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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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85화
금천상가의 습격 (6)
천악은 거실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신경 썼던 것을 털어버렸다.
후르르륵!
“음, 좋군.”
천악이 마시는 차는 백호은침차(白毫銀針茶)였다. 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던 천악이었지만 자주 마시다 보니 그 은은하고 청아한 맛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백호은침차는 청아한 향이 강해서 머리를 시원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항상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천악은 좋았다. 이성이 뜨거워질수록 실수하거나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본능적으로 거부하려는지도 몰랐다.
천악이 의자에 앉아서 차 맛을 음미하는 동안 그 앞으로 제갈지가 조용히 앉아서 천악이 마시는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백호은침차는 귀한 차였다. 황제에게 진상이 될 정도로 귀한 차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금은혜가 미리 빼돌린 것을 갖다 주기에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제갈지는 오랜만에 천악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금은혜는 바쁜 일이 있는지 풍운장원에 없었고, 남궁태희도 천마 사건 이후 미진한 점을 깨닫고 개인적인 연공을 하기 위해 풍운장원에 자주 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갈지는 천악이 칠음절맥을 치료한 일을 생각하자 한숨이 나왔다. 너무 대단해서 할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제갈지도 칠음절맥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절맥증을 치료한 역사는 중원대륙에서 거의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전설로 남겨진 화타의 생사금침대법이 마지막이었다.
‘하여간 대단하다니까!’
그런 대단한 일을 해냈으면서도 저런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으니 더 대단해 보였다. 이 일로 인해 제갈지는 천악의 여자가 되어야겠다는 절대적인 이유를 갖게 되었다.
천악이 차를 마시는 동안 대정선자가 찾아왔다. 대정선자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군 시주,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 말해 보십시오.”
대정선자는 제자 역시 절맥증을 앓고 있다는 말을 하고 같이 아미파로 가서 자신의 제자를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다.
대정선자의 간곡한 말은 어떤 사람도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흔들리게 하였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존재는 천악이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감히 그 간격을 잴 수 없는 인물이었다.
“대가는 뭡니까?”
대정선자는 순간 당황했다. 설마 이런 말을 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장원 내 신일의 동생을 치료할 때는 대가 없이 치료를 해준 천악이었다. 다른 사람의 병을 대가 없이 치료해 주는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대정선자의 제자인 이옥화는 신소미보다 더 심한 구음절맥이었다. 구음절맥을 치료하는 일은 돈으로 지불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대가가 필요한 일이었다.
“원하는 것이 뭡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저는 별로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정선자께서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제게 도움이 된다고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필요에 따라 움직입니다. 저는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움직일 수 있는 정당한 대가 없이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군 시주,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제발 사정을 봐주십시오.”
대정선자의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대가를 먼저 요구하는 천악의 말에 대정은 자신이 처음에 가졌던 생각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의문도 들었다. 대가를 원하는 사람이 왜 신소미의 절맥증을 치료해 주었는지 말이다.
“하루에 수백 명씩 죽어나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까지 제가 슬퍼해 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그럼 왜 소미의 절맥증을 치료한 겁니까? 불쌍한 아이를 아무 대가 없이 치료해 주신 분이 왜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소미는 신일의 동생입니다. 신일은 제가 고용한 사람입니다. 제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수고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정선자의 제자 분은 저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제가 왜 사천성까지 가서 그 수고를 해야 합니까?”
대정선자는 생애 처음으로 화가 났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정말 무도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실력행사를 해서라도 천악을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의 막강한 힘을 약간이나마 본 대정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다만… 이곳으로 데리고 오십시오. 신소미의 병을 발견하신 분이니 제가 한번 살펴는 주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어지는 반전이었다. 대가를 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 아니라고 말을 하는 천악을 보자 대정선자는 도대체 그가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곳으로 데려오면 치료해 주겠다는 말씀입니까?”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가져오셔야 하지요. 설마 아무런 대가 없이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좋습니다. 제가 제자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리고 군 시주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들어주겠습니다.”
대정선자가 나가고 나서 제갈지가 넌지시 물었다.
“대정선자는 아미파의 최고 장로 중 한 명이에요. 도움을 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 대하세요?”
천악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지만 아미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을 것이기에 물었다.
천악은 잠시 생각한 후 한 마디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고 제갈지는 뒤로 넘어갈 뻔했다.
“가기 귀찮다.”
“헛!”
정말 기가 차서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사실 천악은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다. 더군다나 알지도 못하는 자를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천악이 제갈지와 간간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금은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금은혜는 심각하게 의논할 것이 있는지 진지한 표정이었다.
“오늘이 수금 날이군. 돈을 가져왔나?”
금은혜가 2개월에 한 번씩 매출에 대한 수익을 천악에게 가져오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금은혜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지금 자신이 말해야 하는 것은 상가 내부의 중요한 일이었다. 제갈지가 비록 같이 지내기는 하지만 이번 일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의논드릴 일이 있는데, 제갈 소저는 자리 좀 피해 주시겠어요?”
제갈지는 혼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금은혜의 적극성을 자주 접해 본 제갈지였다. 이대로 나가게 되면 금은혜가 무슨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가뜩이나 자신은 남궁태희와 금은혜보다 뒤져 있는 상황 아닌가. 어떻게 해서든 천악과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애정전선을 더 끌어올려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제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인가요?”
“사적인 대화는 아니에요. 심각한 일이니까 물고 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제갈지에게 냉동수레에 대한 것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사실 금은혜가 금천상가와 관련 있다는 것 자체 비밀이었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새어나가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악독한 놈일수록 살인멸구를 즐기는 이유가 바로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 때문이었다.
“나가봐라.”
“하지만……?”
“공적인 일이다.”
천악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한 번 말했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제갈지가 들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천악 자신도 금천상가와의 일을 여러 사람이 알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제갈지는 또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하지만 더 해봤자 자신만 초라해질 뿐이었다.
그녀가 속으로 분을 삭이며 나가자 금은혜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넌 나한테 안 돼!’
지금까지 그녀의 상대는 남궁태희밖에 없었다. 제갈지는 논외였다. 감히 어디서 주제파악도 못 하고 자신이 점찍은 상대에게 집적댄단 말인가!
“말을 해라.”
“표행에 습격이 있었어요. 그 일로 당분간 냉동수레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상태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돈이 전보다 더 적어요.”
“습격? 누구 짓인지 아는 건가?”
“그게… 의심 가는 곳이 있기는 한데 물증이 없어요.”
금은혜는 이번 피해에 대해 세세하게 얘기했다.
금은혜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천악도 호기심이 동했다. 자신이 한 일을 방해한 놈들이 누군지 궁금했다.
금은혜가 가져오는 돈이 상당한 액수라고 해도 천악이 가진 돈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적은 돈이라도 그 돈이 천악에게 들어오는 돈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즉,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귀찮기는 하지만 한 번의 수고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동안 금은혜가 철광석 등 필요한 재료를 구해 줘서 일을 편하게 했으니 그에 대한 보답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겨울이 완전히 온 것은 아니니 한 번 정도는 표행을 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놈들이 또 공격해 올지도 몰라요.”
“내가 원하는 일이다.”
“예? 그게 무슨……?”
천악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금은혜가 되물었다. 상행위를 할 경우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데 다시 표행을 하라는 천악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큰 표행을 계획하고 은밀하게 소문을 내라. 대놓고 습격할 정도면 자부심이 상당한 놈들일 것이다. 이번 표행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시하고 덤벼올 가능성이 크겠지.”
천악은 금은혜의 말을 들으며 가능성을 제시했다. 물론 그 가능성이 모두 맞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계획해 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금천상가의 표두와 표사들의 실력으로는 놈들을 막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요.”
일급표사들을 순식간에 도륙한 놈들이다. 숫자가 스무 명이라고 가정했지만 더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상가에서 운영하는 금천표국의 표두와 표사들을 모두 잃으면 그 손해는 상상할 수 없는 액수가 된다. 또한 상가 자체의 운영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된다.
사람 하나 구하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키우려면 시간과 돈이 천문학적으로 든다. 금천표국은 정예의 표두와 표사로 이루어졌다. 어린아이들을 키워서 지금에 이른 것이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기에 금은혜로서는 쉽게 천악의 결정을 수락할 수 없었다.
천악도 그걸 알기에 한 가지 마법 물품을 아공간에서 꺼냈다. 공간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팔목에 차는 보호대가 나왔다.
금은혜는 실망했다. 뭔가 굉장한 것이 나올 줄 알았는데 겨우 팔목 보호대(아대)였다.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물품이 나오자 금은혜는 아리송했다. 팔목 보호대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걸로 뭘 하라는 거예요?”
“표행을 이끄는 특급표두에게 차라고 하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팔목 보호대에 내공을 주입하라고 해.”
“그게 다예요?”
“표행을 하게 되면 알 거다. 만약 손해가 나면 내가 그 손해를 물어주지.”
천악의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만약에 상단에 피해가 가면 금은혜 자신으로서는 천악에게 빚을 지울 수 있었다.
금은혜는 곰곰이 생각하고 결정했다.
“그럼 약속한 거예요?”
“물론이다. 다만 팔목 보호대에 내공을 반드시 주입하라고 해. 알겠지?”
“알았어요. 제가 확실히 명령할게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가보는 게 좋겠군.”
겨울이 다가오기 일보직전이었다. 표행을 늦출수록 기회가 적어진다. 대규모로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안전한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상당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성공한다면 금천상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금은혜도 그걸 알기에 아쉽지만 금천상가로 가봐야 했다. 천악과 같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