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15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15화
희불승 연광(煉光) (2)
전음입밀(傳音入謐).
내공이 30년은 넘어야 사용할 수 있는 고급기술 중 하나다. 특히 내공이 1갑자가 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의사전달이 쉽지 않다. 당연히 일류에 들어야만 전음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전음은 시전자가 원하는 자에게만 들을 수 있도록 내공을 조율하여 초음파를 형성하는 것이다. 내공에 의한 소리의 전달이 가장 매끄러울수록 최고급 전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 드는 자는 극히 드물다. 소수의 특혜 받은 자들만이 전음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하수들은 전음을 사용하기를 원하지만 일정 수준의 내공과 깨달음이 없기에 사용할 수 없다.
하수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고수에게 전음은 전달 수단일 뿐이다. 이미 경지에 들어 자주 사용하는 것을 가지고 대단하다 여기지 않는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였다.
그럼 희불승 연광은 어떤 자일까!
그는 반야금강대력신공이라는 소림 최고의 신공을 연성한 고수다. 나이가 마흔이지만 그 나이 또래에 적수가 없는 경지였다. 화경에 이른 남궁태희조차 연광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무걸개 추상락이 알았다면 한판 뜨자고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광은 전음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된다.
물론 연광이라고 해도 소림사 최고의 전음입밀이라는 혜광심어(彗洸諶齬)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전음은 어찌되었든 음파의 전이를 통해 소리가 귀로 들어가게 되는 수법이다. 반면에 혜광심어는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에 전달하는 심언(心言)이라고 볼 수 있다.
심언의 경지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무공의 경지와 심언의 경지는 차이가 존재한다. 마음의 수양이 극도로 단련되었을 때 비로소 그 힘이 발휘될 수 있다.
연광은 진삼의 옆에서 느긋하게 전음을 남발하고 있었다.
[군 시주는 여행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
물론 천악은 대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연광은 지속적으로 전음을 사용했다. 천악이 통하지 않자 그 옆의 남궁태희에게 뜻을 전했다.
[호오, 소저가 바로 빙화 남궁 소저였구려. 그 나이에 벌써 검후의 소리를 듣다니 대단합니다.]
남궁태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말 많은 남자는 딱 질색이었다.
[제 사부는 바로 소림 최고의 승려이자 부처의 화신이신 견오대사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하나밖에 없는 귀염둥이 제자가 바로 저입니다. 참고로 저의 배분은 각 문파의 장문인보다 같거나 높습니다. 아, 물론 제 위치가 높다고 해서 대우를 받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
한동안 남궁태희는 마지못해 대답하다가 질려서 전음을 닫았다.
그러자 연광의 전음이 다음 목표를 향했다. 이번 목표는 제갈지였다.
[오오, 소저가 바로 지낭이었습니까? 어쩐지 볼 때부터 학식이 철철 넘친다 했습니다. 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가 어린 시절부터 장경각과 학술관을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책을 탐독했습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제가 관에 출가를 했다면 장원급제는 따놓은 것과 다름없지요. 제갈 소저가 보기에 어떻습니까?]
제갈지는 난감했다. 연광의 위치가 너무 높아서 함부로 대답할 수도 없었다. 소림사의 방장과 맞먹는 연광의 배분이었다.
하지만 너무했다. 승려가 하는 말치고는 자화자찬이 너무 심했다. 듣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었다.
[아미파의 운정 소저라고 하셨습니까? 한동안 소림에서 아미파와 교류가 뜸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아미파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런데 불교에 귀의한 여승들께서 저의 듬직한 신체를 보고 반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아 걱정입니다만.]
그나마 운정은 달랐다. 다만 몸이 회복된 지 얼마 안 돼 전음을 할 수 없었다.
“저는 전음을 못 합니다.”
목소리로 답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전음을 못 하니 당연히 대화에서 제외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표는 금은혜였다. 금은혜는 한 마디로 답을 해버렸다.
[시끄러!]
강호의 배분이라고 해봤자 금은혜의 신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금은혜야말로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위치였기 때문이다.
한 번에 무시당한 것을 생각하면 민망하기도 할 텐데 여전히 연광은 전음으로 떠들어댔다.
마부 진삼은 옆에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연신 웃고 있는 연광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 * *
남겨진 자들. 그들은 거동을 할 수 없었다. 몸이 만신창이였기에 움직이려면 최소 한 달은 요양을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단전이 망가지지 않은 것이다. 내공이 사라졌다면 절망 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 깨어난 이자청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악과의 대결을 다시 떠올려 봤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해본 것이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마치 거대한 철벽이 가로막은 것처럼.
옆에서 진선아가 이자청을 극진하게 보살폈다.
그녀는 하루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얼굴은 수척해지고 밝았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 연민만이 남아 있었다. 천악으로 인해서 인생 공부를 제대로 한 셈이었다.
“내가 기절하고 나서 어떻게 됐지?”
“청 사형이 기절하자 나 공자가 그를 막았어요. 그리고 그는 가로막는 나 공자의 팔다리를 부러뜨렸어요.”
“그래서, 그 뒤는?”
“소림사의 희불승 연광이 나타났어요. 그는 우리의 비무를 다 보았고, 공증인이 되어준다고 했어요.”
“뭐, 뭐라고? 소림이 왜 그놈의 편을 든다는 거야?”
이자청은 천악에게 당한 일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대로 넘어가면 구대문파에서 화산파의 위신이 떨어진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하필이면 소림사의 무승이 그들의 비무를 모두 지켜본 것이다.
“본산으로 돌아가서 소림에 항의해야겠다.”
같은 구대문파이면서 타인을 돕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이자청의 말에 진선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어찌되었건 사실을 말해 주어야 했다. 잘못하다가 머리가 박살나면 그땐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지 않은가.
진선아의 말을 들으며 이자청은 심하게 몸을 떨었다.
“그, 그럴 수가! 그놈이 우리에게 사악한 금제를 가했단 말이냐?”
“그래요.”
자신에 대해서 발설하면 머리를 터뜨린다니, 악마와 같은 짓이었다.
“풍운마룡을 건드리는 게 아니었다.”
그제야 이자청은 엄청난 자를 건드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자가 허풍쟁이라고 소문이 나다니, 말도 안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에 악마의 존재를 알려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염불이 나도 상대는 어찌해 볼 수 없었다. 그게 이자청의 한계였다. 천악은 인간의 범주로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지는 존재였다.
* * *
오물오물!
냠냠 쩝쩝!
“아이구, 입에서 살살 녹는구나!”
입 속으로 음식이 넘어가는 순간 군침과 더불어 온갖 식욕이 난무했다. 노인은 살아생전에 이토록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었다.
불고기와 더불어서 양념갈비까지 어느 것 하나 정성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최고 등급의 소를 적절한 양념에다가 버무려서 불판에 구우니 그 맛이 천하일미(天下一味)라 할 만했다.
며칠 사이에 노인의 입맛은 고급이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절대적인 수단이 사라졌기 때문에 일어난 반감 때문이었다.
갑자기 너무 깨끗해지다 보니 인생이 허탈해졌다. 어디 가서 화를 풀려고 해도 핑계가 별로 없었다. 일의 원인을 따지고 항의해 봤자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다. 강호십대고수이자 개방의 태상장로이면 뭐 하는가! 개뿔! 한 수도 상대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배터지게 밥이나 먹자 했는데, 이게 웬걸! 너무 맛있었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 것이 먹으면 먹을수록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개왕 궁휼은 약이 올랐다. 제자 녀석이 매일 이곳에서 이런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고 생각하니 약이 올라 죽을 것 같았다.
“한 그릇 더!”
“사부, 하인들 많은데 왜 자꾸 저를 시킵니까?”
“제자가 사부 수발드는 게 뭐가 어때서? 냉큼 갔다 와!”
추상락은 천악이 여행을 가자 없는 동안 천국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부의 구박이 장난 아니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는 반면, 수련을 핑계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
사부가 한순간에 깨끗해지고 나서 일어나는 잠시간의 현상이라고 여기려고 했지만 날이 갈수록 구박이 심했다. 완전히 계모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더구나 또 한 명의 계모(당지독)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사이가 안 좋다고 알려진 두 사람이 어느새 짝짜꿍이 맞은 것이다.
“어이, 궁휼! 내가 뭘 가져왔는지 보라고!”
뽕!
당지독이 들고 있던 작은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청아하고 톡 쏘는 향이 진동을 했다. 냄새만으로 사람을 죽일 것 같은 그윽하고 달콤한 향기였다.
“오오, 이런 주향이라니……!”
“천악이 놈이 숨겨놓은 것을 내가 가져왔지. 나도 몇 번 맛보지 못한 극락매화주라는 거다. 자, 한잔하자고!”
“넌 뭐 하냐? 어서 안주 더 가져와야지.”
“그래, 그렇게 놀면 안 되지.”
잔과 잔에 술을 채우고 둘이 잔을 부딪쳤다.
궁휼과 당지독은 연신 탄성을 질렀다.
“크아아!”
“정말 좋다. 이런 술이 있다니!”
“무릉도원이 여기로구나.”
아주 살판이 난 두 사람이었다.
천악이 없는 이 장원의 주인은 바로 늙은 계모 두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 이 둘은 그야말로 지존무쌍(至尊無雙)했다. 계모 밑에 처량 맞기 짝이 없는 사람은 추상락이었다.
“자, 한 잔 더!”
“자넨 정말 맘이 좋아.”
개왕은 거지답게 존심도 없었다. 엊그제까지 너 죽고 나 죽자던 사람이 이제는 누구보다 친해 보였다.
“어허, 그걸 인제 알았나. 먹고 죽자고!”
처음에 천악이 당지독에게 당부할 때 개왕을 잘 감시하라고 했다. 확실히 감시는 제대로 하고 있는데 너무 천하태평이었다. 서로 죽이 맞아서 장원을 제 집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지독도 할말은 있었다.
“내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지를 감시하느라 불철주야 노력했느니라.”
천악이 따져 물으면 이리 대답할 참이었다.
추상락은 화가 나서 더는 참기가 힘들었다.
‘내 참 더러워서!’
그렇게 좋은 술이면 한잔하라는 말이라도 하겠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말도 없이 부려먹기만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제자지만 아무런 보상 없는 무료봉사는 너무 힘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신적 피로감에 지쳐 쓰러질지 몰랐다.
* * *
밤하늘의 별이 반짝인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건만 산행(山行)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사두마차가 앞으로 갈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진 밤이었다.
한적하고 넓은 장소에 진삼이 마차를 세웠다.
천악은 당분간 빠르게 움직였다. 가는 동안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시기한 놈들이 있어서 귀찮았기 때문이다.
이제 천악이 나서는 일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 전에 여인들이 알아서 처리를 해버렸다.
숭산까지 가는 길이 열흘 정도 더 걸렸지만 하루 정도만 더 가면 숭산에 도착할 것이다.
여인들에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숭산까지 가는 동안 천악과의 달콤한 에피소드는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옆에 뚱땡이 중이 하나 있어서 발생한 문제였다. 천악은 개의치 않았지만 여인들은 안타까웠다.
그래서 연광을 대하는 여인들의 말투와 시선이 곱지가 않았다. 가뜩이나 여인들이 많은 데다가 중이 하나 더 끼니 밀월여행(?)은커녕 너무 시끄러웠다. 연광은 중 주제에 입을 쉬지 않았다.
마차에 등불을 켜고 그 주변에 자리를 만들었다.
천악은 불을 피우기 위해 주변에 있는 나무를 향해 기(氣)를 뿜어내었다. 날카로운 기운이 나무를 향해 뻗어나가자 수십 토막으로 깔끔하게 잘라졌다.
따다다닥!
잘라진 나무들이 공중으로 띄워진 상태에서 그 자리에 가지런히 모양을 만들었다. 천악은 만들어진 장작을 허공섭물을 통해 가지고 왔다.
방금 자른 나무는 잘 타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분을 완전히 빼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천악은 삼매진화를 미세하게 조절하여 장작의 수분을 공기 중으로 증발시켜 버렸다.
가볍게 한 행위지만 그 행위에 사용한 무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옆에서 떠들던 연광도 천악의 행위를 지켜보니 기가 막혔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누가 무형검기를 뻗어내어 나무를 자르고 허공섭물을 이용하여 운반을 하는가.
더군다나 마지막에 보여준 삼매진화는 압권이었다.
삼매진화의 불길은 쇠도 녹인다고 알려졌다. 그런 기운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은 강하게 태우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내공 소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최소 5갑자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천악은 내공을 폭포수처럼 쓰면서도 지치기는커녕 무표정했다.
‘저래도 되는 거야?’
무공이 높은 것은 알겠지만 무공을 너무 남발한다고 생각한 연광이었다.
천악은 캠프파이어 할 때처럼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붙였다. 그리곤 아공간을 열어 그 안에 준비한 돼지 바비큐를 꺼냈다. 이미 초벌구이를 돼 있는 돼기고기여서 조금만 익혀주면 되었다.
천악이 돼지의 몸에 긴 창을 박아서 장작불 위에 양 옆으로 걸어놓았다.
바비큐의 맛은 바로 기다림과 양념이 좌우한다. 준비한 양념을 잘 발라주자 기가 막힌 냄새가 산 속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주변의 짐승들은 이곳으로 오라고 부르는 듯한 행위였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이곳으로 오지 못했다. 천악이 뿜어내는 기운으로 인해 어떤 짐승도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연광은 천악이 공간을 여는 것을 본 순간 입을 크게 벌렸다. 강한 것은 둘째치고 이제는 공간을 여는 술법까지 사용하였다.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