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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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7화
종합훈련 (2)
추상락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당지독의 입에서 ‘천마검’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천마검이라면… 혹시 천마의 애병을 말하는 겁니까?”
추상락이 강호 정세에 어둡다고 해도 천마의 애병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당지독과 추상락은 다시 돌아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그들 뒤에 천악이 버티고 있었다. 언제 접근했는지조차 느끼지 못했다. 귀신처럼 나타난 천악의 모습에 당지독과 추상락은 화들짝 놀랐다.
“천악아, 여기 이놈 설마… 맞냐?”
“천마입니다.”
“근데 이놈이 왜 이곳에 있는 거냐?”
천악은 천마가 장원 내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기 위해서 숨기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알아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안 쓰는 외곽 별채에 천마를 뉘어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삼영살에게 호위하도록 명령했었다.
천악은 우선 두 사람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천마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쓰러진 천마를 데리고 왔다는.
당지독은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알기로 천마는 천하 최강자였다. 젊은 시절 객기로 한 번 덤볐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당지독은 천마라고 해도 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천마의 일 검은 자신의 독으로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강한 천마가 누군가에게 쓰러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도대체 그놈들이 누구냐?”
“지금은 그것보다 왜 허락 없이 여기 들어온 것인지 제가 먼저 묻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허억!”
천악의 몸에서 뭉클뭉클 무시무시한 기운이 뻗쳐 나왔다.
당지독과 추상락은 그제야 지금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천악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방해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것뿐이다. 그러니 이만 가보겠다!”
“뭐, 그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천마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저도 한 번은 참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지.”
“저,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악이 고개를 끄떡이며 마지막 당부를 했다.
“이번 일은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괜히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무, 물론이지. 어련히 네가 잘하겠느냐. 하하하!”
당지독도 그냥 궁금해서 확인하려고 했을 뿐이지 굳이 위험을 무릅쓸 생각은 없었다. 또한 다른 누구도 아닌 천악이 한 말이었다. 알아서 하겠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난 이만 가보마.”
당지독이 빠져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추상락도 가려고 했다.
“넌 잠시 남아라.”
“예? 왜, 왜요?”
“아까 보니 삼영살에게 꽤 애를 먹더군. 벌써 정체되면 아쉬울 것 아니냐.”
추상락은 식은땀이 흘렀다.
‘무서운 놈, 다 지켜보고 있었구나.’
가르침을 핑계로 죽도록 패려는 것 같자 추상락은 전혀 아쉽지 않다고 말을 했다.
“아쉽지 않습니다.”
“너무 떨 거 없다. 며칠 뒤에 일이 있어서 시키려고 하는 것뿐이니까.”
‘휴우!’
일방적인 구타가 아니라는 말에 추상락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악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추상락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부터 며칠 뒤가 궁금해지는 천악이었다.
삼영살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미진함을 깨달았다. 당지독과 추상락이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너무 쉽게 무너졌다.
일살과 이살은 당지독의 마비독이 풀리자마자 살왕의 절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삼영살 중에서 가장 심한 부상을 입은 것은 삼살이었다. 강룡십팔장은 역시 무서운 장법이었다. 정면으로 받아낸 것도 아닌 스친 것만으로도 온몸의 기혈이 뒤틀리는 충격을 받았다.
삼영살은 천악에게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괜찮다. 다음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감사합니다, 주군!”
삼영살은 제법 쓸모가 있었다. 당지독과 추상락이 아니라면 쉽사리 승부를 예측하지 못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삼영살이 합공했다면 추상락도 상당히 고전했을 것이다.
천악이 방으로 돌아오자 당지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지독은 돌아간 것이 아니라 천악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천마에 관한 일을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넘길 순 없었다. 좀 전에 쉽게 물러난 이유는 단둘이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천악도 당지독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짐작했는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이제 오냐?”
“뭐가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당연한 소리 하지 말고 자초지종이나 설명해 봐라. 이 일은 천마 개인의 일이라고 볼 수가 없어. 자칫 정마대전이 반발할 수도 있는 일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천마가 죽었을 때나 일어날 일입니다.”
“말 돌리지 말고 좀 말해 다오. 답답하다.”
“그러지요.”
천악은 월영과 전영에 대한 설명부터 했다.
그들이 지금 천독강시가 되어가고 있는 무영과 같은 녀석들이라는 말을 하자 당지독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하게 변했다. 무영을 봤을 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천악의 말에 의하면 그런 놈들이 한두 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강호에 은거고인이 모래알처럼 많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저런 괴물 같은 놈들이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놈들이 정말 대단한 놈들이구나. 천마를 죽인다는 말을 했을 때는 믿지 않았는데 정말로 실행하다니! 그것도 단둘이서 말이야.”
무영은 머리가 터지기 전 마지막으로 천마를 죽인다는 말을 했다. 그때에는 죽기 전에 미친 소리 한다고 치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말로 천마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쩔 셈이냐?”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선은 놈들의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 먼저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강호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겠구나.”
“천마가 깨어나면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 섣불리 밝히다가는 놈들이 숨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천악이 이런 엄청난 사실을 숨기는 진짜 이유는 바로 놈들이 숨어버릴지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다. 숨어버리면 찾기 곤란했다. 몇 번이나 자신의 일을 방해했던 놈들을 그냥 둘 정도로 천악의 성격이 물러터지지 않았다. 당한 만큼 배로 값아 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천마가 여기 있다는 것은 철저히 숨겨야겠구나. 자칫 사실이 새어나가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그러니 지금은 모른 척하십시오.”
* * *
경험.
경험은 책에서 배운 것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실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은 글이나 말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훈련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도 실제 상황을 겪게 되면 그 반의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다. 문파의 후기지수들이 실전수행을 위해 무사 수행과 비무를 하는 이유도 실전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천악은 실전에서 소용없는 훈련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잘 익힌 무공이라도 실전에서 휘두를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쓸모없는 무기를 가진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신일, 충호, 전칠에게는 지금까지 내공과 육체적 훈련에 매진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실전에 대한 감각과 정신력을 키워야 했다. 강호는 깨끗하게 승부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었다. 피가 튀기고 잔인한 암계가 벌어진다.
아이들은 선택을 했다. 장원을 지키는 호위무사가 되기로 말이다. 상대를 죽여야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망설이게 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고, 호위 대상자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일루전(환상)!
진법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천악이지만 환상 마법은 알고 있었다. 지하 연무장에 천악은 일루전 마법을 걸었다. 천악은 환상 마법을 통해 실제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경험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환상이지만 실제와 다르지 않은 환상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천악은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수련과는 다르게 지금 이 방법은 잔인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일루전 마법은 6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그 첫 단계를 걸어가게 될 시기였다.
천악이 아이들을 불렀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보게 될 환상은 환상이지만 현실과 차이가 없다. 실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수준에 맞는 상대가 나올 것이다. 이겨낸다면 강한 정신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고개를 돌린다면 너희들은 무사가 될 자격을 잃게 된다. 자격을 잃은 녀석은 필요 없다. 선택은 너희들의 몫이다. 할 사람은 남고, 아니라면 돌아가도 좋다.”
신일, 충호, 전칠에게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미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하며 살아오지 못한 인생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혹독함을 경험한 아이들이기에 보통의 아이들보다 정신력이 강했다.
입술을 꽉 다물고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자 천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들어가라. 환상은 반 시진 동안 계속될 거다.”
그동안 극한의 수련을 해왔기에 많이 단단해진 아이들이었다. 이 정도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천악은 아이들에 대한 수련 다음으로 추상락에 대한 수련을 생각했다.
추상락은 지금까지 자신과 당지독에게 약간이지만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실력 차가 너무 압도적이라 무엇을 배울 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추상락에게는 경쟁자가 필요했다.
경쟁자란 실력이 엇비슷해서 서로 우위를 점할 수 없을 정도여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추상락은 화경의 경지에 들면서 같은 경지에 이른 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천악은 한 사람을 생각했다. 바로 남궁태희였다.
그녀 역시도 화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상대가 아닌 압도적인 강자만을 상대해서 결국에는 부상을 입고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별채의 앞뜰에 남궁태희가 와 있었다.
그녀는 조금 설레었다. 지금까지 천악이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남궁세가로 천악이 부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연공을 하고 있다가 바로 달려온 그녀의 얼굴은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숨이 차거나 호흡이 거친 것도 아니지만 새하얀 얼굴에는 홍조가 보여 냉기를 품었던 예 전 모습과는 상당한 괴리감을 보였다.
천악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가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여 다가갔다.
“절 찾았다면서요?”
“잘 있었나? 얼굴이 많이 상했군.”
“수련을 하느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불렀나요?”
“수련에 도움이 좀 됐으면 해서 불렀다.”
“그게 무슨……?”
천악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남궁태희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반대편에서 추상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통성명은 안 해도 되겠지?”
천악은 둘에게 서로의 무공에 대한 정체를 해결할 방법으로 비무를 제안했다. 죽을힘을 다해 힘을 발휘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부족했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추상락은 남궁태희와의 비무라는 데에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고, 남궁태희는 잠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천악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 부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도 무인이었다. 추상락과 같은 강자와 대결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심판을 봐주지. 그러니 마음껏 절기를 사용해도 좋다.”
“정말입니까, 주인님?”
“그럼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생사대결이 아닌 비무에서 절초를 최대한 발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비전오의와 필살오의가 부딪쳐서 파생된 충격도 문제지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천악은 만약의 사태를 막아준다고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천악이 막아준다면 어떤 절기를 출수한다고 해도 목숨이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생사의 간극을 볼수록 무공은 앞으로 뻗어나간다. 하지만 생사의 간극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람 목숨은 하나였다. 여러 번 목숨을 걸다 보면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죽은 후엔 실력이 상승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번에 남궁태희와 추상락의 대결은 둘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추상락은 방심하지 않았다. 남궁태희는 이미 검후라는 칭호를 이어받을 자격을 갖춘 절대검수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녀를 아름다운 여인 정도로만 볼 수 없다는 소리였다.
남궁태희 역시 방심하지 않았다. 무걸개 추상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압감은 자신과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했다.
“최선을 다하겠어요.”
“최선을 다하겠소.”
추상락이 혼천강룡신공을 끌어올리자 남궁태희도 창궁무애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화경에 이른 고수들의 대결이 시작되기 일보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