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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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8화
종합훈련 (3)
고요함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지금 추상락과 남궁태희는 움직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겠지만 간극을 재는 무형의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었다. 정중동(靜中動)의 묘리였다.
고요함 가운데 서서히 움직일 준비를 했다. 활이 활시위를 벗어나기 직전처럼 폭풍이 불어오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바람의 흐름과 기의 흐름,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뻗어나갈 상황을 기민하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가고 마음이 곧아졌을 때 움직임을 보이는 자가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혼천강룡신공을 운용하는 추상락이었다.
기이이잉!
응축된 기운이 폭포수처럼 뻗어나갔다. 무형의 기운과 기운이 서로 부딪치자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궁신탄형의 신법을 전개한 추상락의 몸이 화살처럼 뻗어나가 남궁태희의 정면을 공격했다.
크아앙!
남궁태희가 검을 들어 정면으로 찍어 들어오는 추상락의 용음십이수(龍吟十二手)를 막아내려고 했다.
용음십이수는 혼천강룡신공을 익혀야만 펼칠 수 있는 개방의 절대비전절기 중 하나였다. 용음이라는 독특한 소리를 내며 열두 번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펼쳐내는 추상락의 용음십이수는 가히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남궁태희의 눈과 기감이 바쁘게 움직였다. 허상과 실체가 뒤섞인 공격 속에 하나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고 판단한 남궁태희가 즉시 창궁칠연섬을 쏘아내었다.
순식간에 일곱 번의 검속이 추상락의 용음십이수와 격돌하자 시끄러운 소리를 자아냈다.
꽈과광!
추상락은 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자 즉시 취팔선보를 펼쳤다. 취팔선보의 장점은 근거리 내에서 표홀하게 움직여 상대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시켜버린다는 것에 있었다.
여덟 발짝이 뛰어지자 남궁태희의 검이 허공을 그었다.
‘빠르다!’
추상락의 움직임은 대단했다. 거대한 덩치와 달리 엄청나게 빨랐다.
남궁태희가 비록 먼저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경험 면에선 추상락에게 뒤처져 있었다. 수십 년간 고련한 세월의 힘은 함부로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좌로 이동했던 추상락이 다시 오른쪽에서 나타나자 일직선으로 가던 남궁태희의 검이 다시 변화를 일으켰다. 그녀도 쉽게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찌르는 검을 다시 정반대로 꺾는 것은 검속이 빠를수록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공의 끊김이 일어난 그 시점에서 추상락이 선수를 펼쳤다. 강맹한 공격의 연속이었다. 강룡십팔장을 연속적으로 출수한 것이다.
펑! 펑! 펑!
남궁태희가 장법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한보(無限步)를 시전하며 창궁무애검법 삼절초인 창궁유성폭(蒼穹流星爆)을 펼쳐 대항해 나갔다.
공격의 대부분을 정면으로 맞으며 물러서지 않으려는 남궁태희였다. 때에 따라서 피하기는 하지만 힘에서 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였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순간적으로 당황한 남궁태희에게 천악의 한 줄기 전음이 들려왔다.
공세가 시작되면 그 공세가 멈추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무한적으로 강룡십팔장 같은 강맹한 공격을 지속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공격이 멈추는 그 찰나의 순간을 공격하라는 천악의 말이었다.
‘맞아. 내가 너무 정면공격만 한 것 같아!’
그녀는 전에 월영과 전영에 의해 부상을 당했었다. 실력 면에서도 월등히 뒤져 있었지만 상대의 공격을 정면에서만 받으려고 했기에 쉽게 당한 것이다. 피하거나 흘려버렸다면 단 일 수에 당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한편 추상락 역시도 공격 중에 천악의 전음을 들었다.
[이유제강(以柔制强), 천변만화(千變萬化)!]
추상락은 한동안 강룡십팔장의 압도적인 힘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천악의 말을 듣는 순간 섬광이 번쩍하는 깨달음을 느꼈다.
장법에도 강약이 필요했다. 강룡십팔장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강한 공격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장법을 휘두르기 전에 취팔선보를 통해 상대를 현혹시킬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궁태희와 추상락은 천악의 한 마디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해도 이런 실전이 아니었다면 그 답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바로 실전을 치렀다면 목숨을 보장하기 힘들지도 몰랐다.
사실 천악 자신은 이유제강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었다. 정작 자신은 강(强)만을 추구하면서 추상락에게는 이유제강을 강조하니 아이러니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질이 달랐다. 배우고 있는 신일, 충호, 전칠의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배우는 것이지만 이미 익힌 무공이 있는 추상락과 남궁태희에게는 자신만의 수법을 강조할 수는 없었다.
* * *
끼익!
홀로 방에서 사색에 젖어 있던 군천악은 추상락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추상락은 오늘 깨달은 점에 대해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전에 당했던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온 것이다.
천악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일은 정말 자신이 생각해도 웃긴 일이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말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전에는 강함이 최고라고 하시더니 이제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말을 하는 겁니까!”
추상락의 억울함은 당연했다.
조교로 있는 동안 아이들 앞에서 추상락은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추상락은 천악의 일 권을 사량발천근으로 막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강함에 의해 무참히 박살나고, 그때부터 강함이 최고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혀버리게 되었다.
강함이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준 지가 언젠데 이제 와 이유제강 운운한단 말인가! 깨달음은 깨달음이고, 따질 것은 따져야 했다.
“후후!”
“뭐가 우스운 겁니까? 저는 정말 심각합니다.”
“너 뭔가 착각하는 것 아니냐?”
“예? 그게 무슨……?”
“네가 나처럼 강하냐?”
황당한 질문일 수 있으나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천악과 같은 압도적인 강자에게는 부드러움이라는 것을 가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추상락도 화경의 고수였다. 화경의 고수가 약하다는 핀잔을 받다니,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화경의 고수가 약하면 그 아래 수많은 초절정, 절정, 초일류, 일류, 이류,삼류는 다 접싯물에 코 박고 죽어야 할 것이다.
“나만큼 강해지면 너도 부드러움과 변화는 필요 없게 된다. 이제 답이 됐나?”
“그런!”
추상락은 정말 억울했다.
‘해답은 개뿔! 그게 어떻게 해답이야? 나 참,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제기랄!’
천악만큼 강해지라니,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이것은 중원이 거꾸로 뒤집힌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항거불능의 일이었다.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면 조금 이해가 갈지 몰랐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강자는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약한 놈은 그렇게 해서라도 우선은 살고 봐야지. 안 그런가? 그리고 왜 내가 일일이 너한테 그런 이유를 설명해야 하지? 너는 그냥 까라면 까면 되는 거야.”
“휴우, 어쩔 수 없지만 이번 일은 주인님의 말에 반대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나중에 제가 말하는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시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만…….”
추상락은 어떻게 해서든지 한 가지 소원이라도 받아내고 싶었다. 천악과 있으면 언제나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처럼 소심해지고 있었다. 이런 궁핍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정도 구명줄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조건부라… 좋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마.”
“정말입니까?”
추상락은 애초에 이걸 노리고 왔지만 막상 얻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한 번 찔러본 건데 바로 들어준다고 하자 천악의 뺨을 꼬집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물론이다. 그러니 가봐라.”
“알겠습니다.”
천악은 이미 추상락의 부탁을 어느 정도 들어줄 생각을 했다. 추상락이 비록 하인이 되었지만 발전하는 능력과 아이들 가르치는 데 노력한 일은 인정해 주어야 했다. 아무리 하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마냥 누르고 억압하기만 하면 반발하기 쉬웠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 정도는 마련해 주어야 했다.
“이놈! 날 이렇게 부려먹나!”
당지독은 그날 천악의 방에서 한 가지 약속을 해야 했다. 무단침입을 용인하는 대가로 삼영살의 공격을 받아내라는 것이었다.
물론 삼영살의 공격이 위험천만하기는 하지만 당지독의 입장에서는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게 불만이었다. 애송이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삼영살도 천악에게 한마디 들었다.
“살왕의 절기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주군!”
“살왕은 혼자였을 텐데, 너희들은 셋이구나.”
“저희 셋이 같이 수련을 했기에 그렇습니다.”
“살왕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홀로 무공을 완성시킨 자다. 당연히 합격술에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너희들은 완벽한 합격술로 살업을 이행해 왔을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너희들에게 이롭지 않을까?”
삼영살은 그날 충격을 받았다.
무형살검이라는 살왕의 절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공력을 얻은 순간부터 삼영살은 합격술보다는 무형살검을 연마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 결과 서로의 합격술이 전보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 하던 대로 하되 무형살검은 합격술에 맞도록 고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은 삼영살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당지독만 한 인물은 없었다.
당지독은 독공뿐만 아니라 암기술에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삼영살의 약점을 파악하고 받아줄 수 있는 상대였다.
삼영살이 이룩하게 될 무형살검진(無形殺劍陣)의 시초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준비는 잘 돼가나요?”
“그렇습니다, 소가주님!”
면사로 가려진 얼굴 사이로 보이는 붉은 입술만으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여인의 목소리는 황홀함 그 자체였다.
여인의 물음에 대답하는 중년인의 표정은 진중했다. 아직 어린 여인의 목소리였지만 그는 정중하게 대했다. 물론 여인도 중년인을 공대하였다. 중년인은 바로 금천표국의 국주인 천뢰검(天雷劍) 단현상이었다.
천뢰검 단현상이 펼치는 천뢰무영검(天雷無影劍)은 산동십성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대단했다.
금천상가가 처음 상행을 시작할 때 표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표국 자체가 오대상가의 영향력 안에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었고, 있다고 해도 영세한 곳이 전부였다.
금천상가로서는 이대로 대규모의 상행을 진행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영세한 표국들을 웃돈을 주고 매입하기 시작했다. 매입한 곳을 하나로 통합시킨 금천상가는 표국의 국주가 필요했다. 즉, 분위기를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런 구심점으로 천뢰검 단현상을 선택했다.
금천상가로서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단현상은 만일 그의 아들이 아프지 않았다면 표국의 국주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단현상의 아들이 심각한 병에 걸리는 바람에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게 되었고, 돈이 필요하게 된 단현상에게 금천상가는 정중한 대접과 지위를 보장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지금까지 단현상은 표국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었다. 단현상도 당시의 도움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금천표국은 일생일대의 표행을 진행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단현상으로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표행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표행의 수장은 누가 맡게 되었나요?”
“대표두인 철검(鐵劍) 주영달(朱英達)이 이끌 겁니다.”
“그럼 이걸 그분에게 주세요.”
“이건 팔목 보호대가 아닙니까?”
소가주 금은혜가 주는 팔목 보호대를 보자 단현상은 의아했다.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직접 건네는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금은혜로서도 확실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천악이 주면서 위험할 때 내공을 주입하라는 말만 했기에.
“위험할 때 이곳에 내공을 주입하라고 신신당부해 주세요. 이유는 그때 가면 밝혀질 거예요.”
“그렇습니까? 음… 이게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궁금하고 의심스러워도 꼭 차고 표행에 나서도록 해주세요.”
“소가주께서 그토록 당부하시니 알겠습니다.”
금천상가로서는 모든 준비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표행은 사흘 후에 시작된다. 그때까지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단현상으로서도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그는 한 번도 표행에서 실패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실패를 맛보았다. 그 일로 인해 개인적으로도 이번에는 반드시 습격자들을 찾아내 일벌백계를 내리리라 다짐했다. 표국의 전력을 기울인 일에 실패란 존재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