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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109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09화

전설을 찾아서 (4)

 

 

천악이 매섭게 당지독과 궁휼을 바라보았다.

 

움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당지독과 개왕은 몸을 떨었다. 어찌나 매섭고 차가운지 눈발이 날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개왕은 누구보다 놀라고 있었다.

 

‘언제 나타난 거야?’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다. 말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궁휼은 귀신같은 천악의 능력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장원을 비우는 동안 장원을 잘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그게 기물 파손에 대한 대가입니다.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뚜둑!

 

천악이 손을 가볍게 풀었다. 거절하면 그냥 두지 않는다면 협박이었다.

 

“하겠네!”

 

별거 아니기에 당지독이 빨리 대답했다.

 

“나도 하겠네!”

 

“그럼 이번은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장원 내 싸움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만약 싸움을 하더라도 기물 파손은 절대 안 됩니다.”

 

장원을 건드리지 않고 싸우면 봐준다는 말이지만 개왕과 천수암제와 같은 절대자들의 대결이 그처럼 멀쩡하게 끝이 날 수 있는가! 천악의 말에 숨겨진 뜻은 싸움으로 인해 장원이 파손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사실 천악은 이 둘의 대결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장원을 비우는 동안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 모든 것을 다 지키는 것은 부담이 가는 일이다. 그에 따라 누군가는 장원을 지켜주어야 했다. 그 일에 적당한 자는 당지독이었다.

 

당지독 정도라면 안심이었다. 그와 더불어서 세트로 개왕과 추상락, 삼영살이 있으면 장원의 안전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될 것이다.

 

이때 대정선자가 걸어왔다.

 

“소승도 장원을 지키는데 한 몫 했으면 하오.”

 

그녀는 장원을 지키는 대신 한 가지 부탁을 하려고 했다. 원래 이 부탁은 운정이 부탁을 해서 한 것이다.

 

“대정선자께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천악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럼에도 대정선자는 다시 한 번 말을 했다.

 

“내 제자는 항상 몸이 약해서 제대로 된 여행 한번 해보지 못했소. 이번에 장주께서 가시는 여행에 제자를 데리고 가주었으면 해서 하는 부탁이오.”

 

대정선자의 실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당지독과 개왕, 추상락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다. 별다른 전력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대신 할말은 해야 했다.

 

“여행은 되지만 헛된 욕심은 재앙을 부르게 될 겁니다.”

 

“제자의 여행이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뿐이오. 아미타불…….”

 

황금비도에 대한 욕심을 부린다면 그냥 두지 않는다는 천악의 경고였다.

 

이미 금황의 보물에 대한 소유권은 천악에게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발견한다면 모두 자신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아미파로서는 소유권을 주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걸 알기에 대정선자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제자가 천악과 조금이라도 친해졌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것이 아미파를 위하는 일이 될 것이다.

 

* * *

 

천악의 여행이 시작되는 바로 그날이 다가왔다.

 

날씨는 상당히 좋았다. 바람이 조금 찬 것이 단 한 가지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도 상관없었다.

 

풍운장원의 정문은 여전히 거대한 풍채와 멋을 자랑했다. 그 문 앞으로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여인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알고 왔지?’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금은혜의 생각과는 다르게 남궁태희가 온 것이다.

 

금은혜의 표정이 급변했다.

 

경장 차림의 단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남궁태희 역시 약간은 놀라고 있었다. 자신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모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대륙 사대상가의 정보력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흘러나왔다.

 

처음에 남궁태희에게 천악은 그저 자신의 가문을 무시한 존재에 불과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달라졌다. 사람의 감정이 한순간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천악의 무관심한 매력에 빠져들었던 남궁태희였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시대라고 해도 여인들 간에 우애가 반드시 좋을 리는 없다. 한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한 여인들의 치열한 암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 정도다.

 

“무슨 일로 온 거죠?”

 

금은혜는 짐짓 모른 척 물었다.

 

“군 오라버니와 할말이 있어서 왔어요. 그런데 그쪽은 무슨 일로 왔나요?”

 

“저도 군 가가에게 볼 일이 있어요!”

 

금은혜와 남궁태희와의 거리는 고작 반 장이었다. 그사이에 알 수 없는 기운이 뻗어 나와 뇌전이 치는 듯했다. 번개가 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킴에도 주변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럼 들어가죠.”

 

“그래요.”

 

두 사람은 별달리 할말은 없어 보였다.

 

 

 

풍운장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앞으로 사두마차가 이미 대령하고 있었다. 출발 준비를 이미 마치고 천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금은혜와 남궁태희도 사두마차 앞에서 천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들은 여행을 어느 곳으로 갈지 궁금하기도 했다. 매번 생각도 못한 경험을 해왔기에 기대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그녀들의 눈에 천악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천악의 주변으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들 눈에 정작 보이는 것은 단 한 명의 여인이었다.

 

‘저년은 또 누구야?’

 

‘누구지?’

 

금은혜의 표정이 급속도로 급변했다. 그것은 남궁태희도 마찬가지였다.

 

천악의 옆으로 또 다른 여인이 붙어 있었다. 제갈지는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남궁태희와 금은혜였다. 그녀의 경쟁상대로 제갈지는 한참이나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여인은 만만치 않았다. 자신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미모와 더불어서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천악의 옆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해야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천악이 마차 앞으로 가는 가운데 그 뒤로 당지독과 궁휼, 추상락, 삼영살이 따라왔다. 그들이 같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천악의 행보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다. 가장 어른은 당지독과 궁휼이 맞지만 장원의 주인은 천악이라는 것을 암중에 인정하고 있었던 것인지 몰랐다.

 

천악이 그녀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온 거냐?”

 

“여행가신다면서요. 전에 약속했잖아요, 여행가면 꼭 같이 가기로요!”

 

“음, 그런 말을 한 것 같군. 같이 가지.”

 

천악이 단번에 허락하자 제갈지는 심기가 좋지 않았다. 운정이 같이 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짜증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덤으로 남궁태희와 금은혜까지 가게 되었다.

 

천악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 정도면 중원 어디에 내놔도 남부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들 앞에서는 자꾸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배경도 밀려, 미모도 밀려, 천악과의 친근감도 밀려. 어느 것 하나 앞서는 것이 없었다.

 

‘제길!’

 

운정이 웃으면서 그녀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미파의 운정이라고 해요. 빙화 소저와 금룡화 소저시죠? 생각대로 아름다우시네요.”

 

“남궁세가의 남궁태희예요!”

 

“금은혜예요!”

 

밝게 웃는 운정은 그녀들을 상대로 청아한 미소를 보였다. 그 어떤 사심도 없이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칭찬한 것이다.

 

하지만 금은혜와 남궁태희는 그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대가 티 없이 맑은 여인이라는 것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만만치 않다!’

 

쉽사리 화를 내거나 자신의 기분대로 행동하는 여인은 다루기 쉽겠지만 이런 여인은 그녀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여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배경도 만만치 않았다. 구파일방 중에 아미파는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남궁태희와 금은혜는 천악을 보았다. 과연 천악이 여인들을 불러들이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여인들이 다가가지 않는 이상 불러오는 성격이 아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천악을 보면 확실할 것이다.

 

천악은 당지독에게 풍운장원을 부탁했다. 특히 한 가지 더 신신당부를 했다.

 

[당 어르신, 천마의 일이 궁휼 어르신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당지독은 천악의 전음을 듣고 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천마의 일을 개방이 알아서 좋을 것 없었다. 괜히 의심만 들게 만들 뿐이었다.

 

개방이 알면 무림맹이 알고, 그러면 세상이 다 알게 된다. 그렇게 됐을 때 천악에 대한 의심이 쌓여갈 수 있다.

 

천악에 대한 의심은 세상에 해악이 될 것이다. 천악은 가만히 놔두는 것이 좋았다. 그게 세상을 위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다 알아서 한다.]

 

[일이 새어나가면 독강시의 일도 흘러갑니다.]

 

[큭! 이놈아, 날 그렇게 못 믿냐?]

 

당지독은 헛바람을 내었다. 설마 했는데 천악이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할 줄 몰랐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강시 제조가 알려져서 당지독에게 좋은 것은 없었다.

 

[앞일은 모르는 겁니다. 일의 결과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렇겠지. 내가 잘 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라.]

 

천악이 전음을 끝내고 마차에 오르자 여인들도 같이 올랐다. 이번 여정에서 삼영살은 같이 갈 수 없었다. 그들은 장원에 남아서 천마를 보호하고 지켜야 했다.

 

천악은 당지독뿐만 아니라 삼영살에게도 임무를 맡겨 이중삼중의 보호막을 설치했다. 천악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만일의 사태였다. 애당초 그런 사태는 미연에 차단해 버리는 성격이었다.

 

 

 

사두마차가 풍운장원을 떠나자 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추상락이었다.

 

“후우!”

 

이제 조금 다리 뻗고 활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천악과 있으면 왠지 모르게 숨이 턱턱 막혀왔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존재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따악!

 

“앗! 왜 때립니까?”

 

추상락이 실실 쪼개는 것을 본 궁휼이 한심하다는 듯이 머리통을 때렸다. 추상락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맞아서 괜히 짜증이 났다.

 

“이놈아, 누구는 이런 거대한 궁궐도 부족해서 저런 미인을 네 명이나 끌고 다니는데, 너는 뭐 하고 있는 거냐? 마흔 살이나 처먹고 젊은 놈 하인이나 하고. 정말 너 키우느라 취구환을 두 개나 허비한 내가 미친놈이다!”

 

무걸개 추상락을 키우기 위해 들인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공의 재질이 너무 좋아서 머리가 빈 놈인 줄 몰랐던 것이 실책이라고 생각하는 궁휼이었다.

 

“사부도 못 이기는 놈을 제가 어떻게 이깁니까? 하인 생활 풀어준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땐 언제고 이게 뭡니까?”

 

추상락도 할말은 있었다.

 

“따지고 보면 풍운마룡과 붙어보라고 한 것은 모두 사부 아닙니까! 그러면서 이제 와서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안휘성으로 보내 풍운마룡을 시험하라고 한 것은 개왕 궁휼이 맞았다.

 

추상락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궁휼은 할말을 잃었다. 융통성이 부족해서 항상 대화에서 지는 무걸개의 멋진 반격이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논리적인 반격 따위는 매를 버는 원천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말을 함으로써 추상락은 온전히 풍운장원 생활을 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 * *

 

천악의 마차가 출발하는 시간에 서른 명 정도 되는 일행이 한 대의 수레를 끌고 하남성을 향해 출발했다. 여행을 위한 평상복 입은 상태여서 그저 상행위를 하는 상단 정도로 보였다.

 

선두에서 두 명의 중년인이 일행을 이끌었다. 한 명은 염소수염의 얍삽하게 생겼고, 다른 한 명은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군사, 저 뒤에 수레는 무엇이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물건이오.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는 하늘이 정해 주었다고 하지만 만일의 사태는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오. 이 일에 실패는 없어야 하지 않겠소.”

 

귀뇌 백천의 말에 화룡수 이진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번 일은 교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전날 구룡상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는 이진충이었다.

 

최고 장로의 말대로 구천상의 재산을 빼돌리려고 했지만 누군가의 장난으로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했다.

 

“그럼 대단한 물건인가 보오?”

 

“내가 장담하지만 저 수레 안의 물건만 있다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오.”

 

귀뇌에게 있어 수레에 있는 물건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진충에 못지않게 귀뇌 역시도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 요즘 들어 번번이 실패만 해온 귀뇌였다. 이진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있었다. 하늘이 만들어놓은 이치라고 해도 그 안에서 모든 것을 계획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바로 귀뇌였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게 계획한 대로 흘러갈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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