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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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68화
천악은 사고뭉치인가 (5)
여러 동굴 중 한 곳이었다. 백섬의 설명을 들어보면 보통 인간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당시에 백섬은 막 영성을 가질 때였다. 그러함에도 백섬의 능력은 일류고수에 육박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악은 백섬을 제압해서 말을 가르쳐줄 정도로 실력이 대단한 기인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3백 년 전 절대고수였던 창천검황의 경우 내단을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물론 살아온 애환과 후해를 적어놓은 것으로 인해 후예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연은 찾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천악은 호기심이 동했다.
천악이 찾은 동굴 안의 공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백 년이나 지나서인지 시체의 뼈조차 부스러져 없어진 것 같았다. 다만 창천검황처럼 동굴의 한 벽면에 글을 남겨놓기는 했다.
“검귀 주유?”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궁태희와 제갈지만은 들어본 적이 있는지 흥분을 했다.
“알고 있나?”
“알고 있어요, 그는 2백 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광천검귀 주유예요. 당시의 중원오천존 중 한 명이자 강호 최고의 고수라고 평가받는 무인이었어요.”
남궁태희가 천악의 물음에 답했다.
천악을 비롯해서 여인들은 광천검귀 주유가 남긴 글을 읽어 나갔다.
〈노부는 강호에서 검에 미친놈이라고 불린 주유라는 사람이다. 그저 검이 좋았고, 검에 있어서는 누구한테도 지고 싶지 않았다.
노부는 마흔이 될 때가지 패배와 승리를 만 번이나 경험했다. 그 이후로 노부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노부는 실력을 쌓고 점점 더 명성이 있는 자들을 찾아다녔다. 십대고수들의 실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노부의 일 검에 그들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강호십대고수를 모두 무릎 꿇리고 나자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노부의 착각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붉은 머리의 청년이 나를 찾아와 대결을 원했다. 아직 어린 후기지수의 치기 어린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오판이었다. 청년의 신위는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다. 청년의 일 검에 노부의 검이 부러졌고, 다시 이어지는 일 검에 심맥이 모두 타버렸다.
간신히 살아남은 노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검 하나만을 보며 살아온 인생이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청년의 마지막 말은 노부의 영혼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형편없군.”
노부는 모든 것을 포기할 요량으로 강호를 등지고 이곳으로 왔다. 몸은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회복을 바라지 않았다. 노부는 죽고 싶었다, 또! 아니다! 노부의 혼은 절대 굽히지 않는다!〉
글을 읽어 나가던 남궁태희와 제갈지는 경악했다. 2백 년 전 광천검귀는 하늘이 인정한 검에 미친 사람이었다. 문파나 후인을 만드는 대신에 검만을 바라본 희대의 검귀가 바로 광천검귀였다.
일일이 십대고수들을 찾아가 비무를 했던 것을 보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모두 꺾고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천하제일검이 되었다. 그런 검귀가 고작 약관의 청년에게 단 일 검에 졌다는 기록을 보고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패배와 정신적 타격을 입은 주유는 이런 초라한 동굴에서 마지막 일생을 보내고 있었다. 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광천검귀는 하나의 검결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혼을 불태운 검이었다.
〈노부는 놈에게 일검을 찔러 넣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남긴다. 나의 혼을 불태워 마지막 일격을 놈에게 찔러 넣는다.
이것이 바로 종화혼극(終火魂戟)이다! 광천검법의 마지막 검결을 읽는 후인은 반드시 놈을 이 검결로 끝내주기를 바란다.〉
검결의 한 가닥을 본 순간 남궁태희는 희열감을 맛보았다. 검에 녹아 있는 검귀의 강렬한 검의가 남궁태희의 창궁무애검결에 충격을 준 것이다.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는 광천검귀 주유의 종화혼극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갈지와 금은혜는 대단한 검결이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구결의 뜻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이해가 되나?”
천악은 남궁태희에게 물었다.
“아주 일부분이에요. 만약 이 검결의 극의를 깨우친다면 어떤 것도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남궁태희는 광천검귀 주유가 왜 당시의 절대자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런 엄청난 검법은 과거 남궁세가의 검황 남궁무적과도 비교가 되었다.
“검을 줘봐라.”
“예?”
남궁태희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천악은 권법가였다. 검을 달라고 하자 의문이 든 것이다. 한편으로 검수에게 검을 달라는 것은 목숨을 달라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남궁태희는 즉시 검을 천악에게 주었다. 그녀에게 천악은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잠깐 물러서 있어라.”
천악은 광천검법의 종화혼극의 구결을 떠올리며 검에 야수의 기운을 집중했다. 야수의 인이 발동하자 검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운이 형성이 되었다. 검강은 강렬한 열기를 내포한다. 그러나 천악이 형성한 야수의 기운은 광폭하고 폭발적이었다.
‘물러섬 없이 세상을 향해 내딛는다. 그 길을 막는 자는 누구라도 벤다. 그것이 바로 검에 대한 열의다. 검에 대한 열의는 누구도 꺾을 수 없다. 종화혼극은 검에 강렬한 의지를 담는다. 심검이나 극의 검이니 구차한 검의 경지는 필요 없다. 자신의 의지만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다.’
어찌 보면 야수권의 구결과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천악은 검을 들었다.
천악은 무기에 대해 별반 애정이 없었다. 혈사신으로 있을 당시에 천악은 십팔반병기 모두를 사용했다. 주변에 널려 있는 검이나 창, 도, 곤 등 잡히는 대로 휘둘렀다. 천악이 잡은 순간 보통의 검도 최강의 검이 되었다.
검을 잡고 절벽을 향해 출수했다.
슈웅!
검의 의지가 순식간에 절벽에 스며들었다.
잠시 후 여인들은 너무 놀라서 기겁하고 말았다. 검으로 일격을 가해 절벽을 없애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굉장한 폭발이나 폭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뚫렸다.
“저, 저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거야?”
그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제갈지였다. 천악의 힘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제갈지였으니 충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거대한 절벽의 한쪽을 완벽히 뚫었다. 그리곤 가로세로 3장이나 되는 크기의 동굴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실 종화혼극은 광천검귀 주유가 만들었지만 이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을 것이다. 천악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광천검귀가 만들어놓은 검결의 힘을 초월해서 끌어낸 천악이었다.
천악은 검귀가 남긴 종화혼극이 마음에 들었다.
“잘 썼다. 이제 돌아가자.”
“예, 오라버니.”
천악은 남궁태희에게 검을 돌려주고 난 후 자신이 만들어놓은 동굴을 향해 걸어갔다. 멍하니 있던 여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천악의 뒤를 따랐다.
“하아, 모르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지낭이라고 불리는 제갈지의 잘 돌아가는 머리도 천악의 말도 안 되는 신위를 직접 보자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역사에 남겨진 전설적인 무인들은 일 검에 산과 강을 가른다고 부풀려져 전해지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코흘리개 서너 살 아이도 몇 없었다. 제갈지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보고 난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기!’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극렬한 충동을 느꼈다. 제갈천기가 말을 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건만 정말 일인무적의 괴물이었다. 제갈세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악을 포섭해야 했다. 아니, 그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했다. 그것이 세가의 명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천악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강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또한 그의 성격은 건드리면 폭발하는 화약과 같았다.
‘응?’
그런데 이제껏 천악이 사람 죽이는 것을 보아왔어도 이유 없이 해악을 일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반 평민들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풍운장원에 들어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영웅심을 발휘하지도 않았다. 정말 인간적인 심성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사람이 생각만 하는 일을 천악은 실천한다는 데 있었다. 하고 못 하고의 차이가 너무 극심했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맘에 들어야겠지?’
* * *
천악은 여인들과 더불어 빠르게 마차로 향했다.
금은혜와 남궁태희는 제갈지와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천악과 여행을 하면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전에 검황의 기연을 얻었고 이번에는 공청석유까지 얻었다. 일반사람은 일생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할 기연의 향연이 천악을 따르고 있었다.
일단 천악이 여행을 떠나면 보통 여행이 아니었다. 탈도 많지만 그에 따르는 기연이 엄청났다. 이제부터 금은혜와 남궁태희는 천악이 여행을 가면 ‘무조건 따라간다.’는 생각을 했다.
천악이 사두마차가 있는 곳까지 왔다. 동굴 안에서의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였던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둥근 해가 황산 연화봉의 끝자락을 타고 솟아오르려고 했다.
저녁노을이 황홀한 아름다움의 끝이라고 하면 아침 일출은 생명력의 소산이었다. 아침이슬이 햇살에 반사가 되어 찬란하고 싱그러운 광경을 자아냈다.
“아침 일출도 괜찮은 것 같군.”
“그러게요. 너무 아름다워요.”
천악의 말에 금은혜가 대꾸를 해주었다.
솔직히 남궁태희는 그런 면에서 금은혜를 부러워했다. 성격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천악이 마차에 다가오자 어느새 삼영살이 다가와서 부복했다.
“별일 없었지?”
“물론입니다. 마차 주변으로 쥐새끼조차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통 경계했습니다.”
“잘했군. 상을 주지.”
“상이라니요?”
“난 노력한 만큼 돌려준다. 너희들이 임무에 충실했으니 상을 주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상을 준다는 천악의 말에도 삼영살은 마냥 좋아하지 못했다. 전에 받은 단약은 영약인 줄 알았지만 폭충이었다. 천악의 무서운 면을 아는 삼영살이기에 쉽사리 좋아하지도 못했다. 세상에 험한 꼴을 너무 많이 본 전형적인 사람들의 유형이었다.
천악이 삼영살에게 준 것은 바로 공청석유였다. 여섯 방울을 따로 가져왔다. 이것은 같이 있었던 여인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천악이 준 것을 받아 마셨던 삼영살은 몸 안으로 들어오는 청아한 향기와 놀라운 열기에 기겁을 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공청석유.”
“헙!”
천악의 공청석유라는 대답에 삼영살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작 몇 방울의 공청석유였지만 그 가치는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귀한 영약 아닌가.
‘상으로 공청석유를 주다니!’
삼영살은 즉시 운기삼매경에 들어갔다. 악마가 쉽게 상을 준다는 것에 믿을 수 없었던 삼영살은 운기를 하면서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청석유의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지다가 암영심법(暗影心法)으로 운기하자 회전을 하더니 단전에 자리잡았다.
족히 1갑자에 달하는 내공이었다.
삼영살은 강호삼대살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의 내공 수위는 1갑자가 되지 못했다. 살수는 내공보다 살인의 감각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훈련받는다. 따라서 정면대결보다는 암격과 함정을 이용한 합격술을 기본으로 하였다. 일례로 정면대결로 남궁태희에게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암격을 한다면 쉽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런 삼영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내공의 상승으로 당장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없더라도 이제까지 사용할 수 없었던 살인기예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삼영살은 황홀함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드디어 스승님의 기예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삼영살은 살수들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살왕(殺王)의 진전을 이어받은 자들이었다. 살왕의 기예 중 무형살검(無形殺劍)의 살인술을 펼치기에는 그동안 내공이 부족했다.
무형살검은 무형의 기검(氣劍)으로 내공이 절실하게 필요한 기예였다. 물론 내공과 더불어 살인기술의 최정점에 달해야 한다는 조건하에 말이다.
삼영살은 살왕의 진전 중에 하나를 이어받은 것만으로도 강호삼대살객의 반열에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강호제일살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게 되었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내공의 증진을 천악이 한순간에 이루게 해주었다. 이것은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기연이었다.
삼영살은 진심으로 천악에게 복종을 했다.
“저 일살은 군천악 장주님께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합니다.”
“저 이살도 장주님께 진심으로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저 삼살도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살수들이지만 그 모습을 경건하기까지 했다.
천악은 삼영살의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감동은 없었다.
“그런다고 지금과 대접이 달라지지 않는다.”
세 여인들은 헛웃음이 나왔다. 진심과 충심은 인위적으로 강요한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강압적이라면 그 힘에 굴복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고, 돈에 굴복했다면 돈을 쓴 만큼 일을 할 뿐이다. 하지만 진심은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모두 얻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영살이 비록 살수들이지만 그 실력이 만만치 않은 강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의 충심을 얻는다면 그것보다 큰 것은 없을 것이다. 삼영살의 진심을 얻고 한다는 말이 고작 저런 말이라니, 허탈하기까지 했다.
천악의 무뚝뚝한 말에 삼영살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마음을 먹었다. 그 믿음은 주인의 말 한 마디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굳건했다.
“충심을 다할 뿐입니다.”
“좋군. 평소 하던 대로 해라.”
“성심을 다해서 보필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는 진실이 있었다. 삼영살 각자에게 두 방울씩 공청석유를 주었지만 고작 원숭이에게 다섯 방울이나 줬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걸 삼영살이 알았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자신들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것이 된다. 굳이 천악이 진실을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