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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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88화
신출귀몰(神出鬼沒) (5)
촤자자작! 파파팡!
빠르게 빙룡보를 펼쳐 최진평의 다리를 공격했다. 빙룡섬격(氷龍閃擊)이 아지랑이처럼 움직여 최진평의 동선을 계속 공격했지만 근거리에서 공세를 끊임없이 막아내는 최진평이었다.
하지만 냉사진의 일방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공격이 적중하려는 찰나의 틈을 뚫고 예리하게 반격하는 최진평의 일격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방심하면 심각한 부상을 당할 정도로 강력했다.
용호상박(龍虎相搏).
둘의 대결은 치열하여, 어느 누가 우세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막상막하였다. 한 번 공세를 펼치면, 방어하고 다시 공세를 펼치는 형국이었다. 지속적인 대결은 결국 내공과 체력의 승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냉사진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한빙극의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릴 때만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최진평도 자신의 힘을 다 내보이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북해빙왕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북해무림에서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건만 세상은 역시 넓었다. 무수히 많은 강자들이 자신의 힘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의 힘이 세상에 나왔을 때 알 수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냉사진은 점점 다급해졌다. 그러자 후회가 밀려왔다.
-북해빙궁의 일은 내가 해결하겠네! 자네는 나서지 말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다. 그 말을 다시 입속으로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마난추(駟馬難追), 한 번 내뱉은 말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로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번 내뱉으면 끝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냉사진은 처음부터 신중하지 못하게 판단한 것을 후회했다. 냉사진이 후회하고 있을 때, 장로들 중에 절반이 죽고, 북해천궁친위대의 수하들도 절반 이상이 차가운 바닥에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이미 피해가 너무 컸다.
냉사진은 후회하면서도 나타나지 않는 천악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어디 있는 것인가!’
이러다가는 자신의 아들과 딸도 차가운 주검이 될 것 같았다. 다급해진 마음이 검끝을 무디게 만들었다.
최진평은 냉사진의 다급함을 검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제 파탄이 날 차례다!’
아앗!
냉상아의 가슴과 팔다리에서 쉴 새 없이 핏물이 흘렀다. 간신히 중상을 면하기는 했지만 핏물이 옷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녀는 아픔보다 천악이 사라진 것이 더 마음 아팠다. 안타까움, 그만 있었다면 이 같은 참담함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북해검룡 냉무기가 동생의 옆으로 다가와서 적들의 검을 막아주었다. 동생의 안위를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자신들도 바닥에 뒹구는 시체가 될 것이 확실했다.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허억!
냉사진은 갑작스럽게 가슴과 단전이 갑갑해졌다. 무언가 급속하게 힘을 빼앗고 있었다. 좀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기운이 빠지더니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최진평과 근접전에서 검을 맞댈수록 그러한 현상이 가속되었다. 냉사진의 검이 흔들리며 뒤로 밀렸다.
“이제 시작인가. 크크크!”
“네 이놈! 무슨 수작인 거냐!”
최진평은 냉사진의 말에 비웃음과 더불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기세 좋게 내공을 끌어올려 사용했지. 그리고 나와 계속 검을 마주 대한 것이 실수다. 나의 내공은 탈음빙공(奪陰氷功)이라고 한다. 너의 음한진기가 나의 내공을 더 늘려주었다.”
탈음빙공은 냉기 계열의 내공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은 시전자의 능력과 비슷할수록 더욱더 효과적이다. 따라서 최진평의 입장에서 냉사진은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극 중의 상극의 형상이었다. 지금까지 무리하게 한빙신의 상태로 머문 게 탈이었다.
뿌드득!
냉사진이 이를 갈았다.
탈음빙공을 다른 말로 하면 흡성대법(吸星大法)이 아닌가! 빙공계열의 내공을 가진 자들에게만 통한다는 것을 빼면 흡성대법과 같았다.
흡성대법은 상대의 내공을 빨아들여 자신의 내공으로 만드는 사악한 내공심법이다. 강호의 무인들은 흡성대법 자체를 경멸하여, 익히는 것 자체가 공적(公賊)이 될 수 있었다.
강호의 공적이 되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렵다. 무인들이 천라지망을 펼쳐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천라지망이 무서운 점은 차륜전 때문이다.
아무리 내공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고 해도 분명히 한계는 존재한다. 더군다나 쉬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여지껏 천라지망에서 살아났다는 무인은 들어보지 못했다.
냉사진은 무인들이 경멸하는 흡성대법을 사용하면서 웃고 있는 최진평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대등한 상태에서 자신은 내공을 빼앗겼고, 상대는 내공을 얻어 더욱 강해졌다. 철저하게 최진평의 농간에 속았던 것이다.
놈이 처음부터 접근전을 할 때 생각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놈의 공격을 맞아낼 힘이 거의 없어지고 있었다.
“네 딸은 내가 고이 간직해 주마.”
“뭐야! 네놈을 죽이겠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라니까! 말로는 무슨 말을 못해, 해봐! 해보라고! 크하하하하!”
최진평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냉사진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을 농락하고 비웃다니, 이미 무인이라고 지칭할 수 없었다.
“네놈이 그러고도 무인이냐!”
“웃기는군. 모든 것이 다 네 탓이다. 그냥 주화입마로 죽었으면, 북해빙궁은 본교의 지부로써 중원땅의 일부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놈이 나타나서 이런 파탄이 난 거야. 그러니 모든 것은 네놈 탓이라고 할 수 있지!”
“닥쳐랏! 어디서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느냐!”
“그렇게 억울하면 날 죽여봐라! 죽여보라니까! 못하면서 말은 잘도 하는구나!”
부르르르르!
모멸감에 전신이 떨리는 냉사진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들어보기나 했단 말인가! 북해궁주인 자신에게 이런 모욕적인 말을 한 자는 맹세코 처음이었다. 냉사진은 자신을 모욕한 자를 이길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이 증오스러웠다.
최진평이 통쾌한 듯이 비웃음을 날릴 때 등 뒤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북해는 원래 추운 곳이라 혹한의 바람이 분다. 그 정도는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최진평의 능력은 탁월했다. 그런데 최진평은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죽고 싶나.”
최진평의 당혹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라는 말은 이미 머릿속에 지워졌다. 왜 갑자기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반경 3장 안에는 냉사진과 자신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근접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의 등 뒤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또한 인기척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말 그대로 귀신의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소원을 들어주지.”
척!
최진평의 목을 감싸는 손아귀가 있었다. 목이 잡히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최진평이었다. 온몸이 번개에 맞은 것처럼 경직이 되어버렸다. 움직이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말…도 안 돼!”
탈음빙공을 끌어올렸지만 소용없었다.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몸은 굳어 있었다. 순간 냉동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생사여탈권은 등 뒤에 나타난 목소리의 주인뿐이었다.
최진평은 죽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목이 잡혀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다니,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본교 서열 10위 안에 드는 최진평이었다.
허무한 것은 둘째치고, 모든 것이 손아귀에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할 수 없게 되었다.
억울해서 죽을 수 없었다.
“이…보…시오! 날 살…려주시오! 그럼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주겠소!”
“시끄럽군. 좀전까지 죽여보라고 하지 않았나.”
최진평은 좀전에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복수불수(覆水不收), 이미 흘러버린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상대를 약올리려고 한 가벼운 말장난에 불과한데, 그것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것은 냉 궁주에게 한 말이오. 당신에게 한 말은 아니지 않소!”
여전히 뒤를 바라보지 못하는 최진평이었다. 목이 잡힌 상태에서 얼음이 되었다. 누가 땡! 해주지 않는 이상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럴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내 수하들은!’
곁눈질로 주변을 보았다.
헛것이 보인 것 같았다. 모든 수하들이 갈가리 찢겨진 채 육편만이 남아 있었다. 옷 모양을 보지 않았다면 수하들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언제 어떻게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었다. 수하들이 죽어나갔는데도 알지 못했다니 그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누가 해치울 수 있을까!
결론을 내리자 온몸이 떨려왔다. 등 뒤에 존재가 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상상도 못할 괴물임에 틀림없었다.
‘수하들이 모두 죽다니!’
교에서 지원을 보내준 무인들이었다. 정예무인들이 비명성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어나갔다는 말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을 정신이 아니었다.
냉사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자신도 보지 못했다. 순간 바람이 불었다고 생각할 시간에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허!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하는 냉사진도 기가 막혔다. 구해준 은인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괴물임에 틀림없었다. 인간의 잣대로 그 크기를 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었다. 냉사진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냉무기와 냉상아도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것은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두려운 무언가를 봤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냉상아가 좀전의 상황을 기억해 보았다.
냉무기와 냉상아, 장로들이 거의 최후까지 밀리는 상황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태에서 한 걸음만 뒤로 밀리면 숨이 끊어질 절망적인 상황이다. 살아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 순간에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 나타났다. 바람처럼 나타나서 적을 향해 가차 없이 휘둘렀다.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사람의 신형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방으로 육편이 휘날렸다. 사람의 몸뚱아리가 그처럼 쉽게 잘라지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너무 쉬웠다. 바람이 지나가자 그 앞으로 존재하던 적들은 왜 자신들이 당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머리와 몸이 분리가 되고 사지와 몸뚱아리가 따로 떨어져 나갔다. 바로 눈앞에서 죽음의 피보라가 일어난 순간에 다시 반대쪽에서 사방으로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토록 끈질기게 공격해서 장로들과 북해천궁 친위대를 죽여나갔던 적들이 다 죽었다. 일순간에 다 죽어나가자 허탈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이 이 같은 자들에게 쩔쩔맸다는 것조차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냉상아가 그 바람의 종착지를 보았다.
종착지에는 자신이 비겁자라고 불렀던 인물이 최진평의 목을 잡고 있었다.
다들 최 장로의 신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북해빙왕 냉사진을 밀어붙였던 가공할 고수가 속절없이 잡힌 채로 메달려 있다. 현실적으로 그 모습을 보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다들 얼이 빠져버린 것도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