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47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47화
무영, 도발하다 (1)
헉! 헉! 헉!
신일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심하게 지쳐 있었다. 그 뒤로 전칠과 충호가 있는 힘을 다해 신일을 따랐다.
신일이 달릴 때 그 앞으로 무걸개 추상락이 아이들의 한계를 시험하며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체력을 생각하며 달려야 하건만 추상락은 한시라도 빨리 장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빨리 달려라!”
신일과 전칠, 충호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며칠 전부터 추상락은 달리는 것을 제시간보다 빨리 하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정말 사력을 다했다. 탈락을 면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신일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멈추면 내 동생이 굶는다.’
‘가족을 위해서다.’
‘다시 그 비참한 생활은 싫다.’
추상락은 아이들의 그러한 마음을 알면서도 속도를 멈출 수 없었다. 장원으로 돌아가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무공 연마를 할 기회가 있었다.
“장원이 보인다. 조금 더 빨리 달려라!”
“허억! 허억!”
얼마 전부터 신일과 전칠, 충호는 추상락이 악마처럼 보였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온몸에 흐르는 땀과 입 안에서 메마르는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심하게 울렸다.
장원에 도착하자 추상락의 얼굴이 심할 정도로 환해졌다. 그는 즉시 아이들에게 피로를 푸는 훈련을 시키고 나서 바로 연공실로 들어갔다. 물론 아이들은 휴식을 해야 했다. 호흡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상태로 운기조식을 하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이다.
심법은 호흡으로 내공을 쌓는 기공술이다. 규칙적으로 호흡을 하고 정신을 통일시켜야만 주화입마를 당하지 않는다.
추상락은 아이들보다 먼저 연공실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혼천강룡신공을 운공하자 몸 안으로 막대한 내기가 규칙적으로 요동을 치며 몸 안에서 돌고 돌았다.
“하아!”
감탄이 절로 나오고 있었다. 천악이 마련해 준 연공실 안에서 운기를 하면 평소보다 다섯 배에 달하는 운공이 가능했다.
추상락은 처음엔 아이들의 좌공을 돕기 위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호흡법을 시행할수록 기의 순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고 순수함을 깨달았다. 신기해 하며 지켜보던 추상락이 자신도 한번 운기를 해보았다. 그러자 웬걸, 훨씬 효율적으로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무인에게 깨달음과 더불어 내공의 증가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내공을 위해서는 가족도 몰라본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추상락은 아이들의 훈련을 되도록 빨리 끝내고 연공실에 와서 운기조식을 하였다.
추상락이 시간에 쫓기면서 연공을 하는 이유는 천악 때문이었다. 연공실을 오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오전에 아이들은 정신교육과 더불어 한자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글을 배우게 한 이유는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안계를 넓히기 위해서였다. 글을 모르면 세상을 보는 폭이 좁아져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추상락은 운기를 하면서도 무공이 상승된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만면에 화사한 꽃이 핀 것 같았다.
‘좋아! 조금만 더 하면 화경도 문제없다.’
화경 완전정복을 위해서 추상락은 매일같이 매진할 각오를 했다.
그때였다. 추상락조차 느끼지 못하게 접근한 천악이 가부좌를 튼 그의 뒤로 나타났다.
천악은 추상락을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뭐 하는 놈이야? 애들 수련시키라고 했더니 지가 하고 있어!”
운기 삼매경에 빠진 추상락은 천악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천악은 아이들이 밖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보고 추상락이 어디 있는지 찾았다. 그런데 그때 연공실에서 강력한 기의 순환이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와봤더니 역시나였다. 아이들 수련보다 자기 수련에 더 열을 올리고 있으니 천악이 어이없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천악은 화사한 웃음을 짓고 있는 추상락의 등을 뒤에서 발로 툭 찼다.
운기 중에 누가 건드리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내공을 익힌 자는 다 알고 있는 기초상식이었다. 그 상식을 무시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커어억!”
추상락은 충격을 받고 혼천강룡신공이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강룡십팔장이라는 절대 장법을 출수하기 위해서 반드시 강맹한 내공이 필요했다. 강맹한 내공을 형성하는 혼천강룡신공이 역류되었을 때 느끼는 충격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났다.
추상락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이대로 버티지 못하면 심맥이 터져 죽는다! 안 돼! 난 죽을 수 없다!’
추상락은 죽을 각오로 운기해야 했다. 기가 흐르는 온몸의 기경팔맥과 십이경락, 세맥으로 이어져서 다시 돌고 돌아 단전이 자리한 곳까지 맹렬하게 폭주했다.
우우우웅!
천악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삶인가, 죽음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결국 죽고 사는 것은 네 팔자다.”
천악은 그저 편하게 생각했다. 만약에라도 죽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상락은 혼천강룡신공의 구결을 처음부터 다시 외워보았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구결들이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혼천강룡신공의 구결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드는 신공이었다. 그 깨달음은 계속 외운다고 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죽음에 이르는 충격을 받아야만 비로소 익힐 수 있는 신공이었다.
천악이 괘씸해서 한 행동이 추상락에게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이 추상락에겐 기연으로 다가왔다. 물론 살았을 때의 일이다.
무공의 경지 중에 부공삼매지경에 접어들며 추상락은 점점 무아지경으로 빠져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가부좌한 추상락의 머리 위로 청아한 세 송이 꽃이 똬리를 틀며 생성됐다. 바로 삼화취정의 경지에 접어든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오기조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환골탈태를 하게 되었다.
우드드드드드드드득! 두드드드드득! 우드드드드드득!
뼈마디가 얼마나 튼튼한지 소리도 엄청났다. 또한 남궁태희와 다르게 시간도 엄청나게 오래 걸렸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탁기가 몸 밖으로 빠져나갔고, 더불어 거지로서 몸에 가지고 있던 심각한 때들이 벗겨졌다. 빠져나간 탁기라는 노폐물들이 바닥으로 흘러내리자 심한 악취가 풍겼다.
천악은 아이들이 연공실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이 역겨운 장면을 보다가 혹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번쩍!
추상락은 눈을 뜨자마자 기뻐서 방방 뛰었다.
덩실덩실!
“해냈다! 드디어 절대경지에 접어들었다! 하하하하!”
천악이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추상락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지가 이제 절대경지, 즉 십대고수와 맞먹는다는 생각을 하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공광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좋냐?”
“……?”
오싹!
추상락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악귀 같은 목소리를 듣자 기쁨에 몸서리쳤던 순간이 순식간에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주…인님!”
“애들 수련시키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내팽개치고 네놈 혼자 수련을 하고 있어? 그래서 강해지니 좋냐?”
“그, 그게… 오해입니다. 저는 아이들 훈련에 게으름 피우지 않았습니다.”
추상락은 손사래를 치며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할 일은 다 하고 운기를 했을 뿐이었다.
“호오, 그래? 아이들이 한계보다 더 심하게 달린 것 같은데? 근육이 너무 혹사되어서 당분간은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될 정도로 보였는데 말이야.”
한계를 넘는 훈련을 반복하지만 그 한계를 한참이나 넘는 수련을 하면 그것은 수련이 아니라 가혹행위였다.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달리기는 오히려 근육이 파열되거나 심각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그건……!”
추상락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요즘 너무 무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보다 자신의 내공 증진에 더 신경을 쓴 탓이다.
천악은 더는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추상락에게 말은 설득력이 부족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에게 가장 잘 통하는 도구는 바로 주먹이었다.
천악이 주먹을 들어올리자 추상락이 뒤로 주춤거렸다. 그러면서도 이제 조금 강해졌으니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래, 나도 강해졌다. 언제까지 하인으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추상락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추상락이 조금 강해져서 맷집이 더 세졌으니 고통을 받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번쩍! 퍼어어억!
섬광이 번쩍이자 추상락의 왼쪽 눈이 밤탱이가 되었다. 한쪽 눈이 감긴 상태에서 천악의 매정한 주먹이 나머지 오른쪽 눈에도 작렬했다.
두 번의 빛이 번쩍이고 나자 배에서 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퍼퍽!
“네놈은 북어도 아니면서 매일 맞을 짓을 잘도 하는구나.”
천악은 생각하고 있었다. 북어처럼 사흘마다 매타작을 해줘야 정신을 차리려나 하고 말이다. 곱게 대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애초에 기어오를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악!’
추상락은 몹시 후회했다. 오늘이 그에게 기연이 찾아온 인생 최고의 날이지만 죽도록 맞는 날이기도 했다.
1각 만에 완전히 곤죽이 되어버린 추상락이었다. 천악은 손을 털고 나서 연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바로 뒤에서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천악이 아이들에게 말을 했다.
“너희들은 며칠 정도 쉬어라.”
“더 할 수 있습니다.”
쉬라는 말이 그만하라고 하는 말처럼 들린 아이들이 놀라 말을 했다.
천악은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너무 무리했다. 근육이 쉴 필요가 있다. 당분간은 운기만을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장주님.”
“연공실에 들어가면 더렵혀져 있을 테니 청소를 해놓도록 해라.”
연공실 안은 추상락의 핏물과 더불어 노폐물로 인해 심한 악취가 났다. 빨리 청소를 안 하면 들어가서 숨쉬기도 힘들 정도였다.
천악은 멀찍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삼영살을 보았다.
삼영살은 지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살수 생애 지금처럼 의뢰를 받고 후회한 적이 없었다. 일살, 이살, 삼살 모두 당지독의 독에 당한 상태에서 극심한 통증으로 밤낮을 설쳤으며, 그 뒤로 두 마리 괴수의 무지막지한 구타가 이어졌다. 한 번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맞다가 다시 일어서면 또 구타를 하니 정말 이건 아니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어이없이 죽고 싶지 않은 삼영살들이었다.
천악이 다가가자 삼영살이 움찔거렸다.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것은 한 번뿐이지만 은근히 가장 무서운 존재가 바로 천악이었다.
“너희들은 뭐냐?”
삼영살이란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장원에서 놀고먹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이놈들을 며칠째 보이지 않다가 지금 보인 것이다. 그 말은 장원에서 편안하게 놀았다는 소리였다.
“저희는 삼영살입니다.”
“내가 언제 너희들 이름을 물었나? 왜 여기서 멍하니 있냐는 말이다. 지금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안 보이는 거냐?”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영살은 억울했다. 물론 하는 일 없었지만 그동안 일하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정작 천악이 그것을 몰라주고 화를 내는 것 같아 억울했던 것이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장원 주변 정보를 수집하고, 장원 내로 침입하는 놈들을 막는 임무를 주겠다. 할 수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천악이 가려다가 잠시 멈췄다.
“잊을 뻔했군. 너희들의 뭘 믿고 내가 그런 일을 맡기는지 말이야. 이걸 주마.”
천악이 동그란 경단 같은 약을 삼영살에게 주었다.
“이게 뭡니까?”
“말은 필요 없다. 먹어라.”
무언지 알 수도 없는 약을 먹으라고 하면 넙죽 받아먹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삼영살은 거절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자 천악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머, 먹…습니다!”
꿀꺽!
삼영살은 찜찜하지만 단약으로 삼켰다. 삼켰지만 당장 아무런 이상이 없자 삼영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천악의 말이 이어졌고 그 말을 듣는 삼영살의 표정은 똥 씹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폭충이다. 배신하면 머리가 터져 죽는다.”
천악은 그 말을 하고는 장원 내 대장간으로 향했다.
남겨진 삼영살의 주변에 바람이 불지도 않았지만 찬 기운이 자리 잡는 듯한 착각을 느껴야 했다.
‘역시 악마였어.’
‘제기랄! 이러다 제 명에 정말 못 죽겠다.’
“일살, 의뢰를 맡지 말았어야 했어!”
“이제 와서 그런 말 해봤자 뭐 해!”
그들끼리 화를 내봤자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삼영살의 헛소리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