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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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77화
구문제독부 (2)
천악은 돌아서서 가는 동안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달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 것은 많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보았다.
천악은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정자에 나와 여인들과 한가하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습에 냉상아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 바로 움직여도 부족할 판에 한가하게 차나 마시고, 여인들과 담소를 나누다니 기다리는 사람 애태우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주화입마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빙정을 가지고 있을 천악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냉상아는 불만만 점점 쌓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언가 분출할 돌파구가 필요했다.
천악은 냉상아가 애태우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녀의 무공 자체에는 관심이 갔다. 냉기를 쓰는 검법을 아이들이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았다.
무공은 배운대로 사용한다고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전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실전은 돌발 상황이 다반사로 발생하는데 돌발적인 상황에 배운대로만 대처한다면 죽기 십상이었다. 그와 같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냉 소저, 기분전환 겸 대련이나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련이요? 지금 한가하게 대련하게 생겼어요!”
천악의 말에 냉상아의 목소리가 한껏 더 커졌다.
“싫으면 됐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다.
천악은 남이 싫다는데 억지로 강요할 마음이 없었다. 냉상아는 말 한마디하고 바로 단칼에 베어버리는 천악의 말투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권유를 해도, 두 번 이상 하는 것이 보통이 아닌가!
더군다나 자신 같은 미모의 여인이라면 어느 정도는 배려해 주는 것이 보통 사내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천악은 자신을 전혀 배려해 주지 않고 있었다.
냉상아는 그런 천악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여인들은 색다른 방식에 설레는 마음을 같기도 하지만 냉상아는 아니었다. 다만 화가 더 쌓이는 것 같았다. 천악의 한마디 한마디가 다 거슬렸다.
그래서 대련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빙화의 실력을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차 안에서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았지만 그대로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좋아요, 대련할게요!”
“변덕이 심하군요.”
천악은 여전히 존대를 하며 말을 했다. 그러나 듣고 있는 냉상아는 존대가 더 거슬렸다. 말을 하면서도 상대를 약올리는 것 같았다. 길게 말을 하지도 않는데, 계속 마음을 흔들자 그것이 더 속상했다.
정자 앞에 공터가 있기에 그곳으로 냉상아가 천천히 걸어가서 기다렸다. 당연히 빙화 남궁태희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죠.”
응?
상대가 없는데 대련을 하라니, 천악의 말에 냉상아가 당황했다. 냉상아는 앞을 보았다. 그 앞에는 어린아이 세 명이 서 있을 뿐이었다. 냉상아는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10살을 갓 넘어 보이는 아이들과 대련하라는 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남궁 소저는 왜 안 나오는 거죠?”
정자 안에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불만인 냉상아였다. 그런 냉상아의 말에 남궁태희가 대답했다.
“냉 소저는 제 상대가 아닙니다.”
“뭐라고요?”
“말 그대로입니다. 냉 소저의 상대는 바로 앞에 있는 아이들입니다.”
부글! 부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냉상아였다. 자신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어떻게 이처럼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저희들이 부족한가요?”
찌릿! 찌릿!
신일의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냉상아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세 명이 일시에 기세를 뿜어내자 그 기운이 일류를 넘어 절정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냉상아의 화가 가라앉았다.
‘이럴 수가! 아이들의 기세가 일류를 넘다니!’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지의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된 냉상아였다. 냉상아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이들의 기세가 일류를 넘는다면 이 아이들이 자라서 더 강해지면 상대할 자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을 차갑게 식혔다.
“놀랍구나, 너희들을 무시해서 미안하다!”
천악이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아이들을 무시한 꼴이 되어버렸다. 냉상아는 바로 사과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실수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소인배는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마!”
“저희들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야수호심공을 끌어올리자 광폭함이 저절로 아이들의 주변을 휘몰아쳤다. 아이들의 권법은 모두 천악에게서 나왔지만 발전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냉상아 역시 그에 걸맞은 한빙극의신공을 운용했다. 아이들이 뿜어내는 힘이 보통이 넘는다는 것을 알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또한 아이들한테 질 수 없다는 마음이 작용했다.
대련이 시작되었다.
천악과 여인들은 대련을 구경했다. 천악은 삼영살에게 눈짓을 보냈다. 위험이 있을 때 알아서 막으라는 말이었다. 삼영살은 그 즉시 ‘충(忠)!’을 읊조리며, 냉상아와 아이들의 주변에서 대기했다.
파파파파팡!
냉상아가 움직이기 전에 신일이 앞으로 파고들었다. 귀영보의 움직임이었다. 아이들이 흡사 귀신처럼 보이는 냉상아였다. 일반적인 보법보다 훨씬 빠르고 날카로웠다. 냉상아는 앞에서 뻗어 나오는 무섭도록 강력한 권격의 힘을 왼손으로 비스듬히 받아내며 흘렸다.
‘헛, 내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정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충호, 전칠이 양옆에서 똑같이 빠르고 강력한 권을 날렸다. 막아내며 흘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냉상아가 즉시 몸을 뒤로 뺐다.
파팡!
전칠과 충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순간적으로 냉상아의 신형이 사라진 것이다. 냉상아는 1장을 뒤로 움직이고, 밖으로 반 바퀴를 회전했다. 공간을 벌리고, 아이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녀는 내심 아이들의 권격에 서린 힘에 놀라워하면서, 자신의 보법에도 놀라고 있었다.
‘빙룡보가 더 발전했어!’
빙판을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에서 붙여진 빙룡보였다. 지면과의 미끄러짐이 자연스러워진 것으로 보아 빙룡보의 성취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냉상아는 빙룡보에 자신감을 가지고, 역공을 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는 듯하지만 그 움직임은 상당히 빨랐다.
빠른 냉상아의 움직임에 맞추어 신일의 움직임이 변했다. 귀영보의 직선적인 움직임이 냉상아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선전인 움직임은 한곳을 점하고, 역으로 약점을 내비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움직임은 단점을 공세로 전환하여 상대방을 당황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냉상아는 공격할 틈이 없다는 것을 판단했다. 더군다나 공수합격의 실력이 보통을 넘었다. 일류가 아니라 절정이라고 해도 쉽사리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역으로 몰린 냉상아는 이대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장법을 출수했다. 북해빙궁의 삼대장법에 속하는 빙음천살장(氷陰千殺掌)이었다. 6성의 공력을 실어 날리는 빙음천살장이었다.
400년 전에 북해무림을 공포를 떨게 했던 빙마(氷魔) 한천위의 무공이었다. 빙음천살장이 극성에 달하면 스치는 것만으로 3장 안이 모두 얼어버린다고 알려졌다. 사실 그 당시에 빙마의 행위가 너무 잔인해 공적으로 몰아서 죽이기는 했지만 무공 자체는 강력하다는 것을 북해무림이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강함을 알기에 북해빙궁에서 회수해서 삼대장법에 포함을 시켜버렸다.
냉기가 냉상아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자 그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신일, 충호, 전칠이었다. 효과적인 방법은 피하는 것이지만 공세 중에 피하는 것은 상대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일이었다. 천악의 가르침 중에 하나가 바로 끝낼 수 있을 때 확실하게 끝을 내라는 것이었다.
셋이 힘을 하나로 모았다. 공력을 모아 공격과 동시에 방어를 하였다.
냉상아는 피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오히려 공격을 해오자 당황스러웠다. 빙음천살장은 보통의 장법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파파파파파팡!
빙음천살장과 아이들의 권격이 부딪쳤다. 시끄러운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펴졌다.
주르르륵!
냉상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빙음천살장을 정면으로 막아내고 앞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의 무서운 능력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아이들의 실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굉장했다.
‘비록 6성이라고 하지만, 그 위력은 바위를 부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자신이 뒤로 밀렸다. 말도 안 되는 사실에 냉상아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이 아니라 괴물에 가까웠다. 이런 아이들을 누가 가르쳤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신일은 냉기 계열의 무공이 권법을 출수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냉기는 몸의 열기를 식힌다. 따라서 근육을 경직시키고,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영향력이 있었다. 음한장력을 출수할 때는 우선 몸속을 냉기로부터 보호하도록 내공의 벽을 쌓아놓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냉상아는 장법만으로 아이들을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방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검을 뽑아야 했다. 되도록 검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진다면 검을 물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우려가 있었다.
파팡! 차창! 타아앙!
검을 들자 밀리던 형세가 극복이 되어 어느 정도 대등하게 대련이 되었다. 쉽사리 공격의 끝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본능적으로 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극복이 되어가고 있었다.
2각이 넘어가는 동안 대련이 계속되었다.
냉상아와 아이들의 내력이 거의 바닥에 이를 때까지 진행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양쪽 모두 최선을 다한 결과라 내력이 빨리 달리게 되었다. 반면, 체력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이 앞서고 있었다.
냉상아의 얼굴이 땀에 절어가며 질리고 있었다.
‘월음천폭까지 막아낼 줄이야!’
한월참혼검법의 오의를 사용하고도 결말을 내지 못한 것이다. 대련이 끝나고도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냉상아였다. 실력이 상승한 것 때문에 자만했다는 말 따위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충격받은 냉상아를 제쳐두고, 천악이 걸어가서 아이들에게 훈계를 했다.
“무기는 공수의 연장선에서 길이가 더 길어졌을 뿐이다. 두려움에 젖어 공격의 날카로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장주님!”
신일, 충호, 전칠 역시 자신들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인들도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천악과 연결돼서 좋은 꼴 나온 사람이 없었다. 또한 연무장으로 걸어갈 때, 혹시 여인들은 냉상아를 위로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였다. 천악은 여인을 제쳐놓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럼, 방으로 들어가지.”
천악이 방으로 들어가길 원하자, 금은혜가 안내를 했다. 그 뒤로 나머지 여인들과 아이들도 따랐다.
반면에 냉상아는 한동안 정신이 승천하고 있었다.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며 빙정이 되었다. 북해무림의 후기지수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자신이 고작 어린아이를 이기지 못하고 무승부가 되었다. 아니 졌다고 해도 무방했다.
‘말도 안 돼!’
상식적으로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천악을 만나고 나서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자신감은 사라지고, 허탈함만이 자리하게 되었다.
구문제독이 돌아왔다.
그는 딸이 돌아왔다는 보고에 바로 찾아갔다. 철혈의 피를 가진 냉혈인이라는 주변의 평판과는 다르게 가족에 대한 정은 누구보다 강했다. 피로 연결된 힘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그것은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금권성이 먼저 천악이 있는 방으로 찾아갔다.
손님과 주인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구문제독이면 천악이 먼저 움직이는 게 맞는 것이지만 소식이 늦게 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금권성이 방으로 들어오자 천악과 여인들이 일어서서 인사를 올렸다. 금권성은 자신의 딸을 반기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더군다나 천악의 주변에 있는 여인들 역시 만만치 않은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금은혜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부모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금은혜가 벌떡 일어나서 금권성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오셨어요!”
“그래, 그동안 많이 발전했구나!”
“아버지도 참!”
못 보던 사이에 딸아이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은 금권성이었다. 무공보다도 그동안 해온 일을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청년의 정체가 궁금했다. 물론 기본적인 것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이토록 젊은 청년인 줄은 몰랐다.
“자네인가! 딸아이를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하네.”
“서로 돕고 있는 상황입니다.”
금권성이 천악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고, 얼굴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모습을 보며 성향을 파악하려 했다.
‘눈빛이 눈에 익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심하지만 그 안에 서린 힘이 섬짓할 정도였다. 하지만 금권성은 두려움보다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누군가와 너무 닮았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잠시 말없이 천악을 바라보던 금권성에게 금은혜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아니다.”
금권성은 우선 식사를 같이 하고, 대화를 하자고 했다.
구문제독부에서 신경 써서 만든 요리가 나왔고, 식사는 무난하게 끝이 났다. 식사가 끝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금권성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를 금은혜가 따라서 나갔다.
방을 나간 금권성을 보자 천악의 입가가 살며시 변했다. 천악의 기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을 수 없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천악은 금권성의 눈빛이 왜 변했는지 눈치를 챘다. 설마 했는데, 그 당시의 젊은 장수가 구문제독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제법 뛰어난 장수였는데.’
오래전에 벌어진 일들은 가혹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이고, 또 죽였다. 당시에 벌어진 일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금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