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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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76화
천악의 신위 (1)
대기의 기운이 바뀌었다. 산들거리며 불던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며 앞으로 닥쳐올 일을 예견하게 만들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린 것 같으면서도 숨 막히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월영과 전영은 이곳저곳 옷이 찢기고 피부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산발한 머리카락 아래 비늘로 뒤덮여 있는 얼굴 역시 막 거지 소굴을 벗어난 것 같았다. 일견하기에 ‘거지같은 놈들’이라고 불릴 만하지만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기운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그 둘을 거지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월영과 전영은 천마로 인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생을 했다. 철저하게 천마에게 농락 당했음에도 여기까지 쫓아온 월영과 전영의 끈기는 인정해 줄 만했다.
두 사람은 천마가 마지막 사용한 벽력중첩단으로 인해 압사당할 뻔한 상황에서 지독한 광기와 용신갑의 도움으로 벗어났다.
그렇게 여기에 도착한 월영과 전영은 악기(惡氣)와 살기, 광기가 뒤범벅이 된 상태였다. 누구라도 자신들의 앞을 막는다면 살려둘 수 없었다. 뼛조각마저 가루로 만들어서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두 사람은 눈에 뵈는 게 없는 광기의 포화상태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월영과 전영의 광폭한 살기가 대기를 장악했다. 절정의 무인이라고 해도 월영과 전영이 뿜어낸 살기의 공간에 있다면 내상을 입거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흉험했다.
부들부들!
삼영살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지독한 살기는 처음이었다. 삼영살도 살수 수업을 받기 위해 살기를 고양시킨 적이 있었다.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살기를 가지고 있어야만 살수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 삼영살조차 떨림이 가시지 않았다.
사람이 뿜어낸 살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천악이 삼영살의 앞에서 막고 있지 않았다면 삼영살뿐만 아니라 마차 안의 여인들까지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뭔가? 그리고 천마라니……!’
저들이 왜 이곳에서 천마를 찾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고수가 할 짓이 없어서 거짓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교의 교주이자 중원 제일의 강자가 바로 천마였다.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천악의 무표정한 눈이 월영과 전영을 바라보았다. 감정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았다. 좀 전에 보였던 미소는 그들이 나타난 것에 대한 만족감의 표시였을 뿐이다.
이놈들은 보는 족족 다 죽여버려야 하는 놈들이다.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악이 가진 것에 대해 해악을 끼치는 순간, 천악에게 이들은 절대적으로 사라져야 할 해충이었다.
‘해충에게는 살충제가 제격이지.’
당연히 해충은 놈들이었고, 살충제 역할은 천악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벌레들이었다. 벌레가 살충제에 저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나가는 개미를 죽여도 인간은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벌레 한 마리가 죽었을 뿐 그 일로 인해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하물며 천악에게 이놈들의 존재는 벌레만도 못한 놈들 아닌가.
팟!
파앙!
그때 월영이 지면을 박차자 땅이 움푹 팼다. 그러고는 상상을 불허할 속도로 천악을 향해 돌진했다. 앞에 보이는 애송이 같은 놈 정도는 일 검에 두 동강 내버릴 수 있었다.
“크크크! 여기 있다는 것이 네놈에게는 불운이다! 죽어랏!”
빛을 양단하는 섬광과 같은 빠른 검이 천악의 상체와 하체의 중간지점을 정확하게 갈랐다.
포효하는 월영의 검 앞에서는 빛의 속도조차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 앞에 놓인 어떤 것도 무사할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이 검에 배어나왔다.
슈아아악!
눈으로 보이지 않는 광속의 쾌검이었다. 달을 베어버린다고 해서 이름 붙은 월혼검법의 쾌검이었다. 점창의 사일검법이 해를 가를 정도로 빠르다고 하지만 지금 뿜어지는 월영의 검법보다 빠르지는 못할 것이다.
월영은 검을 내지르고 다시 회수하는 즉시 천마가 숨어 있는 마차로 곧장 직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월영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며 부딪친 힘 앞에 당황해야 했다.
카아앙!
천악이 월영의 검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월영은 애송이가 손을 뻗은 것을 비웃었다. 월영의 검은 광속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쾌검이다. 또한 그의 검은 교주가 직접 단련해서 얻어진 검 아니던가.
검의 재질 또한 전설이라고 알려진 용의 뼈로 만들어져 있었으니, 지금껏 어떤 검도 월영의 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하물며 검 속엔 월영의 기운이 담겨져 있다. 그러니 검강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월영의 일격을 맨손으로 막아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게 무슨……!”
월영의 검이 반탄력에 의해 충격을 받고 뒤로 주춤하는 사이, 천악의 손이 다시 움직여 월영의 검날을 맨손으로 잡아버렸다.
잡힌 순간 월영은 검을 다시 회수하지 못했다. 월영은 검을 타고 전해져 오는 압도적인 천악의 힘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월영이 즉시 감각적으로 몸을 틀어서 발로 천악의 머리를 차올렸다. 상단을 차고 벗어나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다.
퍼퍽!
고개를 틀지도 않은 채 천악은 왼손으로 월영의 퇴법을 막아내었다.
월영은 다시 튕기듯이 반동을 이용해서 다시 한 번 몸을 회전시켜 천악의 머리를 노렸다.
공중에서 순식간에 회전하는 월영의 움직임은 각법의 절정고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빠르고 기민했다.
퍼퍼퍼퍼퍽!
월영의 각법은 특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내공의 힘과 상대의 힘을 폭발적으로 형성시켜 강력한 힘을 발뒤꿈치에 실었다.
몸의 움직임은 폭발력과 반동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퇴법의 힘은 정확한 중심점을 기반으로 회전력을 가미하는 것이 중요했다.
월영의 10연타가 천악의 상체를 있는 힘을 다해 가격했다. 그러나 그러한 움직임은 모두 검을 다시 회수하기 위한 사전 동작일 뿐이었다.
천악이 잡고 있는 월영의 검을 오른쪽으로 잡아당기자 각법의 위력이 삼분지 일로 줄어버렸고, 속도와 방향이 정확성을 잃어버렸다.
기우뚱!
몸이 공중에서 기울어버리자 월영은 버팀목을 잃어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다.
월영이 공중에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내공의 반동력을 이용해서 대기를 차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월영의 몸이 종잇장처럼 천악의 힘 앞에 끌려왔다.
퍼어엉!
옆으로 끌어들인 월영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린 천악이었다.
천악의 일격에 실린 힘을 월영은 느낄 수 있었다.
주먹이 쏘아져 오는 순간이 느리게 잡혔다. 느리지만 월영이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먹 사이로 회오리처럼 대기가 회전했다. 그 힘이 거대해지자 주먹 앞에 선 월영의 몸이 경직되어버렸다. 공포감이 전신을 곤두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경직된 몸은 월영의 다급한 마음과 달리 외면하고 있었다.
‘벗어나야 한다!’
너무 느린 듯한 천악의 주먹이었지만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광속을 넘은 신의 속도라 할 만큼 빨랐다.
월영의 얼굴은 풍압으로 인해 이미 일그러져 있었다. 밀려진 살이 주름을 형성시켰다.
천악은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주먹의 궤도가 변했다. 월영의 얼굴을 향해 날린 주먹이었다. 그런데 천악의 권격이 월영의 왼쪽 가슴을 가격하는 상황이 되었다.
천악의 시선이 전영을 향했다.
전영은 좀 전에 천악의 권격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사각에서 정확하게 천악의 오른쪽 팔꿈치를 가격했다. 전영의 유령검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일 검인 유령폭강(幽靈爆剛)이 정확하게 작렬했다.
강기의 집중된 힘은 하나의 강환을 형성했고, 형성된 강환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유령폭강의 폭발력은 집채만 한 바위도 일격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천악의 권격을 와해시키지 못하고 월영의 가슴에 공격을 허용하게 만들었다.
전영의 놀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의 유령폭강에 타격을 받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무지막지한 반탄력으로 오히려 자신을 튕겨버렸다.
전영의 몸은 3장이나 날아가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월영도 5장이나 지면을 미끄럼 타듯이 주르륵 밀려나가 버렸다.
“크으윽!”
날아간 월영의 입으로 핏물이 소나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월영은 천악의 권격에 심장이 부서져버렸다. 용신갑으로 무장한 강철 같은 피부도 천악의 주먹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심장이 파열됐음에도 살아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용혈(용의 피) 때문이었다. 용혈이 없었다면 이대로 숨이 멎었을 것이다.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전영의 물음은 당연했다. 당금 천하에 가장 강하다는 천마조차도 둘의 합공에 당해 도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애송이가 나타나 자신들을 막아낸 것도 모자라서 오히려 압도적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월영은 얼마간 몸을 추슬러야 했다. 아무리 월영의 회복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심장이 부서진 상황이다. 단전이 내공의 중추라고 하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중추는 심장이다. 심장이 부서지면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말 그대로 공력이 분출되는 몸의 기관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하는 게 정확했다.
주춤!
천악이 월영을 향해 걸어가자 전영이 잠시 망설였다.
“멈춰라!”
멈추라고 해서 멈출 천악이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놈의 숨통을 끊어주려는 천악이었다. 어차피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됐다. 둘 다 있을 필요가 없으므로 먼저 덤빈 놈을 죽이려는 것이다.
이를 악문 전영이었지만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그리고 결정을 했다. 전영은 검을 들었으나 천악을 향해 덤벼들지 않았다.
슈슉!
전영은 월영을 구하는 대신에 천마가 머물고 있는 마차로 돌격했다. 유령 같은 움직임이었다.
갑작스럽게 덤벼드는 전영의 움직임에 삼영살이 막아서기 위해 움직였다.
“막지 마라!”
전영의 유령검법이 뿜어져 나갔다.
파앗!
삼영살은 눈앞에서 빛이 번쩍이는 듯한 착각을 느껴야 했다.
삼영살의 방어가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면서 심각한 상처를 입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크억!”
‘너무 빠르다!’
삼영살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몰랐다. 너무 빨라서 공격을 당했다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만약 전영에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삼영살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차 안에서 남궁태희가 즉시 튀어나왔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이 마차에서 튀어나와 자신의 검을 막으려 하자 전영이 소리쳤다.
“계집 따위가 내 검을 막겠다고!”
파아아아앙!
“우우욱!”
검과 검이 부딪친 순간 남궁태희는 기혈이 들끓음을 느꼈다. 압도적인 파괴력에 오히려 충격을 받고 뒤로 튕겨져 버리고 말았다.
전영은 반드시 천마를 죽이리라 독하게 마음먹었다. 계집의 실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임무를 마치고 사라지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자신의 실력이 천악에 비해 떨어진다고 해도 신법만큼은 자신이었다. 유령검법에 이어 유령신법(幽靈身法)은 세상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걸 믿고 택한 결정이었다.
지금 천마의 상태는 의식불명이었다. 마차 안을 보진 않았지만 호흡과 기의 흐름은 파악할 수 있었다. 천마 정도의 무인이 이렇게 호흡과 기의 흐름을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은 의식이 없다는 소리였다. 아니면 그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건 천마는 자신의 일 검을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유령검법 오의비검 유령폭렬탄(幽靈爆裂彈)!
투과과과광!
전영은 천마가 사두마차와 같이 송두리째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폭발이 일어나고 나서 전영이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전영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천악이 나타나 사두마차 앞을 가로막았고, 그의 유령폭렬탄을 가볍게 막아낸 것이다.
천악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놈의 선택엔 칭찬을 해주었다.
“제법이다.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고 공격한 네놈의 공격을 인정한다.”
천마가 죽는다는 것은 천악이 또다시 놈들에게 굴욕을 당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다시 또 당하는 것은 질색이었다.
천악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유령신법과 귀영보의 대결이었다. 둘 다 귀신의 신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허상이 없는 천고의 신법이었다.
신법은 강한 내공만으로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몸을 가볍게 하고 공기의 마찰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영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피했다. 좌에서 우로 변환하면서, 다시 역방향으로 튕기듯이 뻗어나갔다.
일직선으로 움직인 순간에 대기의 저항력을 이용해서 다시 역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전영의 움직임은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빠르다는 것은 앞으로 뻗어나가려는 성질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힘을 다시 틀어버리는 장면을 무인들이 봤다면 경악했을 법한 신법이었다.
슈슈슈슉!
“빠, 빠…르다!”
부상을 입은 삼영살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전영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눈이나 기감으로도 좇을 수 없었다. 또한 그 빠른 움직임을 귀신처럼 따라붙는 천악의 움직임 또한 상상을 불허했다.
천악의 강함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