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64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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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을 작성하려면 T자와 삼각자, 각도기, 그리고 다양한 선을 작성하기 위한 흑연이 필요하다. 흑연을 미세하게 갈아 연필을 만들었다.
천악은 기본 도구를 당한철에게 부탁해서 만들었고 연필은 따로 직접 만들었다. 흑연을 가느다랗게 만들고 반으로 자른 길다란 나무에 놓은 다음, 악력을 주어서 만들었다. 참으로 무식한 방법이었다. 투박하게 만들어지기는 했어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20일 동안 천악은 선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미세한 선의 굵기에도 도면의 전체적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설계도의 특성이었다.
집중력이 남달라지는 순간부터 천악의 설계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선의 정확도와 구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집중력이었다. 대학 시절, 설계도를 잘 그리는 편이라고 들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세발의 피였다. 도구는 구식이라고 해도 실력이 남달라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시를 만들기 위한 설계도였다. 도면만 해도 1,000장이 넘어갔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도시의 기본적인 골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됐고 다음으로 이미지 도안을 만들어낼 차례인가?”
선주문 작업 방식의 설계를 위해 이미지 도안을 만들어야 했다. 실상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이미지다. 보여지는 것이기에 실제보다 과장이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악은 그런 과장을 완벽하게 피했다.
예를 들어 소책자로 보여진 집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의 반도 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유는 바로 건설사들의 부조리 때문이다. 그들은 집을 팔고 싶다는 생각에 과장되게 이미지를 만들고, 실제적으로는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 이미지와는 다르게 만드는 것이 태반이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복장 터지는 일이다.
천악은 순수 백 퍼센트 완벽한 집을 만들 것이다. 일생일대의 일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저 평범하게 대학교를 나와서 건설사에 취직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제는 직접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상전벽해인가!”
상전벽해(桑田碧海).
세상이 몰라보게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천악의 지금 상황이 그와 같았다.
설계를 하는 동안 간간이 남궁태희, 금은혜, 제갈지, 운정이 찾아와서 도움을 주었다. 천악이 가장 많이 도움을 받는 것은 여인들의 공간에 대한 것이었다. 여인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천악으로서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천악은 그 보답으로 그녀들이 원하는 것들이 들어주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게 인지상정이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사람의 감정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받지 않고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무조건 받는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것이 이해타산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천악은 이미지 도안으로 사용할 것을 30여 장 정도 만들었다.
그림 수준이 상당했다. 천악은 5년 동안 도면을 작성하기 위해서 그림을 배우기까지 했다. 당대의 화사(畵師)들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색다른 면에 있어서는 더욱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10일 정도 이미지 도안을 모두 그리고 책자 형식으로 보기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생각했던 시간을 모두 사용한 천악이었다. 정확히 한 달이 걸린 셈이었다.
“우선은 은혜에게 설명을 해주어야겠지.”
장사의 기본은 사람이고 사람을 얻으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신뢰는 정확한 정보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었다.
정보는 희소성이 높을수록 가치가 있었다. 타인이 보유하지 않은 정보를 가짐으로써 힘을 가진다는 말이 되었다. 천악이 기본적인 것에서 금은혜보다 뛰어날 수 있지만 직접 상행위를 하는 것은 아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천악에게는 편한 일이었다.
일단 기본적인 것과 알아야 할 것들을 금은혜에게 설명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2각이 지나고 금은혜가 들어왔다.
금천상가 지부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기는 하지만 2각만에 올 정도는 아니었다. 금천상가에서 바쁘게 일하는 가운데 모든 일을 제쳐 두고 온 것이다.
“불렀어요?”
“그래, 우선 이리로 앉지.”
“고마워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아무런 일도 없이 불러주면 좋겠지만 대부분 공적인 일로 부르는 천악이었다. 그렇기에 먼저 무슨 일인지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서슴없이 불러주는 것만으로 상당히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천악은 친하지 않으면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천악이 만들어놓은 도안을 금은혜에게 보여주었다.
와아!
순수한 감탄이 금은혜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솔직히 금은혜의 안목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구문제독의 금지옥엽으로서 금(琴), 기(棋), 서(書), 화(畵)는 기본이었다. 구문제독의 딸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항이 들어가 있었다. 또한 구문제독 역시 예술품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는 안목이 넓어졌다.
다만, 천악은 다르게 생각했다.
“많이 훔쳤으니 안목이 높은 건가.”
도둑질을 많이 해서 안목이 넓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듣는 입장에서 절대로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른 것은 둘째치고 이 그림 상당히 뛰어나다고요. 누구 작품이에요?”
금은혜는 상당한 화공(畵工)이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그림을 그리려면 이름 꽤나 알려졌을 것이다.
“누가 그린 건가요?”
“내가 그렸다.”
“예? 정말이요, 대단해요!”
“그림이 아니라 도안이다. 그저 내가 만들 집을 그려낸 것에 불과하지.”
“아니에요, 이건 진짜 명품이라니까요? 팔면 제법 돈이 나올 거예요!”
그림을 그려서 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팔아서 돈이 된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그림이 잘 그려진 것은 다행이지만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다.
“우선은 내용을 보는 게 중요하겠지. 자, 여기를 봐라.”
천악이 첫 장에 그려진 그림의 한곳을 가리켰다. 금은혜는 천악이 가리킨 곳을 보며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알고 보니 모든 그림이 집이었고, 집의 구조를 한눈에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일단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구성을 그려냈다. 그리고 옆으로 여백이 보일 거야.”
“그렇네요. 이게 뭔데요?”
그림이 꽉 들어차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백을 살리면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남겨둔 것이다. 일단 선주문으로 들어오는 자의 취향에 맞추어 건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구조를 미리 그려낸 것은 바꾸기 쉽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려냈다.
천악이 그림을 지적하면서 설명을 이어가자 금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선주문을 받고 계약금을 받자는 거네요.”
“그렇지. 공사에 필요한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계약금 없이 그냥 계약하면 나중에 해약을 했을 경우 불필요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야.”
아직 부동산법이 제대로 지정되지 않은 시대다. 계약을 해도 제대로 이뤄지기 쉽지 않은 것이 보통의 상황이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받는 계약금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일단 천악이 만든 건물을 보면 사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집 가격이 상당하니 보여줄 사람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게 단점이기는 해.”
“그렇기는 하지만 걱정 없어요. 상가의 연줄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줄게요!”
대륙제일상가에다가 구문제독부와 연관이 있었다. 연줄이 작다면 그게 더 거짓말이었다. 금은혜는 팔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홍보를 목적으로 사람들이 사도록 끌어들이는 것을 광고라고 한다.”
“광고요? 그런데 그걸 왜 설명하는 거예요?”
가끔씩 천악이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일일이 설명해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광고는 돈이 되는 일이지. 그렇기에 네게도 도움이 될 거야.”
“그렇기는 하겠네요.”
“주문을 받을 때 원하는 것을 제대로 적어서 가져왔으면 한다.”
“물론이에요.”
금은혜는 모든 설명을 듣고 정리를 했다. 필요한 것들을 가장 간단하게 종이에 적어놨다.
“저, 제 집에는 언제 갈 거예요?”
“5일후에 출발하지.”
“정말이요? 그럼 바로 준비할게요.”
금은혜는 시간이 촉박하니 일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바로 일어서서 금천상가 지부로 돌아갔다. 빨리 서두를수록 바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날부터 임극환, 유화, 도지연이 바쁘게 움직였다. 금은혜가 특급으로 명령을 내리고, 갑부들을 차례로 방문해서 일일이 그들의 성향과 취향을 파악하고, 집이 필요한가를 타진해야 했다.
고작 5일 동안 이루어진 홍보였는데 상황은 급물살을 만난 것처럼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이유는 천악이 그린 도안 때문이었다.
도안의 섬세한 그림을 보자마자 사고 싶어 하는 갑부들이 많이 나타났다. 또한 만들어진 집이 너무 세련되고 편리해 보였다.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완벽하게 맞춘 집을 만들 수 있어서 선호도가 높았다.
또한 도시 내에 수로시설이 마련되는 것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말이 되었다. 상당히 대대적인 공사지만 믿음이 가는 이유가 있었다. 명 황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금천상가가 지원하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지는 도시 건설은 안휘성뿐만 아니라 다른 성에서도 관심이 있었다.
작은 소문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정도의 대규모 공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천악은 5일 뒤에 금은혜를 다시 만나서 내용을 간추렸다.
“얼마나 확보했지?”
“상황을 전달하고 사람을 확보하는 일이에요. 아무리 관심이 많고 속도가 빨라도 최소한 보름은 걸려요.”
“그런가? 생각보다 느리군.”
“그게 왜 느려요. 소식이 이 정도면 얼마나 빠른데요!”
상황이 좋은 쪽으로 흘러갔지만 천악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소식을 전달하는 체계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었다. 천악이 살았던 세상은 정보가 광속에 가깝다. 바로 여기서 얘기한 이야기가 금세 퍼져 다음 날이면 온 세상에 다 뿌려져 버린다. 그런 세상에 살았던 천악이 이 정도로 빠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인터넷은 둘째치고 전화가 없는 것이 소식을 느리게 전달한다.
“이걸 주지.”
“이게 뭐예요?”
작은 구슬이었다.
15개정도 되는 구슬이었다. 모양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 보석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통신구다.”
“통신구요? 그게 뭔데요?”
“서로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 물건이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구슬에 내공을 넣어 소식을 전달할 수 있다.”
“와! 굉장하네요!”
상당히 편리한 기구였다.
사람이 소식을 전달하려면 말을 타고 달리거나 걸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전서구나 봉화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불확실하다. 사람은 도중에 죽을 수도 있고, 전서구는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간다는 보장이 없었다. 더군다나 봉화는 단순히 몇 가지를 전달하는 것이 전부였다.
천악이 준 통신구만 있다면 전쟁이 났을 때도 상당한 효율성을 지닐 것이다. 각 성마다 통신구를 놓고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히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기구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천악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은 사양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효율성이 다른 쪽으로 이용돼서 사람이 죽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유쾌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천악은 자신이 이용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금은혜에게 준 것이었다. 다른 쪽으로 이용되는 것은 불가(不可)였다.
“상행위를 위해 이용해라. 그리고 이것은 한시적인 것이다.”
“한시적이라면 사용 시간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렇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지. 다만 내가 시간이 될 때마다 15개씩 주마, 반드시 상행위를 위해서만 사용해라. 다른 일에 사용한다면 주지 않겠다.”
금은혜는 천악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전쟁에 사용되면 좋은 일이 아니지.’
명 제국을 위해서는 나은 일일 수 있지만 사람이 죽는 전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금은혜도 사양이었다.
“내가 이걸 주는 것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라는 뜻으로 주는 것이다. 소식을 빨리 전하고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금천상가에는 상당한 도움이 될 거다.”
“고마워요. 군 오라버니의 뜻을 알겠어요.”
“들어설 문파는 정해졌나?”
“세 개의 문파가 유력해요.”
“어디지?”
“우선, 남궁세가와 제갈세가, 그리고 우리 상가예요!”
“금천상가가 문파인가?”
“상회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무력은 불가피해요. 힘없이 상가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좋아, 원하는 대로 지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