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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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66화
천악은 사고뭉치인가 (3)
천악이 일어났다.
“이제 가볼까?”
천악이 일어서서 절벽으로 걸어갔다. 남궁태희와 금은혜가 따라가는데 제갈지는 또다시 망설였다.
“아니, 갑자기 왜 절벽에는……?”
절벽으로 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절벽은 만장단애처럼 깊고 넓었다. 너무 깊어서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절벽을 향해 천악은 걸어가고 있었다. 상식이 있는 일반 사람이 보기에 자살하는 것으로 보였다. 절벽 끝에 선 천악이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금은혜와 남궁태희도 불안해했다.
“날 믿나?”
천악의 말에 그녀들은 믿는다고 했다.
“믿어요.”
“오라버니를 믿어요.”
제갈지는 망설였다. 그리고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라는 심정으로 눈을 딱 감았다.
“믿습니다!”
씨익!
천악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뛰자.”
절벽 아래로 동귀어진하자는 말처럼 들린 그녀들이었다.
절벽으로 뛴 천악! 천악의 신형이 공중에 그대로 멈추었다.
“천…상제!”
“능공허도!”
천악은 그녀들이 말하는 지고의 신법과는 무관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천상제(天上梯)나 능공허도(凌空虛渡)의 경우 극강의 내공과 깨달음을 얻어야만 가능한 지고의 신법이었다. 보기엔 멋있어도 허공에서 천천히 움직이려면 많은 내공을 소모해야 한다. 반면에 플라이(공중 부양) 마법은 3서클 마법이었다. 효율성 면에서 신법보다 편하고 내공 소모가 적었다.
“어서 가자!”
-플라이!
천악이 그녀들에게도 마법을 걸어주자 몸이 허공에 떴다.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몸이 새털처럼 가볍게 솟아올랐다.
“까악!”
제갈지는 오늘 도대체 몇 번이나 놀라야 하는지 정신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절벽 위에 떠 있자 소리를 지른 것이다. 다른 여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내공으로 물건을 들어올리는 것을 허공섭물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들어올리다니!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인간이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내공이었다.
신기했다. 사람은 땅에서 자라고 땅으로 사라진다고 하지 않는가. 땅은 사람에게 있어서 근원적인 곳이다. 반면에 하늘은 사람이 소망하는 곳이다. 인간이라면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스스로 날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하늘을 날게 된 그녀들은 발아래서 느껴지는 허공의 기운에 짜릿함을 맛보아야 했다.
“내려갈까?”
중력 마법을 통해 몸의 무게를 조절하자 서서히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절벽 아래서 불어오는 용권풍으로 인해 몸이 휘청거릴 만도 하지만 그런 바람조차 천악의 힘 앞에서는 미풍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들은 설레었다. 아무도 와본 적 없는 장소다.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미지에 들어서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한참을 밑으로 내려갔다. 절벽 아래는 어두웠다. 날이 저물어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절벽 아래는 예상했던 기화요초나 영물 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어두울 뿐이었다.
“조금 실망이네요.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가? 하지만 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순수한 향기가 저쪽에서 불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금은혜의 말에 천악은 다른 말을 했다.
천악의 신체는 초감각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초감각을 뛰어넘게 되면 심안이 열리게 된다. 절대심안이 열리게 되면 상대의 마음까지도 일직선으로 관통할 수 있었다.
천악의 야수안은 바로 심안의 경지였다. 때문에 천악의 감각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천악이 무언가 느꼈다면 확실히 있을 것이다.
“저쪽으로 가보자.”
천악은 절벽 아래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무와 수풀이 가로막고 있기에 가는 데 방해가 되었다.
우지지지직!
천악의 기운이 나무들과 숲을 가로지르자 가로막고 있던 것들이 모두 양 옆으로 밀려나갔다. 어느새 길이 만들어졌다. 정말 천악이 처음 말한 대로 길이 아닌 곳으로 가고 있지만 천악이 가면 길이 되었다.
이들은 억지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되지 않아 절벽의 끝부분에 다다랐다. 하지만 새로운 절벽이 천악 일행을 가로막았다. 남궁태희와 금은혜, 제갈지는 설마했다.
‘설마 절벽을 가르지는 않겠지?’
‘아닐 거야.’
그녀들의 예상대로 천악은 절벽을 부수지 않았다. 대신에 절벽 아래에 뚫려 있는 동굴을 향해 걸었다. 나무와 수풀로 가려져 아무도 보지 못했던 장소였다.
금은혜는 이번에도 보물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이트(빛)!
밝은 빛이 동굴 안을 비추었다. 천악은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남궁태희, 금은혜, 제갈지가 뒤를 이었다.
한참을 들어간 동굴의 정면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역시나 반대쪽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빛이 보이는 곳으로 다가갈수록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동굴의 끝으로 다가갔을 때 백색의 섬광이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쌔애애애앵!
날카로운 발톱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소리도 같이 울려 퍼졌다.
뻐어어어억!
어느새 천악이 백색의 섬광 같은 물체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뼈가 어그러지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울리면서 빛이 사라지자 일행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백색 섬광을 바라보았다.
백색 섬광은 바로 영물이라고 불리는 호랑이 중의 호랑이, 백호였다.
백호는 입구에서 나오는 천악 일행을 먹이로 알고 공격을 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바들바들!
배를 뒤집고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바들바들 떠는 백호였다. 이미 기절했는지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러나왔다. 섬뜩하게 붉은 눈동자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흰자위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산중제왕이라는 백호였지만 천악 앞에서는 지나가는 똥개만도 못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은 남궁태희조차 움찔거릴 정도로 빨랐다. 실제로 백호의 덩치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만했다. 2장에 달하는 크기와 사람 머리통을 한 번에 부술 것 같은 날카로운 발톱을 보면 절정무인이라고 해도 대적했을 때 겁이 날 것 같았다.
“늑대는 아니군.”
늑대였으면 단 한 번의 일격에 머리통을 완전히 부숴버렸을 것이다. 호랑이라서 살려준 것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영험한 동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천악이 살았던 시대에 백호는 동물원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었다.
“천연기념물이라서 살려준다.”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금은혜와 제갈지는 천악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연기념물이라는 말이 생뚱맞았던 것이다.
“수가 적다는 말이다.”
“그래도 백호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텐데…….”
백호가 내단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 거대한 크기의 털가죽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쌀 것이다. 금은혜가 군침을 흘리고 있는 가운데 제갈지는 황당했다.
천악이 백호에게 다가갔다. 아직까지 정신 차리지 못하는 백호였다. 단 한 방이지만 혼이 반쯤 나가 있었다.
“깨어난 것 안다.”
백호에게 다가가 천악이 나지막하게 말을 했다. 그 소리에 눈을 까뒤집고 있던 백호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떨며 살며시 일어났다. 네 발을 짚고 서자 천악보다 더 큰 백호였다.
백호는 기가 많이 죽어 있는 상태였다. 천악의 무심하고 차가운 눈을 본 백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제법이군, 말을 알아듣는 걸 보니.”
여인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백호가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백호의 행동이 신기하기도 했다.
‘백호는 처음인데.’
‘진짜 크다!’
‘팔면 진짜 돈 될 텐데.’
그녀들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천악은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영성이 있고 말을 알아듣는 백호를 보자 이런 동물을 여러 마리 모아서 동물원을 차려도 될 것 같았다. 영물사파리를 장원 내에 만들어놓으면 풍운장원의 풍경에 도움이 될 듯했다.
“여기가 네 집이냐?”
끄덕끄덕!
생각이 있는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악은 메시지(전달) 마법을 백호에게 시전했다.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원의 무공으로 따지면 혜광심어와 같은 수법이었다.
“이제 말할 수 있지?”
‘그렇다!’
“말이 짧다.”
‘그렇다니까요!’
백호의 의념이 전달이 되기 시작하자 의사소통 하는 데 어려움을 없었다. 생각보다 말을 잘하는 것이 영물은 영물인 것 같았다.
“이제부터 내가 네 주인이다.”
‘난 이 산의 주인이…라니까요!’
“아니면 죽어서 가죽을 남기든가.”
백호는 천악이 거짓을 말하는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거절하면 정말 가죽을 벗길 것 같았다. 하지만 백호는 자존심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산중제왕으로 지내 왔는데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거절인가? 그럼 할 수 없지.”
천악이 움직이려고 하자 화들짝 놀란 백호가 즉시 대답을 했다.
‘주…인님!’
“내가 예전부터 경험해 온 것이 뭔지 아나?”
‘모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한 번 말하면 안 듣는다는 거지.”
뚜둑!
주먹을 가볍게 쥔 천악이 백호의 뒷걸음질을 무시한 채 머리를 잡고 주먹을 내질렀다.
단 한 방에 별이 번쩍한 백호가 거친 울음소리를 냈다.
퍼퍼퍼퍼퍽! 크어어어엉!
퍼퍼퍽! 크어어엉!
크어엉!
백호는 정말 죽도록 맞았다. 한 번 뜸을 들인 것치고 돌아오는 대가가 너무 가혹했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지만 안 맞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뒈지게 맞은 백호가 그 자리에서 털썩 누워버렸다.
크으응!
세 여인은 백호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백호의 붉게 물든 눈에 눈물이 맺히자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백호였다.
“안 일어나?”
벌떡!
백호는 금세 숨이 넘어갈 것 같았지만 천악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은 것도 잊은 채 일어난 백호가 천악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천악이 단약 하나를 백호에게 내밀었다.
“먹어라!”
도리도리!
본능적으로 먹기를 거부하는 백호였지만 천악이 주먹을 올리려 하자 냉큼 천악의 손에 있는 단약을 먹었다.
꾸울꺽!
“폭충이다. 배신하면 터져죽는다. 허연 뇌수가 바닥에 흐르면 재밌겠지?”
금은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설마했는데 동물한테까지 저런 무식한 방법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세 여인들은 백호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백호는 정말 억울했다. 황산을 돌아다니다가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먹이가 들어오는 냄새를 맡았다. 마침 출출해서 들어오는 놈을 한입에 삼키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주먹이었고, 한 방에 송곳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또한 깨어나니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란다. 잠깐 여유 좀 달라는 표정을 지었더니 그새를 참지 못하고 주먹질을 해댔다. 그것도 모자라서 고독을 먹이다니, 정말 치사하고 악질 인간이었다. 아니, 천악이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백호한테도 악마였다.
“혼자 살았냐?”
‘2백 년 전에 인간과 같이 살다가 인간이 죽고 나서 혼자 지냈습니다.’
“그래서 말을 그렇게 잘했군.”
‘그렇습니다.’
“몇 살이냐?”
‘230살입니다.’
“고작 2백 년 만에 영성을 얻다니 특별한 기연이 있었던 거겠지?”
‘그…렇습니다.’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천악은 보통의 동물이 영물이 되기 위해서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다. 최소한 천 년은 되어 보이는 백호의 덩치를 볼 때 기연이 있지 않고서는 영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백호는 천악이 귀신처럼 생각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이 먹었던 것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거짓말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천악이 백호와 얘기를 하는 동안 여인들은 이곳을 돌아보았다. 백호가 살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야명주나 보석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건만 빛은 저 위의 절벽 사이로 들어오는 것뿐이었다.
천악은 세 여인과는 별개로 백호를 따라 이동했다. 여인들은 천악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동굴 구경을 접고 천악의 뒤를 따랐다.
천악은 백호가 안내한 장소로 이동을 했고, 그 뒤로 남궁태희와 금은혜, 제갈지가 뒤를 따랐다. 백호가 어슬렁거리며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덩치가 커서 그렇지 제법 빠른 속도였다.
백호가 안내한 곳은 여러 동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백호가 향하는 곳으로 들어가자 청아한 향기가 동굴의 입구부터 풍겨 나왔다.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몸 안의 탁기가 모두 배출되는 것 같은 황홀감을 느끼는 여인들이었다.
‘와, 이런 향기라니!’
‘이게 도대체 뭐지?’
향기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해주는 것이라면 보통의 영약이 아닐 것 같았다.
여인들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동굴 안에 들어오면서 적잖이 실망을 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기연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