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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114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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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14화

희불승 연광(煉光) (1)

 

 

네 명의 여인 중에 오직 운정만이 천악의 손속에 잔인하다 느낄 뿐이었다. 그녀는 천악이 이처럼 과하게 손을 쓸 줄은 몰랐다. 거기다가 고독까지 사용하다니!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한편 천악의 행동에 통쾌함을 느꼈으니 그녀도 별종은 별종이었다.

 

남궁태희와 금은혜, 제갈지, 운정은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다. 이제 정리가 되었으니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일만 남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천악은 아직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은 아무도 없는 숲이었다. 숲으로 가려져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인기척이나 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천악의 손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슈우웅!

 

파아앙!

 

천악이 쏟아낸 야수의 인이 숲을 가르고 안으로 들어가자 폭음이 들렸다.

 

폭음과 함께 승복을 입은 스님이 툴툴거리며 나오는 것이 아닌가!

 

“휴우, 죽을 뻔했네. 무턱대고 살초를 날리다니, 그러다 제가 죽으면 시주는 지옥에 갑니다.”

 

특이하게 생긴 중이었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었고, 입가에는 미소가 자리 잡았다. 또한 얼굴이 전체적으로 찐빵 같았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뚱뚱한 중이었다.

 

천악은 그 중을 보면서 만화책에서 나온 녀석을 보는 줄 알았다. 학창시절 읽었던 ‘용공(龍球)’의 최종 보스와 비슷하게 생긴 놈이었다. 항상 웃고 있지만 내면에 숨겨진 힘은 무시하지 못했던 놈이었다.

 

“누구십니까?”

 

천악은 꼭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높인다. 그리고 천악의 판단 여하에 따라 대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예의는 형식이 아니라 진심이 통해야 예의라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좀 전에 죽을 뻔한 중입니다.”

 

“죽을 정도의 공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살초가 아닙니까? 손이 저려 죽을 뻔했습니다.”

 

천악은 상대의 역량을 생각해서 가볍게 야수의 인을 시전했다. 그 위력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악의 입장에서였다.

 

특히 남궁태희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녀의 기척에도 스님은 잡히지 않았었다.

 

그녀는 화경의 경지에 이르면서 십대고수를 제외하면 기척을 모두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삼영살과의 훈련 이후로 감각이 더욱 예민해졌다. 그럼에도 갑자기 나타난 중의 기척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누구지? 찐빵처럼 생겨서 웃는 중이라니!’

 

그때 남궁태희의 뇌리에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여인들 중에 제갈지가 가장 먼저 알아챘다.

 

갑자기 나타난 중은 소림사의 중이었다. 특히 항상 웃고 있다고 해서 희불승(喜佛僧)이라는 별호를 얻은 특이한 중이었다. 희불승의 법명은 연광이었다.

 

연광이 유명하게 된 것은 그가 신승 견오의 제자이기 때문이었다. 신승은 소림이 자랑하는 고수이자 전대의 고수였다.

 

소림사는 중원 무림의 성지다. 그 위치와 힘은 타 문파와의 비교를 불허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천하의 모든 무공은 소림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당연히 천하의 모든 무공에 대한 무리(武理)가 소림에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중원에 십대고수가 있다면 소림사 안에는 그와 비견되는 또 다른 고수가 존재한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 소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신승이었다. 신승의 무공은 작금의 천마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지만 중이 명예를 가져서 무엇 하냐며 십대고수에 오르는 것을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군 오라버니, 그분은 소림사의 희불승 연광법사예요.”

 

제갈지가 희불승의 정체를 천악에게 말을 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소림사의 연광이라는 땡중입니다. 그런데 시주는 손속이 너무 잔인하십니다.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적당히 해도 좋지 않습니까!”

 

“웃으며 넘어가지 말아주십시오. 아직 제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숨어서 지켜본 이유를 말해 주어야겠습니다.”

 

천악은 집요했다. 이유를 꼭 알아야겠다는 뜻이었다.

 

희불승은 웃고 있기는 하지만 속으로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좀 전에 갑자기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날린 강기에 의해 받은 충격이 장난 아니었다.

 

그는 반야금강대력신공(般若金剛大力神功)의 성취가 10성을 넘어가면서 몸이 금강불괴(金剛不壞)에 이르러 있는 상태였다. 겉으로는 찐빵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의 몸은 모든 것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단련이 되어 있었다. 그런 반야금강대력신공이 한순간 흔들리고 깨질 뻔했지 않은가!

 

그런데도 상대는 가볍게 날린 일 수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전력을 다 쏟았다면 숨이라도 헐떡여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지금 천악은 너무 멀쩡했다. 호흡 한 톨 거칠어지지 않았다.

 

괴물이었다. 더군다나 집요하기까지 했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망설임 없이 손을 쓸 것 같았다.

 

지금 연광은 스승의 명을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의 스승인 신승은 천기를 헤아렸다. 그러다 알 수 없는 불길한 징조를 발견하곤 그리로 연광을 보낸 것이다. 연광은 불길한 기운이 뻗어 나오고 있는 곳을 향해 가다가 천악을 만난 것이다. 우연이지만 연광으로선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스승의 명을 받고 한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것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천악의 눈이 연광의 눈을 바라보았다. 야수안이 연광의 눈을 꿰뚫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악의 절대영안 야수안이 연광의 심령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했다. 물론 야수안의 위력을 더욱 강하게 하면 제압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하게 되면 정신이 파괴되어버린다.

 

천악은 한순간이지만 연광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허억!’

 

심령을 파고드는 천악의 능력에 연광은 기겁했다.

 

연광의 심령은 바로 자미성(紫微星)이었다. 자미성의 정기를 받은 자는 소림의 무공을 익히는 데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자미성 자체가 부처를 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미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자의 심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악한 사술이 통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미성 자체가 항마력(降魔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광의 정신을 휘저어 버리는 천악의 가공할 능력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강하고 약하고의 차원이 아니었다. 연광은 신승이 예견한 천살성(天殺星)을 찾기 위해 나선 것이다. 공교롭게 만난 것도 천악이 풍겨낸 기운이 너무 강해서 연광 자신도 모르게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천악이 천살성을 이어받은 자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천살성은 태생 자체가 살기를 품고 있다. 그 살기는 인간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연광의 신체는 자미성체(紫微星體)였다. 상대가 천살성이면 자신의 몸이 저절로 반응할 것이라고 사부가 말했었다. 그런데 천악에게서 그런 느낌은 없었다. 광폭한 기질은 있으나 천악이 천살성은 아니라는 말이 되었다.

 

천살성이 아니라고 해도 천악은 무서운 인물이었다.

 

 

 

천악은 처음부터 누군가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성력을 품고 있는 듯한 기운이 지켜보고 있기에 내버려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상대는 소림의 승려라고 했다. 천악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소림사의 중이 비무를 모두 지켜봤으니 나중에 증인이 되어주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로써 진선아를 비롯한 녀석들은 천악에 대한 말을 하기가 더 힘들 것이다.

 

“뭐, 좋습니다. 지금까지 지켜봤으니 이번 비무가 공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겠군요. 그러니 공증인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윽!’

 

연광은 속으로 혀를 찼다.

 

설마 이런 식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몰래 지켜보고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불교의 기본 교리조차 어기는 것이 된다.

 

하지만 공증을 함으로써 벌어지는 책임을 자신과 소림이 져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잘못되면 같은 구대문파인 화산파, 종남파, 형산파와 척을 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연광은 천악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 알겠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거절하면 자신은 물론 소림사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본능적인 경고가 울렸다.

 

“그럼 이만 우리는 가보겠습니다.”

 

천악이 돌아서서 가려고 하자 연광은 난처했다. 천악이 가자 여인들도 그 뒤를 따랐다.

 

 

 

남겨진 연광은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원래는 숨어서 나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미 나왔고, 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소란스러운 사건의 공증인이 되어버렸다.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당사자인 천악이 자리를 떠나자 남겨진 일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부상자들인 이자청, 장일청, 나민관을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진선아가 바라보는 눈이 좋지 못했다.

 

‘역시 남의 일에는 참견하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숨어져 지켜보다 덤터기를 다 쓰고 말았다. 구박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미운 경우였다.

 

“흑! 으아아앙!”

 

진선아는 결국 분노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연광이 능글능글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우는 여자를 달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승려로서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탓이기도 했다.

 

‘난감하군!’

 

“소저, 우선은 환자들을 옮기는 게 먼저……”

 

“으아아아앙!”

 

연광이 말을 하자 진선아는 더 크게 울었다. 연광은 진선아도 달래고 부상자도 들고 날라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아이구, 뒷골이야!’

 

피가 머리 위로 상승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천악은 금성객잔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여행은 느긋하게 했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구경을 하면서 가도 황금비도의 보물은 도망치지 않는다. 천 년 동안이나 풀리지 않은 전설이 하루아침에 누군가 풀어서 같은 시간에 마주친다는 것은 확률상 전무했다.

 

그리고 보물에 대한 소유권이 확실하다고 해도 그것에 집착할 생각은 없었다. 금황의 보물이 있건 없건 존재의 유무는 개의치 않았다.

 

금성객잔의 주인인 유승관은 문을 나가는 직전까지 극진한 마중을 했다.

 

“다음에도 또 들러주십시오.”

 

끄덕!

 

천악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두마차에 타자 그 뒤로 여인들이 승차했다. 마차가 움직이기 직전에 그 뒤로 희불승 연광이 달려왔다.

 

“이보시오!”

 

진삼은 웃는 얼굴을 한 뚱땡이 중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가는 길이 같으면 나 좀 태워주면 안 되겠소?”

 

“장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진삼이 천악에게 물어보기 위해 마차의 문을 열었다.

 

천악은 문 밖의 희불승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태워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몸집이 너무 컸다. 비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으니 마차 안이 아무리 넓어도 곤란했다.

 

“어디까지 갑니까?”

 

“소림사로 돌아가니 숭산입니다.”

 

천악 역시도 숭산으로 가야 했기에 목적지가 같았다.

 

“안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마부석에 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불편할 겁니다.”

 

“아, 괜찮습니다. 저는 아무 자리나 좋습니다. 몸이 너무 무겁다 보니 걷는 것도 어렵습니다그려. 하하하!”

 

“그럴 것 같습니다.”

 

소림사의 신공을 연성한 연광이었다. 아무리 비대해도 몸 자체가 근육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무인이 걷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천악은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어제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참으로 무책임하십니다. 아미타불!”

 

어제 혼자 남겨두고 가서 고생했다는 무언의 항변을 한 연광이었다. 천악은 그런 연광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해맑게 웃고 있으니 제 성격이 얼마나 좋은지 아실 겁니다.”

 

스스로 성격 좋다고 하는 연광의 말에 천악을 제외한 여인들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굉장한 넉살이었다. 연광은 스님치고는 상당히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천악의 한 마디에 연광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혹시 눈을 뜨면 인상이 확 바뀌는 것 아닙니까?”

 

‘헛! 어, 어떻게 알았지?’

 

연광의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눈을 크게 뜨면 인상이 한순간에 바뀌어서 도저히 승려답지 않았다. 눈을 뜨는 것 자체가 살성을 발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섭게 변했다. 그것이 못마땅해서 눈을 크게 뜨지 않고 그저 뜨는 둥 마는 둥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사부가 눈 뜨면 맞고 다니기 십상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 이후 항상 웃는 얼굴이라 ‘희불승’이라는 별호까지 붙은 것이다.

 

연광은 한순간에 자신의 약점을 꿰뚫어 본 천악이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닙니다. 그런 게 말이 됩니까?”

 

“그렇겠군요.”

 

천악은 연광이 용공의 최종 보스처럼 보여서 한번 찔러본 것이지 사실 유무는 관심 없었다.

 

“그럼 타십시오.”

 

“감사합니다. 하루의 자비가 사후세계를 결정합니다. 소승에게 자비를 베풀었으니 시주는 반드시 극락왕생할 겁니다. 아미타불!”

 

연광 자신에게 선행을 베풀었으니 불타의 세계로 간다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잘도 하는 것으로 보아 연광은 땡초 기질이 다분했다. 나중에 음주가무는 물론 주색잡기까지 서슴없이 하는 땡초의 초기 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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