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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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96화
개왕 출동 (1)
구룡상회의 멸망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본 곳은 바로 금천상가였다. 금천상가가 많은 지분을 확보한 것도 이유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업 내용이 구룡상회와 금천상가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통망에서 하북과 하남에서 힘든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 구룡상회의 흡수로 인해 유통망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겨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냉동수레에 대한 유통량이 전보다 더 늘었다.
상회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자 유리 제품이 본격적으로 출시가 되었다.
유리 제품은 전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사실 유리의 처음 제작에 천악이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대량생산을 하는 동안 실패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번의 실험을 했고, 마침내 유리를 생산하는 데 문제가 없게 되었다.
중원에서 사기나 철, 목제 그릇의 유통은 많은 편이지만 투명한 유리그릇은 상류층만이 가질 수 있는 희귀제품이다.
물론 처음부터 대대적으로 물건을 팔아치우지는 않았다. 유리 제품이 가지는 높은 희귀성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양을 늘리고 가격을 떨어뜨리면서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유리 그릇 한 개의 가격이 금자로 쉰 냥이나 된다. 그 가격 그대로 열 개만 팔아도 5백 냥이 되고, 백 개를 팔면 5천 냥이 된다. 그런데 지금 그보다 열 배는 훨씬 넘게 팔고 있고 점점 판매망을 넓혀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낮아지겠지만 그와 반대로 상가의 신용과 명성이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금천상가는 금천표국의 피해 이후로 탄탄대로였다.
금천상가의 합비지점을 확장시키고 자신의 방에서 돈을 세고 있던 금은혜는 입이 귀에 걸리고 있었다.
“호호호! 돈이다!”
돈을 세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하나! 둘! 셋! 넷! 아니, 처음부터 다시!
그녀는 천악을 제외한 모든 정신을 돈에 쏟고 있었다. 돈은 만지면 만질수록 사랑스럽고 그녀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배금주의에 물들어서 돈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돈을 벌고, 그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풀 줄도 알았다. 많은 액수는 아니더라도 상도를 지키면서 돈을 버는 그녀는 상인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액수가 점차 커지자 돈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존재했다. 금은혜의 앞에는 지출과 수입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특이하게 사내가 아니라 여인이었다. 여인은 보통 셈에 약했지만 그녀는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셈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였다. 그녀의 실력 중 가장 월등한 것은 정확성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성에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 같지 않다는 평판을 듣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도지연이었고, 방년 스물아홉 살의 노처녀였다. 자로 잰 듯이 정확한 생활 반경을 가지는 그녀는 사내 만날 시간도 시간을 재면서 만나는지 몰랐다. 그래서 아직 결혼하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이 주변에 돌았다.
그녀는 눈이 작은 편이지만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완고한 듯한 입술 모양으로 인해 딱딱한 인상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지연은 서기지만 지점을 관리하는 지부장과 동격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힘에 있어서 그녀는 최강이었다. 돈을 관리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잘못 보이면 지점의 예산이 알지도 못한 사이에 두 동강이 나버릴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지점의 지부장들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금은혜는 도지연에게 이번 수익이 얼마나 늘었는지 물었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있는 황금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늘었나요?”
“전년 대비 3할은 더 늘었습니다. 이대로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면 대륙제일상단이 되는 것도 문제없을 겁니다.”
“그래요? 호호호! 이제 아버지도 절 인정하겠지요?”
이제야 제대로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금은혜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항상 엄한 면만 보여주시던 아버지가 총관을 통해 그녀를 칭찬하는 서신을 보내왔던 것이다.
“이제 언니도 혼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너무 늦은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도지연에게 사내가 붙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 정도의 능력과 수완이라면 어떤 사내도 거부하지 못할 정도였다. 눈이 작은 것이 약간 흠이기는 하지만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가슴은 단연 발군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수박 한 통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동양인치고 범상치 않은 가슴 발달이었다.
금은혜는 자신의 가슴과 도지연의 가슴을 비교하면서 약간이지만 한숨이 나왔다. 자신의 가슴도 작은 편이 아니지만 도지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뭘 먹고 저렇게 큰 거야? 혹시 군 가가도 거유를 좋아하시나?’
남궁태희와 자신 정도면 중원제일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여인들을 보면서도 욕정조차 가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었다. 그래서 혹시 천악은 여인의 얼굴보다는 다른 곳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가보세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소가주님.”
도지연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선 도지연은 소가주가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
‘사랑이라…….’
혼인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훑어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실망을 한 이후로 별로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항상 자기 방어적으로 냉정하게 사람들을 대해 온 것이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사내를 멀리하게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옆구리가 시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지부를 나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에는 부모님과 동생이 같이 살고 있었다.
편찮으신 부모님과 나이 어린 동생을 위해서 그녀는 근검절약을 평소 생활방식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인색했다. 그랬기에 이제까지 적선 한번 해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제일 불쌍한 사람은 부모님과 동생이었으니까.
도지연은 항상 냉정하다 못해 도도하기까지 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이제는 웬만한 거지들은 감히 그녀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탓!
도지연이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와 가볍게 부딪쳤다. 너무 미세해서 닿았다는 느낌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약했다. 그런데 부딪친 순간 자신보다 작은 노인이 길바닥에 주저앉더니 온몸을 배배 꼬는 것이 아닌가! 누가 봤다면 도지연이 노인을 심하게 때린 줄 알았을 정도였다.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엄살도 정도가 있지만 노인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실성이 넘쳐흘렀다.
도지연은 황당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노인이 다친 게 자신 때문일 리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노인의 옷과 얼굴 등을 보자 거지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골치 아팠다. 이대로 있다가는 덤터기를 쓸 것이 분명했다. 우선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나 재빠르게 이동하려던 그녀는 한순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가슴 큰 여인이 사람을 치고 도망가네!”
어찌나 서럽게 울며불며 하는지 도지연으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도지연의 마음이 동요되고 있었다.
거기에 거지 노인의 목소리에 의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자리를 피한다는 것은 사람을 치고 뺑소니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도지연은 일이 이상하게 꼬여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지 노인은 보기만 해도 역겨울 정도로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나이를 알 수 없었다.
도지연은 청결상태가 엉망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아무한테도 적선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말이다. 그것은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이제까지 그녀는 가족을 위해서만 돈을 썼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 지켜져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든 것이 거지 노인의 행동에 의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도지연은 짐짓 냉정한 시선으로 거지 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울렁!
도지연은 생애 처음으로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노인의 눈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도와주지 않고서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노인은 몸짓 하나, 손이 움직이는 위치 등 모든 동작이 구걸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구걸의 도(道)가 있다면 바로 이 앞에 드러누워 있는 노인과 같이 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어찌나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만드는지 도지연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도 모르게 소매 속에 들어 있는 은자 한 냥을 꺼내고 말았다.
‘안 돼!’
마음속으로 안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른손은 벌벌 떨면서 이미 거지의 동냥 박에 은자 한 냥을 던져주고 있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이럴 수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애 처음으로 적선을 한 것이다. 거지의 행동이 뻔히 보이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 이런 황당한 거지의 마력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내가 철전도 아니고 은자를……? 이, 이럴 수는 없어!’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 도지연의 눈가에 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닦고 돌아섰다. 이미 떠나간 은자가 다시 돌아올 리 없었다. 그것보다 거지의 눈과 몸짓을 보면 다시 돈이 나갈 것 같아서 바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도지연이 떠나자 거지 노인이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섰다. 언제 다쳤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씨익!
입가에는 자부심이 한가득 담긴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헤진 옷 사이로 보이는 엄청난 때갑들이 사람의 피부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했지만 감히 그 앞에서 함부로 말할 자는 없을 것이다. 그가 바로 구걸오도의 창시자이자 구걸신공을 대성하여 구걸대마왕이라고 불리는 개왕 궁휼이기 때문이다.
‘아직 나 죽지 않았다!’
태상방주의 위치에 있으면서 구걸을 하지 않은 지 벌써 5년이나 흘렀지만 실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철혈의 심장을 가진 도지연조차 굴복시키는 궁휼의 구걸신공 앞에서 소중한 돈을 건사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그가 전생에 구걸신(求乞神)이 아니었나 하는 억측이 나돌 만도 했다.
하남성의 개봉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궁휼은 하루 세 끼 꼬박 다 챙겨먹으며 안휘성 합비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추상락이 굶어죽을 뻔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더군다나 간간이 들어오는 은자로 술까지 처먹었으니 가뜩이나 검버섯이 핀 붉은 코가 더 붉어져 있었다.
개왕이 이곳 안휘성까지 온 이유는 전적으로 무걸개 추상락 때문이었다. 하나뿐인 제자를 강호에 출두시키고 맘을 졸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안휘성의 풍운마룡을 시험하라고 보냈더니 오히려 군천악과 죽이 척척 맞아서 지낸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둘 사이가 주종관계처럼 보인다는 말도 들렸다.
아무리 거지가 천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인생들이라지만 추상락은 개방의 장로이자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제자였다. 개방의 장로가 고작 약관의 애송이에게 쩔쩔매며 살고 있다고 하니 개왕 궁휼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궁휼의 충격은 컸다.
평소 추상락이 세상 물정 모른다고 눈치를 주기는 했지만 순수한 무력만큼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뛰어난 녀석이었다. 무공은 머리가 모자란 녀석이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승의 경지로 갈수록 자신의 수양과 뛰어난 머리가 필요했다. 그런 녀석이 할 짓이 없어서 하인 노릇을 하고 있다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태상방주로서 개봉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숨죽이고 있었던 개왕이 몸소 제자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움직였다.
‘괘씸한 놈! 네놈 키우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할 짓이 없어서 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추상락에게 개방의 전대부터 내려오는 영약인 취구환(醉狗丸)을 두 알이나 먹이느라 궁휼도 상당히 고생을 했다. 취구환이 비록 술 취한 개의 신단이라는 비천한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효능이 그처럼 비천하지는 않았다. 소림의 대환단보다는 떨어질지 몰라도 그 어떤 영약보다 뛰어난 효능이 있었다.
“이놈,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