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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독존기 214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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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14화

천하혈란(天下血亂) 무너지는 무림 (6)

 

 

진선아는 헛구역질이 나왔다. 얼마 전까지 겪었던 참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남궁장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괴물 같은 놈!’

 

정말 질릴 정도였다. 설마 했는데 모두 처리해 버렸다. 천악이 사라지고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시간에 삼천이나 되는 적들을 모두 도륙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솜씨라고 할 수 없었다.

 

천하 십대고수 중 한 명인 남궁장천이 오싹할 정도이니 다른 사람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남궁혈사에서 보여준 것은 약과였다. 이것은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남궁진천 장로와 창천검대는 다시 한 번 천악을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태희와 잘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정말 재앙이 따로 없구나!’

 

천악을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자청과 나민관은 흡사 귀신을 보는 듯했다. 과거에 보여준 잔인한 행동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리기는커녕 가까이 가기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우리가 사신을 건드렸었구나!’

 

죽은 시체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오는 천악의 모습은 무심 그 자체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적이 된다 한들 흔들리지 않을 부동심이 보였다.

 

냉정함, 포악함, 무심함, 강력함.

 

사방에 흘러내리는 핏물조차 천악의 발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더러운 것들이 닿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천악이 이자청, 나민관, 진선아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쳐 지나가는 동안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부들!

 

오싹한 한기가 스치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 사이로 음성이 들려왔다.

 

“나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군. 머리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말이야!”

 

귓가에 맴도는 천악의 음성은 사악함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악함보다는 무서움이 자리했다. 지금 벌어진 일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세상에 소문이 나면 바로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했다. 귀찮고 번거로우면 그 싹이 피어오르기 전에 밟아주는 것이 천악의 논리였다.

 

 

 

일만 이천의 무인들.

 

그들 모두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몸의 구석구석이 멀쩡한 무인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무인들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보였다. 압도적인 위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야 했기에 받은 충격과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무인들의 선두를 이끌고 있는 자들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중심에 태극검성 현도진인이 버티고 있었다. 정갈하게 벗어 넘긴 머리카락과, 단정한 의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헝클어지고 여기저기 핏물이 흐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보다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의 결정으로 많은 무인들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사마운정의 말을 듣고 행동했다면 이런 결과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도진인이 청명한 하늘을 보았다. 무수히 많은 무인이 죽었음에도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다.

 

‘내 업보로다!’

 

그 뒤로 사마운정이 지키고 있었다. 사마운정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에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무림맹의 군사는 자신이었다.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자리였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거의 궤멸을 당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퇴로를 확보해 놓고, 비영대를 시켜 진을 구축했다. 진의 이름은 상고시대 절진을 변형한 구궁역행혼돈진(九宮逆行混沌陣)이었다. 구궁의 아홉 방위를 거꾸로 흐르게 하여 혼돈을 만들어 상대에게 현실과 정신의 괴리감을 주게 만드는 진법이다. 대규모의 진을 완벽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영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비영대는 그녀가 만들어놓은 정보단체이지만 진법에 관한 것도 같이 익히고 있었다.

 

사마운정은 마지막에 진의 축을 담당한 삼풍신개 반상익 장로를 생각했다.

 

 

 

-군사의 말이 맞았소! 나로 인해 많은 무인이 죽었으니 내 죄는 내 목숨으로 갚겠소!

 

 

 

삼풍신개는 사마운정의 말을 믿지 않고 반박했다. 그녀가 군사인 것이 평소 불만이었던 것이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문득 자신은 이미 그녀의 말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었다. 결국 그로 인해 수많은 무인이 죽었다. 비장한 마음을 가진 삼풍신개가 마지막에 개방의 의를 실천했다. 의와 협을 숭상하는 개방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마운정은 다시 재정비를 하기 위해 빠르게 남하하고 있었다. 미리 봐둔 퇴로를 따라 안휘성으로 갈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안휘성을 중심으로 정파 무림인들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산동성은 이미 놈들의 구역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무림맹으로 돌아갔다가는 고립될 가능성이 컸다. 아직 일만 이천이나 남아 있었다. 대규모의 무인들이 움직이는 것은 놈들의 시선에 들키기 마련이었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빨리 안휘성으로 들어가 남궁세가와 합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또 다른 이면에는 철혈판관검 제갈천기의 영향이 컸다. 그는 반드시 안휘성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휘성에 무인들이 모이는 것은 물론, 또 다른 것이 있다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사마운정은 안휘성으로 간 후를 생각해 보았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놈들의 무력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당금천하에 최고 고수라고 평가받는 무림맹주 현도진인과 일대일 대결을 벌일 수 있는 고수가 한두 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엄청난 집단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마운정은 회의적인 마음이 들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이미 죽어간 자들의 죽음은 헛수고가 되었다. 중원은 매번 위기를 맞았지만 스스로 극복을 해 왔다. 그렇기에 세상의 중심인 중원이었다.

 

 

 

혈향(血香)이 짙게 날린다.

 

피비린내가 진득하게 풍기는 장소에 서서히 썩어가는 시체들의 냄새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혈전이 끝난 후 반나절 늦게 출발한 대막 무림이었다. 그들은 앞에 펼쳐진 지옥도(地獄圖)에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대막 무림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무력부대가 얼마나 강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것은 수가 많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런 강력한 무력집단이 모두 도륙되어 고깃덩어리만 남아 있었다.

 

특히 대막혈궁의 궁주인 율무정의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는 시체들이 널린 것보다 그 흔적들 때문에 놀라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본 잔혹한 광경, 그것과 같았다. 광폭한 폭풍이 대막혈궁을 지나간 후 남은 것은 찢겨진 고깃덩어리뿐이었다. 살아 생전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어머니의 모습은 찾지도 못했다.

 

율무정은 자신도 모르게 태양신공이 운용되었다. 강렬한 기운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그러나 곧 머리를 냉정히 식혔다. 아직 눈으로 본 것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확인해 보아라!”

 

“예! 궁주님!”

 

대막혈성이 앞으로 나가 찢겨져 나간 인육을 살폈다.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도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대막혈성 중에 철호의 눈이 급격하게 떨려왔다.

 

‘같다!’

 

잘려 나간 것이 예리하고, 날카로운데다가 흔적들이 모두 같았다. 같은 검을 휘둘러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인육의 흔적들이 모두 같았다. 그렇다는 것은 한 사람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대막혈성은 율무정과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었다.

 

‘혈…사신!’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혈사신뿐이었다. 대막 제일세인 대막혈궁을 단숨에 무너뜨린 가공한 손속을 가졌던 혈사신의 흔적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에 있었다.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력집단을 반나절 전에 쓸어버렸다. 즉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모두 도륙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무력에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이건 인간의 무력(武力)이 아니다!’

 

삼천 명의 초인집단이라고까지 여겨지는 압도적인 무력을 일인의 무력으로 박살을 내버렸다고 하면 누가 과연 믿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믿음을 강요했다. 소름끼치는 무력이 아닐 수 없었다.

 

대막혈성인 철호는 약간 망설여졌다. 과연 사실대로 궁주에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고, 대막혈신 율무정은 냉정한 인물이었다. 과거에 얽매여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율무정이 철호에게 물었다.

 

“누구의 짓이라 생각하느냐?”

 

“혈사신의 흔적입니다. 과거의 혈사신이 아닐 수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뿌드득!

 

율무정이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전신을 떨며 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율무정이었다. 드디어 놈의 흔적을 발견했다. 혈사신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놈을 찾아라!”

 

대막혈궁을 다시 세운 것이 바로 복수를 위해서였다. 놈의 흔적을 발견했으니 찾아서 죽이면 되었다. 모든 힘을 기울여 놈을 죽일 것이다.

 

철호는 평소 냉정한 율무정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악몽 같은 일은 아직도 잊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율무정이 움직이면 대막혈궁은 끝이었다.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철호의 옆으로 대막혈성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율무정이 무릎 꿇은 대막혈성을 보고 미간을 꿈틀거렸다.

 

“무슨 짓이냐?”

 

“궁주님이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혈사신을 쫓는다면 대막혈궁은 또다시 그때의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뭐라고! 감히 내가 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태양신공을 익히면서 압도적인 무력을 발휘하는 율무정이었다. 대막 제일고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태양왕이라는 전설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대막혈성이 율무정의 앞을 막고 있었다.

 

“안 됩니다! 궁주님! 궁주님은 대막의 희망입니다!”

 

“비켜라! 비키지 않는다면 네놈들의 목숨도 보장하지 못한다!”

 

율무정의 눈에 진득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그럼에도 대막혈성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여기서 대막혈성이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율무정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보십시오, 저기를! 이 모든 것이 혈사신의 흔적입니다. 그 혼자서 이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부디 냉정해지십시오!”

 

“비켜라! 비키란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교의 정예 삼천을 혼자 도륙했습니다. 또한 무인들을 이끄는 교의 장로들이 세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을 궁주께서는 이 각 안에 모두 도륙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직 궁주님은 태양신공을 대성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흔들!

 

대막혈성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 눈빛에 율무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막혈성의 말대로 아직 태양신공은 대성하지 못했다. 태양신공을 대성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검왕을 압도한 율무정이었다. 그 가공할 신공의 위력은 확실히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율무정도 혈룡교의 삼천 무인을 모두 상대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니, 교의 장로 한 명이라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불공대천의 원수가 앞에 있는데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놈을 죽이고 싶었다.

 

“진정 네놈들이!”

 

“궁주님! 태양신공을 완성한 후에도 늦지 않습니다. 또한 어차피 혈룡교와 혈사신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혈룡교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비록 혈사신이 강하다 하지만 혈룡교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럼 나보고 원수를 갚지도 못하고 어부지리를 얻으란 말이냐?”

 

“궁주님! 혈사신이 진짜라면 과연 혈룡교의 손에 죽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더군다나 대막 무인들은 모두 혈사신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을 가진 무인이 어떻게 혈사신을 이길 수 있습니까!”

 

혈사신의 가공함은 대막 전체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대막 무림의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 혈사신을 잡으러 간다고 하면 뒤에 있는 대막 무인들은 겁에 질릴 것이다. 혈사신이 짧은 기간 대막 무림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그가 보여준 가공한 손속은 악마 그 자체였다. 악마를 상대로 인간이 이길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닙니다. 태양신공을 완성한다면 누구도 궁주님을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대막의 신으로 불리는 태양왕이었다.

 

전설에 이르길 태양신공이 극성에 이르면 닿는 것 모두를 태워버릴 수 있다고 한다. 상대가 어떤 수를 써도 소용없다는 경지, 바로 태양혼(太陽魂)의 경지였다. 태양합일(太陽合一)을 이루었을 때, 태양이 바로 자신이 된다. 태양 앞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후우!”

 

철호의 말이 통했을까! 율무정의 기세가 사라졌다. 동요하던 눈빛도 서서히 잔잔한 호수처럼 변해갔다. 평소의 대막혈신 율무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네 말이 맞다. 돌아간다.”

 

“감사합니다, 궁주님!”

 

혈룡교의 독고패 장로가 내린 명령은 거역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혈사신과의 싸움은 하루 이틀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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