 당지독은 암룡혈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고 변형시키는 경지에 이르렀다.

 

남궁혁성의 검이 애꿎은 바닥을 거칠게 강타했다. 다시 검을 회수하는 순간에 당지독의 주먹이 남궁혁성의 배를 강타했다.

 

복부의 대맥(大脈)을 건드리자 혈맥을 타고 흐르는 진기가 갑작스럽게 끊겨버렸다.

 

퍼어엉!

 

남궁혁성은 맞은 부위를 중심으로 살이 한 뭉텅이째 떨어져나가는 충격을 받고는 뒤로 하염없이 나가떨어졌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남궁혁성이 이를 악물었다. 고작 한 방에 쓰러지려고 지금까지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었다. 신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참고 참았던 상황에서 귀신처럼 당지독이 움직였다.

 

당지독은 의외라는 듯 살짝 놀라고 있었다. 이제껏 자신의 권을 맞고 이렇게 일어난 녀석은 얼마 없었다.

 

‘때리는 맛을 느끼게 하는 녀석이구나.’

 

한 방에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사라지게 해주었으니 단단히 어루만져 주어야 할 의무를 느끼는 당지독이었다.

 

남궁혁성의 검이 다시 휘둘러지기도 전에 당지독의 주먹이 옆구리를 시작으로 배, 가슴, 얼굴로 사정없이 휘둘러졌다. 적수공권(赤手空拳)을 전문적으로 익히지 않는 당지독이었건만 그의 손속은 너무 빠르고 정확하게 남궁혁성의 몸을 강타했다. 피하려고 해도 남궁혁성의 천풍신법(天風身法)이 암룡혈보를 따라가지 못했다.

 

퍼퍼퍼퍼퍽!

 

“크으으윽! 크앗!”

 

비명소리가 연무장 안을 가득 메웠다.

 

남궁혁성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당지독의 가혹행위가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였다. 당지독에 대한 강호의 소문이 왜 그렇게 지독한지 뼈저리게 경험하는 남궁혁성이었다.

 

 

 

철퍼덕!

 

비 맞은 개구리처럼 쭈욱 뻗어버린 남궁혁성을 보면서 당지독은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개 패듯이 패고 짓는 표정치고는 꽤 섬뜩했다.

 

“그만 나와라, 장천!”

 

“당 선배, 그래도 내 아들인데 너무 심하시오.”

 

연무장 안 한쪽으로 남궁장천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된 후 쭉 지켜보고 있었다. 당지독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니, 뭐 이걸 가지고 그래? 무인이 다칠 수도 있지. 그리고 보는 것과 다르게 나는 이 녀석의 뼈는 다치게 하지 않았네. 자네도 알지 않나.”

 

“그래서 참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당지독의 구타는 가혹해 보이기는 했지만 남궁혁성의 전신 혈을 자극해서 진기의 유동을 훨씬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남궁장천도 그 사실을 알기에 참은 것이다. 아무리 당지독이 자신보다 배분이 높은 선배라고 해도 아들이 당하는데 참고 있을 만큼 남궁장천이 무르진 않았다.

 

“그럼 너도 나랑 한번 해볼래?”

 

당지독은 구미가 당기는지 한판 붙자는 말을 던졌다.

 

남궁장천은 개 버릇 어디 가지 않는다는 옛말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물론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상대는 천수암제였다.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지고 싶지 않았다. 당분간은 대련보다 세가의 일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됐습니다. 그리고 천악은 며칠 있다 온다고 했으니 기다리십시오.”

 

“아쉽군.”

 

‘며칠 있다가는 당신도 그런 말 하지 못할 것이오.’

 

군천악이 온다면 당지독도 쉽지 않은 결전을 해야 할 것이다. 나이도 칠순을 넘겼으니 뼈마디가 쑤실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내 사위가 알아서 해줄 겁니다.’

 

남궁장천은 남궁태희가 군천악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고 내심 기뻤다. 군천악을 따라 소풍까지 갔다니 두 사람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딸 남궁태희라면 충분히 군천악에게 통할 것이라 굳은 믿음도 있었다. 군천악을 얻을 수 있다면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는 것보다 더 든든하리라.

 

“아들 하난 잘 키웠더군. 실력이 제법이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대남궁세가의 가주가 될 아이니까요.”

 

“자네 딸도 요새 강호 청년들의 애간장을 태운다고 하던데, 어디 있나? 보고 싶구먼.”

 

‘윽!’

 

남궁태희가 천악과 같이 있다는 말을 하게 되면 당지독이 어떻게 날뛸지 모르기에 대충 둘러댔다.

 

“잠시 외출했습니다.”

 

“공교롭군그래.”

 

“곧 들어올 테니 그때 보십시오.”

 

“사흘 후가 기대가 되는군그래. 후후후!”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당지독의 모습에 남궁장천은 소름이 돋았다. 이 오래된 능구렁이는 괴팍하기도 하지만 머리가 상당히 뛰어났고 직감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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