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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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4화
4화
종일 진용이 잔뜩 이마를 찌푸린 채 끙끙대자, 유모는 걱정스런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구… 우리 도련님, 어디가 안 좋은가 보네?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거유?”
“별거 아니야, 유모. 좀 쉬면 낫겠지 뭐. 너무 걱정 마.”
“그래, 오늘은 책 너무 읽지 말고 좀 쉬어요.”
유모가 쉬란 말을 하고 방을 나가자, 머릿속에서 다시 속삭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르탄이 다시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시르, 여긴 어디지?’
‘시르, 이곳의 공기는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르군.’
‘시르, 이곳에는 정령이 없나?’
‘시르, 저 여자는 왜 저렇게 너에게 굽실대지? 너의 종인가?’
시르, 중얼중얼……. 시르, 궁시랑, 궁시랑…….
더 이상 참지 못한 진용이 속으로 소리쳤다.
‘조용해! 최루탄!’
‘내 이름은 최루탄이 아니고 세르탄이다! 위대한 마계의 대전사 세.르.탄!’
문득 세르탄이 했던 말이 번개처럼 뇌리에서 떠올랐다.
진용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한 번 내 머릿속에 새겨진 이름은 변하지 않아, 최.루.탄!’
‘크아아! 아니라고 했지!’
‘더 떠들면 최루탄이 아니라 떠버리라고 부를 거야! 그러니 조용해!’
‘…….’
왠지는 모르지만, 지하 서고를 나온 이후로 잠시도 쉬지 않고 이것저것 물어보던 세르탄이 그 말 이후로 입을 닫았다. 그래 봐야 딱 한 시진 동안이었지만.
한 시진 후 세르탄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뭘?’
‘…내 별명 말이다. 마계에서 불리던 내 별명을 네가 어떻게 알았냔 말이다.’
‘떠버리가 별명?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던 진용은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이 가면서 두려움도 많이 가셔졌다. 세르탄이라는 귀신이 자신에게 큰 해를 미치지 않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인지 몰랐다.
게다가 세르탄의 목소리도 귀신처럼 소름이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호기심이 생긴 진용은 용기를 내어 살짝 물어봤다.
‘근데, 마계가 어디지?’
진용이 묻자 이때라는 듯 세르탄의 목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마계는 인간계와 선계의 사이에 있다. 사실 인간계는 맨 나중에 생겨났지. 따지고 보면 생기지 않아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지. 인간계가 어떻게 해서 생겼냐 하면…….’
끝없이 세르탄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떠들어댔다.
떠버리라는 별명답게.
처음에는 괜히 말을 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제 세르탄을 무서워했냐는 듯, 진용은 턱까지 괴고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귀를, 아니, 머리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선계와 마계가 자신들이 벌인 이념 전쟁을 대리시킬 목적으로 인간계를 만들었단 말이야?’
‘그렇지! 똑똑하군, 시르.’
‘최루탄 말을 어떻게 믿어?’
‘최루탄 아니라니까!’
‘나도 시르 아니야.’
‘발음을 좀 똑바로 하면 안 되냐?’
‘잘 안 되는 걸 어떡해!’
그때 문득 든 생각에 진용은 웃음을 참고 물었다.
‘근데, 최루탄(催淚歎)이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뭔 뜻이 되는 줄이나 알아?’
‘뭔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노래를 한다는 뜻이야. 크큭…….’
‘…….’
진용의 놀림에 속이 상했는지 세르탄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 시진이 지나 진용이 잠을 자려 할 때였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시르?’
‘또 뭘? 잠 좀 자게 조용히 해.’
‘잠이 문제야? 나는 능력을 익힐 때 백 년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적도 있었어. 그러니 빨리 대답부터 해!’
‘백.년? 그런 거짓말하면 못 써!’
‘정말이야! 마계의 대전사는 거짓말을 못해!’
‘흥! 믿을 걸 믿으라고 해야지. 사람이 어떻게…… 응? 사람이 아닌가?’
‘그래! 나는 마계의…….’
‘대전사라 이거지? 좋아 좌우간 그렇다고 치고…… 대체 뭘 대답하란 거야?!’
‘진짜 대전사라니까!’
‘나 잔다?’
‘아, 알았어, 말하지.’
세르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내 능력에 대해서 알았냐, 이 말이다.’
‘능력? 무슨 능력?’
‘음으로 상대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절대음(絶對音)의 능력 말이야! 그중에 눈물을 끝없이 흘리며 울다 미치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냔 말이다!’
‘절대음의 능력? 상대를 슬픔에 빠뜨려서 울다가 미치게 만든다고?’
‘그래! 바로 그거!’
‘그럼 이름이 최루탄 맞나 보네, 뭐.’
‘…….’
‘이제 잘 테니까 조용해. 최.루.탄!’
2장. 상자의 비밀
1
고중헌은 황궁에 간 지 닷새 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날 이후로 고중헌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그늘이 져 있었다.
진용은 행여나 지하 서고에 들어간 것이 탄로나는 게 아닌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뜨끔거릴 지경이었다.
‘씨이…… 괜히 가슴이 떨리잖아.’
‘시르, 저 인간이 네 아버지인가?’
‘조용해. 말하지 마.’
더구나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 때문에 미처 다른 것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바람에 진용은 아버지의 눈에 서린 그늘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세르탄에 대해서도 언제 말씀을 드려야하는데, 워낙 아버지의 표정이 심각하다 보니 말하기도 어정쩡했다.
그렇게 때를 놓친 채 시간만 흘러갔다.
고중헌은 황궁에서 돌아온 날 이후, 지하 서고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는 황궁에 가기 전보다 더욱 미친 듯이 연구에 몰두했다. 원단(元旦)조차 지하 서고에서 보낼 정도였다.
그런데 팔각패의 눈동자 색이 달라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고중헌이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종상현이 다시 찾아왔다.
다음 날 아침, 고중헌은 진용을 앉혀놓고 조용히 말했다.
“진용아, 아버지는 다시 황궁에 들어갔다 와야 할 것 같다. 유모하고 잘 지낼 수 있겠지?”
“예, 아버지. 저…… 그런데…….”
진용이 머릿속의 세르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일 때였다.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라도 생각난 것처럼 고중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참! 혹시라도 아버지 소식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거든 종 숙부에게 물어보거라. 아마 일이 끝날 때까지 상현, 그 친구가 가끔씩 찾아올 게다. 허허허, 건강해야 한다, 용아야.”
왠지 아버지의 웃음에 힘이 없게 느껴진다.
진용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힘드시면 가지 마세요.”
“허허허. 녀석, 걱정 말라니까 그러는구나.”
2
“흠, 그가 왔느냐?”
“예, 삼왕 전하.”
“그가 석판의 글도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느냐?”
“충분히 능력을 갖춘 자이옵니다.”
“금판의 글 내용에 대해 그가 알아챘을 확률은?”
“천하제일의 천재라 해도 그 빠른 시일 내에 금판의 고대 문자를 해석하고 그걸 완벽히 정리할 수는 없사옵니다, 전하. 게다가 탁본을 떠서 몇 개로 분리시킨 글이옵니다. 너무 심려 마소서.”
“그래도 그가 집 안에 옮겨 적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 차라리 지금이라도 죽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어차피 이 일에 관련된 자들은 지금까지처럼 모두 사라질 것이옵니다.”
“사라진다? 흠, 하긴…….”
“또한 석판의 해석이 남은 데다 황태자의 눈이 항상 전하를 주시하고 있는 만큼, 북경에서의 살인은 자칫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사옵니다. 하오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좋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리지. 그럼 이제는 네가 할 일만 남았구나, 소궁.”
“삼왕 전하께오선 그를 위해 한 번의 호통과 한 방울의 눈물만 흘리시면 되옵니다.”
“후후후, 그 정도 수고는 해야겠지. 본좌를 천하의 주인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르는 자이니 말이다.”
* * *
고중헌은 눈앞에 놓인 열두 장의 종이를 바라보았다. 석판의 글을 탁본으로 뜬 다음 뒤섞어놓은 것이었다.
평상시의 고중헌이라면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석판의 글을 해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고중헌은 결코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죄어오는 불길한 손길, 그 불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중헌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종상현이 이마를 찌푸린 채 탁본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나?”
“글쎄, 칠 일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네.”
“정말 대단하군. 나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칠 일이면 된다니 말일세.”
“부지런히 끝내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 그건 그렇군. 자식을 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하겠나? 내가 자주 찾아가 볼 테니 너무 걱정 말게.”
“고맙네, 상현.”
종상현이 밖으로 나가자 고중헌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미안하네, 상현. 자네를 속인 일에 대해선 나중에 죗값을 치르겠네. 그리고 자네도 모르게 행할 일에 대한 빚도 나중에 갚겠네. 정말 미안하네, 친구…….’
석판의 고문을 해독하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후.
고중헌은 종상현이 찾아왔다.
“혹시 아들에게 전할 말이 없는가?”
고중헌이 서신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용아에게 아버지 걱정 말고 유모 말 잘 들으라고 전해주게나. 그리고 이것은 내가 없는 동안 그 아이가 읽어야 할 책제목을 적은 것일세. 내가 없다고 공부를 게을리 할지 모르니 자네가 전해주면서 아버지가 돌아가면 시험을 치를 거라 엄포를 좀 놓아주게.”
“하하하! 알겠네. 내 단단히 일러두지.”
3
창문을 바라보자 아버지가 가장 아끼시는 매화나무가 보였다.
“아버지…….”
‘시르, 또 아버지 생각하는 거냐?’
‘응.’
진용은 이제 세르탄과 싸우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머릿속에서 쫓아낼 수 없는 세르칸과 싸워봤자 괜히 머리만 아프니까.
오히려 어떤 때는 심심할 때 말을 걸어주는 세르탄이 반갑기까지 했다.
‘내가 진짜 미쳤나 봐’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심심한 것보다는 나았다. 문제는 너무 말이 많아 짜증날 때가 가끔씩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생각을 할 때만 말을 걸더니 요즘은 책을 볼 때도 말을 건다.
‘이곳은 확실히 이상한 곳이군.’
‘뭐가?’
‘공자가 신이냐? 공자 말씀이 어떻고, 공자께서 뭐라 했고, 책 속에 뭔 놈의 공자 이름이 그렇게 많이 나오냐?’
‘유학자들에게는 신이나 같아.’
‘공자라… 처음 들어보는 신 이름이군.’
진용이 보는 것은 세르탄도 본다. 결국 진용이 책을 읽으면 세르탄도 그 글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단지 글자를 모를 뿐.
책의 내용을 아는 것은 진용이 읽는 소리를 듣거나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아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자기 말대로라면, 어떤 능력을 익힐 때는 백 년간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하니 당연히 졸려서 안 볼 리도 없다.
그런데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한시도 입을 안 떼고 구시렁거린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떠버리라는 별명은 정말 세르탄에게 잘 어울렸다.
진용은 그런 세르탄에게 아는 대로 대답해 줬다.
그렇게라도 해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은 덜어지니까.
그날 저녁. 진용은 세르탄에 대한 사실을 하나 더 알았다, 세르탄이 절대 비밀처럼 지키고 있던 사실을.
‘최루탄, 진짜 백 년도 넘게 안 자본 적 있어?’
‘그럼! 대전사는 거짓말 안 한다니까?’
‘그럼 나이도 많겠네?’
‘물론이지! 내가 봉인되기까지 일천 년을 살았었지! 음하하하!’
‘헉! 정말?’
‘대전사는…….’
‘거짓말 안 한다고?’
‘그래!’
진용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그럼, 마계에선 몇 살까지 살아?’
‘그야, 전쟁으로 죽지만 않으면 최소한 오천 년은 산다. 그리고 적어도 만 년은 살아야 원로 소리를 들을 수 있지!’
‘만 년? 으아!’
‘그래, 굉장하지?’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세르탄, 대전사는 거.짓.말. 안 한다고 했지?’
세르탄은 왠지 진용이 제대로 발음을 하며 이름을 부르는 것이 불안했다.
‘그, 그래…….’
‘음, 마계에선 만 년을 산단 말이지? 만 년이라……. 그런데 세르탄, 사람은 팔십 살도 살기 힘들거든? 흠! 그럼 세르탄은 사람 나이로 따지면… 잘 해야 열 살밖에 안 먹었겠네?’
‘…….’
‘맞지?’
‘그, 그건…….’
‘거.짓.말. 안 한다며! 대전사!’
‘그, 그래, 맞아.’
‘씨이이…… 그럼 친구잖아!’
‘그래도 천 년이나 살았는데……!’
마지막 발악처럼 세르탄이 천 년을 강조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진용의 말에 세르탄은 입을 닫아야만 했다.
‘어쩐지, 정신 연령이 열 살도 안 될 것 같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