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00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00화
외전 - 사부와의 만남
잘게 조각난 시체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가는 천악을 본 사람들 대부분이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들은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천악의 잔인한 혈겁으로 인해 공포감에 젖어 있었다.
사람들 중 여인 하나가 천악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말을 하고 말았다.
“아, 악…마!”
“읍!”
급히 여인의 입을 막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혹시 천악이 그 말을 듣지 않았을까 겁을 내고 있었다. 감히 사신에게 그따위 말을 하다니, 살기 싫다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천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신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들은 좀 전까지 산적들에게 목숨을 구걸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의 목숨을 위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산적들을 죽였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구한 것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행운이었다. 천악이 가는 길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고마움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닌가!
천악은 천천히 걸었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악마라고 부른 여인에게 다가갔다.
천악이 다가가자 사람들 모두 몸을 움찔거리며 멀어지려고 했다.
천악은 여인에게 말을 했다.
“왜지?”
여인은 몸을 벌벌 떨며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천악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더불어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왜 나를 두려워하지?”
천악의 눈을 본 여인은 왠지 모르게 그가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무감정한 눈에 차가운 기운마저 흐르는 눈을 보며 처음으로 여인은 슬픈 감정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여인은 천악에게 대답을 했다.
“자신의 모습을 봐요. 그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리고 산적들을 죽일 때 꼭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어야 했나요?”
“나의 행위가 잔인하다고 생각되나? 하지만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 당신은 너무 잔인해요. 그 잔인성으로 인해 우리들은 당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어요.”
“이기적이군.”
천악은 고개를 돌렸다.
입장의 차이지만 천악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손을 잠시 바라볼 뿐이었다.
천악은 다시 움직였다. 원래의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 산적들을 소탕하는 것이 천악의 목적이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산적들은 이 일대의 상인들과 일반인들에게 워낙 큰 손해를 끼치고 있었다. 또한 산적들은 재물만을 노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거나 여인을 뺏어가기도 했다. 당연히 현상금이 붙을 수밖에 없다.
천악은 현상금과 더불어 의뢰를 위해 움직였다. 대막에서 천악의 위명은 진동하다 못해 악명이 자자했다. 그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손속이 너무 잔인했기 때문이었다. 부딪쳐 오는 적들을 모두 육편으로 만들어버렸으니 혈사신이라 불리는 것도 당연했다.
천악은 적을 향해 인정을 베풀지 않았다. 적이 있다면 사정없이 모든 것을 무너뜨려버렸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잔인한 혈풍이 휩쓸자 대막은 혈사신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움직이면 사막의 모래를 피로 뒤덮을 수 있을 정도였다.
* * *
천악은 대막에서 마지막 일을 해치우고 중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길에 산적들의 요새가 자리했다.
쌍두채라고 불리는 무리들이었다. 채주의 머리가 이상할 정도로 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더군다나 쌍두채의 채주 장두석이 익힌 무공이 철두공(鐵頭功)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쩌저적!
꽈과광!
쌍두채의 정문을 향해 야수의 인을 휘두르자 천악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것이 뒤집히며 부서져 나갔다.
쌍두채의 인원은 총 150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 이미 천악이 목숨을 끊어버린 서른 명을 제외하면 120명이 남아 있다는 소리였다.
천악은 가장 먼저 보이는 산적들을 향해 야수의 인을 발동했다.
산적들은 그 자리에서 산 채로 다섯 조각의 육편이 되어버렸다.
“크아앗!”
덤비는 족족이 죽어나가자 산적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천악은 도망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망설임 없이 살수를 썼다.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정면에서 채주인 장두석이 이를 부딪치며 떨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쌍두채의 우두머리라고 해도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는 미거한 생명체일 뿐이었다. 그의 한 수에 자신의 단단한 머리도 흉하게 고기 조각이 될 것이다.
“혈…사…신!”
장두석의 머리에 떠오른 무서운 말이었다.
혈사신의 공포는 이곳이 아니라 대막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그의 가공할 손속 한 톨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다시는 혈사신을 부르지 못했다.
천악은 무섭도록 빨랐다. 산적들이 미처 대비를 하기도 전에 무너뜨리고 있었다. 무너진 상태에서 산적들은 찢겨나갔다.
털썩!
주저앉은 장두석이 몸을 떨며 천악을 향해 살려달라고 했다.
“사, 살려…주시오!”
천악은 장두석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여온 놈이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한다고 해서 살려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량할 정도로 몸을 떠는 장두석의 말에도 천악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천악은 그 순간 장두석을 향해 야수의 인을 발동시켰다
“크악! 아, 악마… 같은… 놈!”
악마라는 말과 함께 장두석이 생을 마감하자 쌍두채 산적들은 혼비백산했다.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저히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도망침은 소용없는 발악일 뿐이었다. 천악의 손속에서 빠져나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천악의 행위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멈춰라!”
자연스러운 기운이 형성되며 날아가는 야수의 인을 무위로 돌렸다.
천악은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까지 야수의 인을 사용한 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 누구를 만나도 다섯 조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야수의 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노인의 일 검에 원래 없었던 것처럼 야수의 인이 소멸되어버렸다.
감정의 고저가 거의 없었던 천악이 노인을 향해 무시무시한 한광을 폭사시켰다.
“왜 나의 일을 방해했나?”
“허어, 살기가 이토록 강하다니 천살성이 따로 없구나!”
노인은 천악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흉성을 볼 수 있었다.
관상을 보니 천살성으로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천살성을 능가하는 살기와 흉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존재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벽력탄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왜 나의 일을 방해한 거냐?”
“그만하면 되었다.”
“닥쳐! 네가 되었다고 하면 일이 그냥 끝나는 건가? 끝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한다.”
천악이 이를 악물며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단순하면서 빠른 천악의 공격은 초절정의 고수조차도 일격에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노인의 검이 움직이자 천악의 공격이 모두 차단이 되었다. 오른쪽에서 왼쪽, 다시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지만 어딜 가든 노인의 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허공을 가득 메우는 검의 기운을 뚫어내지 못했다.
천악은 상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이토록 강한 자는 천악의 생애 처음이었다.
그러나 천악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이 부서지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공격했다.
6서클에 이르는 마법을 사용했다. 이제까지 마법은 익혀두기만 했을 뿐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공격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마법이나 무공 모두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퇴보하기 마련이었다.
-파이어 랜스(불의 창)!
슈웅! 슈웅!
기이한 사술로 인한 불꽃이 노인을 공격했다.
그러나 노인의 능력은 사술에 의해 무너질 정도가 아니었다. 가벼운 칼바람이 휩쓸고 지나가자 파이어 랜스는 힘없이 사그라졌다.
자연무상검법의 오의 중 하나가 바로 자연의 속성을 마음대로 끌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끌어서 사용할 수 있으면 무위로 돌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경시하지 않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공격이지만 천악의 무위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순수한 힘과 힘의 대결이라면 노인이라고 해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허어, 이런 강렬한 기운이라니!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겠구나!’
자연의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서 내공이 아닌 자연기의 위대함을 알아가기 시작한 노인이었다. 그런 노인조차 천악의 진정한 힘을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천악의 동작에서 거친 야수의 움직임이 보였다. 철저하게 실전을 통해 이룩한 몸놀림이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같은 움직임에서 천악이 이제까지 겪어온 사투를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이 천악의 눈을 바라보았다. 광폭함으로 가려진 이면 속에 숨죽이는 두려움이 보였다.
노인은 천악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아직 힘을 완전하게 각성시키지 않은 상태이기에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악의 차가운 눈을 보자 그럴 수 없었다. 왠지 모르지만 이면에 잠자고 있던 본성은 절대로 악하지 않은 듯했다.
검의 궤도가 움직일 때마다 천악의 전신이 피로 낭자했지만 정작 결정타는 날리지 않고 있었다. 노인은 고민을 했다.
“허억! 허억!”
천악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당한 상태에서 멀쩡할 수는 없었다.
“으아아악! 나는 지지 않아!”
천악이 야수와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온 힘을 한 점에 모았다. 야수의 인이 최대로 발휘가 되었다. 그러자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힘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갔다.
천악은 앞으로 돌진했다. 그 앞에 다가오는 검에 몸뚱이가 잘려나간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진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않는 천악의 공세였다.
이번에는 노인도 경시하지 못했다. 한순간 망설인 그 틈을 타서 천악이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노인도 자연무상검법의 오의를 사용해야 했다.
-자연무상검법 궁극오의, 자연혼검(自然魂劍)!
자연의 기운, 즉 자연의 마음을 검에 담아 뿌리는 자연신검일체(自然神劍一體)의 검법이었다. 현경의 경지에 이르러 처음으로 사용하는 노인의 최강 초식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선보이지 않은 수법이기에 위력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쿠과과과과광!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와 함께 반경 5장이 초토화되어버렸다.
팅!
파앗!
폭발하듯이 부딪친 신형이 벽에 부딪쳐 뒤로 튕겨나갔다. 뒤로 날아간 신형이 쌍두채의 움막에 부딪쳤다.
울컥!
노인은 한 번의 부딪침에서 핏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자연의 기운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노인이 현경의 경지라고 해도 자연의 기운은 생사경이 아닌 이상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터벅터벅!
노인이 말없이 쓰러진 천악을 향해 다가갔다.
정제되지 않은 힘만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준 천악을 보자 허탈한 심정이었다. 완성된 무인조차 압도하는 힘을 가진 천악이 세상에 나간다면 필시 혈풍이 불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호의 십대고수이자 이제의 한 명인 무상검제 혁리광조차 두려움을 느끼는 힘을 봉인하기 위해 천악을 처단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독한 녀석이군.”
자연혼검을 정면으로 부딪치고서도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천천히 검을 들어 목을 내리치려고 할 때였다.
“그만하세요!”
혁리광이 여인을 바라보았다. 알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왜 그러느냐?”
“그 사람을 왜 죽이려는 거지요?”
“이 녀석은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아이다.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너도 보이지 않느냐, 주변의 풍경이!”
여인은 천악이 구해 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천악을 향해 악마라고 소리친 여인이기도 했다. 그런 여인이 천악을 따라왔다. 이기적이라는 천악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따라오고 말았다.
“그는 저희를 구해 준 은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산적들은 죽어 마땅한 녀석들이었어요.”
“세상에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저도 알아요. 좀 전까지 저 사람의 행동을 보고 악마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저예요. 하지만 그는 우리를 구해 준 사람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런 사람이 고작 앞으로 혈풍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허어!”
혁리광은 여인의 말에 차마 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해서 사람을 죽이려고 하다니, 나도 아직 수양이 덜 되었구나.’
혁리광은 인정해야 했다. 여인의 말이 맞았다.
그리고 혁리광은 천악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인연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