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184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184화
신출귀몰(神出鬼沒) (1)
외부적으로 보이는 자금성은 평온해 보였다. 불빛이 일렁이는 모습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어 보였다. 밤하늘을 수놓은 달과 별처럼 한 점의 수상한 움직임도 없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것이 바뀌고 있었다.
권력의 이동이 급격하게 변한 것이다. 한순간 모든 것을 다 가진 존재가 자신의 아들에게 힘을 잃고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대전의 용상(龍狀).
황제만이 앉을 수 있는 절대무변의 핵심이자 상징이다. 그 자리는 황제가 아니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지고의 위치를 나타낸다. 용의 힘찬 기운과 성스러운 성령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용상에 젊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아직 사내라고 하기에는 어려 보이지만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닫힌 입술 사이로 사이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는 황제의 두 번째 아들이자 오귀비의 아들인 주기옥이었다.
주기옥이 용상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본 자리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선덕제는 아들의 반란에 노기가 치솟아 있었다. 어떻게 자식이 자신을 이처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네놈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
“세상사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버지라고 해봤자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 황실의 생활에서 설마 혈육의 정에 얽매여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신 것은 아니겠지요.”
황제의 아들들.
분명 혈육의 정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의 중심에 있는 황실은 그런 혈육의 정보다는 힘의 원리가 가장 철저하게 작용한다. 한마디로 힘이 없으면 잡아먹히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와 같았다. 예전부터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지금에 와서 주기옥의 반란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권력 앞에 부자간의 정, 형제간의 정은 쓸모없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권력이 부질없다는 것은 용상에 앉고 나서야 알았다. 하물며 네가 황제가 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벌어진 일에 대한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여기서 그만 멈추거라!”
“고통이라!”
크하하하하!
주기옥은 매순간이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어머니 오귀비는 황제의 후궁으로 살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가문에서 황제의 첩으로 가라는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가문을 위해서 자신의 사랑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선덕제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들을 낳기는 했지만 모든 사랑은 황후와 주기진에게 갔다.
주기옥은 아버지의 사랑도 없었고, 그저 어머니의 한스런 모습만을 봐오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차라리 자신이 황제가 되어 모든 것을 엎어버리기로 말이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뒤를 봐주던 동창제독과 힘을 모아 반란을 획책했다.
“언제부터 저를 아들이라고 봐주셨습니까? 따뜻한 말 한마디 없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저를 훈계하려고 하다니 그게 더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선덕제는 침울해졌다.
아들의 말이 맞았다. 자식이라고 해서 따뜻한 정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주기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황제의 아들은 굳건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제왕의 기상을 길러 주어야 한다. 자신처럼 유약하지 않고 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매몰찼던 것이 부정적인 형태로 발산이 되어버렸다. 주기옥은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삐뚤어져 있었다.
허!
“모두가 짐의 부덕이란 말인가!”
한탄을 해봐야 소용이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라고는 구문제독뿐이었다. 구문제독부를 제압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했다고 하지만 구문제독부는 명제국 최강의 정예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쉽게 정복되지 않을 굳건한 성이었다.
“이제 옥새를 주셔야겠습니다.”
주기옥이 옥새를 달라고 했다.
선덕제는 차마 옥새까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기옥의 말에 선덕제는 온몸을 떨며 분노해야 했다.
“고집을 부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자칫 남아 있는 혈육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주기옥이 눈짓을 보내자 왕진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대전 밖에서 여인들이 끌려왔다.
효공장 황후와 공주들이었다. 선덕제의 부인이자 그의 딸들. 주기옥에게는 큰어머니, 누나, 동생들이 되었다.
황후와 공주의 목에 날카로운 칼날이 겨누어져 있었다. 선덕제의 말 한마디에 목이 잘려 나갈 수 있다는 뜻이 서려 있었다.
“이…놈! 네가 정녕 사람이란 말이냐?”
“제가 사람일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선택은 선덕제의 몫이 되었다. 아들이 사람의 탈을 쓰고 있도록 하려면 옥새를 넘기고 순순히 말을 들으라는 뜻이었다.
“알았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옥새는 용상 밑에 있다.”
대전의 용상 아래에 옥새가 있었다. 옥새의 위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철칙이었다. 유일하게 황제만이 옥새의 위치를 알았다. 옥새는 용상, 즉 의자의 옆에 있는 돌기를 누르면 뒤로 문이 열리고 그 아래에 자리했다.
“이런 곳에 두셨군요. 감쪽같습니다.”
여유만만하게 옥새를 찾은 주기옥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옥새를 가졌으니 명실상부하게 대명제국의 황제가 된 것이다.
“그럼 이만 쉬십시오. 여봐라, 아버지와 황후를 곱게 모셔라.”
“예, 폐하!”
부르르르!
왕진이 주기옥을 향해 폐하라고 부르자 선덕제는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즉위식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황제가 바뀌어 버렸다. 바로 앞에서 듣자 그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동창의 무인들이 선덕제와 황후, 공주들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대전에 주기옥과 왕진만이 남겨졌다. 주기옥은 왕진에게 구문제독부에 대한 일을 꺼냈다.
“구문제독부는 어떻게 됐지?”
“제가 비밀리에 양성한 무인들을 보냈습니다.”
“확실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구문제독부가 강력하다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자금성을 지키는 마지막 방패.
구문제독부만 손아귀에 쥐면 대명 천하는 온전히 주기옥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오랜 시간 자신은 주기진의 뒤에 가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지내왔다. 그림자처럼 쥐 죽은 듯이 지내왔던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확실하게 끝내야 했다.
“금룡화가 돌아왔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이미 조치를 취해놨습니다.”
“잘했군.”
금룡화 금은혜에 대한 연정은 주기진만이 아니었다. 주기옥도 금은혜에 대한 연정이 있었다.
“전 황제는 어떻게 할까요?”
“패륜을 저지를 수는 없지. 평생 안에서만 지내셔야겠지.”
“그럼, 폐하의 지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황궁의 주인이 바뀌는 같은 날 밤.
구문제독부의 굳건한 문이 허술하게 열렸다. 정문은 열어주지 않는 이상 부서지지 않는 금성철벽과 같았다. 쉽사리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담벼락과 그 위에 지키고 있는 궁수들이 있기에 점령하는 데 쉽지 않다. 그런 정문이 너무 쉽게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무리가 있었다.
문을 열어준 인물은 구문제독부의 경호대장인 천호장 이달이었다. 이달은 원래부터 이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서로 고갯짓을 해서 뜻을 전달했다. 이달이 명령을 내려 수비하는 병사들의 위치를 바꾸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은 무복의 무인들이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병사들의 숨통을 끊어 놓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무인들에게 속수무책이었다. 또한 경호책임자인 이달이 적의 편에 서 있자 혼란은 가중되었다.
사아악!
크아아앗!
검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고 그 앞에 있는 병사들은 가슴이 꿰뚫린 채 비명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방어선이 쉽게 무너졌다 해도 정예병사들이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 추풍낙엽과 같았다.
쳐들어온 무인들은 보통을 넘었다. 일사불란하기가 예리한 비수를 연상케 할 정도로 정교하며, 가차 없는 손속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구문제독부를 지키고 있는 다른 장군들은 소란이 일자 밖으로 나왔다. 병사들을 다시 정리하고 정면으로 대결하려고 했다.
수적으로 아직 밀리는 형상은 아니었다. 적이 대단한 무력을 소유하기는 했지만 이쪽도 정예병사들이었다. 급히 재정비를 하고 궁수들을 대기시켰다.
백호장 이정환이 궁수들을 지휘했다.
“아군은 뒤로 빠지며, 궁수들은 적의 뒤를 향해 쏴라!”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치고 빠지려는 이정환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무력은 이정환의 생각을 초월했다.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활을 가볍게 쳐내버리는 것이 아닌가!
무인들을 상대할 때 가장 효율적인 무기가 바로 활이었다. 더군다나 군대에서 사용하는 활은 일반 활보다 훨씬 강한 강궁(强弓)이었다.
“저…럴 수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이정환은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궁수들도 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활을 수십 발씩 쐈는데도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궁수들의 활이 소용없을 때 병사들은 계속 죽어나갔다. 순식간에 삼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정환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재정비를 할 때, 등 뒤를 찌르는 검이 배를 뚫고 나왔다. 핏물이 입과 복부에서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커억!
뒤를 돌아본 이정환은 믿을 수 없었다.
“설마 당신이? 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정환이 본 인물은 자신이 믿고 따르던 천호장 이달이었다. 이달의 평소 성격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던 이정환은 죽어가면서도 이유를 물었다.
“뜻이 달랐다.”
이달의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믿고 따르던 수하를 죽이면서도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사람의 감정을 담고 있지 않은 듯한 말투였다. 이달은 목표가 확실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인 구문제독을 제압하거나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구문제독은 저기에 있다.”
이달이 눈치를 주자 그 뒤로 열 명의 무인이 따랐다.
금권성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고, 즉시 검을 들었다. 구문제독부 내에서 비명소리가 들릴 정도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즉시 주변에 있는 호위무사들과 같이 밖으로 나왔다.
금권성이 밖으로 나오자 이달이 당도했다. 이달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그리고 이달의 뒤에서 있는 무인들 역시 금권성이 보지 못했던 이들이었다.
“무슨 일이냐?”
“순순히 따르신다면 목숨은 구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네놈이 감히 나를 배신했다는 소리냐?”
“배신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원래부터 목적을 가지고 잠입을 했을 뿐입니다. 제 주인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분입니다.”
이달은 사실을 인정하고 말해 주었다.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같이 생활을 해온 녀석이 원래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다니, 그 말을 듣는 금권성은 허탈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안목이 이토록 부족한지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배신했다는 것에 분노가 일었지만 상황은 냉정하게 바라보는 금권성이었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었다. 또한 어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순순히 당할 것 같으냐!”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달은 금권성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았다. 순순히 항복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반항한다면 단숨에 숨통을 끊어주는 것이 그동안 모셨던 수하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순간입니다.”
“닥쳐라!”
금권성이 가문의 호신지공인 백호공(白狐功)을 운용했다. 무장 가문인 구문제독이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무공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백호공을 운용하여 백호십이검식(白狐十二劍式)의 자세를 취했다. 단숨에 숨통을 끊어놓는 백호의 광폭함과 날카로움이 묻어 나왔다.
아무리 검을 놓고 관직에 진출했다고 하지만 스스로 무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금권성의 기세는 사납고 매서웠다. 호랑이는 늙어도 호랑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다만, 상대하는 이달의 표정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있었다. 이달의 진정한 무력은 금권성이 아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앞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검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금권성이었다. 백호의 사나운 포효가 울리는 듯했다.
카캉!
있는 힘을 다해 일도양단한 금권성이지만 막아서는 이달의 검을 찍어누르는 못했다. 더군다나 이달은 온힘을 다하지도 않고, 한 손으로 막고 있었다.
‘이럴 수가!’
백호십이검식에서 가장 파괴력이 강한 백호참(白狐斬)이었건만 상대하는 이달이 너무 쉽게 막았다. 상대적으로 놀랄 수밖에 없는 금권성이었다.
금권성이 앞으로 나아가자 그 뒤를 따르던 수신호위들도 움직였다. 뒤에서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몇 차례의 공방을 주고받기도 전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렸다. 이달이 데려온 자들의 실력이 몇 수나 위에 있었던 것이다.
금권성은 있는 힘을 다했다.
오랜만에 휘두르는 검으로 인해 온몸에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는 산발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허억! 허억!
무공을 익혔다고 하지만 너무 오래 쉬었다. 더군다나 나이가 차고 나니 체력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금권성을 포기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상처 입은 맹수와 같았다.
이달은 정면으로 부딪치면서도 힘을 흘리며 교묘하게 막아섰다. 이달은 더 이상의 반항을 두고 보지 않았다.
“이제 그만 쉬시지요.”
금권성의 검이 나아가는 궤적을 읽고, 옆으로 쳐냈다.
휘청!
일순간 균형을 잃은 금권성이 몸을 지탱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 이달이 앞으로 세 발자국 빠르게 내딛으며 파고들었다. 파고든 상태에서 두 손으로 잡은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휘이익!
커억!
헛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폐부 깊숙이 검이 박혀 더 이상 소리를 내지도 못했으며, 숨도 쉬지 못했다. 핏물이 옷을 붉게 적시고, 혼을 승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