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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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12화
오악검파의 후기지수들 (3)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천악의 염장질은 그치지 않았다. 합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악은 그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여인들과 음식을 서로 먹여주고 받아먹는 모습만을 연출할 뿐이었다.
이자청은 그런 천악이 못마땅했다.
‘저놈을 그냥 둘 수 없지. 저런 여인들에게 부족한 상대란 걸 깨닫게 해주마!’
이자청은 천악을 밥버러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많은 것 빼고 다른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투성이라 생각했다. 그런 천악이 저런 아름다운 여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자청은 옆에 앉아 있는 홍매화 진선아를 보았다. 진선아도 분명 아름다운 편이었다. 하지만 천악의 옆에 있는 여인들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들은 배경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기회는 하늘이 준다고 하지 않는가. 이자청은 이것이 자신에게 온 기회라고 생각했다.
“풍운마룡이라 불리는 것 같은데, 맞소?”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허허, 정파인이 마룡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소이다.”
“굳이 본인을 정파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천악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정파의 여인들과 버젓이 함께 다니면서 한다는 소리가 정파인이 아니라고 하니 듣고 있던 이자청은 기가 막혔다. 천악의 답변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이었다.
“그럼 마도인이라는 말이오?”
“저는 마도인, 정파인이라는 구분을 하진 않습니다.”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자청의 말투가 달라졌다. 상대가 잘 넘어오고 있자 이제 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런 놈과 같이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여인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위험하지 않습니다. 무림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천악은 여전히 차분했다.
“이미 무림에 발을 들여놓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발을 들여놓았다고 반드시 무림인이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사람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제 별호가 어떻든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 그 입심만큼 실력이 되는지도 보고 싶은데, 가볍게 비무를 해보는 게 어떻소?”
이자청은 천악을 허풍쟁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머지 청년들도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천악의 여인들도 공통적인 생각이 있었다.
‘미쳤구나!’
그녀들은 어디서 비싼 밥을 처먹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냐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한동안 이자청의 도발이 너무 황당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천악은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비무라… 좋습니다.”
천악이 너무 쉽게 허락해 버렸다.
이자청은 가소롭다는 듯이 천악을 보았다. 비무라고 하지만 진검비무였다. 실수로 다치거나 불구가 된다고 해도 누구를 원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식사를 하고 금성객잔 옆에 마련된 장소에서 비무를 해봅시다.”
“알겠습니다.”
“잠깐!”
“이 형, 이 비무는 제가 먼저 하는 게 어떻습니까? 화산파의 매화검수가 먼저 나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형산파의 장일청이 나섰다.
장일청은 항상 이자청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회마저 이자청에게 빼앗기게 되면 앞으로 자신은 더욱더 움츠러들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천악과 비무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장일청의 말에 이자청은 짜증이 났다. 여기서 거절하면서 자신은 속 좁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양보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좋소. 그러면 장 형이 먼저 하시오.”
“고맙소!”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에 또다시 여인들은 황당해졌다. 저것들이 저승 문턱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 * *
금성객잔 주변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천악은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 조용한 장소에서 하자고 했다.
그 말에 이자청을 비롯한 청년들은 비웃음을 내비쳤다. 실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 없다는 말로 생각한 것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넓은 아량을 여인들에게 보여주려는 듯 선뜻 천악의 제안을 수락했다.
마차를 대놓고 한적한 장소를 찾아 걸어갔다.
조금 걷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사람들도 없었고 조용하기까지 했다. 도시라고 해봤자 천악이 보기엔 그저 그랬다. 현대를 살았던 천악에게 지금의 도시는 시골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걸어도 외진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비무를 하면 되겠소.”
“시작하지요.”
장일청이 공터의 중앙으로 들어서자 천악도 천천히 중앙으로 다가가서 마주섰다.
장일청의 표정은 싸늘했다. 별 볼일 없는 놈이 가진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놈에게는 세상의 쓴맛을 보여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천악이 맨손으로 나오자 장일청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기를 드시오.”
“저는 권법을 씁니다. 그러니 제 손발이 무깁니다.”
“흠, 후회하지 마시오.”
“괜찮습니다. 비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물론이오.”
천악의 의미심장한 말에 장일청이 비꼬는 듯이 대답했다.
‘비무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네놈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자청은 비무보다는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걱정하는 듯한 표정들이 아니었다.
장일청이 비록 자신보다 못하지만 지닌바 실력이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다. 최근 형산파가 다른 오악검파에 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일청은 형산파의 모든 노력을 받아온 후계자였다. 형산파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뛰어난 제자를 발굴해 내려고 노력을 많이 기울였고, 그 결과물이 장일청이었다.
장일청은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 있기는 하지만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하는 건가? 아니면 상대의 실력을 모르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요 근래 강호에 진동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남궁세가에서 검후가 탄생했다는 말 아닌가.
‘빙화 역시 과장인 건가?’
소문의 진위는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자청은 자신이 빙화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무당일검 청풍이 남궁태희에게 져서 폐관수련 중이라고는 하지만 내심 자신은 무당일검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일청은 고집이 세지만 승부에서까지 방심하진 않았다. 오만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승부에서 방심은 필패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전 형산파가 힘이 기운 것은 바로 방심 때문이었다.
형산파가 내세우는 형산제일신검 장현관이 한순간 방심을 해 태산파의 장문인 조운환한테 진 것은 형산파에 있어서 뼈아픈 실책이 되었다. 그로 인해 장현관은 내공에 손상을 입었고, 이후 내력을 일으킬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몇십 년간 형산파는 계속 기울게 되었다.
장일청이 그 일을 계속 생각하는 것은 장현관이 그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실수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검을 고쳐 잡은 장일청은 천악을 노려보았다. 천악은 여전히 여유만만한 자세였다.
그 모습이 아니꼽기 짝이 없었다. 가진 것이 많은 놈을 부셔버리고 싶은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철저하게 부숴주마!’
형산파의 무공은 조화일기공(調和一氣功)이라는 특수한 내공심법으로 이루어진다. 오악검파의 한 문파답게 검법에 있어서 특징이 있었다.
형산파의 생성과 맞물리는, 산에서 굽이굽이 흘러내려오는 물줄기의 형상을 따 검법이 만들어졌다. 유수검법(流水劍法)이 바로 형산파의 검법이었다.
유수만천(流水萬千)이 장일청의 검에서 뻗어 나왔다.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는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마련이다. 그 갈라지는 형상에 따라 검이 순식간에 여러 번의 검속으로 이어졌다.
슈슈슉!
빨랐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넋 놓고 당한다고 해도 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천악의 가슴을 노리며 들어오는 장일청의 손속은 가차 없었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천악이 앞으로 움직였다.
다가오는 장일청의 검을 보며 달려들자 이자청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고작 저런 실력으로……!’
천악이 앞으로 가다가 앞에 돌부리에 잠시 발이 걸리는가 싶더니 휘청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휘청거림으로 인해 오른쪽으로 완벽하게 장일청의 검을 피해 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천악의 왼쪽 다리가 장일청의 오른쪽 다리를 걸어버리는 형상이 되었다.
휘청!
빠르게 찔러 들어오는 힘 앞에서 장일청은 중심을 완벽하게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에 장일청은 힘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천악은 휘청거리는 몸을 다시 움직이며 그 자리에서 장일청을 넘어뜨리고, 그 위로 쓰러지는 형상이 되었다.
천악은 쓰러지면서 팔꿈치로 정확하게 장일청의 등 뒤 척추를 가격했다.
쿠웅!
우드득!
“커어억!”
척추의 중앙을 정확하게 가격 당한 장일청이 비명을 질렀다.
전신이 마비가 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천악이 장일청의 목을 움켜잡았다.
움켜잡은 상태로 힘을 주자 그 자리에서 장일청이 게거품을 물며 기절해 버렸다.
털썩!
천악은 일어서며 힘을 잃은 머리통을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놔주었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장일청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척추의 충격으로 인해 당분간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순간적으로 호흡이 끊기면서 정신까지 충격을 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심각한 상처였다.
천악은 무심한 눈으로 장일청을 바라보았다.
‘죽지는 않을 거다.’
천악이 계획적으로 무너뜨린 것과는 다르게 보는 사람들은 그게 천악의 실력이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
이자청은 이를 갈았다.
그는 천악이 우연하게 발에 돌이 걸려 피하고, 그 상황에서 몸이 엮이는 바람에 이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비겁하게 쓰러져 있는 상대의 목을 조여 기절시키다니, 무인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이자청은 천악이 전혀 미안해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자 화가 치밀었다.
“하하! 제가 이겼습니다.”
“이번에는 나와 비무를 해보자.”
이자청은 천악이 행운으로 이긴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화가 났다. 그래서 그 행운이 더는 이어지지 못하게 비무를 신청했다.
“좋습니다.”
천악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천악에 비해 차갑게 살기를 품는 이자청이었다.
이자청의 모습만 보면 생사대적을 대하고 있는 듯했다.
“그 전에, 왜 그렇게 한 거지? 쓰러진 상대를 굳이 목을 졸라 숨을 조일 이유가 있었나?”
넘어진 상대에게 수는 쓰는 짓은 하류잡배나 하는 행동이었다. 비무에서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자청은 천악의 행위를 힐난하고 있었다.
“상태를 보니 다시 덤빌 것 같더군요. 해봤자 소용없을 텐데 굳이 수고할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준 것뿐입니다.”
“운으로 이겨놓고서도 그런 말을 하다니, 천하에 허풍쟁이라고 소문이 난 것도 과언이 아니구나.”
군천악은 이자청이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탓하지 않았다. 사실을 안다면 이토록 태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시작할까요?”
“좋다! 어디 그 잘난 실력을 볼까?”
이자청은 검을 뽑으며 천악에게 들어와 보라고 하였다.
“3초를 양보해 주마.”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천악은 귀찮은 것은 싫어한다. 상대방이 원하는데 굳이 하지 말라고 할 이유도 없었다.
천악의 신형이 앞으로 움직였다. 몸이 움직이는 가운데 손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뻗어나가는 동시에 기운이 일어나 공간을 갈라버렸다.
쌔애앵!
획!
야수의 인이었다.
갈라진 공간이 좌우로 벌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자청은 본능적으로 앞에서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전율은 짧지 않았다.
피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자 급히 구궁보(九宮步)를 시전했다. 구름 위에 지어진 아홉 개의 집을 뜻하는 보법이었다. 구름 위에서도 집을 지을 정도로 가볍고 빠르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화산파가 자랑하는 보법 중 하나였다.
카앙!
이자청이 미처 피하지 못한 순간에 검면을 스쳐가는 날카로운 기운과 맞부딪쳤다.
그 기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고작 스친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헛!”
주르르르륵!
식은땀이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흘러 나온 땀이 바로 식어버렸다. 그러자 차가운 기운이 주변을 감쌌다.
무표정한 천악의 손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신형은 가만히 둔 채 야수의 인만을 출수했다.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내지르는 기운이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피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두 동강이 나버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