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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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32화
천재지변을 극복하다 (2)
천악이 예상한 대로 한바탕 쏟아진 비는 대지를 흥건하게 적시었다. 그로 인해 대지는 촉촉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강 주위에 가옥을 짓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이 범람하는 바람에 졸지에 집을 잃고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아야 했다.
천재지변이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사람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물로 인해 생명을 얻지만 넘치는 물은 병균을 퍼뜨린다. 사람들 사이에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면 끝을 알 수 없는 사투만이 남게 된다.
집이 없어 씻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더 큰 재앙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가장 피해가 큰 곳이 사천성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긴 강이라고 불리는 장강(長江)이 범람했기 때문이었다. 장강은 청해성에서 시작해 사천성을 지나 운남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강이다. 대부분이 습지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지는 않지만, 사천성만은 유일하게 집단촌락과 도시가 형성이 되어 있었다.
장강의 범람은 무서웠다. 사람들이 살던 터전이 순식간에 수몰되어 다시는 원래의 형태를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비가 많이 오는 것을 보고, 언덕이나 산등성이로 피신하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그들의 생활이 막막하게 되었다.
하북성(河北省) 북경(北京).
자금성(紫禁城).
자색의 아름다운 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성이 바로 자금성이다.
자색의 빛은 청명하며, 그 힘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전해진다. 기쁨과 행복,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뜻한다. 북극성은 하늘의 아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황제 역시 그와 같은 궁전에 산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자금성의 내전에 오랜만에 선덕제가 용상에 앉았다. 그동안 건청궁에서 병마에 시달리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호전된 상태였다. 금은혜가 가져온 빙정을 복용하면서 그 병세가 상당히 호전되어 이제는 정무를 보는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선덕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만조백관들이 감축을 드렸지만 그와는 별개로 황제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사천성에 일어난 홍수 때문이었다.
백성을 굽어살피는 것은 하늘의 자손이 해야 할 막중한 일이었다. 아직 혼란한 외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치가 바로 서야 하는데, 그 일을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또한 비밀리에 전쟁을 준비하는 가운데 내분은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일이 되었다.
“사천성에 지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재상을 비롯한 신료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는 복구하는 데에도 시일이 걸리고, 모든 백성을 다 살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가난은 나라님이 잘한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재상, 학운기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천성 내의 포정사사(布政使司)와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에게 난민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서신을 보낸 상태입니다.”
선덕제는 그게 다냐는 표정이었다. 파견되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굶어죽는 백성들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천재지변이 내정에 방해되는 이유는, 천자가 하늘의 자손이기 때문이었다. 하늘의 자손이 잘못해서 천재지변이 일어났다는 민심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장 굶어죽는 자들을 위해 구휼미를 보내도록 하라.”
“송구한 말씀이오나, 지금 당장 군량미로 비축한 것밖에는 없어서 어렵사옵니다!”
군량미에 손을 대는 것은 어렵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식량이었다. 식량이 떨어지면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뿐더러 방어조차 힘들게 된다.
“그럼, 백성들이 굶어죽는 것을 지켜보란 말인가! 당장 대책을 마련하시오. 10일 내로 마련하지 못하면, 대신들의 무능함을 탓할 것이다!”
선덕제의 분노가 극에 달해 신하들 대부분이 몸을 떨었다. 무능함을 이유로 삭탈관직(削奪官職)해 버리겠다는 무서운 경고였다.
황제는 그 말을 남기고 용상에서 내려와 건청궁으로 돌아가 버렸다. 남겨진 신하들이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대책을 마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천성의 홍수로 생겨난 난민의 수가 30만에 달했다. 그 수를 모두 충당하려면 국고가 모두 소진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솔선수범하여 자신들의 재산을 털어놓으려는 사람들도 없었다.
건청궁으로 들어간 선덕제는 그 즉시 구문제독을 불렀다.
구문제독이 급히 명을 받들고, 건청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부복을 했다.
황제가 믿는 유일한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구문제독 금권성이었다. 금권성은 영락제 시절부터 정복전쟁에 참여한 공신이었다. 그 능력과 냉철함, 황제에 대한 충성심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충신이었다.
주첨기에게는 스승과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제독, 방법이 없겠소?”
금권성은 황제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장 금천상가의 재력을 쏟아 부을 수도 없었다. 이미 군비로 막대한 재산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난민들의 구호비로 지원을 하게 되면, 금천상가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말 것이다. 금천상가는 최후의 보루였다. 쉽게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을 좀 주십시오. 반드시 해결해 보겠습니다!”
항상 완벽한 대답만을 추구하던 금권성조차도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선덕제도 알기에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 다른 대신들이 자신의 재산을 챙기려고 하는 반면에 구문제독은 금천상가의 재산까지도 군비에 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더 재산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선덕제도 답답해서 구문제독을 부른 것이었다.
시녀들에게 술상을 봐 오라고 하였다.
“자, 한잔하게.”
“예, 폐하!”
건강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황제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본 구문제독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 했다.
구문제독부로 돌아온 금권성은 공문서를 금천상가 각 지부로 보냈다. 이번 일을 해결하는 자에게 금천상가를 물려준다는 말까지 찍어서 보냈다.
“은혜야, 마지막 시험이다.”
금천상가의 주인은 금권성이지만 능력도 없는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 금은혜가 대단한 일을 했으니 이번에도 잘 처리한다면 그녀에게 상가의 주인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국가의 중차대한 일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총관!”
“예, 제독님!”
“은혜가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잘 해오셨습니다. 충분히 해결하실 수 있을 겁니다!”
총관인 주유성이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금은혜가 공문서를 받고 있었다.
제독부에서 내려온 공문서에는 구문제독의 인장까지 찍혀 있었다. 그 내용의 막중함이 실로 크기 때문이었다.
-사천성의 난민구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구제 대책을 마련.
-이 일을 해결하는 자에게 가주의 자리를 줌.
금은혜는 아버지가 내려준 공문서를 보고, 이게 웬 떡이냐라는 표정이 되었다. 그동안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풀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부탁하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좋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횡재했네.”
세상 사람이 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이지만 이 일은 금은혜에게 어렵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천악 때문이었다. 때마침 대규모의 건설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하늘이 도와주는지 인력을 충원하는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럼, 이제 내가 가주네! 크크크!”
가주 자리는 이제 따 놓은 당상이었다. 나중에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기 전에 완벽한 도장을 찍어 놔야 했다. 공문서를 고이고이 금고에 집어넣고, 서류를 한 장 작성했다. 서류에는 구제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써 내려갔다.
“천악 오라버니에게 가 봐야지!”
천악의 방에 금은혜가 찾아왔다. 그녀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안에 이번 일에 대한 것과 방법, 그리고 인력을 구하는 일에 대한 것이 적혀 있었다.
천악은 서류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서류의 내용을 보니, 그다지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사천성의 난민 구제라는 것에 약간이지만 흥미가 동했다.
“난민을 인부로 쓰자는 말이지.”
“그래요. 가난한 사람들도 구하고, 인부들도 마련할 수 있잖아요.”
“좋은 생각이군.”
사람을 무턱대고 구하는 일이라면 천악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 누군가를 도와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움이라는 것도 그것에 상충되는 일을 했을 때 비로소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무상으로 주다 보면 그것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공짜로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생겨날수록 곤궁에서 벗어나는 일은 더욱 요원하게 될 것이다.
“그럼,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그 전에 은자 20만 냥을 난민들에게 나눠줘라!”
“예?”
천악이 갑자기 주는 돈에 어안이 벙벙해진 금은혜였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러지? 혹시 죽을 때가 돼서 착해졌나…….’
금은혜가 보기에 그것은 아니었다.
천악과 같은 사람이 비명횡사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차라리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더 쉬운 일일지 몰랐다.
“갑자기 그렇게 선한 일을 하다니, 군 오라버니답지 않아요!”
“훗!”
천악이 웃자 금은혜는 더욱 아리송했다.
“장사의 기본을 아직 모르는군. 상인이 아닌 나도 알고 있는데 말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지금까지 금천상가를 얼마나 확장시켰는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금천상가는 수익률이 상당히 높았다. 구룡상단을 흡수하면서 벌어들인 것과, 유리 제품과 냉동수레의 이용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발전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악이 이런 자신을 보고, 장사의 기본을 모른다고 하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물건을 판다고 장사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그게 장사지 또 뭐예요?”
“장사는 사람을 사는 일이야. 사람이 물건을 사는 것이지, 물건이 사람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지금 내가 20만 냥을 내는 것이 자선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닐 수 있지.”
“20만 냥을 내는 게 어떻게 자선이 아닐 수 있어요?”
“내가 20만 냥을 내면, 난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그들에게 일자리까지 주는데, 그들은 얼마나 노력을 할까 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아!”
그제야 금은혜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천악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한 것만이 아니라 장사 수완도 대단했다.
“나는 내 건물을 짓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일을 맡아주는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야 좋은 건축물이 나올 수 있어. 따라서 지금 내가 주는 돈은 앞으로 건설할 도시를 위한 투자가 되는 것이지.”
“그렇군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는 것이군요!”
“그렇지. 난민들이 평생 가난하지는 않을 거다. 지금 주는 돈과 더불어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다시 소비할 곳은 금천상가가 될 것이다.”
먹기 위해서는 식량이 필요하고, 식량을 사기 위해서는 상가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준 돈이 다시 돌아온다는 말과 같았다.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미래를 보지 않고, 바로 앞에 떨어진 이익에만 매달리면 볼 수 없는 원리였다.
“이번에 주는 돈은 금천상가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하고, 인부들에게 풍운장원의 인부로 고용된다고 전해.”
“물론이에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안이었다.
금천상가는 백성들에게 호평을 받을 수 있고, 천악은 자신의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다. 그와 더불어서 천악의 존재를 수면 아래로 내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