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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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86화
신출귀몰(神出鬼沒) (3)
천악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직은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고, 도움을 원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분명히 도와준다고 말을 했다. 그럼에도 냉사진은 스스로 해결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천악은 물론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다. 놈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황은 때에 따라서 극한에 이르렀을 때,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때론 미지의 힘이 튀어나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냉상아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은 상황에서 두 명의 떨거지까지 데리고 왔다.
‘귀찮은 여인이군.’
그러나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 스스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냉사진은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거절했지만 자존심이 목숨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지푸라기조차 붙잡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었다.
“이봐요!”
등 뒤로 검을 찔러 들어오는데도 천악을 부르는 냉상아였다. 천악의 손이 움직였다.
슈슉! 찌지지직!
야수의 인이 날카롭게 날아가서 뒤에서 덮쳐드는 두 명의 무인을 반도막으로 잘라내었다. 좌우로 분리되는 육편과 더불어서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잔인한 장면과는 별개로 냉상아는 안심했다. 천악이 생각대로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인가요? 어서 도와주세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궁주님께서 궁 내부의 일은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잖아요! 어서 도와주세요!”
냉상아는 염치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일어난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죽게 생겼는데, 그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천악이 냉상아의 말대로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군 오라버니! 도와주세요!
음!
천악이 금은혜에게 준 통신구에서 연락이 왔다. 소리를 들은 천악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군.’
천악은 일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별개라고 여겼다. 여기가 먼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 같이 지낸 남궁태희, 금은혜, 제갈지, 운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북해빙궁은 그 일을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할 일이다.
천악이 냉상아의 간절한 눈동자를 보았다. 하지만 냉상아보다는 그녀들이 더 중요했다. 북해빙궁의 일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먼저 일을 해결하고 북해빙궁을 도와줄 생각을 굳혔다. 그 전까지 버티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양심의 가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조금 더 버텨야겠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다 죽어가게 생겼는데!”
“아직 버틸 만한 것 같습니다. 그럼.”
슈슉!
천악이 사라졌다.
남겨진 냉상아는 얼이 빠져 버렸다. 천악이 사라지자 희망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냉상아는 분노했다. 도와주지 않고 도망쳐버리다니 이게 사내로서 할 짓인가!
“비겁자! 당신 같은 사람을 내가 믿었다니!”
글썽! 글썽!
냉상아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아버지를 치료하고, 자신을 구해준 인물이라 호감을 가지기도 했는데, 정말 중요할 때 도망치다니 그를 잠시나마 믿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역시 사내를 믿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대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위태한데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창궁무애검법(蒼穹武涯劍法)
-창궁무애(蒼穹無涯)
-염왕사자도법(閻王獅子刀法)
-지옥나락(地獄奈落)
쿠카가가가강!
창궁무애검법의 비전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밀리고 있는 남궁태희였다. 처음에는 힘을 아끼려고 최대한 절제하여 공격을 막아냈다. 간간이 쾌검을 구사하여 한 놈씩 차근차근 끝을 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에게 경각심만 주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놈들이 진을 구축하여 공격하며, 자신은 따로 상대하는 존재가 있었다. 구문제독부를 공격한 놈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놈인 것 같았다.
혈랑과 남궁태희의 절기가 중간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주르르륵!
절기의 폭발로 밀리는 것은 남궁태희였다. 그녀는 흔들리는 검신을 다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창궁무애검법의 10절초를 모두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승부는 자신의 열세였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제법이군. 지옥나락을 버티는 계집은 처음이야.”
혈랑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서려 있었다. 복면을 하기는 했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것이 거북하기까지 했다.
남궁태희는 지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익힌 남궁세가의 무공이 최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혈랑이 다시 전진했다. 그의 도법은 패도적이면서 지극히 살인적이었다. 적을 죽이기 위한 최강의 도살도법(屠殺刀法)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휘두르는 도강의 궤적에 서려 있는 숨 막힐 듯한 살의가 상대하는 남궁태희의 정신을 괴롭힐 정도였다. 화경의 고수를 짓누르는 무섭도록 강렬한 살의(殺意). 혈랑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부딪칠 때마다 전해지는 살의가 보통이 아니야!’
이만한 살의를 가지려면, 그냥 수련만 해서는 될 수 없다. 무수히 많은 피를 머금어야만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이었다.
혈랑은 계집이라고 하여 얼굴, 가슴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상관하지 않고 살초를 날렸다. 본능적으로 얼굴과 가슴을 가리려는 여자의 심리를 자극하면서 공세를 펼쳤다.
삼영살은 남궁태희가 한 사람에게 얽매이고 있을 때, 수십 명이서 한꺼번에 달려드는 천영단을 상대해야 했다. 사방에서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방위를 형성하여 공격하기에 쉽사리 반격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삼영살 중에 한 축이 한번 잘못 공격하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했다.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삼영살의 무섭도록 강력한 집념이었다. 천악이 그들에게 준 임무가 바로 여인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집념은 미지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충분한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집념보다 상대하는 역량이 더욱 엄청나고, 질길 때 한순간 방심이 파탄을 내기 마련이었다.
허억! 허억!
신일, 충호, 전칠은 체력과 내공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처럼 쉽게 지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천영단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배운 아이들의 수련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실전이라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체력과 심적인 소모를 불러일으킨다. 전체적으로 경험이 부족하기에 체력과 내공의 분배를 적절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입속에서 단내가 풍겨나올 지경이었다.
제갈지와 금은혜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상대하는 적들이 너무 강했다. 금은혜는 잠시 뒤로 몸을 뺐다. 그리고 몸속에 간직하고 있던 구슬에 내공을 가했다. 천악이 주었지만 설마 하는 심정에 사용하지 못했다. 아니 상황이 다급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금은혜가 구슬에 내공을 불어넣어 소리를 질렀다.
-군 오라버니! 도와주세요!
구슬에 내공이 흘러 들어가자 빛이 반짝였다. 구슬에 내공을 가해 일단 불러보고, 다시 제갈지의 옆으로 가서 검을 출수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금권성과 주기진은 한탄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권력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지금은 그저 여인들과 아이들의 방해꾼이 되어 있었다. 비참하기가 이를 데 없는 상황이었다.
금권성은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참사는 무능력의 산실이었다.
“죽어랏!”
혈랑의 염왕도(閻王刀)가 남궁태희의 흔들리는 신형을 따라 정확하게 노리며 들어갔다. 남궁태희는 밀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방어했지만 상대의 가공할 살초에 틈을 내주고 말았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염왕도에 서린 도강(刀剛)이 보통을 넘었다. 목을 향해 날아오는 도강을 피할 재주가 없었다. 마지막에 혈랑의 염왕광격포(閻王狂擊砲)를 피하느라 공중으로 솟아오른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녀의 등 뒤로 천영단 네 명이 검을 출수했기에 피할 곳이 공중밖에 없었다. 일대일 상황에서 상당히 치사하지만 혈랑은 상관하지 않았다. 치사해서라도 이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공중은 몸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또한 사람이 새가 아닌 이상 지면으로 내려오기 마련이었다. 그 틈을 정확하게 파악한 혈랑의 살초가 망설임 없어 뻗어나갔다. 아름다운 여인이건 말건 죽으면 다 고깃덩어리라 생각하는 혈랑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궁태희는 자신을 향해 오는 도강을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몸이 경직됐다.
‘죽는 건가!’
검을 든 검수로서 죽음은 언제나 따라오는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다른 누구도 아닌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주마등처럼 스처지나가는 과거의 편린 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군 오라버니!’
한 번은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한정된 시간은 이제 얼마 없어 보였다. 도강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혈랑은 비명성을 지르는 상대를 좋아한다. 상대방의 고통을 즐기는 변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을 가진 여인이 비명성을 지르며, 일그러지는 것에 통쾌함을 느끼고 싶었다.
“비명을 질러라!”
이얍!
기합소리가 전해지가 염왕도가 남궁태희의 가슴 정중앙을 꿰뚫어버려는 듯이 날아갔다.
팟!
육편이 뚫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혈랑은 자신의 도(刀)가 누군가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염왕사자도법 중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염왕일격섬(閻王一擊閃)이었다. 도강에 서린 힘은 피륙으로 만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극강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이라고 불리는 이 수법은 하수가 날리는 검을 고수가 잡는 것 정도로 표현이 된다. 하지만 절대고수들 간의 대결에서 공수입백인은 일어날 수 없는 꿈 같은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 이유가 바로 내공의 유형화된 형상, 즉 검기나 검강 때문이다. 검기나 검강을 맨손으로 잡으려면 그보다 강력한 내공과 금강불괴와 같은 신체를 가져야 한다.
또한 그 효용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잡는 것보다 막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고수 간의 대결에서 쓸데없는 움직임은 저 세상 가는 길을 단축하는 행동이다. 그런 일을 할 고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는 혈랑은 화가 머리끝까지 끓어올랐다. 혈랑 정도의 고수가 공수입백인을 당했으니 창피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빌어먹을!”
남궁태희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생각한 인물이 직접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주었다. 하늘에서 백마를 탄 왕자가 나타난다는 어린 시절 추억의 얘깃거리가 떠오를 정도로 기막힌 상황이었다.
한 손으로 남궁태희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염왕도를 잡은 천악이었다. 천악은 공간이동을 하자마자 남궁태희의 위험함을 파악했다.
천악은 착잡했다.
만약 지금 늦어서 남궁태희가 죽었다면 참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심하지는 않았지만 일이 뜻하지 않게 계속 흘러가는 것 같았다.
“괜찮나?”
“괜찮아요.”
남궁태희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위기의 상황이라서 얼굴이 붉어진 것인지, 아니면 천악의 품에 안겨 있어 붉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전자보다는 후자일 가능성어 더 커 보였다.
천악이 등장하자 삼영살과, 신일, 충호, 전칠, 금은혜, 제갈지, 운정 등은 반색했다. 이제까지의 어려움은 모두 없어진 것과 같았다. 그 중에서 금은혜는 사실 약간 심통이 났다.
‘내가 불렀는데!’
부른 건 자신인데, 품에 안긴 것은 남궁태희였다. 죽 써서 개 준 꼴이 되어버렸다.
갑작스레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금권성과 주기진은 어리둥절했다. 아직도 위기의 순간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표정들이 밝아졌다.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만으로 이 정도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다니 놀랍기까지 했다.
‘도대체가?’
‘저 청년의 등장이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천악은 품에 안긴 남궁태희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 말을 했다.
“이제 내가 맡으마.”
“알았어요, 오라버니!”
남궁태희를 놓아준 천악의 차가운 시선이 혈랑에게 향했다. 혈랑은 그동안까지 염왕도를 다시 빼앗으려고 있는 힘을 다하고 있었다. 염왕마공(閻王魔功)을 10성 이상 끌어올렸는데도 불구하고, 꿈적도 하지 않자 어이가 없었다.
“말…도 안 돼!”
염왕마공은 패도마공(敗道魔功)계열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 마공이었다. 가로막는 것은 힘으로 부서뜨리는 염왕마공이 상대의 힘 앞에서 속수무책인 상황이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내공과 힘을 다해도 빼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혈랑은 염왕도를 놓았다. 무인은 무기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혈랑은 달랐다. 생사의 경계에서 무언가에 집작해서 승부를 놓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보았다.
판단을 내리자마자 염왕도을 놓고 천악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파고든 순간에 염왕마권(炎王魔拳)의 염폭격(炎爆擊)을 출수했다. 염폭격은 닿는 순간 강력한 화기를 동반하며 폭발을 일으키는 권법이었다.
안으로 파고들어 짧은 간격에 내질러지는 염폭격의 위력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