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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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56화
남궁세가 비무대회 (3)
파아아앙!
권격이 부딪치자 폭발음이 생겨났다.
모두는 유정훈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달랐다. 권격을 사용한 유정훈이 오히려 충격을 받고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엄청난… 반탄력이다.’
유정훈은 생애 처음으로 공포감이 들었다. 그는 천악이 가진 상상할 수 없는 기운을 조금이나마 맛보았다. 몸이 후들거릴 정도였다.
천악의 무표정한 시선이 유정훈을 향했다. 비틀거리는 유정훈에게 빠르게 다가간 후 다리를 걸어 찼다.
퍼억!
“헛!”
양 다리를 한꺼번에 걸어 차자 유정훈의 몸이 한 바퀴 회전했다. 회전하는 그 순간에 천악의 손이 유정훈의 발목을 잡아채고는 한 손으로 유정훈의 다리를 잡아 든 후 비무대 밖으로 던져버렸다.
“어어어억!”
쿠당탕!
유정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비무대 밖으로 떨어져 몇 번을 굴러야 했다.
관중들 모두 ‘이게 뭔가.’ 하는 심정이었다. 공전절후한 대결인 줄 알았건만 너무 싱겁게 끝이 나버린 것이다. 그들은 천악의 실력이 높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유정훈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저게 뭐야?”
“팔극신권이라고 하더니 별거 아니잖아?”
비무대 밖으로 떨어진 유정훈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덤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억울하게도 너무 강한 상대와 붙게 된 것이다.
‘맘대로 떠들어라. 놈은 네놈들이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힘겹게 일어난 유정훈은 자리에서 벗어났다. 승자는 환영받지만 패자는 아무런 영광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최선이었다.
비무대를 내려간 천악은 곧장 현위양에게로 다가갔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싶은 살심(殺心)이 동했다.
현위양이 다가오는 천악을 향해 히죽거렸다. 어차피 피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죽여주면 그뿐이었다. 그 누가 자신을 본다고 해도 꺼릴 것이 없었다. 강한 자는 무엇을 해도 정당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현위양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말이 바로 ‘강자지존(强者至尊)’이었다.
“날 상대하기 위해 왔다면 직접 찾아올 것이지 왜 이곳으로 불렀지?”
“좋지 않나? 멍석을 깔아놓고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 그랬지.”
천악의 입가가 뒤틀렸다. 오랜만에 감정을 건드리는 놈을 만났다. 자신의 눈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놈도 처음이었다.
“그 멍석 위에 네놈의 피가 흥건히 고일 거다.”
천악의 주변은 숨이 막힐 듯한 분위기였다. 그와 맞선 현위양의 몸에서도 숨 막힐 듯한 살기가 뻗어 나왔다. 차가운 냉기와 살기가 서로 부딪치자 상상할 수 없는 기운이 형성되었다.
부르르르!
그 주변의 사람들이 슬금슬금 뒤로 멀어졌다. 질식할 것 같은 기운으로 인해 숨이 막혀왔기 때문이다. 개중에 고수들이라고 불리는 자들도 그 불길한 기운에 오싹함을 맛보아야 했다.
천악의 말에 현위양도 차갑게 응수했다.
“누구의 핏물이 흐를지 궁금하군. 하지만 내 피는 아니겠지.”
“네놈의 핏물이 강을 이룰 거다.”
“핏빛 무대라… 흥분이 되는군.”
“네놈이 부른 비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다 허물어 주겠다.”
천악이 현위양 앞에서 돌아섰다.
원래는 지금 당장 놈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그 생각을 미루었다. 놈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을 철저하게 부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천악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자 그 다음 순서로 현위양이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원래의 자리에는 금은혜, 제갈지, 추상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위양 다음 순서가 남궁태희였기에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추상락이 궁금해하며 물어보았다.
“도대체 누군데 그런 살기를 뿜어낸 겁니까?”
“나한테 서신을 보낸 놈이다.”
추상락과 금은혜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서신을 보낸 자가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청년이 어떻게 천악에게 도전을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예? 별로 강해 보이지 않던데……?”
“네가 맞아죽을 정도는 된다.”
현위양의 숨겨진 힘으로 보건대 추상락이 덤벼봤자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천악의 말에 추상락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아무리 자신을 무시한다고 해도 저런 약관의 애송이와 비교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물론 천악을 제외하면 말이다.
현위양의 상대로 나온 인물은 근래 들어 소문이 자자한 섬전창 용위였다. 쾌속의 창법이 상대의 혼조차 갈라버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빠르다고 알려져 있었다. 용위의 성명절기인 창법은 섬전탈혼창(閃電脫魂槍)이라고 불린다.
현위양은 검을 뽑지도 않은 상태였다. 대결이 시작되고 용위의 창이 아홉 번이나 현위양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그 빠름에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현위양은 그 순간에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슈욱!
섬광이 번쩍였다. 아니, 빛이라고 보기에도 무리일 정도로 빠른 빛이 번쩍이더니 창을 움직이던 용위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벌떡!
대회를 관전하는 관람석 최상단에 자리하고 있었던 검왕 남궁장천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나조차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다.’
검왕이 일어나서 놀랄 정도로 현위양의 검은 무섭도록 빨랐다. 현위양이 휘두른 검의 궤적을 본 자는 거의 없었다. 모두는 왜 용위가 멈추었는지 몰랐다.
멈추어진 용위의 전신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핏물이 번지고 넘쳐서 그 자리를 붉게 물들였다.
화들짝 놀란 관중들은 용위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위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피를 흘린다면 죽을지도 몰랐다.
남궁세가의 의약당 의원들이 빠르게 용위의 상태를 살폈다. 어느덧 전신에 검기의 흔적이 수백 개나 생겨나 있었다. 정확하게 피부만을 베어내고 몸 안의 내공이 흐르는 기운을 끊은 것이다.
현위양도 비무대를 내려가면서 천악을 바라보았다.
‘내일이 기대되는군.’
바로 내일, 현위양과 천악이 대결하게 될 것이다.
추상락도 방금 전 현위양의 검속을 보았다.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빠른 검속에 기겁을 할 정도였다. 너무 빠른 검법이었다. 만약 자신이었다고 해도 받아내기 힘들 정도였다. 요즘 들어 너무 많이 놀라는 추상락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수련한 무공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천악은 추상락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관심 없었다. 놈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났다. 저것이 본래 실력이 아니라면 내일은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줄지도 몰랐다.
‘내일까지다.’
* * *
비무대회 본선이 끝이 났지만 남궁세가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현위양에 대한 일 때문이었다.
그의 검속은 검왕조차 놀라게 하는 데 충분했다. 다른 여타 장로들도 감히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법이었다.
“삼양문의 현위양이라고 합니다.”
“삼양문이 도대체 어디야?”
안휘성 내의 수많은 문파를 모두 알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정보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삼양문에 대해서 조사를 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알아낸 것이 별로 없었다.
-광덕지방 헌양 마을의 소문파임.
-스무 명도 안 되는 문파로 문주는 여송이라고 하여 이류를 갓 벗어난 정도의 실력임.
-특이할 만한 사항이 전혀 없음.
남궁장천으로서는 의심이 되지만 확인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광덕까지 가는 데도 며칠이 걸릴지 몰랐다. 그 전에 대회는 끝이 나고 말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군. 내일 군천악과 붙게 되니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그런 엄청난 강자라면 세가에 끌어들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을 수도 있지만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 빨리 확인해 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태상가주님!”
예상대로 남궁혁성과 남궁태희는 예선을 모두 통과를 했다. 무당파의 청풍과 군천악, 현위양을 제외하고 그다지 어려운 상대는 없어 보였다. 두 사람 정도면 아무 문제없이 해결할 실력이 있었다.
문제는 군천악인데, 그는 예외적인 인물 아닌가. 인간이 괴물의 일에 참견해서는 좋은 꼴 보기 힘들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는 게 맘 편했다.
또한 내일부터는 하루에 두 번씩 대결을 해야 했다. 자칫 재수가 없으면 부상을 당할 수 있기에 각별히 유의해야 했다.
* * *
풍운장원에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물어 가는 해의 기운이 점점 노쇠해지고 있는 것처럼 무걸개 추상락의 건장한 어깨도 축 쳐져 있었다. 오늘 받은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당지독은 추상락의 처진 모습이 의아했다. 거지같은 놈이지만 제법 강골인 추상락이 저렇게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너 뭐냐? 천악에게 쳐 맞았냐?”
천악에게 맞았다면 이해되기는 했다.
“아닙니다.”
“그럼 왜 그러냐?”
“오늘 엄청난 놈이 나타났습니다.”
“엄청난 놈? 너보다 세냐?”
“저보다 스무 살은 어려 보이는 놈이 저보다 고수인 것 같습니다.”
“천악을 말하는 거냐?”
“아니라니까요! 다른 놈이 저보다 고수라고요! 됐어요?”
추상락은 계속 짜증나게 물어보는 당지독의 말에 끝내 화를 내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지만 당지독은 가만있지 않았다.
“어디다 대고 소릴 지르는 거냐! 내가 네 친구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세상 불공평한 것을 느끼게 되니 그렇습니다.”
“이놈아, 네 또래 놈들 중에 화경의 고수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그걸 생각하면 네놈도 불공평한 놈들 중 하나야! 어디서 앙탈이야.”
당지독의 말에 추상락은 금세 반성을 했다.
얼마 전에 화경에 들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중년의 나이보다 조금 더 젊어져 30대 정도로 보일 정도였다. 나이 40에 화경의 고수가 된 자신도 다른 무인들에 비하면 엄청난 강자였다. 괴물과 같이 있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지독의 말에 깨달을 수 있었다.
“너 아직도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냐?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한 것이야. 언제 공평하게 돌아간 것이 있느냐? 네가 만약 개왕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이만큼이나 될 수 있었겠느냐?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야. 그러니 누구의 위치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거야.”
“말씀 고맙습니다.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그래도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먹지 않았나 보구나, 그새 깨달았다니 말이야.”
“그래도 불공평한 것에 투덜거리기는 할 겁니다. 그것도 못 하면 배 아파서 살 수 없습니다.”
“맘 편하게 살아야 오랜 산다. 그리고 거지가 그 정도로 강해졌으면 됐지, 또 얼마나 강해지려고 하냐? 비럭질하는 데 주먹으로 하면 나중에 지옥 간다.”
당지독과 추상락은 어느새 장원 안에서 어울리는 짝꿍이 되어 있었다.
당지독은 추상락이 놀랐다는 청년에 대해 궁금증이 발동했다. 화경의 고수가 자괴감이 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약관의 청년이 천악 이외에 또 있을 줄은 그도 몰랐다. 최소한 화경의 극을 이루었다는 소리인데, 상식적으로 그런 고수가 계속 나타나는 것이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그래, 그놈 이름이 뭐냐?”
“삼양문이라는 곳의 소문주인 현위양이라고 했습니다.”
“삼양문이라……. 그런 작은 문파에 네가 놀랄 정도의 고수가 있단 말이지?”
“저도 놀랐습니다.”
“내일 구경 가고 싶은데…….”
당지독은 궁금한 것을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장원을 지키겠다고 약속해 놓고 그냥 가면 천악 이놈이 장원에서 나가라고 할지도 몰랐다.
‘천악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이란 말이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괴물과 괴물이 내일 대결한다고 합니다.”
“뭐야? 그 중요한 것을 왜 지금 말하는 거야!”
천악과 맞붙는 놈의 실력이 어떤지 몰라도 분명 흥미진진할 것이다. 그래도 천악은 괴물 중의 괴물인 왕괴물인데, 보통 괴물이 상대가 될지 의심이 들기는 했다. 괴물도 급수가 엄연히 존재하니 말이다.
‘그래도 보고 싶다.’
추상락의 다음 말에 정신이 확 드는 당지독이었다.
“죽여버리겠다는데요.”
“그…놈이라면 그렇겠지.”
“그게 현위양 그놈도 주인님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미친놈들이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이거 내가 없으면 말릴 사람도 없겠네.”
“하하하!”
“너 왜 웃고 지랄이야?”
추상락이 웃자 당지독의 표정이 머쓱해졌다. 당지독도 말해 놓고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전에 천악을 한 번 말려보려다가 죽도록 맞은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다시 그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는 것은 뼈마디가 삭는 나이에 할 짓이 아니었다.
“너 설마 나보고 그놈들 말리라는 소리냐?”
“그럼 누가 말립니까? 설마 저보고 죽으라는 소리는 아니겠죠?”
“그럼 새파랗게 젊은 놈이 나서야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나보고 그런 미친 짓을 하라는 거냐?”
“저보다 오래 사실 것 같은데요?”
“시끄럿! 날이 저물었으니 잠이나 자야겠다.”
“내일 큰일 날지도 모르는데 태평하게 잠이 옵니까?”
“비가 오려나?”
“노을 지는 것 보니 내일 날씨 엄청 좋을 것 같은데요.”
“아, 아아아아아…안 들려!”
당지독은 언제 말을 들었냐는 듯한 표정을 하며 별채로 발을 옮겼다. 추상락도 그 뒤를 따랐다.
당지독이 보기에 천악은 생각 없이 사람을 마구 죽이는 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면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긴 놈이 먼저 건드리긴 했지.’
이걸 어쩌나 했지만 설마하는 심정으로 모른 척해 버리는 당지독이었다. 생각한다고 막을 수 있는 천악이 아니었다. 천악이 하는 대로 놔두는 게 역효과 안 나고 무난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