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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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93화
실전 (4)
씨익!
등천광은 그 전처럼 광기에 젖어 있지 않았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등천광이 변한 이유는 바로 교의 장로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강신합일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바로 혈룡대의 구도락이 사용하려다가 실패한 강신합일을 사용한 것이다.
“네놈들 때문에 내가 결국 사용하지 말아야 할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 나의 죽음을 통해 너희 연놈들에게 지옥염화의 고통을 선사해 주겠다!”
강신합일은 말 그대로 신과의 합일을 뜻한다. 인간이 신의 힘을 사용함에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이 존재한다. 힘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바쳐야 했다. 그것이 바로 생명력이었다. 생명력이 타올라 그 힘이 신의 강림을 촉진시킨 것이다.
강신합일을 이룩한 상태로 오랜 시간 동안 버티는 것 자체가 생명력, 무인에게는 선천진기가 모두 소실되어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등천광이 강신합일이라는 마지막 수법을 사용한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화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백룡대가 모두 죽어나가고 있는 동안에도 자신은 추상락과 남궁태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가졌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무너지자 참을 수 없는 기운이 꿈틀거렸고 점점 광기에 젖어들었다.
광폭산을 사용한 후에 거리를 벌리고, 그사이에 등천광은 연놈들과 같이 산화하기 위해 강신합일을 이루었다. 이대로 놈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각오를 한 것이다. 등천광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지독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필사의 각오를 한 등천광의 기세에 추상락과 남궁태희는 절로 위축이 되고 있었다.
‘위험하다.’
‘보통이 아니야!’
죽음을 불사한 각오는 무섭다. 상대의 역량과 자신의 역량을 무시할 정도로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고, 둘 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누가 이기든 이 대결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추상락과 남궁태희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져야 했다. 설렁설렁 상대하지는 않았지만 더욱더 강인한 정신력과 침착함이 필요했다.
* * *
천악은 등천광의 강신합일을 보면서 검미를 꿈틀거렸다. 근래에 들어 계속 똑같은 놈들이 귀찮게 하고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제는 수를 헤아리는 것도 귀찮을 지경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하였다.
천악은 운명이라는 말을 믿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저놈들과는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강신합일을 이룩했을 때 느끼는 적대감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몸 안에 숨어 있는 기억의 일부분이 놈들에게 적대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상관없다. 방해하면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역시 천악의 생각은 간단했다. 머리 아프게 이리저리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앞에 존재하는 방해물을 일순간 압도적인 힘으로 부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평범한 인간의 잣대로 그의 생각을 평가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었다.
무섭도록 광폭한 부법이었다. 그런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더 광폭하고 뜨거웠다.
혈광부의 작은 스침에도 추상락과 남궁태희는 전신의 기혈이 들끓었다. 마치 폭발하는 화산의 용암과 같았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뜨거운 열기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치지직!
지글지글!
추상락은 팔목에 스치는 기운으로 인해 살에 기포가 일더니 타기 시작했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기는 내공막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남궁태희도 검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열기에 고통스러웠다. 이대로는 계속 밀리는 형세가 지속될 것 같았다.
애초에 천악이 제압하라고 했지만 승부초자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등천광의 실력이 갑자기 상승했다.
주춤하며 뒤로 밀릴수록 등천광이 히죽거렸다.
“어떠냐, 내 힘이! 하하하하!”
통쾌하다는 듯이 웃어대는 등천광은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강신합일의 방법을 알고 있기는 해도 사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직접 사용해 보니 그 힘은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광천혈룡부법의 간단한 초식조차 강신합일의 혈기(血氣)를 사용하자 그 어떤 초식보다 강맹했다. 등천광은 점점 힘에 도취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등천광의 희열 뒤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힘도 아니면서 좋아하다니, 우습구나.”
지금 사용하는 등천광의 힘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힘이 아니었다. 고작 남의 힘에 의존하는 놈이 기고만장하는 꼴이 우습기까지 했다.
천악의 냉정한 말에 등천광의 인상이 지옥나찰처럼 변했다.
“네놈이 감히!”
저벅저벅!
천악은 천천히 걸어서 추상락과 남궁태희의 앞까지 다가갔다.
추상락과 남궁태희는 상당히 호흡이 거칠어져 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등천광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승부에 있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자체는 좋았지만 그 힘을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죽어가는 수법이었다. 그런 힘 따위는 강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죽어서 강해져 봤자 무슨 소용 있는가! 타인의 힘에 취해 그 힘을 자신의 힘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었다.
뿌드득!
이를 갈던 등천광이 사납게 천악을 향해 혈광부를 내리찍었다.
태산거력(泰山巨力)의 힘이 혈광부에 실려 있었다. 태산조차 일거에 양단 낼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부력(斧力)이었다. 대기조차 혈광부의 일도양단에 좌우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쐐애앵!
타앙!
강력한 쇳소리와 함께 충격을 받은 등천광이 뒤로 밀려났다. 맨 처음에 받았던 충격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제야 등천광은 처음에 자신의 일을 방해한 존재가 눈앞에 있는 청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강신합일로 인해 훨씬 강해진 힘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튕겨나간 등천광은 망연자실했다.
“어떻게……?”
어떻게 피륙으로 이룩된 손으로 혈광부를 튕겨낼 수 있단 말인가!
강기로 무장한 절세의 보검이라도 단 한 수에 잘라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이럴 수는 없었다.
절망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천악의 강인함에 다시 한 번 등천광은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짐승의 포효소리를 내며 등천광이 앞뒤 재지 않고 천악을 향해 돌진했다.
천악은 그런 등천광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가볍게 피하거나 공격을 흘려버릴 뿐이었다.
타앙!
꽈아앙!
천악의 손날이 혈광부의 옆면을 후려치자 균형을 잃고 바닥에 혈광부를 찍어야 했다.
등천광의 미친 바람과 같은 공격은 천악의 가벼운 수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어떠한 수법도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반 시진이 흐르는 동안 공격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등천광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식은땀이 온몸을 뒤덮고 빗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맞으란 말이다!”
악을 쓰며 공격하지만 천악의 부동심은 요지부동이었다. 철저하게 상대를 농락하며 힘을 빼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상대로 도발한 상대에게 편안한 죽음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들부들!
강신합일의 힘은 선천진기의 힘을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교에서도 마지막 수법으로 사용하라고 하였다.
한순간 천하제일강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에서 모든 것이 허물어져 가자 등천광은 온몸이 부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좌절감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려고 했다. 강한 힘을 얻는 대가치고 너무나 가혹했다.
“크으으윽!”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등천광은 게거품을 물며 그 자리에서 몸을 떨며 바동거렸다. 백룡대의 수장이라는 품위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의 뇌리는 고통과 절망이 가득해졌다.
지면을 바동거리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인내력을 초월한 고통이었다. 오장(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육부(대장, 소장, 쓸개, 위, 삼초(三焦), 방광)가 모두 뒤틀리며 뇌호혈과 백호혈을 타고 정신까지 혈극(血極)의 기운이 타는 듯이 찌르는 것 같았다.
으드득! 뿌드득!
등천광이 이를 바득 갈며 버티려고 했지만 고통의 무서운 점은 지속성이었다. 참고 있는다고 해서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도 고통이 일순간이라면 참고 견디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고통이 지속적인 경우는 신경과 정신을 갉아먹기에 결국에는 참지 못하게 된다. 치통이 대표적인 고통의 예이다. 물론 지금 등천광이 겪는 고통은 치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고통의 한 톨만이라도 겪는다면 일반 사람은 기겁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거나 심장마비에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등천광이 소리치는 것 이외에는 고요함과 삭막함이 감돌았다. 이미 백룡대는 정리가 되었고 금천표국의 표사들도 죽은 동료 표사들의 시신을 정리하고 있었다.
표사들의 시체를 정리하고 나자 주영달은 천악과 그 일행을 바라보았다.
철검 주영달은 웬만한 일에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은 그런 마음을 조절할 수 없었다. 평생에 놀랄 기회를 오늘 다 맛보고 있었다.
천악의 주변으로 존재하는 인물들을 보았다.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자신조차 감히 짐작하지 못할 정도의 고수 두 명과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살수 세 명. 고작 다섯 명이지만 그 조합 하나만으로 능히 천하제일이라 불릴 만하였다.
거기에 그 다섯 명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신위와 위압감을 가진 천악을 생각하자 머리가 터질 정도로 복잡했다. 누가 있어 저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으아아악!”
“차라리… 죽여라!”
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던 등천광은 이를 너무 세게 악물었는지 피를 흘리며 악을 쓰고 있었다.
등천광의 표정은 인간의 표정이 아니었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 사이로 처절하게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 등천광을 천악은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말의 동정심조차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악은 상대방에게 편안한 안식을 내려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무고하게 죽어나간 표사들 때문이라기보다는 계속 자신의 일을 방해한 놈들에게 주는 벌이었다.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가?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 거다.”
-타임 슬로(시간의 감속)!
등천광이 바동거리는 공간에 타임 슬로 마법을 걸자 고통 받는 시간이 더 느려지고 있었다.
등천광은 자신의 몸 안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무한에 가깝게 늘었다는 것을 모른 채 계속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반 시진이 지나갔다. 이미 선천진기를 모두 소실하고 생명력이 끝이 나야겠지만 여전히 등천광은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이미 이지가 상실 되어가는 상황이었다. 고통으로 인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갔다.
지켜보고 있던 남궁태희와, 추상락, 삼영살은 이미 질려 있었다. 저런 식으로 계속 고통받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이었다면 적이지만 숨통을 끊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철검 주영달을 비롯한 표사들도 천악이 무서운 인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숨죽인 채로 천악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감히 먼저 가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천악은 고심하고 있었다.
백룡대 중 필요한 사람 한 명만을 남긴 이유는 바로 금제 때문이었다. 금제는 지독하게 강했다. 천악조차도 쉽게 풀어내지 못했다. 이들을 살려 데리고 간다 해도 금제로 인해 죽을 것이 분명했다.
기력이 모두 빠져 나갈 동안 천악은 천천히 등천광의 기억을 읽어나가기 위해 리드 메모리(기억 재생)라는 마법을 걸었다. 리드 메모리 마법은 마인드 컨트롤과 같은 강력한 마법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기억을 읽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담을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체계가 있어야 한다. 남의 기억을 읽어 자신의 기억으로 흡수될 경우 미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마법이지만 마법사로서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자는 되도록 시행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천악은 등천광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었다. 모든 기억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가 행한 일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집중했다.
기억은 흐름이었다. 머리에 충격을 받거나 금제가 되어 있지 않는 이상, 그 흐름 속에 이어져서 모든 내용이 일률적으로 조합이 되게 된다. 흐름 안에서 흐트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흐름 속에 다시 이어지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등천광의 기억은 많이 끊어져 있는 상태였다. 무언가를 볼 때 그 기억이 다시 끄집어 내지 못하도록 억제되어 있었다. 억제된 기억을 강제로 풀어낼 때 금제가 발생하게 되어 또다시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천악은 많은 것을 찾아내진 못했다.
‘구룡상회였군.’
구룡상회가 이번 일에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과 더불어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알아낸 것이 전부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대단한 금제다. 이 정도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면 필시 대단한 자일 텐데 세상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이상하군.’
천악처럼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이처럼 교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세상을 장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단체를 만들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소리였다. 욕망을 분출시키려고 한다면 그 자신이 직접 나서면 확실하게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천악의 판단이었다.
‘네가 누군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내 일을 방해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