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37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37화
37화
팽팽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좀 전과는 다른 대치다.
좀 전만 해도 죽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물러서려는 자와 쫓으려는 자다.
단 반 각 만에 두 집단의 이해가 뒤바뀌어 버렸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서서 두 무리의 싸움을 멈추게 했다. 그것도 매우 의외의 사람이.
“멈춰요, 일영!”
하주령이었다.
“소저!”
“알아요, 일영의 마음. 그러나 백마성과의 싸움을 더 이상은 허락할 수 없어요. 양쪽에 죽은 자만 스물에 가까워요.”
“저들이 먼저…….”
“이제는 물러서려는 자들이에요. 안 그런가요?”
하주령은 감오형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장문수를 바라보았다. 장문수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저 여우 같은 계집이 뭘 노리는 것이지?’
그러나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소, 소저. 우리는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소.”
하주령이 하얗게 웃으며 말했다.
“백마성주님께 안부나 전해주세요. 구룡상방은 결코 속 좁은 장사치가 아니라고 말이에요.”
장문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겠소. 그리 전하리다.”
“그리고 가시려거든, 도 대협과 쓰러진 분들도 데려가세요.”
“으음, 고맙소.”
진용은 손을 멈추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하주령이라는 여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성품을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조금은 안다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였다. 자신을 죽이려 덤벼든 자들을 그냥 보내주다니.
‘내가 잘못 생각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그때 옆에서 유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룡상방은 이번 일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봐야겠군.”
진용이 돌아보자 유량은 그 이유를 말해줬다.
“백마성은 하북무림의 강자로 그들은 그동안 구룡상방과 적대 관계인 만금산장의 일을 봐주고 있었네. 오늘 일만 해도 아마 만금산장의 부탁으로 하 낭자를 죽이려 했던 걸 거네. 그런데 이제는 대놓고 구룡상방에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었어. 강호에서 손가락질받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그것만 해도 천금의 가치가 있으니, 하주령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던 자들을 살려주고 손해는커녕 엄청난 이득을 본 거지.”
진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단한 여인, 구룡상방의 지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또한 그래서 초연향이 더욱 걱정되기도 했다.
3
일행은 일단 시신을 수습하고 십여 리를 벗어나서야 부상자들의 상처를 돌보았다.
십영 중 아홉째가 죽어 총 세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네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
해룡선단의 무사들 역시 중상은 아니어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래도 적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진용이 타고 있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마차 안의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은 살아남기 어려웠을 상황임을 모두가 아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 중에는 감오형도 있었다.
그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마차 옆에서 정광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진용을 향해 그저 가볍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진용도 그런 감오형에게 마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라버니는 알고 있었지요?”
마차 안으로 들어오라기에 ‘웬일이야’ 하고 들어왔던 하군상은 하주령의 질문이 떨어지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뭘?”
“진용이라는 자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걸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알아? 고수가 하수를 알아보기는 쉬워도, 하수가 자신의 능력을 숨긴 고수를 알아볼 수는 없다는 걸 몰라?”
“그런데 왜 그렇게 태평했지요? 마치 당연히 이길 것처럼.”
하주령은 마차 안에 있었으면서도 마치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다 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하군상의 능청도 하주령 못지않았다.
그는 입은 닫은 채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탁인효를 슬쩍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뭐…… 인효도 있고, 내 무공도 만만치 않잖냐. 게다가 내가 어디 쉽게 겁먹는 사람이냐?”
어이가 없는지 하주령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큰오빠 앞에만 서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사람이 무슨…….”
“그거야 형님이니까 그렇지.”
“후우……. 하긴 오라버니가 굳이 저를 속일 이유는 없지요. 그만 가보세요.”
“그래, 그만 가보마. 원, 별것도 아닌 걸로…….”
하군상이 툴툴거리며 나가자 하주령은 조금 전과는 완전 딴판으로 싸늘히 굳은 눈빛을 흘려냈다.
‘아주 재밌는 사람이야. 만일 내 생각만큼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녀의 눈빛을 곁에서 바라본 초연향은 씁쓸함과 불안함으로 가슴이 무거워졌다.
‘대체 하 언니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수년 전, 하주령의 눈에 뜨였다 원인 모를 죽임을 당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해룡선단과 함께 구룡상방을 이루는 핵심세력 중 하나인 철심진가의 사람이었다.
기재라 불리던 그가 죽기 전날 밤, 하주령이 그를 불렀다는 사실은 뒷간에 다녀오던 초연향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구룡상방의 총방주인 하전금의 오십 회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북경에 갔던 그녀는 결국 입을 다문 채 교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잊을 수가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 점심때 그녀는 하주령의 눈에서 저런 눈빛을 봤었던 것이다, 탐욕스런 암거미의 눈빛을.
지금 생각해도, 분명 그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하주령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불안감이 쉽게 가시지가 않았다.
‘만일… 고 공자를 건드린다면 절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4
그때부터 북경으로 가는 길은 탄탄대로였다.
발 없는 소문이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옛말은 거짓이 아니엇다.
-백마성의 척살조가 구룡상방의 지낭이라는 하주령을 죽이려다 실패했다!
그런 소문이 길가에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더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주령의 관대한 배려로 무사히 백마성으로 돌아갔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다.
하주령이 구룡상방의 사람들을 이용해서 교묘히 퍼뜨린 소문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녀는 구룡상방에 전서구를 날렸을 뿐이다. 사실 내용을 다 담아서. 단, 비밀을 요하는 일급 문서가 아닌 아무나 볼 수 있는 삼급 문서로.
진용은 북경으로 가는 도중 하군상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듣고 하주령의 심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무나 생각할 수 있으면서도, 또한 아무나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용은 하주령에 대한 판단에 한 가지를 추가해야만 했다.
하주령은 결단이 빠르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리고 북경까지 가는 닷새간, 진용은 정광 도장으로부터 풍혼에 대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배우려 해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 진용의 신수백타에 바탕을 둔 몸 동작을 보고 정광이 서로 알고 있는 바를 가르쳐 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던 것이다.
그는 아름답기까지 한 신수백타의 동작에 은근히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절기를 교환했다.
정광은 석벽에서 얻은 경공인 풍혼을.
진용은 신수백타의 기본 동작을.
그리고 사흘, 진용은 정광의 풍혼을 어느 정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반면에 정광은…….
“그만 할란다. 에구구…….”
이틀 만에 포기해 버렸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은 채 근육이 비틀리고, 신경이 꼬아지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클클클! 사악한 시르, 저럴 줄 알고 가르쳐 준다고 한 거지?’
세르탄의 말에 진용이 정색하고 말했다, 추호도 그런 마음은 없었다는 듯.
‘세르탄, 나는 누구처럼 그렇게 나쁜 놈 아니야. 나는 분명히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거라고 말해줬거든.’
5
쾅!
“그 계집을 죽이지도 못하고 거꾸로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전각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박살 난 탁자를 바라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성주는 어지간해선 화를 잘 안 낸다. 하지만 한 번 화를 내면 천하의 누가 와도 말릴 수 없는 사람이 또한 백마성주 혁청우다.
그런 성주가 자신이 아끼던 탁자를 부수면서까지 화를 내니 누가 두렵지 않겠는가.
“가서 알아봐! 도추문을 불구로 만들었다는 그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인지!”
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성주! 그놈들은 도사 한 놈과 서생 한 놈이라 하더이다.”
그러다 아직 화를 삭이지 못한 혁청우의 집중타를 맞아야만 했다.
“누가 그걸 몰라? 그러니까 그놈들이 어디서 나온 놈들인지 알아보란 말이야, 이 멍청한 위인아!”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속하, 마혼당주 위당조가 직접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혁청우는 힘세고 고지식한 위당조를 불길이 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나마 자신이 화내는데도 꿈쩍하지 않는 자는 그뿐이다.
“그대가 직접 가서 알아보겠다고?”
“그렇사옵니다!”
“설마, 저번처럼 엉뚱한 짓 하는 것은 아니겠지?”
“속하가 언제…….”
혁청우는 일일이 설명하기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좋아, 좋아. 위 당주가 가서 알아봐. 단! 구룡상방은 건드리지 마. 아직 때가 아니니까.”
“존명!”
4장. 북경의 겨울바람
1
시월의 북경은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의 초입이었다.
삭풍이 불어오는 장성 바깥쪽보다는 덜하다 하지만, 산동에서 올라온 진용 일행이 느끼는 추위의 매서움은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다.
“겨울인가?”
밖을 바라보며 정광이 말했다.
진용은 감고 있던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바라보았다. 표현을 안 하고 있어서 그렇지, 그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유모는 살아 있을까? 매화나무는? 집이 그대로 있기는 있는지…….’
아버지가 그리 아끼던 매화나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가끔씩 종 숙부가 오면 매화가 가득히 핀 매화나무 아래에서 두 분은 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자신은 그 옆에서 떨어진 매화꽃을 이용해 글자를 쓰고는 했다.
“우리 용아는 나중에 훌륭한 학자가 될 거다. 이 숙부가 장담하마.”
종 숙부는 그런 자신을 아주 좋아했다. 아들이 없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때마다 자신은 차라리 종 숙부가 아버지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어리석었을 수가 없었다. 그냥 옆에 아버지가 계신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던 것을…….
‘아버지, 죄송해요.’
진용이 회한에 잠겨 있을 즈음, 밖에서 감오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총방에 도착할 것이다. 거리에 사람이 많으니 주위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도록!”
구룡상방의 총방은 빙 둘러 육십 리에 달한다는 내성의 남문 쪽에 위치해 있었다.
감오형의 말이 떨어진 지 일각 후, 잔뜩 기합이 든 호위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시월의 붉은 석양을 등에 진 마차 두 대가 고색창연한 대문 앞에 도착했다.
그제야 진용은 벽에 비스듬히 기대있던 몸을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대문 위에는 길이만도 이 장에 달하는 거대한 현판이 걸려 있었다.
[구룡상방(九龍商幇)]
2
진용과 정광에게는 별채의 방 중 하나가 배정되었다.
본래 진용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구룡상방을 떠나려 했다.
십 년 전에 떠나온 자신의 집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먹을 움켜쥐고 하룻밤 더 참기로 했다.
하루가 더 지난다 해서 집이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을 터, 하군상에게서 얼마간이라도 정보를 얻고 움직이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초연향이 사람을 시켜 그를 불렀다.
“누구는 좋겠네.”
뭐가 좋아? 엉뚱한 도사 같으니라고.
술시 초가 되자 진용은 정광의 엉뚱한 말을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그녀의 방은 건물 하나 건너에 있었다. 그가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방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어떻게 난 줄 알았을까? 지나다니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을 아닐 텐데.
진용은 의아했지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다탁 건너편에 앉아서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를 끌어당기고 자리에 앉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라 해서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