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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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7화
신룡전설 1권 - 7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백년거린어는커녕 어떠한 영물의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자 북궁휘는 잠시 물러나기로 마음을 먹고 섬을 떠나는 중이다.
“연아.”
“…….”
북궁휘의 부름에 북궁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미운 거냐?”
북궁연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네가 말을 하지 않겠다니 더 이상 강요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는 죽은 자일뿐이다. 그리고 나는 네 친오라비이자 앞으로 세가의 복수를 하고, 다시 일으켜야 하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네가 누굴 생각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아주었으면 하는구나.”
이 말을 끝으로 북궁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북궁연의 기분을 달래주는 것보다는 뱃길을 기억했다가 다시 섬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세가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지만, 세가의 모든 식솔들이 죽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은 그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지옥이 무엇인지… 나, 북궁휘가 똑똑히 알려주마!’
북궁휘의 전신에서 다시 한 번 살기가 폭출되었다.
북궁연은 멀어지는 섬을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그녀는 북궁휘와는 다르게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있다면 조금 더 초췌해졌을 뿐이다.
북궁연은 북궁휘가 건네는 백년거린어의 내단을 단 한 번도 복용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가 할 수 있는 그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였다. 자신의 오라비가 한 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겉모습과는 다르게 천진난만하고 순순하기만 했던 그. 약해 보여도 괴물 문어 앞에서 조금도 물러섬이 없을 정도로 강인했던 그…….
주르륵.
북궁연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세찬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눈물을 훔쳐 달아났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북궁연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이게 뭐야?”
그의 물음에 용이 답했다.
-겁 없이 내게 덤볐던 놈들을 죽이고 얻은 것들이다.
용은 태연하게 답했고, 용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팔로용비검(八路龍飛劍).
팔로용비검!
약 8백 년 전, 무림을 피로 물들였던 절대검공!
그는 팔로용비검의 비급을 대충 휘리릭 넘기곤 바닥에 집어 던졌다.
툭.
-……?
인간이라면 그가 무림인이건 아니건 팔로용비검을 저런 식으로 던지진 못할 것이다. 비록 자신은 용이기에 시답잖은 칼질에 불과했지만,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한평생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왜 그러냐?
용의 물음에 그가 답했다.
“나 글 모르는데.”
-…….
그의 간단한 대답에 용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용은 그의 앞에 널려 있는 여러 권의 책들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글을 모른다니 어쩔 수 없지. 인간, 너는 정말로 천운이라도 타고 난 모양이구나. 끌끌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용의 눈에서 푸른 광채가 번뜩였다.
번- 쩍!!
흠칫!
용의 눈에서 광채가 번뜩이자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눈에서 빛이 번뜩일 적마다 좋은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혹시라도 용이 또다시 이상한 짓을 벌이지 않을까 싶어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맴도는 기이한 음성에 두 눈을 껌뻑였다.
팔로용비검(八路龍飛劍)! 제일식(第一式)!
일룡천지비(一龍天地飛)!
음성에 이어서 머릿속에서 하나의 영상이 그려진다.
청년이 검을 들고 서 있다.
청년의 두 눈에서 기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그의 발이 기이한 방향으로 땅을 밟았으며, 동시에 그의 팔이 허공을 갈랐다. 아니, 검이 허공을 갈랐다.
번쩍!
검으로 허공을 가르자 청년의 검에서 푸른 기류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고, 그 기류는 이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용이다!
청년은 한 자루의 검으로 용을 만들어냈다.
청년이 검을 늘어트리고 섰다.
용도 사라졌으며, 그의 몸에서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던 강렬한 기세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고요함만이 남아 있었다.
팔로용비검(八路龍飛劍)! 제이식(第二式)!
이룡진천뢰(二龍震天雷)!
청년이 다시 검을 들었다.
화아아악-!!
청년의 전신에서 폭풍과도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보다 청년은 훨씬 어지럽게 보법을 밟아나간다. 그리고 청년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청년의 검에서 또다시 푸른 기류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고, 그 기류는 용으로 변했다.
이번에는 두 마리의 용이다!
두 마리의 용은 청년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서 나아갔고, 이내 사라졌다.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청년 역시 검을 늘어트리고 서 있었다.
-끌끌끌…….
용은 기이한 발걸음으로 허공으로 손을 휘젓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용의 배려로 총 9가지의 무공을 익혔다. 물론 그걸 그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될지는 미지수였지만, 그가 익힌 무공들을 알게 된다면 웬만한 무인들이라면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고 쓰러질 정도로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뿐이었다.
무공을 익히면서 그는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환골탈태와 생사현관 타통이라는 무림사, 아니 인간사 전무후무한 일을 겪게 된 그의 신체는 이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해 있었다.
모든 무공을 익힌 그에게 용은 말했다.
-저기에 인간인 네가 사용할 만한 무기가 있으니 대충 아무거나 골라라.
용의 말에 그는 한군데 모아져 있는 무기들을 슬쩍 바라봤다. 그리곤 얼굴을 살짝 찌푸리곤 말했다.
“이거 다 녹이 슬었는데?”
그의 말에 용이 귀찮다는 듯 답했다.
-대충 닦아서 쓰면 쓸 만할 거다.
“아… 그래?”
그는 이내 활짝 웃곤 무기들을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용을 잡기 위해서 그의 선조들은 모든 무기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어부라는 직업적 특성상 그물을 사용했다. 철로 이뤄진 그물, 그 사이사이에 낀 날카로운 단도들은 그물에 걸린 모든 것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황금잉어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그의 선조들은 그물을 아무런 미련 없이 버렸다. 황금잉어에게도 통하지 않는 그물이 용에게 통할 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선조들은 돌팔매질부터 시작해서 활, 몽둥이, 창, 칼, 단검, 심지어는 잡은 물고기의 비늘까지 날카롭게 갈아서 던질 정도로 모든 것을 두루 익히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그런 무기술은 무림인들이 보면 코웃음 칠 정도로 어설프기 짝이 없겠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그들의 상대는 고작(?) 물고기였을 뿐인데.
“이거 괜찮은데?”
그는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웃었다.
군데군데 녹이 슬었지만 손에 잡히는 무게와 쥐었을 때 느껴지는 전체적인 균형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거 가져갈게.”
그의 말에 용이 대꾸했다.
-많으면 좋으니까 몇 개 더 골라라.
“아… 그런가?”
이후, 그는 한 자루의 창과 한 자루의 도를 각각 하나씩 더 골랐다.
-그것도 필요하겠군. 홍아.
용의 외침에 극양지천어가 다시 다가왔다.
-인간을 그곳으로 데려가라.
극양지천어가 두 눈을 끔뻑이며 용을 바라봤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데려가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줘라.
극양지천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그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수놈…….”
극양지천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미약하지만 살기가 담겨져 있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용이 말했다.
-홍아는 네가 함부로 상대할 수 없으니 허튼 생각 하지 말고 따라가서 필요한 것들을 가지도록 해라.
“응?”
-가보면 필요한 것들이 있을 거다.
용의 말이 끝나자 극양지천어는 유유히 헤엄을 쳐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고, 그는 급히 그 뒤를 따랐다. 검, 도, 창을 가슴에 품고서.
“와아~!”
극양지천어를 따라온 곳은 온갖 물건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주 평범한 은자부터 반짝이는 황금, 각종 보석과 기이한 물건들까지. 그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마치 보물창고처럼.
그가 이리저리 둘러보며 각종 물건들을 구경만 해대자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극양지천어가 말했다. 아니, 그의 머릿속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필요한 것만 골라라. 인간.’
“어라?”
이상한 빛깔을 뿌려대는 보석을 만지작거리며 구경하던 그는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에 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극양지천어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수놈, 네가 말을 한 거냐?”
‘무식한 인간. 네놈들이 말하는 수놈이니, 암놈이니 하는 구분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의 물음에 극양지천어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극양지천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굳이 자신과 말을 하지 않겠다는 수놈과는 자신도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뭐라고 하던지 간에 자신에게 있어선 그저 수놈일 뿐이었다.
“그런데 뭐가 필요한 거지?”
생각해보니 뭐가 필요한지 떠오르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주변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그의 모습에 웬만하면 참견을 하지 않으려던 극양지천어는 다시 말을 하고 말았다.
‘옷과 무기를 지닐 수 있는 물건. 그리고 인간 세상에 나가면 필요한 돈 같은 것을 골라라.’
“아! 맞다!”
환한 미소와 함께 그는 만지기만 해도 손가락이 주르륵! 미끄러지는 비단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와아~ 이거 너무 좋은데?”
입고 있던 넝마와도 다를 바 없는 옷을 훌훌 벗어버린 그는 이내 붉은색과 푸른색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긁적긁적.
“이 옷은 하나로 위아래를 다 입는구나! 어라?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찢어져 있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는 그.
오른쪽 다리가 훤히 보일 정도로 길게 쭉! 찢어진 옷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극양지천어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암놈… 그러니까 여자가 입는 옷이다.’
극양지천어의 말에 그가 알겠다는 듯 소리쳤다.
“아! 그 여자가 이런 옷을 입는다는 거로구나!”
그가 만난 유일한 여자, 북궁연을 생각하며 밝게 웃었다. 물론 어렸을 적에 딱! 한 번 아버지를 따라 섬을 벗어났던 적이 있지만, 워낙에 어렸을 적이라 여자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었다.
최소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배운 그였기에, 그는 히죽 웃으며 자신이 입었던 옷을 벗었다. 그리곤 그것을 곱게(?) 접어서 한쪽에 놓아두었다.
“이건 남자 옷이지?”
극양지천어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쳇!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는 이내 자신이 집어 든, 흰색과 검정색이 휘감듯 조화를 이룬 옷을 입었다. 다소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였지만 본래 옷의 주인 역시도 그와 큰 차이가 없었는지 옷은 나름대로 잘 맞아 떨어졌다.
이어서 그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파란 머리카락을 붉은 비단 옷을 찢어 묶었으며, 극양지천어의 도움으로 등에는 창을, 각각 오른쪽과 왼쪽 허리엔 검과 도를 착용할 수 있는 검대(劍帶)를 찾아 허리에 둘렀다.
이후로도 극양지천어의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조언으로 인해 그는 필요한 많은 것들을 하나의 커다란 자루에 넣어 어깨에 짊어졌다.
‘돌아가자.’
“그래!”
극양지천어의 뒤를 따라서 그는 어깨에 커다란 자루를 짊어지고 다시 용에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