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97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97화
잠시간의 휴전(休戰) (1)
몽고평원은 초원 전사들의 대지다. 그 대지 위에 집을 지어놓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대형을 유지한다. 그들이 힘을 발휘하는 최적의 조건이 초원전투라고 할 수 있다. 초원의 제왕이 다시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철목성의 이마에 근심이 서려 있었다. 되도록 빨리 중원 정복을 하고 싶었던 철목성이었지만 그 일이 틀어지게 생겼다.
이유는 바로 갑작스런 섭지명의 죽음이었다. 섭지명은 철목성의 스승이자 모든 일에 관한 처리를 하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갑작스럽게 죽자 마련되었던 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철목성은 섭지명의 죽음에 대해서 조사를 시켰다. 누군가 은밀하게 섭지명을 암살한 것이 아닌가에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의원을 시켜 우선은 시신을 부검하고, 결과를 내었다.
하지만 섭지명의 죽음은 자연사(自然死)였다. 밤에 잠을 자다 저절로 혼이 날아갔다는 말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회의를 진행하던 섭지명이 자다가 죽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철목성은 섭지명이 죽자 군사체계를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섭지명이 했던 일을 모두 완벽하게 처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섭지명의 놀라운 능력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철목성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수하들 중에 유능한 자들을 선별했다. 그들의 지략이 섭지명에 비해 떨어질 수 있지만 급한 대로 많은 사람을 모아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들 중에 가장 유능한 인물이 무르타이였다. 무르타이는 어린 시절에 유학을 공부하다가 몽고인이라는 이유는 쫓기게 되어 다시 초원으로 돌아온 인물이었다.
막사 안에서 회의를 하던 철목성이 물었다.
“군대는 모두 충당이 되는 것인가?”
“전 군사께서 마련한 군대 20만은 이련호특에 상주해 있습니다. 다만 전에 마련된 상가와의 연합이 조금 어렵게 됐습니다.”
“상가가 왜 그러지?”
“상가와의 연합이 모두 섭 군사와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섭 군사가 죽으면서 그들이 지원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섭지명의 외교적 노력으로 이룩한 일이었다. 섭지명이 사라지면서 상가와의 연대관계가 무너져 버린 꼴이었다. 철목성은 급한 불부터 끄면서 일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섭지명이 마련한 틀이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
“이대로 적봉으로 쳐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지?”
“힘듭니다. 우선 상가와 연합이 되지 않으면 군수물자의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놈들이 성을 중심으로 방어를 하게 되면 우리가 이길 확률이 더 줄어들게 됩니다.”
제기랄!
철목성이 노성을 터뜨렸다. 화가 나도 지금 당장 방법이 없었다. 우선은 상가와 다시 접촉을 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겨울이 오는 이 시기는 가장 혹독하고 춥다. 전쟁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만약 조금 일찍 전쟁을 했다면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섭지명이 죽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다. 또한 섭지명이 명 황궁에 벌인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소식을 알 수 없지만 제대로 되었다면 만리장성의 군대가 뒤로 후퇴했을 것이다. 아무 소식이 없다는 것은 황궁의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되는 일이 없군.’
철목성은 하늘이 자꾸 자신을 외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요?”
무르타이는 철목성의 결정에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까지 이끌어온 몽고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의 말이 절대적이자 법이었다.
“우선은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그 기간 동안 군수물자를 확보하고, 전쟁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한다. 또한 불순한 무리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군사체계를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폐하!”
철목성이 기다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천악 때문이었다. 천악이 황궁에서 천영을 처리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천영이 죽으면서 분신체였던 섭지명도 죽은 것이다. 천영은 인간 중에 한 명을 선택하여, 혼을 죽인 후 자신의 혼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선택이 된 것이 섭지명이었다. 따라서 본체가 죽은 이상 분신체였던 혼이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황궁의 혼란과 더불어서 섭지명의 전략이 모두 결합이 되어야 완벽했던 일이 천악 때문에 철목성의 군대가 머뭇거리게 되었다. 중원의 입장에서는 시간도 벌고, 전쟁을 미루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였다. 그 기간 동안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폐허.
그 말밖에는 따로 설명할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낮에는 빛에 반사되어 자색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밤에는 불빛이 일렁이며 신비함을 자아낸다. 명제국의 기틀과 초석, 앞으로의 영광을 위해 장대한 공사 끝에 완성된 아름다운 성이 이제는 폐허가 되었다.
자금성(紫禁城).
굳건한 버팀목이었던 자색의 성이 온데간데없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성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 앞에 황제와 태자, 그리고 구문제독이 바라보고 있었다.
군대가 정비되는 대로 바로 자금성으로 쳐들어갔다. 맨 앞으로 선덕제와 그 뒤로 태자 구문제독이 나란히 말을 타고 돌진한 결과, 보고야 말았다.
“이…럴…수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자금성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사라지고 없었다. 남겨진 것은 곳곳에 부서진 잔해뿐이다. 그 중에 남겨진 궁들도 조금만 건드리면 무너질 것처럼 금이 간 상태였다.
병사들도 어안이 벙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상을 불허하는 천재지변이 벌어지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모두는 망연자실했다.
구문제독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폐하, 우선은 역모를 저지른 자들을 잡아들이는 게 먼저입니다.”
“그렇군. 어서 감행하라.”
병사들을 이끌고 자금성 안에 있는 자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곳곳에 병사들이 죽어 있고, 그 가운데 황색용포를 입은 자를 찾을 수 있었다. 용포를 입고 있던 자는 바로 주기옥이었다.
목이 기괴하게 꺾인데다가 몸의 이곳저곳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천악과 천영의 싸움 이후에 몸이라도 제대로 찾은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허허!
선덕제는 허탈한 심정이었다.
역모를 성공시키고, 위풍당당하게 말을 하던 자식은 죽어 있었다. 몸의 이곳저곳은 망가져 있고, 얼굴마저 피투성이가 된 채, 굳어 있었다. 옛말의 하나인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권력의 허망함을 직접 보여주었다.
“이렇게 되려고 권력에 욕심을 부린 것이냐?”
권력에 대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 하지만 이처럼 씁쓸한 결말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선덕제는 아들의 죽음에 허탈했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대역 죄인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죽은 시체조차 온전히 보전할 수 없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 아버지가 아닌 황제이기에 해야만 하는 일이다.
구문제독은 자금성에 일어난 일을 조사하고 있었다. 황궁이 왜 무너졌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곳저곳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하지만 화약을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자금성을 통째로 날리려면 화약의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화약을 사용하면 그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화약 냄새도 나지 않았고, 화약의 흔적도 없는데 황궁이 모두 무너졌다. 조사를 해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금권성은 허탈해하다가 얼마 전에 금은혜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아버지, 이대로 놔두면 황궁이 모두 박살난다니까요!
천악을 걱정하기에 말을 한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별달리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설마!’
천악이 황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 금권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아무리 천악이 강해도 그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이었는데, 금권성은 약간 가슴이 답답했다. 설마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감정이 들고 있었다.
‘아니겠지.’
우선은 황궁을 정리하고, 내부적으로 반란에 협조한 놈들을 색출하는 게 먼저였다.
“폐하, 우선은 구문제독부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기서 지내실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다 무너진 황궁은 사람 한 명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썰렁한 겨울바람이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선덕제의 마음을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들의 반란과 죽음. 자금성의 붕괴. 모든 것이 자신의 과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다시 생각해 봤자 소용없기에 한탄만이 흘러나왔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겠지, 나머지는 제독에게 맞기겠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덕제는 구문제독부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머지는 금권성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구문제독부에서 천악은 평상시대로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천악은 구문제독부가 황궁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바쁜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천악의 일상생활은 변화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천악이 정자에서 차를 마시며 정원을 보았다. 가끔씩 생각나는 것들을 종합해서 도면 작성하는 것을 빼면 별다른 일 없이 평온하다.
‘교주라!’
천악은 천영이 마지막에 한 말을 생각해 보았다. 용을 부리는 교주라면 보통은 넘을 것이다. 천악이 누군가에 대해 고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존재가 얼마나 강할지는 천악이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씩 도면을 그리면서 명상하는 천악 옆에서 남궁태희, 제갈지, 운정이 가만히 지켜보았다. 금은혜는 황궁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내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 천악의 옆자리에 없는 상태였다.
천악은 생각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자 지워버렸다. 소모적인 일에 모두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지금 생활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군 오라버니!”
“왜 그러지?”
“이번에도 저는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요.”
남궁태희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있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결국에는 천악의 도움 없이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다. 불가항력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회의적인 감정이 들었다.
“태희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것으로 책임은 다한 거라 볼 수 있어.”
“하지만 앞으로도 강적이 나오면 어떡하지요. 제가 지금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막을 수 없을 거예요!”
남궁태희는 강하다.
화경의 고수가 강하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상대하는 적들이 더 강하고 많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천악은 어쩔 수 없다고 단언했다.
무인이 되는 순간부터, 남보다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보다 강해지기 위해 수련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을 수 있는가!
세상은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격차를 생각하면 더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태희는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강하다고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불가항력적인 일로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더욱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그렇지만 억울해요.”
“그래도 할 수 없지.”
안 되는 것을 된다고 말을 하지 않는 천악이었다. 예전이라면 응석부리지 말라고 했을지 모른다. 위로와 더불어 격려, 그리고 사실을 모두 말해 주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할 필요 없다. 나는 강하다. 그것은 나도 알고 너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상에 나를 이길 자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다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확신은 하지 못한다.”
천악은 태평스럽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터놓았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천악은 강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이 의견에 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인들은 천악이 가진 무적의 힘을 알고 있었다. 천악이 자신이 가장 강하 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때는 설마라는 감정이 드는 여인들이었다. 솔직히 천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