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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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71화
녹림은 재수가 없었다 (3)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기가 죽은 산적들이 모두 정리하고 돌아설 때였다. 멀리서부터 사두마차가 산을 넘어가려는 말소리와 마차바퀴소리가 들려왔다. 느긋하게 산새를 구경하면서 다가오는 말발굽소리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성을 터뜨릴 정도로 화려한 사두마차의 위용과 느긋한 산행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선사해 주었다. 사두마차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올수록 녹림마제 철사종의 이 가는 소리 역시 크게 들렸다.
뿌드드득!
거리가 있다고 해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사두마차였다. 철사종은 그 마차가 원래 자신들의 목적이라는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게 다 저놈들 때문이다!”
화가 치솟자 앞뒤 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사두마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살기가 솟구쳤다.
산적들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동료들이 죽어나가고, 부상을 당한 모든 이유가 천악이 탄 사두마차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나타나다니……! 이 찢어죽일 놈들!”
사두마차가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수하들이 많이 죽었다. 철사종은 자신의 부주의보다는 사두마차에 탄 연놈들에 대한 증오를 불태웠다. 사두마차는 녹림본채로 돌아가려는 철사종의 체념했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놈들을 죽여!”
이유 불문하고 놈들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정말 실수였다.
4대 채주들도 더는 뒤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먼저 나섰다. 제일 앞으로 흑백쌍도 육장홍이 거대한 쌍도를 꺼내 들어 사두마차를 향해 내달렸다. 그를 따라 열 명의 산적들이 따라붙었다. 마차의 말부터 도륙 내려고 쌍도를 휘두르며.
휘이이익! 카아아앙!
내리친 쌍도가 말을 도륙하기 전에 단검에 의해 막혔다. 작은 단검이었지만 튕겨진 도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윽! 뭐냐? 커억!”
미처 말을 끝내기 전에 이살의 단검이 육장홍의 목을 꿰뚫었다. 삼영살의 합격술은 상상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육장홍을 죽인 삼영살이 달려오는 열 명의 산적들에게 비도를 날렸다.
슈슈슈슉!
“켁! 으악!”
털썩! 털썩!
썩은 짚단이 쓰러지듯이 추풍낙엽처럼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산적들이었다. 단 몇 번의 호흡 만에 초주검이 되어버렸다.
멈칫!
뒤이어 달려들던 산적들의 발걸음이 또다시 멈추었다. 오늘 만나는 자들마다 모두 사신들이었다.
철사종은 기가 막혔다. 하루에 세 번이나 상상할 수 없는 고수를 만나게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 다 덤비기에는 무언지 모르지만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전처럼 상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기습한 삼영살의 실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전에 나타난 두 명의 괴물과는 비교가 되었다.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쳐랏! 고작 세 명이닷!”
“하지만 서산채주가 단숨에 죽었습니다.”
조종신은 철사종이 그만하기를 바랐다. 척 봐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단숨에 열 명이나 되는 산적을 해치운 것도 모자라 흑백쌍도라 불리는 서산채주 육장홍까지 순식간에 죽었다. 더군다나 눈앞의 세 명 말고도 고수가 더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추측이 현실이 된다면 전멸당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녹림이 되리라.
“시끄럿! 녹림지존령으로 명령한다! 놈들을 공격해! 호법들도 같이 공격하란 말이야!”
철사종은 앞뒤 재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사두마차만 없앤다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녹림지존령은 녹림 나름대로의 자존심이었다. 녹림지존령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녹림호법인 백야권괴 염독고와 혈무염권 무명이 명을 받들어 삼영살을 향해 공격을 했다. 녹림호법은 녹림십팔절예 중 하나인 백야권(白夜拳)과 혈염권(血炎拳)을 익힌 절정고수들이었다. 녹림마제 철사종을 제외하고 각 채주들보다 실력이 더 뛰어났다.
파팡! 파팡!
삼영살과 호법들이 서로의 권과 단검을 부딪쳤다. 염독고가 일살의 비검술에 의해 왼쪽 옆구리가 한 자 정도 잘려나갔다.
차아악! 주르륵!
핏물이 어느새 왼쪽 옆구리 부분을 붉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이살과 삼살의 비도가 이마와 단전을 겨냥해서 날아왔다.
‘이놈들은 살수다! 보통 살수가 아니야. 세 명!’
“삼영살이구나.”
강호삼대살수 중 하나인 삼영살을 확인한 염독고였지만 비도를 피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뒤이어 무명 역시도 삼영살의 암수를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녹림호법들이 순식간에 당하고 나자 일반 산적들은 정예라고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삼영살의 거침없는 살수를 막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살왕의 독문검법이었던 무혈살검의 일식인 일점혈(一點血)이 펼쳐졌다. 북악채주 폭뢰마검 이겸은 이마 부분이 불에 지진 듯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 순간에 눈앞은 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철사종은 더는 두고 보지 못했다. 수하들이 모두 죽어 나가자 그가 직접 삼영살을 향해 녹림십팔절예 중 하나인 광폭수라격살참(狂暴收拏擊殺斬)을 펼쳤다.
“히야얍!”
타아아앙!
기합을 잔뜩 들인 수마도의 광폭수라격살참이었지만 단 한 번에 막혀서 뒤로 밀렸다.
호법들이 죽으면서 놈들이 누군지 알려줬다. 아무리 삼영살이지만 이 정도의 실력일 줄은 미처 몰랐다. 고작 살수가 자신의 일격을 막고 뒤로 밀려나게 만들었다는 데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놈들, 다 죽인다!”
이성을 잃은 철사종은 녹림마제라는 칭호가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이 행동을 하고 말았다. 세 번에 걸친 충격으로 인해 그는 극도로 흥분한 상황이었다. 제대로 상황파악을 할 여유가 없었다. 평소의 철사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끼익!
천악이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굳이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보통의 산적들이라면 이 정도의 살행이 일어나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상당한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만.”
“존명!”
천악의 말에 삼영살이 어느새 천악의 뒤로 물러섰다.
산적들 중 살아남은 자는 겨우 열 명 정도였다. 녹림마제 철사종도 부상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였다.
살아남은 산적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막상 대결 때는 몰랐지만 주변에 널린 시체들을 보자 덜컥 자신들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이 생겨났다. 전에 나타난 괴물들처럼 처참하게 잘려나가지는 않았지만 모두 깔끔하게 쓰러져 있었다. 완벽한 살인기계들의 향연이었다.
천악이 다가가자 산적들이 길을 열었다. 본능적으로 덤빈다면 반드시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천악은 철사종에게로 다가갔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단지 돈을 바란다면 이 정도까지 독하게 달려들진 않는다.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또 천악의 눈에 들어온 다른 흔적들이 있었다. 바로 월영이 만들어놓은 검격이었다. 천악이 보기에 이들 중에 저 정도 위력을 낼 수 있는 자들은 없었다. 주변에 삼영살에 의해 죽은 이들보다 전에 죽은 자들도 있는 것 같았다.
“왜지?”
부들부들!
몸을 떨던 철사종의 눈은 붉게 충혈이 되었고 천악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멸감이 든 철사종이었다. 상대방에게서 적의라도 느껴졌으면 이 정도로 모멸감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천악의 음성에는 감정의 고저가 없었다. 그저 왜 자신을 공격했는지 알려는 것뿐인 듯했다.
“크윽! 네놈은 왜 녹림도를 죽였나?”
“그거였나? 산적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의리가 있었지?”
복수를 하기 위해서 이 많은 산적들이 모였다는 말을 천악은 믿지 않았다. 산적 주제에 그런 의리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현대에서 조직폭력배가 의리로 뭉쳐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와 같았다. 서너 살의 어린아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산적들의 세계는 배신과 암수가 판을 치는 곳이다.
천악이 야수안을 발동했다. 예리한 천악의 안광이 철사종의 눈을 통해 뇌리를 강타했다.
“헛!”
부르르르르!
빛이 번쩍이고 나자 몸 전체가 발가벗겨진 것처럼 충격을 받은 철사종이었다.
천악은 철사종의 뇌리에 숨겨진 일들을 주마등처럼 읽어나갔다. 인간의 뇌는 거대한 우주와 같다. 모든 지식을 아는 것은 어렵지만 내면에 숨겨진 진실과 가장 최근의 일 정도는 금세 읽어낼 수 있었다.
단편적인 것이지만 천악은 왜 철사종이 악착같이 덤벼들었는지 이해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애초에 목적이 잘못되어 있었다.
“의도가 좋지 못했다. 날 죽이려 하다니 겁이 없구나.”
“모든 게… 네놈들 때문이닷! 네놈들이 녹림도를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인은 네놈들 탓이겠지. 산적 질은 나쁜 거다. 도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짓을 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게 바로 네놈 같은 놈들의 성향이지. 한 마디로 쓰레기라는 소리다.”
“이익! 닥쳐!”
천악은 무너져가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위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산적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조차 사치였다.
“대협!”
“넌 뭐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더는 대협을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십시오.”
군사 조종신이 나서서 천악에게 용서를 구했다. 철사종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리를 차갑게 식히면 오늘의 일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여기서 목숨까지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모든 것을 제외하고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다.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너 제법이군.”
“예?”
뜬금없는 말에 조종신이 당황했다. 천악은 살려고 발악하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이 자신의 목숨이었다. 자신의 목숨 이외에는 다 부수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난 내게 도전한 자들을 살려두는 체질이 아니다.”
“저희들을 죽이시면 녹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이쯤에서 끝을 내시면 제가 최선을 다해 대협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닥쳐, 조종신! 네놈이 뭔데 그런 말을 하느냐!”
철사종이 이를 악물며 조종신의 말에 화를 냈다.
“총채주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시끄러, 난 이놈을… 커억!”
철사종의 머리통이 박살이 났다. 천악은 이런 귀찮은 놈들을 살려둘 정도로 너그럽지 않았다.
“삼영살, 나머지를 다 죽여라.”
“존명!”
“도…망쳐!”
삼영살이 다시 살수를 쓰자 남아 있는 산적들이 도망치다 모두 암기에 맞고 쓰러졌다. 머리가 꿰뚫리고 심장이 뚫어졌으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 어째서 이런……?”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면 당연히 이렇게 되는 거다.”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종신은 시퍼렇게 질린 채 천악에게 울분을 토했다. 굳이 다 죽일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도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말을 이토록 무시하지는 않는다.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녀석이니 고용해 주마.”
“아무리 내가 겁이 많은 학자라고 하지만 의리는 있소.”
“그럼 죽든가.”
“그런 무책임한 말을…….”
“난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다.”
천악이 지금 당장 돌아서면 삼영살이 조종신의 목을 자를 것이다. 조종신은 무서웠다. 이자에게 협상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 살인마와 같은 자를 따라간다는 것이 무서웠다. 그렇지만 지금 허무하게 죽는 게 더 무서웠다. 그래서 조종신은 고개를 숙였다.
“따르겠습니다.”
천악은 조종신에게 단약을 하나 내밀었다.
“먹어라.”
“이게 무엇입니까?”
“네가 질문을 할 위치인가?”
“머, 먹겠습니다.”
삼영살은 뒤에서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도 먹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별달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배신만 하지 않으면 되는 안전한 장치일 뿐.
“폭충이다. 배신하면 머리가 터져 죽는다.”
“예… 예? 그런……?”
조종신은 결국 악마가 내민 손을 잡고 말았다. 천악은 요즘 고 총관의 일이 많은 것을 알기에 부총관을 하나 고용할 생각이었는데 거저 주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