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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8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8화

 

8화

 

 

 

 

 

 

 

멍하니 종상현을 바라보던 진용은 눈물을 닦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럴 순 없다. 종 숙부의 말마따나 자신이 잡혀가면 누가 아버지의 한을 풀어준단 말인가?

 

마침 유모가 찻잔을 챙겨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종상현은 찻잔을 쳐다보지도 않고 급히 말했다.

 

“간단하게 챙길 것만 챙겨라. 어서! 유모도 진용이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주구려. 나는 나가서 진용이 타고 갈 마차를 구해보겠소.”

 

“예, 나리!”

 

놀란 유모가 황급히 방을 나섰다. 종상현마저 방을 나가자 진용은 뛰듯이 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시르, 지하 서고로 가는 거야?’

 

세르탄이 무엇 때문인지 서두르는 말투로 물었다.

 

진용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지하서고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등잔불에 불을 붙이고, 십장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거북이의 머리를 돌려 상자를 꺼냈다.

 

세르탄이 궁금한 듯 물었다.

 

‘뭘 찾는 거야?’

 

‘혹시 모르니 아버지가 해석한 해석본을 없애야겠어. 만에 하나라도 황궁의 누군가가 이 지하 서고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아버지가 물건을 빼돌렸다고 생각할 것 아냐?’

 

상자를 열자 가죽으로 만들어진 책이 보인다. 진용은 책을 젖히고 아버지가 쓴 석 장의 해석본을 꺼내 들었다.

 

그때 세르탄이 망설이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 하긴……. 그리고 말이지… 그거 있지? 내가 봉인되었던 봉인석. 그거 꺼내봐.’

 

‘왜?’

 

‘어서 꺼내봐. 시간 없잖아?’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세르탄의 말대로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진용은 서둘러서 붉은 팔각패를 꺼냈다.

 

‘그것을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다 대.’

 

‘가슴에다?’

 

‘응. 맨살에다. 빨리!’

 

평소의 세르탄이 아니다. 다급한 말투에 장난기가 보이지 않는다. 진용은 세르탄의 말대로 팔각패를 옷 속으로 집어넣고 가슴에 가져다 댔다.

 

“으, 차거워.”

 

‘이제부터 정신을 집중해서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해.’

 

‘어? 어.’

 

‘집중해!’

 

세르탄은 진용이에게 한 번 더 정신 집중을 강조하더니 이상한 말을 되뇌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계의 말도 아니었다.

 

언젠가 들어본 듯한 언어. 세르탄이 처음에 건넸던 말 같았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엄숙하게까지 느껴지는 세르탄의 태도에 정신을 집중하고 세르탄의 말을 따라 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팔각패를 가져다 댄 가슴 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따뜻하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슴에서 시작한 뜨거운 기운이 불길이 번지듯 전신으로 번져 갔다.

 

가슴이 타는 듯한 열기!

 

숯불을 심장에 쑤셔 박은 것만 같다.

 

‘헉! 너무…… 뜨거…….’

 

‘참아! 참고 계속 따라 해, 시르! 그 정도도 못 참으면서 무슨 아버지의 원한을 갚는다는 거냐?’

 

진용은 이를 악물었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맞아! 이 정도의 뜨거움도 참지 못하는 나약한 정신으로 뭘 한단 말이야!

 

나는 참을 수 있어! 참을 수 있어!

 

‘계속…… 해!’

 

세르탄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반의반 각 정도 지나자 심장을 파고들던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팔각패의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세르탄도 괴이한 구결의 암송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이마는 물론이고 전신을 흠뻑 적신 땀만이 조금 전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땀을 닦아내며 진용이 물었다.

 

‘뭐지? 왜 이런 걸 시킨 거야, 세르탄?’

 

‘팔각패를 잘 봐.’

 

진용은 가슴에서 떼어낸 팔각패를 무심코 바라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앗! 빨간 팔각패가 시커멓게 변했다! 어떻게 된 거지, 세르탄?”

 

‘팔각패는 마령석으로 만든 거야. 대전사를 봉인할 수 있는 물질은 마령석밖에 없거든. 그런데 네가 마령석에 남아 있던 기운을 흡수하니까 마령석의 색깔이 변한 거야.’

 

‘마령석의 기운?’

 

‘그래. 게다가 그 마령석에는 나를 봉인했던 마왕의 기운까지 조금 들어 있었는데…….’

 

세르탄이 잠시 말을 끊더니 무척 아까운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나중에 그 기운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시르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뭐, 이용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데 왜 여태 이것에 대해서는 말을 안 했지?’

 

‘그, 그건…….’

 

‘오라! 나에게 주기는 아까웠다 이거지? 그러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면 찾지도 못할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인심이나 쓰자, 한 것이고. 그렇지?’

 

나이도 어리면서 눈치는 귀신이다.

 

‘…….’

 

세르탄은 침묵의 항변으로 일관하다가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줘도 지랄이네. 욕심쟁이, 날강도, 심술쟁이…….’

 

‘뭐? 똑바로 말해봐, 안 들리잖아.’

 

세르탄은 입을 꾹 닫고 열지 않았다. 

 

진용도 더 이상은 세르탄의 알아듣지도 못할 중얼거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밖에서 종상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진용아! 아직 멀었느냐? 서둘러라!”

 

“예, 종 숙부! 지금 나가요!”

 

입구에 대고 큰 소리로 대답한 진용은 상자를 다시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움켜쥐고 있던 구겨진 석 장의 해석본을 유등불에 태워 버렸다.

 

하얗게 타버린 재를 바라보던 진용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 서고를 둘러보았다.

 

아버지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에 진용은 목이 메어왔다.

 

“아버지…….”

 

하지만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진용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서신에 적어놓은 방법대로 다섯 개의 줄을 모두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순간!

 

우르르…….

 

지하 서고 안에서 가느다란 울림이 전해지더니, 열을 셀 시간 정도가 지나자 조용해졌다. 마침내…… 지하 서고로 내려가는 길이 봉쇄되어 버린 것이다.

 

‘꼭 다시 돌아올 거야, 꼭!’

 

진용은 스윽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종상현이 막 방으로 들어오려던 참이었다.

 

“빨리 가자. 허어, 땅도 안타까워서 지진을 일으킨 것 같구나.”

 

종상현은 초조한 표정으로 진용을 마차로 데려갔다. 

 

마당에 주름 가득한 노인이 끄는 낡은 마차가 서 있었다.

 

“어서 타거라. 유모도 타구려. 시간이 없소!”

 

작은 보따리를 든 진용과 커다란 보따리를 든 유모가 마차에 타자 종상현은 급히 대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문을 연 종상현은 굳은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몇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번쩍이는 금빛 갑주를 입은 무장이 날 선 창을 든 관병들을 대동한 채.

 

쾅!

 

종상현은 황급히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진용과 유모는 놀란 표정으로 종상현을 쳐다봤다.

 

“종 숙부, 왜……?”

 

“진용아, 뒷문으로 나가라! 유모, 어서 진용을 데리고…….”

 

그러나 종상현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

 

와직!

 

조금 벌어진 문틈 사이로 한 자루 창이 비집고 들어왔다.

 

“으헉!”

 

진용의 눈이 홉떠졌다.

 

“종 숙부!”

 

종상현의 옆구리를 비집고 튀어나온 창이 보인다.

 

은은히 배어 나오는 붉은 핏물. 악다문 입에선 흘러나오는 숨죽인 신음 소리.

 

“으으…… 어서 가! 어서!”

 

“어떻게, 어떻게…… 종 숙부!”

 

“빠, 빨리…….”

 

종상현은 이를 악물고 다급히 소리쳤다. 시간이 없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종상현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유모와 진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서 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쾅!

 

강력한 충격에 두 치 두께의 대문이 파열을 일으키며 쪼개졌다. 그 충격에 종상현의 몸이 앞으로 튕겨나갔다.

 

어찌할 사이도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진용이와 유모의 몸이 굳어졌다.

 

동시에 쪼개진 문이 활짝 열리고, 커다란 외침이 고가장의 고택을 뒤흔들었다.

 

“나는 금의위의 육두강이다! 아무도 이 집에서 나갈 수 없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종상현은 옆구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이빨을 으스러져라 악물었다. 그리고 마주 소리쳤다.

 

“나는 내각학사 종상현이라 한다! 감히 너희들이 나에게 상처 입히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상대가 내각학사라는 말에 황궁의 금의위 백호 육두강은 굳은 눈으로 종상현을 노려봤다. 

 

내각학사는 금의위 백호보다 한 단계 위의 품위인 만큼 함부로 할 수 없는 지위였다.

 

하지만 자신은 명을 집행하러 온 사람. 게다가 모른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던가.

 

“내각학사께서 죄인의 집에는 어인 일이시오?”

 

다행히 옆구리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창이 팔과 옆구리 사이로 지나가며 살점이 뜯기긴 했지만 뼈나 내장은 괜찮은 듯했다.

 

종상현은 자신의 상처를 살필 생각도 하지 않고 들어선 육두강을 직시했다.

 

“내 친구의 집이거늘 못 올 것이 무어란 말이냐? 비켜라!” 

 

종상현의 서릿발 같은 추상에 육두강이 싸늘하게 맞받아쳤다.

 

“본인은 황궁의 금의위 백호 육두강이외다! 황실의 명을 받들어 움직이는 사람이오. 귀하가 내각학사라 해도 비키라 명을 내릴 수는 없소이다. 오히려 비켜야 할 사람은 귀하외다!”

 

“이, 이…….”

 

분하긴 하지만 육두강의 말이 옳았다. 육두강이 명을 집행하는 이상 그는 명을 내린 사람과 같은 지위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지위로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종상현은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육두강에게 사정하는 투로 말했다.

 

“이곳에는 어린아이와 아이를 보살피는 유모밖에 없소. 육 위장이 데려갈 만한 사람이 없단 말이오.”

 

“우리는 죄인 고중헌의 아들인 고진용, 바로 그 아이를 잡아가기 위해 온 것이오. 그러니 종 학사께선 비켜주시오.”

 

종상현의 안면 근육이 바르르 떨렸다. 이들은 고중헌 가족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온 것 같다.

 

종상현이 다시 육두강에게 사정해보려 했다.

 

그때였다.

 

“종 숙부님, 비켜주세요. 저 때문에 종 숙부님이 남에게 다치는 것도, 업신여김을 받는 것도 저는 싫어요!”

 

진용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종상현은 깜짝 놀라 진용을 꾸짖었다.

 

“진용아! 어린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물러서라!”

 

하지만 육두강의 두 눈은 이미 진용을 향하고 있었다.

 

“흠! 어린아이가 제법 사리 판단을 할 줄 아는구나. 이리 오너라. 나와 함께 가자!”

 

“이보시오. 어린아이를 잡아다 뭐 하겠단 것이오?”

 

종상현이 진용의 앞을 가로막았다. 옆구리에서 흐른 피가 바지를 적시고 있었다. 

 

육두강은 그 모습에 멈칫하더니 곧바로 뒤에 서 있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느냐? 죄인의 아들을 압송한다!”

 

“안 된다! 이놈들!”

 

“정녕 종 학사께선 죄를 범하겠단 말이오?!”

 

“이 아이는 이제 겨우 여덟 살 먹은 어린아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어찌 여덟 살 먹은 아이에게 죄를 묻는단 말이냐?”

 

“흥! 그에 대한 판단은 그대가 하는 것이 아니오. 끝까지 비키지 않겠다면 법 집행을 막은 죄로 종 학사까지 끌고 가는 수밖에 없소. 어찌하시겠소?”

 

“이, 이놈들…….”

 

종상현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세로 보아 거짓이 아니다. 그렇게 하고도 남을 눈빛을 지닌 자다. 오직 법대로만 움직이는 자.

 

잠시 종상현이 머뭇거리는 사이 진용이 뛰어나왔다.

 

어차피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도망갈 수도 없다. 더구나 자신을 지키려다 종 숙부는 부상까지 입은 상태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자존심만은 지키려 하지 않았을까?

 

진용은 고사리 같은 주먹을 움켜쥐고 육두강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종 숙부, 너무 걱정 마세요! 설마 나라를 지킨다는 분들이 어린 저를 어떻게 하겠어요?”

 

당돌한 진용의 말에 육두강은 어깨를 움찔했다.

 

“가요! 나는 아저씨를 따라가서 도대체 아버지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대신 한 가지 약속을 해주세요. 꼭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고요!”

 

“용아야!”

 

“종 숙부, 비록 어리지만 저는 고가의 장손이에요. 아버지도 제가 도망이나 다니는 것을 원치 않으실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사실이나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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