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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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화
1화
서(序)
1
번쩍! 우르르릉!
암울한 기운 가득한 회색빛 하늘!
수백 줄기 번갯불이 뇌성을 토하고 갈가리 찢긴 하늘에선 악마의 호곡성이 울린다.
선(善)은 존재할 수 없는 곳.
정(情)조차 거부당한 곳.
오직 탁한 회색빛만이 암울하게 존재하는 곳, 마계(魔界)!
번― 쩌저적!
시퍼런 번갯불이 마계에서도 가장 험하고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마왕의 대지, 대마전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였다.
대마전의 일백팔 개 기둥 아래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검은 장포로 가린 백팔 인의 마계인이 숨죽인 채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대마전의 가장 높은 단상에 놓여 있는 칠흑처럼 검은빛이 나는 석관과 그 옆에 서 있는 마왕을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대하던 일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마왕이 피처럼 붉은 빛을 뿜어내는 석판 하나를 품에서 꺼내 들었다.
꺼내 든 석판을 천천히 석관 안에 집어넣은 그가 엄숙한 어조로 외쳤다.
“마령석에 봉.인.하.라!”
굉량한 외침이 대마전을 뒤흔들었다.
백팔 개의 거대한 기둥 아래서 장엄한 외침이 일었다.
“마왕의 뜻에 따라! 봉.인!”
화르르륵!
일순간, 석관 안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하늘로 치솟았다.
치솟은 붉은 빛이 점차 하나의 형상을 갖춰간다.
마계인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희열에 몸을 떨었다.
봉인(封印)!
누군가의 정신이 마령석이라는 붉은 석판에 봉인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마왕은 얼굴이 양각된 붉은 석판을 관 속에서 꺼내 들었다.
붉은 석판이 하늘 높이 쳐들렸다.
마왕이 소리쳤다.
“대전사의 영혼이 봉인되었다! 봉인석을 삼천삼백 년간 영겁뢰에 가두어라! 감금!”
“마계의 율법에 따라! 감! 금!”
마왕의 마지막 명이 떨어지자 백팔 명의 마계인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들은 희열하며 환호했다.
일천 년 전, 마왕에 반기를 들고 마계를 피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대전사 휼탄 이후 천 년 만에 치러진 봉인식이었다. 그 일은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축제가 열리리라!
“와아아아!”
“드디어! 그를 가두었다!”
“오오! 마침내 마계에 평화가!”
마계의 누군가가 봉인되어 영겁뢰에 갇힌 그날, 회색빛 어둠이 짙어질 무렵이었다.
마계와 인간계를 가르는 차원의 경계선을 검은 장포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미끄러지듯이 날고 있었다.
마왕! 번갯불에 비친 그는 분명 마계의 절대자, 마왕이었다.
쏟아지는 번개 사이를 뚫고 얼마나 날았을까, 환하게 갈라진 차원의 틈바구니 앞에 멈춰 선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좌우를 훑어보더니 품속에서 하나의 시커먼 상자를 꺼내 들었다.
“크흐흐흐, 영겁뢰에 삼천삼백 년간 갇혀 있는 것조차 안심할 수가 없다. 비록 이로써 나와 너의 인연이 끝날지라도……. 잘 가라, 아들아! 그리고 혹시라도 깨어날 희망은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너를 인간이 없는 곳에 버릴 테니까 말이다. 크하하하!”
무슨 소린가? 아들이라니?
그는 꺼낸 상자를 서슴없이 틈바구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솔직히 네가 깨어날 때까지 삼천삼백 년간을 불안 속에서 살 수야 없지 않겠느냐?”
그러고는 너무도 깊어서 검게까지 보이는 호수로 떨어져 내리는 상자를 한참을 쳐다보다가 광소를 터뜨렸다.
“말썽꾸러기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고 나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 우리도 조용히 살아보자. 제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크카카카카!”
그때였다.
무엇 때문인지 차원의 경계가 갑작스럽게 출렁거리더니, 또 하나의 경계가 틈을 벌렸다.
동시에 떨어져 내리던 상자가 방향을 바꿔 새롭게 열린 차원의 틈바구니 쪽으로 미끄러지며 찰나 간에 사라져 버렸다.
신형을 돌리려던 마왕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휼탄의 봉인석을 버렸을 때와 같은 세계로 떨어지는 건가?”
하지만 그는 곧 씨익 웃으며 시원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하긴, 그러면 어떠랴. 그곳도 인간이 없기는 마찬가진데. 게다가 봉인이 풀린다 해도 마계로 올 힘을 얻지는 못할걸? 그곳은 대자연의 기가 이곳의 반의반도 안 되는 곳이니까. 흐흐흐…….”
2
인간계에서 신산(神山)이라 불리는 서장(西藏) 강인파제봉(岡仁波齊峰)의 얼음으로 뒤덮인 꼭대기.
어느 날,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그곳에서 처절한 울부짖음이 하늘을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어! 나의 백 년 염원이 무너지다니!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차원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거늘! 오오오, 하늘이시여! 천신 가이아시여! 진정 이 제나를 버리시나이까! 으아아아!”
한때 제롬 대륙 제일의 마법사였던 제나 온 마르셍은 목이 쉴 때까지 절규했다.
그는 더 이상 눈물조차 나오지 않자 고개를 들고 핏발 선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자신이 고향으로 가기 위해 펼친 마법진의 중심점인 역삼각형 금강석을 쪼개 버린 시커먼 함이. 붉은 석판을 뱉어내고서 활짝 열린 채로!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시커먼 함에서 튀어나온 붉은 석판을 직시했다.
“헉! 이것은?”
그는 괴이한 얼굴이 양각된 붉은 석판을 들고는 놀라 소리쳤다.
“이것은 마계의 봉인석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리 봐도 어린 마족 같은데, 봉인이 되어 인간계에 떨어지다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 이놈들이 인간계를 혼란케 하려고……! 흥! 하나 네놈들은 몰랐을 것이다, 이 물건을 아는 사람이 이 땅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제나는 주워 든 봉인석을 다시 함에 집어넣고는 손등에 힘줄이 돋도록 세차게 움켜쥐고서 산을 내려갔다.
“두고 봐라! 적어도 몇천 년, 아니, 누만 년이 흘러도 봉인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놈을 아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동굴 속에 처박아 버릴 테니까. 성자 가르시아가 말씀하시길, 마계의 봉인은 처음으로 흡수한 피가 동정(童貞)의 순혈(純血)이어야만이 풀린다고 했으니…….”
인간과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 영원히 봉인되리라!
3
강인파제봉에서 울부짖음이 울려 퍼진지 사천여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 지방을 지나던 떠돌이 상인 하나가 산중턱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동굴을 찾던 그는, 벼락에 맞았는지 반으로 쩍 갈라진 커다란 바위틈 안이 시커멓게 보이자 황급히 그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들어가 보니 갈라진 바위 안쪽은 제법 넓은 동굴이었다. 벼락의 충격 때문인지 동굴의 벽은 여기저기 무너져 있었다.
그는 그 동굴 끝의 무너진 벽에서 삭아 부서지기 직전의 낡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쓸모도 없어 보이는 거무튀튀한 지팡이 하나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글로 쓰인 몇 권의 책자와 동판 몇 개,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조금도 삭지 않은 작은 상자가 하나 들어 있었다.
그는 그 이상한 물건들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오랜 옛날, 현자의 종족이라 불리던 고대인이 남긴 물건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그는 그 물건들을 모조리 보따리에 구겨 넣고 납살로 가져가 골동품상에 금 열 냥을 받고 팔아넘겼다.
삼 년이 지난 후, 납살을 지나던 중원의 한 상인이 그 골동품상에 들렀다가 그 상자를 발견했다.
그는 상자 속에 든 물건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상자 안에 들어 있었던 모든 물건을 금 백 냥에 구입해서 중원으로 돌아갔다.
그 후 상인은 그 물건의 비밀을 풀려고 수십 년을 노력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풀지 못한 채 후손에게 숙제만 남겨주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상인의 후손들은 그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풀지도 못할 수수께끼를 붙잡고 씨름하느니 차라리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것이 가문에 이득이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물건에 쌓인 먼지는 세월이 갈수록 두터워졌다. 그래도 조상이 물려준 것이라는 이유로 차마 팔지는 않았다.
백 년 후, 상인의 사 대째 후손에게 그 물건이 넘어갔다.
그 후손은 비록 상업의 길이 아닌 학문의 길을 택했지만, 그마저도 그 물건의 신비는 도저히 풀 재간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풀리지도 않는 것을 푼답시고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고대 문자를 연구하고 있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에게 아예 그에 관련된 모든 물건을 통째로 줘버렸다.
하나도 빠짐없이, 공짜로!
“자네가 갖게. 나는 이런 물건으로 인해 나와 내 후손이 고민하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네.”
1장. 무제의 서, 깨어난 전설
1
고중헌은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대명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고대 문자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곱 살 된 그의 아들 진용은 아버지의 직업이 싫었다.
아버지는 매일처럼 지하 서고에 틀어박혀서 냄새 나는 책들과 씨름만 할 뿐 사흘에 한 번 얼굴 마주 보기도 힘들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진용이 아버지와 함께 논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놀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어린 진용이에게는 어머니가 없었다. 유모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진용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본래 무가의 제자였다고 하는데, 항주 부근을 지나던 아버지가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신 게 인연이 되어 두 분은 함께 사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입은 부상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진용을 낳으며 산고를 견디지 못하신 것은.
그래선지 진용이 어린 마음에 어머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진용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래도 진용은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싫지가 않았다. 술 냄새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그때가 부자간에 가장 오래 마주하는 때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고중헌은 오랜만에 지하 서고에서 나와 술을 한잔했다. 그리고 항상 그러듯이 진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슴에 끌어안았다.
“용아야, 엄마 보고 싶지?”
“음, 조금요. 헤헤,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니까 괜찮아요. 옆집 왕호네도 그렇고, 호진이네도 그렇고, 아버지를 전쟁터에서 잃은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래?”
비록 말은 그렇게 했어도 솔직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얼굴도 모르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은 진용이로선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모 말로는 엄마가 무지 예뻤다고 했는데……. 치이, 왜 그렇게 일찍 돌아가신 거야. 좀 오래 사시지.’
진용은 아버지의 가슴에 눈을 문질렀다, 눈물을 들키기 싫어서.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어느덧 달구어진 가마솥 같던 여름이 지나가고 낙엽이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는 가을이 찾아왔다.
진용은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사흘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아버지의 얼굴을 이틀에 한 번씩은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중헌이 지하 서고에서 자주 나오는 까닭은 단 하나였다. 진용이 보는 책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자 수준에 맞는 책을 조달해 주기 위해서였다.
빨간 단풍잎이 마당에 가득했던 그날도 고중헌은 책을 들고 지하 서고에서 나왔다. 다시 지하 서고로 들어가려는 그에게 진용이 물었다.
“아버지, 언제 일이 끝나나요?”
“음, 우리 용아도 알다시피 아버지는 한 가지 일 때문에 매우 바쁘단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용아와 많은 시간을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서운한 것이 있어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다오. 기다릴 수 있지?”
뭐 서운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진가? 바쁘다고 한 지가 벌써 육 년이나 됐는데.
그런데…… 대체 뭘 하시는데 육 년을 하고도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일까?
진용은 요즘 들어 그 이유가 은근히 궁금해졌다.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 뻔했으니까.
그래서 순순히 대답했다.
“알았어요. 대신 빨리 끝내셔야 해요?”
대신 자신이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직접. 언젠가는…….
진용은 하늘이 쪽빛으로 물든 일곱 살 가을날, 그렇게 결심했다.
2
십이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더니 온 세상을 꽁꽁 얼려 버렸다.
이불로 무릎을 덮은 진용이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불러댔다.
탕! 탕!
“유모! 용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