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독존기 211화
무료소설 이계독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독존기 211화
천하혈란(天下血亂) 무너지는 무림 (3)
패배.
대막 무림과의 일전을 불사하던 중원 무림이 패배를 하고 물러나고 있었다. 놈들과의 정면 대결로 인해 남은 무인은 육천에 불과했다. 무인들 태반이 부상인데다가 고수들도 다치거나 죽었다.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검왕 남궁장천의 부상이었다. 일대일 대결에 끼어든 세 명의 무인에 의해 합공을 당한 후 간신히 살아남긴 했지만 상당한 중상을 입었다. 거동이 불편할 지경이었다.
“허어! 허어!”
남궁장천의 숨이 미약하게 쉬어지고 있었다. 그 옆으로 창천검대의 대주인 남궁진천 장로가 남궁장천을 돌보고 있었다.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숨이 거의 넘어가는 동안 남궁장천은 간신히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바로 앞에 있는 남궁진천을 보았다.
“이제 난 틀…렸다!”
“아닙니다.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군 공자님에게 가시면 반드시 나을 겁니다!”
남궁진천도 천악의 놀라운 능력을 알고 있었다. 남궁혈사에서 숨이 넘어가던 남궁태희와 남궁장천을 구한 것이 천악이기 때문이었다. 안휘성 합비로 가기만 하면 살아날 희망이 있었다.
“죽으면 안 됩니다. 아직 정정한 나이에!”
“자네가 농담…을 다… 하는가!”
예순이 넘은 나이가 정정하다는 말을 들을 나이는 아니었다. 남궁장천은 마지막으로 아들과 딸이 보고 싶었다.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대막혈신과의 대결은 막상막하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등장한 정체불명의 무리에게 당하고 말았다. 남궁장천도 놈들의 합격에 몇 수 버티지 못하고 이런 신세가 되어버렸다. 놈들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만약 이대로 놈들이 안휘성으로 접근하면 피바람이 불 것이라 생각했다.
“천…악, 자네가 나서야… 하네!”
천하를 위해서 나설 사람은 천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그런 말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미건조한 말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딱딱하고 건조해서 듣는 사람의 침을 다 마르게 만들 정도로 메말랐다. 하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남궁장천과 남궁진천은 놀람과 안도가 같이 들었다. 설마 했는데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군천악이었다.
안휘성에 있어야 할 인물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남궁장천의 주변에는 여러 무인이 있었다. 그중에 누구도 천악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귀신이 갑자기 접근한 것으로 보였다.
“꽤 다쳤군요.”
“자네 볼 면…목이 없구먼!”
천악과의 만남에서 또 다쳤다.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매번 신세를 지고 있으니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힐링(치료)!
천악이 마법을 구사했다. 힐링 마법과 더불어 리커버리(복구) 마법까지 사용했다. 상처가 심한 것도 문제지만 진기의 손상이 생각보다 심했다. 먼저 진기를 회복하고 난 후 상처를 치료했다. 순식간에 순백의 기운이 남궁장천의 몸에 스며들었다. 기운이 스며들자 남궁장천은 황홀감을 맛보아야 했다. 몸 안에서 회복된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진기가 급속도로 회복하고, 상처마저 순식간에 치료가 되었다. 마치 새살이 나서 상처를 덮은 것처럼 보였다.
남궁장천이 감았던 눈을 떴다. 좀 전까지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유지를 남기려고 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정했다. 그와 더불어 일어서기까지 한 것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놀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번 겪어보고도 믿을 수가 없구나!”
“따님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천악은 원래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남궁태희가 간절히 부탁을 하였다. 아버지만은 무사히 데려와 달라는 말이었다. 굳이 움직이기 귀찮았던 천악이 움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혼인을 하기로 약속했으니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고맙네!”
“그럼 집으로 가지요.”
“응!”
“그냥 간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주변에 부상자들이 널려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가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 남궁장천이었다. 그들은 중원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었다. 이대로 두고 가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세요!”
사람들은 천악이 남궁장천을 치료한 장면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부상자들이 천악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다. 천악은 그들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마땅히 도와줄 위인들은 아니었다. 아직 숨을 쉬고 있으니 죽을 것도 아니었다. 별달리 도움을 줄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귀찮군.”
천악의 말을 남궁장천이 들었다. 남궁장천은 천악의 냉정한 태도에 화가 났다. 충분히 치료할 능력이 되면서도 고작 귀찮다는 이유로 치료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자신을 치료한 것은 누가 뭐래도 천악이었다.
“이보게!”
“왜 그러십니까?”
“비록 이들이 자네와 상관없고 필요 없는 사람일지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네. 이들이 악인이라면 내 이런 말도 안 하네. 나도 죽어가는 악인을 살리는 의인은 아니네. 다만 사람이라면 마땅히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도리 아닌가!”
천악의 마음에 약간의 파장을 일어났다.
‘사람이라!’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 그리고 지켜야 할 일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결여된 천악의 마음이었다. 그것을 찾아가려고 노력은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은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희생이 아닐지라도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천악이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그 앞으로 여인이 다가와서 무릎을 꿇었다. 예전에 본 여인 중 하나였다. 상당히 건방져서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홍매화 진선아였다.
그녀는 상당히 초췌한 상태였다. 그녀가 천악에게 무릎을 꿇은 이유는 바로 매화검수 이자청이 생사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 공자! 제발 도와주세요! 전에는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절절함이 사람의 심금을 울릴 정도로 간절하게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쓰러져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랴!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도 걸 수 있었다. 이자청이 쓰러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진선아가 위험한 순간에 뛰어들어 적의 검을 맞았다. 그로 인해서 이자청이 쓰러졌던 것이다.
천악은 진선아의 절절함보다 그녀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를 판단했다. 여인의 간절함 따위는 상관없었다.
‘진심이군.’
천악은 결정했다. 약간 귀찮기는 하지만 도움을 주기로 말이다. 물론 인간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서 반드시 치료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쓰러져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치료를 결심한 것이다. 그것이 다였다.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거절이었다.
천악이 마법을 사용했다. 모든 부상자들을 향해 힐링 마법을 사용했다. 방대한 양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의 부상이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악의 강력한 힘과 순수한 기운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마법이 휩쓸고 지나가자 주변에 부상을 당한 자들이 속속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진기의 손상을 입은 무인들은 아직 일어서지 못했지만 점차 회복할 것이다. 그 정도만 해줘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할 일이었다.
“됐나.”
천악이 진선아를 보았다.
진선아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너무나 쉽게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런 사람에게 건방을 떨었다니!’
절로 몸이 위축되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신인(神人)이다!”
“신선(神仙)이 나타나셨다!”
천악을 향해 신인이나 신선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무인들 모두 천악을 향해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천악은 그런 시선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들이 무슨 표정을 짓든, 뭐라고 부르든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위인이 아니었다.
“잘했네. 자네는 중원의 영웅일세!”
남궁장천이 천악을 칭찬했다. 하지만 천악은 귀찮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봤으니 앞으로 더욱 귀찮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귀찮게 안 했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되면 상당히 화가 날지도 모릅니다.”
신인이나 화타라는 소리를 해서 귀찮게 몰려오면 그냥 두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물론 치료해 줄 생각도 없다. 이번에는 눈앞에 벌어진 일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그 일로 인해 자신의 일에 지장을 초래하면 사라지게 만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오싹!
‘이놈, 진심이다!’
남궁장천은 천악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만일에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거 큰일 날지도 모르겠는데!’
천악은 모든 일을 마무리했으니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천악의 신경에 거슬리는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기운은 전에도 몇 번이나 느껴봤던 녀석들의 것이었다.
‘제갈지의 말이 사실인가?’
제갈지는 암중세력이 전에 만난 세력일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천악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수의 기운이 모두 동일하다면 심증은 확신으로 바뀌기에 충분했다.
“자네 왜 그러는가?”
“귀찮은 놈들이 다가오는군요.”
“설마, 놈들이 벌써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대막 무림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중에 나타난 놈들로서 고작 삼천밖에 안 되지만 실력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남궁장천이 이끄는 무인들 대부분이 그놈들에게 죽었다. 그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처럼 처참하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가십시오. 뒤따라 가겠습니다.”
“자네가 막겠단 말인가!”
씨익!
천악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로 인해 남궁장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신과 연관되지 않은 것은 되도록 관여하지 않는 천악이었다. 스스로 나서겠다고 하니 당연히 놀라웠다.
‘저놈이 웬일이지?’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협의지심을 가진 영웅이라면 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 당연히 사람들을 위해 나설 것이다. 하지만 천악은 달랐다. 천악은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의문이 든 것이다.
철귀갑을 두른 무인, 붉은 머리카락을 날리는 무인, 거대한 대도를 가진 무인. 그들의 이름과 별호는 철혈귀갑 목리추, 적룡신군 이진현, 혈천대도 담인이었다. 혈룡교의 장로들이며 대막 무림과 합세한 이들이었다. 이들이 합공을 해서 검왕을 물리치고, 무인들을 도륙해 버렸다.
“백팔나한진에 꽤 애를 먹어 놈들에게 시간을 주었단 말이야!”
“그렇지만 놈들은 부상자가 많아.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 거다!”
“검왕이라고 해봤자 별것 아니던데!”
그들의 말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파악하면 실로 놀라웠다. 십대고수를 쓰러뜨리고, 소림이 자랑하는 무패의 진인 백팔나한진마저 무너뜨렸다는 것이 아닌가! 이를 두고 놀라워하지 않는 무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의 실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말이 되었다.
혈룡교의 장로들이 데려온 무인들은 대부분 온전했다. 사십 명이 죽고, 오십 명이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별것 아니었다. 이들이 죽인 적의 수가 족히 일만 오천에 달했다. 서로 맞바꾸기를 했다면 상당한 수가 아닐 수 없었다.
“대막혈신이라고 뻐기던 놈도 우리의 힘을 보고 얼이 빠졌던데!”
“그럴 수밖에 없지. 놈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의 상대는 되지 못하니까!”
“반항할 수 없는 강대한 힘 앞에는 무력한 거야!”
강력한 힘을 가진 자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거대한 힘 앞에서 저항은 무모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뿐이다.
삼천의 무인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가운데 협곡이 나타났다. 협곡을 빠져나가면 놈들이 있는 곳이 바로 보일 것이다. 놈들의 도주 목표가 안휘성인 것을 생각하면 이곳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곳곳에 놈들이 움직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대규모의 이동에서 불가능했다. 어차피 그럴 여유도 없는 실정이니 놈들은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협곡은 그렇게 넓지는 않아도 지나가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앞에서 경공을 시전하던 목리추와 이진현, 담인이 무언가를 보고 의아해했다. 양 협곡을 사이로 달랑 청년 한 명이 서 있었다.
“허!”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죽으려고 용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목리추는 헛웃음과 더불어서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귀찮은지 명령을 내렸다.
“저놈을 치워라!”
“충!”
한 명의 무인이 무리에서 튀어나와 청년을 향해 쏘아져 갔다. 일검에 반 토막을 내버릴 듯한 기세였다. 가장 빠른 쾌검을 시전하는 혈룡교의 무인이었다.
“죽어랏!”
검을 휘두르면 목이 사선으로 잘려 나갈 시기였다.
“커억!”
혈룡교의 무인은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오히려 목이 잡힌 채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붙잡혔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바로 전까지 검이 나아갔는데 무서운 반탄력에 밀렸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목이 잡혔다. 그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의 진실이었다.
대롱대롱.
건장한 성인의 목을 잡고 가볍게 들어 올린 청년은 가차 없이 부러뜨렸다. 죽은 시체를 쓰레기 버리듯이 던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