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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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2화
금천상가의 습격 (3)
대정은 아이의 손목을 잡고 조심스레 맥을 느껴보았다.
‘혈맥에 흐르는 아이의 기운이 차갑고 약하다! 이건 설마……!’
더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기를 아이에게 주입해야 할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아이에게 기를 주입하면 조금 충격을 받을 수도 있기에 대정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이름이 뭐니?”
“신소미예요?”
“이름이 예쁘구나. 그런데 맥을 정확히 살피려면 조금 아플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니?”
“아…프다고요?”
소미는 아프다는 말에 망설였다.
소미는 이제까지 의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 있는 오빠에게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어리지만 오빠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소미는 느닷없이 나타난 대정선자의 행동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온화하게 미소 짓은 여승의 표정을 보고 결심을 했다.
“좋아요.”
“그렇게 아프지 않으니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된다.”
대정선자는 소미의 맥을 잡고 대정신공의 기운을 조금씩 보내보았다. 대정신공의 중후하고 맑은 기운이 아이의 기경팔맥과 십이경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의 운행이 좋지 않다. 하나, 둘, 셋… 일곱, 모두 일곱 개의 혈이 막혀 있구나.’
대정의 생각대로 아이는 절맥증(絶脈症)을 앓고 있었다. 기의 운행이 좋지 않아서 혈색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었던 것이다.
절맥증의 치료는 쉽지 않았다. 혈이 막힘에 따라 혈맥의 이동통로도 약해지기 때문에 공력으로 뚫는 것이 불가능했다. 강한 독과 열양지력을 가진 영물을 먹어야 하는데 몸이 그걸 버틸 수 있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더군다나 절맥증도 급수가 있었다. 삼음절맥(三陰絶脈)이나 오음절맥(五陰絶脈)까지는 열 살 이전에 치료를 하게 될 경우 완치는 안 되어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치료가 되었다. 하지만 칠음절맥(七陰絶脈)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임독과 양맥을 동시에 뚫어야 하고 혈맥까지 보호해야 했다. 생사현관을 타통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바로 칠음절맥과 구음절맥(九陰絶脈)의 치료였다.
대정은 소미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니?”
“아홉 살이요.”
대정은 안타까웠다. 이 아이의 수명은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 아무런 치료 없이 지낸다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차가운 시체가 될 것이다.
대정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 아이에게는 열양지력을 가진 영물을 먹이거나 양강지력의 내공으로 몸을 보호해 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대정은 여인이었다. 양강지력의 내공을 가지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소미야!”
대정의 뒤로 소년이 나타나 소미를 불렀다.
소미를 부른 아이는 바로 풍운장원에서 수련하고 있는 신일이었다. 신소미는 신일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가족이었다.
신일은 오늘 수련을 모두 마치자마자 소미를 데리러 왔다.
신일, 충호, 전칠 가운데 신일은 유일하게 풍운장원 내에서 동생 소미와 함께 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신일은 어린 동생을 혼자 내버려둘 수 없었다. 다른 가족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일은 망설이다 천악에게 부탁을 했고, 천악은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 수련에 있어서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면 어떠한 부탁도 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그런데 누구신지……?”
“소미의 오라비인가 보구나. 나는 아미파의 대정이란다.”
신일도 아미파에 대해선 들어보았다. 구파일방의 하나이자 여승들로만 이루어진 검수들의 문파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미안하구나. 이 아이가 아파 보여서 잠시 살펴본 것뿐이다.”
“아프다고요?”
신일은 몰랐다는 듯 놀란 표정이었다.
사실 어린 신일이 알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천악에게 고용되기 전까지 신일과 신소미는 모두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다. 신일은 소미가 창백한 것은 모두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원래 그런 줄로만 알았다. 동생이 아프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일은 소미를 다시 보았다. 확실히 동생의 피부가 더 창백해 보였다. 수련한다는 핑계로 너무 오랜 시간 동생을 제대로 봐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신일이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디가 아픈 거지요?”
“지금 말하긴 그렇고, 집에 가서 얘기하자꾸나.”
소미가 듣는 데서 말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병이 병을 더 부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병자에겐 희망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희망이 짓밟히면 그 순간부터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된다. 생명은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다.
* * *
대정선자는 소미에게는 그냥 가벼운 감기라고만 말을 한 후 신일을 따라 풍운장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동안 대정선자는 신일의 몸을 살펴보았다. 어린 나이지만 기반이 잡혀 있었고, 겉으로 보이는 내공도 10년 정도는 되어 보였다. 훌륭한 가르침을 받은 아이 같았다.
신일을 따라 풍운장원으로 들어가며 대정선자는 계속 놀라고 있었다. 거대한 장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안은 더 신비로웠다.
‘굉장하구나!’
아미파의 상징인 복호사조차 이 장원의 건축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복호사는 명장들이 고련을 거듭해서 만들어졌기에 운치와 더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사는 것이냐?”
“예, 이곳에 고용되어 있어요.”
“그렇구나. 이 장원의 주인은 어떤 분이시냐?”
“아주 좋은 분이세요. 저를 비롯해서 불쌍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시거든요.”
“음… 확실히 좋은 분이겠구나.”
풍운장주가 고아나 마찬가지인 아이에게 집까지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대정선자는 천악을 좋게 생각했다. 실제로 보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우선 소미는 방으로 들여보내고 따로 신일과 대화를 나누는 대정선자였다.
“소미의 병에 대해서 짐작해 보았니?”
“아니요. 그냥 감기 아닌가요?”
“아니다. 소미는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을 가지고 있더구나.”
“병이요? 그렇게 치료가 힘든가요?”
“솔직히 나도 어쩔 수 없는 병이다. 이 병은 혈맥이 막혀 나중에는 피가 응고되어 죽는 병이다.”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신일은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한참이 걸렸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소미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태연할 순 없었다.
대정선자는 칠음절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치료방법까지도 말해 주었다.
신일은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절망했다.
“만년삼왕과 최소 3갑자 이상의 양강지력을 가진 고수가 격체전공을 시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하지. 양강지력을 받는 즉시 약해진 혈맥이 터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물치료와 금침대법이 또한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대정선자는 지금 품안에 있는 것을 내놓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녀의 품 안에 있는 것은 바로 천년삼왕이었다. 비록 만년삼왕에 비해 떨어지기는 하지만 대단한 양강지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제자를 위한 것이었다. 제자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원래라면 벌써 죽었겠지만 대정선자가 구한 영약과 내공으로 생명을 19년이나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길어야 1년 정도 남았다.
“허어, 하늘은 왜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인가!”
오늘따라 하늘을 올려다본 대정선자는 한탄스러운 말을 토해 내고 있었다.
고작 아홉 살의 어린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삶을 연장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지만 선택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딸같이 키워온 제자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면 치료가 되는 겁니까?”
휘익!
대정선자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등 뒤에 무표정한 청년이 서 있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정신공을 9성 이상 완성한 이후 그녀에게 기척을 숨길 수 있는 자는 강호에 백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미파 내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대정선자였다. 그런 대정선자가 반 장 안에 접근하는 청년의 기척조차 감지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 어떤 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신일도 놀라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볼 수도 없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계속 몰랐을 것이다.
“장주님!”
“너는 가서 당 어르신과 추 조교를 불러와라.”
“예, 알겠습니다.”
신일이 빠르게 달려 나가고 나자 대정선자가 천악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얼굴에는 걱정이나 당황한 듯한 표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풍운장원의 장주 군천악이라고 합니다.”
무표정하면서도 정중한 말투.
어색하게 보일지 몰라도 대정은 천악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나타난 천악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미파의 대정이라고 합니다, 군 시주!”
그 뒤로 두 사람 간의 대화는 없었다.
천악은 대정에게 관심이 없었다. 단지 신일의 동생이 아프다는 소리에 끼어들었을 뿐.
천악은 장원 내에 생소한 기운이 들어온 것을 느끼고 와본 것이다. 생소하지만 맑으면서도 강한 기운이었다. 그렇다고 경계할 정도로 대단한 기운은 아니었다.
대정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전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외부로 느껴지는 기운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자란 말인가?’
대정의 의문은 계속 되었다.
‘태양혈도 없고 외공을 익힌 흔적도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천악이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억측이라면 그가 상상도 못 할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박귀진이라고 불리는 현경의 경지에 이르면 태양혈이 밋밋해지고 내공을 익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아직 어려 보이는 천악이 그러한 경지에 들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인지 모르겠구나.’
대정선자는 신소미가 자신의 제자와 같은 절맥증에 걸린 것을 보고 너무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순간 평정심을 잃고 주변의 감각에 무뎌진 것이라고 판단해 버렸다.
잠시 기다리자 당지독과 추상락이 왔다.
당지독이 천악에게 투덜거렸다.
“야, 인마! 내가 네 꼬봉이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왜 불렀냐?”
천악은 신일의 동생이 절맥증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대정선자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당지독의 평가가 더 정확할 것이다.
독술을 익힌 자는 의술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다. 약을 다루는 방법에 따라 독이 되고 약이 되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 말이다.
당지독은 천악의 말에 수긍하며 신소미의 방으로 들어가서 진맥을 해보았다.
까닥!
천악이 추상락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오라고 했다. 천악의 표정이 미세하지만 약간 냉정해 보였다.
추상락은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왠지 모르지만 팔목에 소름이 돋으면서 전신에 오한이 들었다.
“이리 와라.”
“왜… 그러십니까?”
“좋은 말 할 때 와라.”
“시, 싫습니다.”
추상락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슬슬 몸을 빼고 있었다. 어쩐지 일이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았다.
추상락이 몸을 빼면서 개방의 신법인 비천무영신법(飛天無影身法)을 전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법을 펼치기도 전에 천악의 몸이 쇄도하고 있었다.
추상락이 비천무영신법 대신에 취팔선보로 바꾸어 몸을 빼려고 했다. 보법을 펼쳐 공간을 만들고, 벌어진 틈에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빠져나가려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슈슉!
“큭!”
취팔선보의 바람 같은 움직임도 천악의 귀신같은 움직임에 속수무책이었다. 순식간에 멱살을 잡힌 추상락이 바동거리며 혼천강룡신공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을 출수했다. 제법 반항을 하는 추상락이었다.
푸아아앙!
강룡십팔장을 정면으로 막은 천악이었지만 아무 충격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천악의 주변에 막아서고 있는 투명한 강기막이 강룡십팔장을 막아낸 것이다.
강룡십팔장은 강기의 무공이었다. 호신강기로 이루어진 강기막을 전문적으로 부수고 상대의 내공을 파훼시켜버리는 무서운 장법이었다. 그런 장법을 정면으로 막고서도 천악은 멀쩡했다.
씨익!
오싹!
추상락은 ‘역시나!’ 하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가 화경의 경지에 이르러도 괴물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저 한 번 객기를 부려봤는데, 역시나 소용없었다.
천악의 미소 짓는 모습에 소름이 돋은 추상락이었다.
천악은 추상락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아 버렸다.
쿠우웅!
지면과 부딪친 추상락이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렸다.
그사이에 천악의 주먹이 추상락의 전신을 약간 쓰다듬어(?)주었다. 천악이 보기에 쓰다듬어준 것이지만 추상락의 입장에서는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추상락은 억울했다. 도대체 왜 자신이 이런 식으로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기력을 짜내 물었다.
“왜… 이러는 겁니까?”
“아직도 모르나?”
“모르니까 묻는 거 아닙니까? 말이라도 해주십시오!”
“신일의 동생이 아프다는데?”
“그게 왜 제가 맞아야 하는 이유입니까?”
추상락은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이유야 바른 말이지 신일의 동생이 아픈 게 자신의 잘못인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억울한 일은 끝까지 하소연을 해야 했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추상락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듣고 있는 천악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추상락은 자신이 맞아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듯 천악을 말로써 몰아세웠다. 힘으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 맞아서 힘도 별로 없었다. 화경이라고 해도 주먹 한 방에 혼천강룡신공이 흔들리고 기력이 다 빠져버렸다. 정말 할말이 없게 만드는 천악의 강인함이었다.
“너의 임무가 뭐지?”
“그, 그거야… 아이들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는 자가 그 아이에게 중요한 사람의 건강상태도 모르고 있었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분명히 말했지? 아이들의 교육에 최선을 다하라고!”
천악은 아이들과 함께 보낸 오전 시간에 바로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언인지를 확인한 것이다. 그 자리에 추상락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었다. 그런 가족의 건강이 나쁘면 과연 그 아이가 훈련에 절대적으로 매진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부모님이나 형, 동생 등이 아픈데 손에 일이 잡히겠는가!
“헙!”
추상락은 천악의 논리적이고 합당한 이유에 입을 다물었다. 듣고 보니 정말 할말이 없었다. 그리고 추상락은 언제부터 천악이 이토록 논리적으로 반박을 했는지 이해 불가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였던 것 같았다.
“그, 그게…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