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80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80화
북해풍운(北海風雲) (2)
냉사진은 주화입마와 투쟁하는 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한빙극의신공의 진정한 오의를 깨달은 것이다. 처음부터 한 자 한 자 뚜렷하게 마음과 몸에 새겨나갔다. 다만, 그동안 깨달음을 발휘할 원동력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극한의 냉기는 상대적이다. 뜨거움이 있어야 차가움을 느낄 수 있듯이 냉기만으로 한빙극의신공의 극의(極意)를 이를 수는 없다.
만물에 음(陰)과 양(陽)이 있듯이 한빙극의신공도 음과 양의 조화, 한기와 열기의 조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해빙궁의 궁주들이 한빙극의신공을 극한으로 연마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음한진기의 무공을 익히는데, 열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냉사진은 몸속에서 꿈틀대는 열기를 빙정의 힘으로 제어하려고 노력을 했다.
으으으윽!
냉기와 열기의 충돌이 일어나자 냉사진의 몸 밖으로 붉은 기운과 백색의 기운이 좌우로 갈라지며 서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냉사진은 지금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비명을 지를 정도의 고통이었다.
천악은 냉사진이 가진 인내력이 보통이 넘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무인은 고통에 익숙한 존재들이다. 인내 없이는 무공의 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강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강자가 되려면 그만한 인내와 노력, 피와 땀이 서려 있어야 한다.
냉상아는 아버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한기의 굉장한 기운을 지켜볼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혹한의 기운을 불다가, 다시 용암 같은 뜨거움이 서리자 양쪽이 충돌하여 수증기가 발생했다.
“아버지!”
아버지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 수 없는 냉상아는 불안하기만 했다. 이대로 굉장한 힘에 의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냉상아가 천악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라는 뜻이었다. 냉상아의 바람과는 다르게 천악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관심 없어 하는 것 같았다. 애타는 심정과는 별개로 화가 나는 냉상아였다.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은 했지만 성격마저 저렇다니!’
냉정하기가 북해의 혹한보다 더 차가웠다. 자신이 가진 설화라는 별호는 빙정 앞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얼음덩어리였다.
냉상아가 불만이건 천악의 무표정이건 시간은 흘러간다. 정작 고생하는 인물은 북해빙왕 냉사진이었다. 자정이 지나가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열기와 냉기를 조화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냉사진이 열기와 싸우는 동안 천악은 하나의 빙정을 더 만들었다. 냉상아는 그 모습을 보며 도깨비방망이를 생각했다.
금 나와라! 뚝닥! 은 나와라! 뚝닥!
말만 하면 만들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북해무인들이 이 사실을 알면 눈에 불을 켜고, 천악에게 덤벼들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천악의 성격상 그런 인물들을 그냥 놔두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하루가 넘어가고 있었다.
냉사진에게 소비되었던 한 개의 빙정이 소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빙정의 능력이 대단한 반면에 냉사진의 몸에 들어간 열기 또한 대단했다. 두 개의 힘이 이제 조화를 이루기 일보직전이었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다시 음이 강해지는 시기가 필요했다. 북해의 무공이니만큼 냉기의 강력함이 더 중요했다.
소모가 된 빙정을 대신할 새로운 빙정을 냉사진에게 복용시켰다. 응축되었던 냉기는 전에 복용한 빙정보다 한층 강화된 빙정이었다.
빙정을 얻은 냉사진은 냉기에 힘을 얻어 자신이 이룩한 깨달음을 넘어서려고 했다. 한계에 가까운 힘을 경험한 무인은 힘을 얻으려고 하는 욕망이 있다.
냉사진이 최선을 다해 온몸에 퍼진 열기를 냉기로 흡입하여 한빙극의신공의 최정점에 이르고 있었다.
휘이이이익!
사방이 막혀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칼날 같은 바람이 불었다. 냉사진의 몸 중심, 즉 음한진기의 중심인 단전에서 한기가 회전하여 몸 밖으로 분출이 된 현상이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간 냉기가 공기 중에 있는 물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리자 서리가 형성되었다.
으윽!
냉상아는 냉사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풍(寒風)에 뒤로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었다.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냉상아가 천악을 보았다. 천악은 흩날리는 머리카락 외에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떤 바람이 불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처음의 생각 그대로였다.
휘이익! 휘이익!
바람이 점차 잦아들었다. 순환시켰던 냉기를 다시 몸속으로 끌어들여, 안정을 시킨 냉사진이었다.
번쩍!
냉사진의 감았던 눈이 떠졌다. 차가운 한광(寒光)이 빛을 발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얼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한광이었다.
눈을 뜬 냉사진이 앞에 서 있는 청년 너머 냉상아를 보았다. 한참 동안 보지 못했던 딸아이가 이제는 다 커서 어엿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길고 길었다.”
5년 전에 갑자기 열기에 중독이 되었다. 열기 따위에 자신이 지지 않는다는 자존심 때문에 주화입마에 걸리고 말았다. 차근차근 치료를 했다면 이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와락!
냉상아가 철부지처럼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품에 안겼다. 냉사진을 구하기 위해 냉상아는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딸의 표정만 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해한 냉사진이었다. 냉사진은 딸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넘기면서, 좀전부터 서 있는 천악에게 시선을 옮겼다.
“냉사진일세. 자네는 누군가?”
“군천악입니다.”
“내 생명을 구해줘서 고맙게 생각하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게 인지상정이다. 천악은 그저 입에 발린 말로 듣지 않았다. 확실하게 받아낼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소비된 시간과 노력은 보상을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았다.
반면에 냉사진은 잠시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천고의 보물이라고 여겨지는 빙정을 준 인물이 대가를 바랄 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구해주었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냉상아는 아버지가 깨어나서 반겼다. 그와 동시에 북해빙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냉사진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말했다.
듣고 있던 냉사진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북해빙궁은 엄밀하게 냉씨세가나 마찬가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북해무림에 자리를 잡았다. 서서히 힘을 확장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로 인해 북해빙궁이 탄생하게 되었다.
자신의 집을 빼앗으려 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는 않았다. 북해빙궁이 폐쇄적인 이유가 바로 시작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최진평! 그놈이 기어이 일을 냈구나!”
10년 전에 들어와서 점진적으로 장로들을 구워삶더니, 이제는 북해빙궁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격이었다.
더군다나 북해령을 내려 북해무림의 힘을 한곳에 모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북해무림을 집어삼키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이 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었다.
“우선은 내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다.”
“맞아요. 장로회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다음 대 소궁주인 오라버니조차 지금 밀려나 있는 실정이에요!”
천악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를 꺼냈다.
“궁주님의 힘만으로는 힘들지 모릅니다. 제가 도움을 드리지요!”
찌릿!
서릿발 같은 기세가 냉사진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동안 주화입마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인의 자존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북해무림의 최정상이자 군림했던 절대자인 북해빙왕 냉사진이었다. 냉사진의 이름만으로 북해무림은 벌벌 떨었다. 그런 자신의 힘으로 부족하다니,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는 것은 무인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게.”
“궁주님의 힘으로는 무립니다.”
“내! 생명의 은인이라 참으려고 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구나!”
냉사진이 강한 것은 인정할 만했다. 천수암제 당지독과 대등한 경지를 개척했으니 대단한 것은 맞다. 하지만 북해빙왕의 실력이 마교지존 천마 곽천진과 비교해서는 많이 부족했다. 그런 천마조차 놈들을 제압하지 못하고 밀리기까지 했다. 만약 천악이 없었다면 마교는 끝장났을 것이다.
또한 냉사진은 5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공이 발전해도 몸이 굳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활동량과 실전수행능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강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천악은 말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인들은 직접 겪지 않으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그중에서도 상위서열의 무인일수록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천악도 굳이 말로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인들의 언어인 무공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 되었다. 한마디로 작살나게 맞으면 깨닫게 된다는 것을 진리라고 생각했다.
냉사진의 입장에서는 불쾌했다.
천악은 자신의 딸이 데리고 온 사내였고 딸아이는 평소 표정이 거의 없는 아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딸아이는 표정이 다양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천악과 말싸움하는 것을 보며 조마조마 하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히 천악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냉사진은 딸아이를 보면서.
“걱정 말거라. 적당히 하마!”
“아…버지! 그게 아닌데!”
“어허, 잠시 사내끼리 대화를 하는 것이다!”
냉사진은 딸아이가 천악을 걱정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냉상아는 그게 아니었다. 천악은 아버지가 강해졌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 같지가 않았다. 직접 무공을 펼치는 것을 본 것은 아니지만 천악이 보여준 능력만으로 절대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이 괴물을 상대로 이긴다는 것은 소설 속 이야기였다.
“냉 소저는 잠시 문밖으로 나가서 기다리시지요.”
천악이 합세하자 냉상아는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수련장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수련장은 자동으로 문이 닫히고 열렸다.
문밖으로 밀려난 냉상아는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아버지!’
깨어나자마자 다시 누워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천악의 무공 실력이 과연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일맥상통하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천악과 냉사진이 서로 응시하며 바라보았다.
“내 딸과는 어떻게 안 사이인가?”
“제가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호오!
자신뿐만 아니라 딸아이의 목숨까지 구해줬다고 하니 호감이 더욱 생겼다. 좀전에 무례한 것을 훈계 정도로 끝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 부녀의 생명을 구해주어서 고맙게 생각하네. 하지만 무인의 자존심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하네.”
“알고 있습니다.”
“내 딸아이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빨리 끝내주겠네.”
“감사합니다.”
천악도 시간 질질 끄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럼 시작하지.”
“좋습니다.”
굉장한 대결이 될 것이라 짐작했다. 냉사진은 자신의 냉기에도 버티는 천악이 보통은 넘는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호승심이 발동했다. 딸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사내의 실력이 어디까지인지 알아내는 것도 부모의 마음이라고 여겼다. 가볍게 실력을 봐주고, 앞으로 더욱 노력이 필요하다는 훈계를 할 생각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퍼퍼펑!
커어어억! 털썩!
조용!
냉상아는 안절부절못하고 문밖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그 다음으로 비명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한동안 쉬지 않고 울려 퍼진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냉상아는 비명성이 너무 커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드르륵!
1각 정도 지나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나자 천악의 얼굴이 보였다. 멀쩡했다. 굉장한 대결을 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멀쩡했다. 숨 하나 헐떡이지 않는 모습에 대결을 한 것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질! 질! 질!
냉상아의 시선이 정면에서 아래로 향했다. 굳건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만신창이로 망가져서 천악의 손에 질질 끌려오는 비참한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어찌나 많이 맞았는지 옷을 보지 않았으면 아버지가 아닌 줄 착각할 뻔한 냉상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