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2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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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02화
요동풍운(遼東風雲) (2)
요동성(遼東城).
요동성은 중원의 끝자락에 자리한 성으로 외부적으로 변방에 속하는 지역이다. 중원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중원인들의 뇌리 속에서는 여전히 변방 오랑캐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힘이 있었지만 중원의 굳건한 문을 두드리지는 못했다.
모용세가(慕容世家).
요동성의 수도인 심양에 자리한 무가(武家)다. 요동성의 패자라고 불리며,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지만 요동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용세가는 진나라 이전의 연왕이 조상이며 왕족이다. 몇 번이나 중원의 오대세가 안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으니 끝내 좌절하고 말았다. 수차례의 실패로 인해 이제는 요동성 안에서도 영향력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현재의 모용세가는 요동성 안에서만 자리하며 힘을 유지하는 데 노력하는 실정이었다.
모용세가의 가주실.
한 사람의 목이 잘려 있었다. 그는 모용세가의 가주인 건곤신검(乾坤神劍) 모용성이었다. 모용성은 요동성을 지배하는 구대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절정고수였다. 그런 인물이 단 한 번의 검질에 목이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머리는 아직도 눈을 감지 못했다. 부릅떠진 눈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뜻이 읽혀졌다.
밤늦은 시간에 가주실에 들어와 태연하게 모용세가의 가주를 죽인 인물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의 해후를 이렇게 해서 미안하군.”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용성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아니, 알고 있어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용세가에서 버림받은 인물인 모용수였다.
오래전 일이었다. 모용세가의 전대 가주인 모용천중이 천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배경도 없는 여인을 후처로 두게 되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일은 뻔하고 상투적인 일이었다. 정실부인의 괴롭힘.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져도 천한 태생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모용세가가 중원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모용수는 스무 살의 나이에 모용세가에서 나왔다. 아니, 쫓겨났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가지 않았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뒤 사십 년 만에 나타나서 모용세가에 혈풍을 불게 하고 있었다.
“모용세가는 본교의 소속이 되어 중원 진출의 교두보가 될 테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대답할 리 만무했다.
모용수는 형을 죽이고 난 후에 밖으로 나왔다. 밖은 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모용세가에서 반항한 흔적들이었다. 흔적들은 치우면 그만이었다. 살아 있어봐야 반항하는 것들은 다 쓸어버리는 편이 나았다.
모용수의 앞으로 수하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모용수가 데리고 온 교의 전투부대인 흑룡대였다. 모용수는 흑룡대의 대주이자 교의 장로였다.
흑룡대의 대원들이 노인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많은 주름을 가지고 있는 노인이었다.
“이거 누구야, 내 어머니를 괴롭히고 나를 쫓아낸 현 장로가 아니신가!”
모용수의 입가에 비웃음과 동시에 살기가 서렸다. 모용세가의 장로인 모용현이었다. 나이가 이제 아흔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인물이었다. 천한 태생이라며 모용수의 어머니를 괴롭히고 모용수를 쫓아낸 인물이었다. 모용현은 모용수를 쫓아낸 후 비밀리에 살수까지 동원했다. 가문을 등지고 난 후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손을 쓴 것이다. 때마침 교의 인물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교에 들어가서 무공을 배웠다.
“설마! 모용수!”
“그렇다. 아직까지 살아 있다니 반가워서 미칠 지경이야! 크하하하! 너무 오래 사니까 험한 꼴을 보는 거다.”
모용수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모용현의 자식인 모용단천이 끌려왔다. 그와 더불어 그의 손자들까지 모두 끌려왔다.
부르르!
모용현의 온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자신의 앞에 끌려온 자식들. 그리고 사악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모용수.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모용현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아이들만은 살려줘라!”
“이미 형까지 죽인 개백정인 나한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군.”
모용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용단천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안 돼! 이놈! 네놈만은…….”
“어쩔 건데? 다 늙어빠진 늙은이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모용현의 발악은 소용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모용수는 모용현이 보는 앞에서 그의 자식들을 하나씩 죽였다. 자식들이 모두 죽어나가자 모용현의 눈에서 핏물이 흘렀다. 타인의 자식을 괴롭히고 죽이려고 한 죄를 몇 배로 받고 있었다.
혈루(血淚)를 흘리는 모용현에게 모용수가 말했다.
“난 받은 대로 갚아주는 사람이야. 그럼 잘 가라고!”
스윽!
모용수의 검이 모용현의 가슴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모용현이었다.
흑룡대주 모용수의 명령에 모용세가가 모두 점령되었다. 오백 명의 흑룡대가 모용세가를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이 각도 되지 않았다. 흑룡대원 개개인의 실력이 막강하다는 뜻이었다.
모용수는 개인적인 원한을 갚은 즉시 사로잡은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 수가 족히 육백 명은 되었다.
“이제부터 모용세가의 가주는 나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말하도록.”
반대할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용세가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무인들은 흑룡대의 손속에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검을 버리고 투항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부터 새로운 모용세가가 되는 것이다. 그 선봉장에 서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살아남은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반항을 한 무인들은 모두 죽은데다가 인질까지 잡혀 있는 상태였다. 배신을 한다면 가족의 생존이 보장받지 못한다. 분노한다고 해도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는 사십 년 만에 나타난 모용수였다. 그의 능력과 그가 데려온 무인들은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아무리 강해도 이길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모용세가의 정리가 끝나고 하루가 지났다. 하루 만에 모용세가의 피비린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피가 아직 마르지 않는 시간이지만 또다시 피가 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용수는 전투부대를 다섯 개로 나누었다. 흑룡대 백 명을 기준으로 모용세가의 인원을 백이십 명씩 나눈 것이다. 특별히 이름을 짓지 않았다. 흑룡 일 조, 흑룡 이 조 정도의 타격대였다. 타격대라고 하지만 요동에서 흑룡대의 상대가 될 곳은 없었다.
모용세가를 정복하기 전에 이미 요동성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파는 정복된 지 오래였다. 남은 문파는 철혈세가(鐵血世家), 장백검파(長白劍派), 천궁도문(天宮刀門), 금왕문(金王門), 패천문(覇天門) 정도였다. 다섯 개 정도가 아직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일단 모용세가의 이름으로 다시 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물론 이것은 형식적인 것뿐이다. 무인들치고 고분고분 말을 듣는 자는 거의 없었다. 반항한다면 단번에 쓸어버리고 힘을 보여주면 어쩔 수 없이 따라올 것이다.
“철혈세가가 가장 강하니까 내가 직접 가지. 나머지 떨거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알겠습니다.”
흑룡대를 나눈 조장들에게 장백검파, 천궁도문, 금왕문, 패천문의 생사를 맡겼다. 철혈세가는 모용세가 다음으로 요동성에서 힘을 떨치고 있는 문파였다. 특히 철혈세가의 가주 철혈냉검(鐵血冷劍) 천태진은 요동구검(遼東九劍)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철혈세가의 철혈십이검로(鐵血十二劍路)를 십성 이상 터득한 검의 고수 중 한 명이었다. 만만히 상대할 수 있는 세가가 아니었다. 모용세가와 마찬가지로 요동성을 대표하는 문파 중에 하나이니 말이다.
“독고패 장로가 오시기 전에 요동성을 제압한다.”
“예, 대주님!”
계획이 세워지자마자 모용세가는 전투 태세에 돌입하고, 전진했다. 모용세가의 주변을 정리한 이후라 소란이 있지는 않았다.
흑룡대주 모용수가 철혈세가로 향했다.
어두운 밤.
불이 밝혀졌다. 인위적으로 등화(燈火)를 밝힌 것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인해 어둠이 밝혀지고 있었다. 굳건하게 버티던 버팀목이 불길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나갔다. 무너진 담장 밑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인들이 차가운 바닥에 뒹굴었다.
“허억! 허억!”
철혈세가의 마지막 자존심인 철혈냉검 천태진의 눈동자는 한없이 흔들렸다. 철혈세가의 무공을 익히면 마음까지도 철혈로 바뀐다고 전해진다.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최강의 무기로 사용하는 철혈세가였다. 그런 철혈세가의 가주인 천태진의 마음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철혈세가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갔다.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려고 해도 가혹한 현실 앞에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었다.
천태진은 검을 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세가의 가솔들이 죽어 나간 것도 문제지만 바로 앞에서 검을 들이대고 있는 인물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철혈세가의 독문검법인 철혈십이검로가 상대에게 타격을 전혀 주지 못했다. 너무 강했다. 그가 이제까지 상대한 인물 중에 이처럼 강한 자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냉혹할 정도로 잔인했다.
“모용세가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러게 말로 했을 때 들었어야지. 요동혈맹에 가입을 했으면 이런 험한 꼴 당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
“닥쳐랏, 네놈들의 야욕을 위해 세가를 희생시키란 말이냐!”
“그래 봤자 쓰레기지만 잠시 쓸모 있게 사용해 주려는데, 너무 말이 거칠군.”
부르르르!
철혈세가가 저따위 평가밖에 받지 못한다는 것과, 지금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폭발할 정도로 화가 치솟았다. 미칠 듯이 분하고 억울한 일이었다.
“무림은 강자지존. 강자의 말을 듣지 않고 버틴 것이 너의 실수다.”
모용수의 차가운 말이었다.
“허!”
천태진의 입가에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강자지존,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의(義)와 협(俠)은 강호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무정(無情), 잔혹(殘酷), 군림(君臨)만이 남겨진 강호였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는 것은 옛말에 불과하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천태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발악이라고 해도 좋았다. 마지막 가는 길 놈의 목숨과 같이 죽을 각오를 다졌다.
“네놈만은 죽여주겠다!”
“근성은 있군. 하지만 세상은 근성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나이는 되지 않았나.”
“닥쳐!”
천태진이 모용수를 향해 검을 출수했다. 철혈십이검로의 마지막 초식인 철혈극한(鐵血極限)이었다. 마지막 극의에 모든 내공과 진력을 담았다. 그 힘이 빛을 발하며 빠르게 모용수를 덥쳐 왔다. 사방을 모두 검기의 물결로 막아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모용수의 입가에 맺힌 비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쩌저저적!
검기의 그물을 단칼에 갈라버렸다. 상대가 되지 않음에도 덤비는 근성은 인정하지만 결국 피라미의 발악일 뿐이었다. 모용수가 발출한 검의 궤적이 철혈극한을 가르고 날아갔다.
“커억!”
섬광과 같은 빠름과 힘을 구비한 모용수의 검이 천태진의 상체와 하체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실력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상황이었다. 반으로 갈라진 천태진은 검을 든 채로 기울어졌다. 그것이 천태진의 마지막이었다.
모용수는 불타는 철혈세가를 보며 한마디를 했다.
“싱겁군.”
독고패 장로는 계략을 사용하여 중원을 진압하려는 이유가 본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본교의 피해는 지금도 없었다. 중원 무림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느껴졌다.
요동혈맹(遼東血盟).
모용세가를 주축으로 요동성의 무림이 정리가 되었다. 모든 요동성의 문파들은 요동혈맹에 복속되어야 했다. 요동혈맹의 이름으로 요동무림의 힘을 만방에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힘에 논리가 작용했다. 요동혈맹의 주축인 모용세가의 말에 거역한 문파가 하루아침에 불타버린 사건으로 인해 감히 거역할 문파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모용세가와 대등한 힘을 가진 철혈세가가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전소(全燒)한 것은 충격 중에 충격이었다. 모용세가의 힘이 과거와는 천지 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요동혈맹에 복속한 문파들의 수를 모두 헤아리면 오백 개가 넘었다. 그리고 그 수도 중소문파의 무인들까지 합치면 이만이나 되었다.
요도혈맹의 맹주는 당연히 모용세가의 가주인 일검혈(一劍血) 모용수였다.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피가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였다.
요동성을 기점으로 점점 피의 겁화가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