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52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52화
삼태상(三太上) (2)
천산객잔(天山客棧)
천악이 들어가려는 객잔이다.
조성빈의 상점을 지나 좌측으로 돌아서 들어가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객잔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산객잔은 마교인들 중에서도 고위급의 인물들이 주로 찾는 객잔이다. 그렇기에 보통 사람은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더군다나 고위급의 마도인들은 모두 무공을 익힌 이들이었다. 무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싶어하는 일반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천악이 들어가자 점소이가 마중을 나왔다. 무인들 대부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아주기를 바란다. 미리 알고 대접을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에 점소이들은 그 점에 주의하여 대접을 한다.
“어서 오십시오.”
“제일 좋은 곳으로 안내해라.”
점소이는 안 보는 척하면서 천악의 신색을 살폈다. 잘 차려입은 옷을 입고 있지만 생김새는 평범했다. 다만 천악의 눈을 잠시 본 점소이는 소름이 돋았다.
함부로 대하면 위험할 것 같은 예감이 등 뒤를 사늘하게 자극했다. 점소이는 즉시 천악을 최고위층으로 안내했다. 본능이 경고했을 때는 따라주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점소이였다.
최고층으로 올라가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탁!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은 청년이 있었다.
선이 굵고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청년은 무엇이 불만인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울분과 통한, 온갖 기분 나쁜 생각이 청년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아버지!”
청년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불렀다. 그는 아버지의 행동으로 인해 받은 타격을 생각하고 있었다. 쉬지도 않고 연거푸 술을 들이켜자 술병이 동이 났다. 동이 난 술병을 보자 즉시 술을 더 시켰다.
“술 더 가져와!”
청년의 이름은 궁자생이다.
궁자생은 마교십룡 중에 하나이며 패천궁의 소궁주다. 그의 아버지는 패천도마 궁백림이었다. 궁백림은 전날 소교주 즉위식에서 숨을 거두었다. 적을 죽이려고 나선 것이지만 한 수 만에 죽어나갔다.
궁자생이 궁백림을 원망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왜 주제넘게 나서서 죽었냐는 것이다. 나서지만 않았어도 자신은 소궁주에서 궁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죽어버리자 궁자생은 둥지를 잃어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말이 좋아 소궁주지 새로운 궁주가 패천궁의 2인자인 비룡마도 전광렬에게 돌아갔다. 자신은 이제 자리만 있을 뿐이었다. 전광렬이 궁주가 되는 바람에 자신은 다음 대 궁주가 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빌어먹을……!”
패천궁은 구겁마왕 중에 배신자가 아니었다. 배신자에 속한 구대마궁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신교인들의 배척을 받게 되었다. 배척받게 된 구대마궁은 소외당하고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궁자생은 그것이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아버지가 나서지만 않았어도 권력을 더욱더 많이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천악도 음식에 반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궁자생이 한풀이를 하듯이 술을 마시는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었다.
음식은 맛이 괜찮았다.
척박한 땅에서 맛을 이끌어내는 솜씨를 보니 그 실력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적절하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풍겨 나왔다.
‘괜찮군.’
천악이 식사를 하는데 한 여인이 올라왔다. 그녀는 근래에 천악을 귀찮게 하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내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사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천악은 올라온 여인을 보며 짜증이 치밀었다.
한 번 아니라고 했으면 그대로 포기했으면 좋겠지만 곽윤아는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곽윤아가 창가에서 식사하는 천악을 보자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다가갔다. 그녀는 천악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강력한 힘과 압도적인 능력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걸더라도 자신의 사내로 만들고 싶은 매력적인 사내였다. 마도인들의 입장에서 천악만큼 매력적인 사내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윤아 아가씨!’
궁자생은 술이 확 깨는 듯했다.
궁자생은 곽윤아를 처음 봤을 때 한눈에 반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만 얻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줘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 있는 마교의 삼대신룡이자 소교주위를 다투는 천극마룡 유백, 광마룡 악불강, 잔영마룡 사영으로 인해 포기해야 했다.
그들은 마교의 십대마룡에 속하는 자신보다 한 단계 이상 높은 인물들이었다. 실력적인 면에서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궁자생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세상은 가진 자에게만 유리했다. 궁자생은 자신이 가진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천상의 선녀를 연상하게 만드는 곽윤아를 보자 그 마음이 더욱 절실하게 변했다. 그런데 그녀가 다른 사내를 친근하게 부르며 다가가고 있었다. 마교제일화는 매우 강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났었다. 언제나 도도하며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사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저토록 저자세로 나가는 것을 처음으로 본 궁자생이었다.
질투가 온몸을 휘감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곽윤아는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서 앉았다. 그녀가 앉자마자 점소이가 빠르게 다가와서 수저와 젓가락, 그리고 여분의 그릇을 가져왔다. 점소이도 곽윤아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한 재빠른 행동이었다.
윤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는 것은 항상 있어 왔던 일이었다.
윤아가 음식을 적당히 덜어서 천악에게 건네주었다.
“자, 드세요!”
서로 알고 있다고 정인(情人)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남녀의 구분이 확실한 이 시대에 상당히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었다.
천악은 그녀가 퍼준 음식을 받으면서도 별다른 표정은 없었다. 다만 부담스러운 행동을 하지 말았으면 하기에 말을 했다.
“이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온 것이 마음에 안 드세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마음이 없습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여인에게 싫다는 말보다 더 모욕이었다. 천악의 냉정한 말에 곽윤아는 분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마음을 안 받아주는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노력할게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어주면 안 되나요? 그래요! 제가 갈대처럼 흔들리는 여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내라면 넓은 아량으로 봐주면 안 되는 건가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게 뭐가 잘못이죠? 제 마음이 군 공자에게 가는데 무조건 아니라고 하면 제가 어떤 마음일 것 같아요!”
곽윤아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했다. 말하면서 감정의 기복이 확연하게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백에게 흔들리기도 했지만 지금 마음이 가는 것은 군천악이었다. 곽윤아는 자신이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백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유백의 마음일 뿐이었다. 자신까지 그 마음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호소에 가까운 곽윤아의 음성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애처로운 목소리를 듣는 천악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 움직인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움직이는 것이 바로 욕망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은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윤아 소저의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윤아 소저가 위기에 처한 당시에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유백 공자가 나타나자 당신은 그를 보며 희망을 가졌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때의 간절함은 거짓이었습니까! 물론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아니, 간절함은 사실이었으니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단지 강한 것에 이끌리는 것이라면 저보다 강한 자가 나타나면 당신은 마음을 돌리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윤아 소저의 선택이니까요. 다만 저도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아닌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몸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몸만 가지고 마음은 버릴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걸 원하십니까! 제 마음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곽윤아는 천악의 말이 고통스러웠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무도 저런 말을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한 적이 없었다. 직접 들으니 마음속에 흔들렸던 감정들이 그녀의 마음을 애달프게 만들었다.
천악이 진심으로 그녀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저처럼 직접적으로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충격을 받은 윤아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벌떡!
옆에서 듣고 있던 궁자생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그는 도저히 천악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마교제일화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 사랑을 종이쪼가리처럼 치부해 버리는 자를 가만히 둔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더군다나 곽윤아는 자신이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여인이 아닌가! 그런 여인이 무시당하는 것을 참을 수 있는 사내는 얼마 없을 것이다.
“이놈! 네가 누군데 감히 윤아 아가씨를 무시하는 것이냐?”
천악은 궁자생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소리를 지르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상관도 없는 사람이 더 흥분해서 날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서 일어서라! 사내라면 여인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 여인을 울리는 자는 사내라고 할 수 없다! 일어서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반 토막을 내주마!”
천악이 마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궁자생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한동안 천악의 말에 상처 입고 말을 하지 못하던 곽윤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 나서서 자신의 고통을 대변해 준다는 것은 알겠는데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관도 없는 자가 천악에게 시비 거는 것이 어이없을 뿐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천악은 요즘 들어 많이 참고 있는 편이었다. 별다른 일이 아니라면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다. 그저 죽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먼저 건드린 자를 그냥 둔다는 것은 애당초 다른 말이었다. 이유 없이 거는 시비를 참아줄 정도로 천악의 성격이 성인공자(成人孔子)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차갑고 무서운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천악이 빨리 일어서지 않고 있자 궁자생은 더욱 의기양양했다. 상대가 겁을 먹고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약간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곽윤아가 자신을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무시해 버렸다. 작금의 상황에서 그것보다 천악을 혼내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나면 곽윤아의 눈길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악이 일어섰다.
깜짝!
곽윤아가 깜짝 놀랐다. 천악은 보통 인간의 범주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궁자생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자신 때문에 엄한 사람이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이봐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왜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거죠?”
“윤아 아가씨가 무시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놈을 혼내 줄 테니 가만히 보아주십시오!”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은 하는 거예요! 나는 상관없으니 그만 멈추세요!”
궁자생은 더욱 화가 났다. 천악이 위험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곽윤아가 나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천악을 향해 무모한 투기가 끓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