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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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35화
35화
“저놈이! 사형에게 인사도 안 하고 도망을 가다니!”
진용이 말했다.
“어제까지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만.”
“응? 그런… 가? 험, 어쨌든 나는 스승님 좀 뵙고 오겠네.”
잠시 후.
“아이고! 스승님, 참으시…… 아이고!”
“네놈이 무슨 낯짝으로……. 뭐가 어째? 이제 때가 되었어? 그래, 때가 되었다. 내 네놈 때문에 속 썩은 것을 생각하면 이제 네놈을 패 죽일 때가 되긴 했지, 아암!”
“그렇다고 이십 년 만에 제정신 차린 제자를……. 아이고! 때린 데 또 때리시지는 마시고……. 어흑! 거, 거긴……!”
“얼래? 어차피 쓸모도 없는 것, 사부가 좀 찼다고 도망가? 이리 안 와?”
정광이 들어간 방 안에서 곡소리가 태산을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그 바람에 벽하사에 기거하던 사람들이 모두 튀어나와 무슨 일인지 구경하며 수군거렸다. 그중에는 초연향도 있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오다가 진용이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자 급히 진용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별거 아닙니다. 사랑의 매를 좀 맞고 있는 것뿐이지요.”
“사랑의 매요?”
“예, 이십 년간 쌓인 거라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 하 낭자를 만나고 나서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시던데,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에요, 그냥… 하 언니가 북경에 같이 가야 한다고 하는데, 교주에 계신 아버지가 걱정되어서 조금 우울했을 뿐이에요.”
“걱정은 초 대협이 더 하지나 않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럴까요?”
왠지 모르게 초연향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진용은 초연향의 어두워진 얼굴을 바라보다 너스레를 떨며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언제 출발한다고 합니까? 한시라도 빨리 갔으면 좋겠군요.”
“아, 예. 아침 식사 끝나면 바로 출발한다고……. 참, 어디 다녀오셨나요? 찾으니 안 보이시던데.”
“몸 좀 씻고 왔습니다.”
“……?”
초연향이 의아한 표정으로 진용을 올려다볼 때다.
우당탕탕!
방문이 부서질 듯 열리더니 정광이 뛰쳐나왔다.
“다녀올 테니 어디 아프지나 마시라구요!”
얼마나 빨리 도망갔는지 정광의 인사말은 조금 과장해서 십 리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 정광을 향해 노도인이 빽 소리쳤다.
“이놈아! 북경에 가면 니 사숙을 찾아가 봐! 높은 자리에 있으니 밥은 먹여줄 거다!”
3장. 최악의 기문병기
1
태안에 내려오자 유량이 출발 준비를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라고 해봐야 간단한 식사 거리와 물을 챙겨놓은 것이 전부였지만, 일행이 바로 출발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사람이었다.
“나도 가겠소.”
탁인효가 따라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군상이 실눈으로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럼 영호 낭자와의 혼담은 완전 물 건너간 거요?”
반응은 하주령에게서 먼저 터져 나왔다.
“오라버니!”
“아, 아, 뭐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니 너무 그러지 마라.”
설레설레 손을 내젓는 하군상을 보고 하주령은 의아한 눈빛을 지었다.
‘오라버니가 왜 저러지? 어제까지만 해도 내 말이라면 꼼짝도 못했는데.’
전날만 같아도, ‘미안하다, 내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했을 사람이 이제는 안색도 변하지 않는다. 기이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녀가 어찌 알까. 하군상의 조막만 하던 간덩이가 하룻밤 사이에 수박통만 하게 커졌다는 것을.
그 원인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진용 때문이란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다.
보통 때였다면 하나에서 열까지 따져 보고 그 원인을 알아냈을 그녀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탁인효가 자신과 같이 간다는 것에 모든 것이 봄날의 햇살처럼만 느껴진 것이다.
“탁 공자는 북경까지 같이 가실 거예요. 제 부탁으로 호위에 참가하신 거니 이제부턴 일행처럼 대해주세요.”
일류고수가 한 사람 더 늘었으니 나쁜 것은 없었다.
모두가 그녀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몇 사람만은 건성으로 끄덕였지만.
그러던가, 말던가.
“괜찮으십니까?”
“뭐가?”
마차는 두 대로 늘었다. 한 대는 하주령과 초연향이 같이 타고, 해룡선단에서 타고 온 다른 한 대는 진용과 정광이 함께 탔다.
서생과 도인이니까.
정광은 느긋이 벽에 등을 기대고 있다가 진용이 묻자 부리부리한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도장님의 스승님께 맞은 자리 말입니다.”
순간 정광의 얼굴이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와락 일그러졌다.
“그놈의 영감탱이, 하필 거길 때려.”
“쓸 데도 없다면서요?”
“그, 그건……. 험, 세상일을 어떻게 아나? 쓸 일이 있을 지……. 안 그래?”
“글쎄요. 확실한 건 하나 있죠. 맞는 것보단 안 맞는 게 낫다는 것. 안 그래요?”
“그야…….”
“왜 맞으셨어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언뜻 정광의 눈가로 바람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말이지… 그게 나을 것 같았거든. 그 양반 속을 풀어주는 데는…….”
“하긴… 터뜨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요.”
“헉! 그런 심한 말을…….”
눈을 크게 뜬 정광과 웃음기 가득한 눈을 한 진용은 서로를 마주 보며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속이 좀 풀리셨어야 하는데…….”
정광의 말에 진용은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 속에 피었던 웃음꽃은 어느새 뿌연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그렇게 뭐라 할 분이 있다는 것만도 부러운 일이지요.’
2
북경으로 가는 길은 너무 순조로워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 하주령 일행을 노리고 있다는 말 자체가 허황된 이야기 같기만 했다.
하지만 제남에 들러 하루를 쉬고 다시 출발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하북으로 넘어가는 덕주를 삼십여 리 앞둔 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완전히 엉터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관도 옆 나무그늘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아무렇게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족히 삼십 명은 되어 보였다. 하나같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자들.
처음에는 그저 어느 문파의 무사들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산동에서 저렇게 드러내 놓고 구룡상방을 공격할 자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선두에서 말을 몰던 유량이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추게 했다.
그제야 어쩌면 저들이 기다리는 것은 자신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들은 단순히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도 자체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자들인 것 같습니다, 하 낭자.”
“정명산장의 사람들이군. 저들이 왜 관도를 막고 있는 거지?”
하주령이 탄 마차를 빙 둘러싼 채 말을 타고 가던 열 명 중 한 사람이 의아해하는 투로 말했다. 그는 십영 중의 첫째로 감오형이라는 자였다.
그는 유량을 바라보며 걱정 말라는 투로 말했다.
“적은 아닌 것 같소. 정명산장은 본 상방과 관계가 나쁜 곳이 아니외다.”
뚜벅뚜벅, 그가 말을 몰고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자, 그의 좌우에서 십영 중 두 명이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대형, 저희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음.”
감오형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빠르게 말을 몰아서 정명산장 무사들에게 다가갔다,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두 사람이 말을 몰아 다가오자 명(明) 자가 새겨진 무사건을 질끈 동여맨 장한 하나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두 놈만 옵니다.”
그자의 옆에 앉아 있던, 얼굴에 기다란 상처가 가로 새겨진 중년인이 실눈 사이로 하얀 눈빛을 번뜩였다.
“제법이군. 정명산장의 표식을 보고도 주의를 기울이다니.”
“어떻게 할까요?”
“놈들의 숫자는 열여섯, 설령 마차에 두어 놈 더 있다 해도 스물이 안 될 거다. 빨리 끝내고 술로 피 냄새나 씻어내야겠어.”
그 말에 장한의 입가에도 가느다란 살기가 떠올랐다.
마차의 휘장 사이로 두 사람이 빠르게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진용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미미한 기운이지만 건곤흡정진혼결이 반응하고 있다.
“음……?”
마차 벽에 등을 기댄 채 반쯤 누운 자세로 있던 정광이 진용의 표정변화를 감지하고 등을 세웠다.
“왜? 뭐 이상한 것이라도 있는가?”
“위험합니다. 살기가 일고 있어요.”
“살기?”
“저들이 만약 우리의 적이라면, 저 두 사람은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꼴이 될 겁니다.”
비록 작은 목소리였지만, 유량이나 감오형 같은 고수가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감오형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용이 타고 있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유량이 감오형에게 말했다. 그는 진용의 능력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일단 돌아오라 하시지요.”
유량마저 그렇게 말하자 감오형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사이 이미 두 사람은 정명산장의 무사들 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때였다. 감오형이 무얼 봤는지 갑자기 소리쳤다.
“돌아와!”
정명산장의 무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 십영 중 두 사람이 오 장 앞까지 접근하자 그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네놈들이 감히!”
십영 중 셋째 기대영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일어선 삼십여 명의 무사가 일시에 덮쳐들자 기대영의 말이 놀라 앞발을 치켜들었다. 기대영은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급히 고삐를 움켜쥐었다.
그사이 거리는 이 장으로 좁혀들었다.
깜ㅉ가 놀란 기대영이 황급히 검을 빼어 들었다.
여섯째 경호승도 급히 말 머리를 돌리기 위해 고삐를 틀었다. 하지만 늦었다 생각했는지 말등을 차고 신형을 뽑아 올렸다.
그때, 중심이 흔들린 기대영의 좌우에서 다섯 자루의 도검이 일시에 떨어져 내렸다.
허공에 뜬 경호승을 향해서도 몇 명이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그 직후 청광이 번뜩이며 허공을 난자했다.
순식간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판단조차 못할 짧은 시간.
그사이에 십영 중 두 사람의 몸에서 선혈이 솟구쳤다.
“이놈들!”
노성을 터뜨린 감오형이 말 위에서 신형을 날림과 동시 기대영과 경호승의 몸이 두 조각, 세 조각으로 분리되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분노한 감오형은 달려나가고 싶어도 달려나갈 수가 없었다.
그의 최우선 목적은 하주령의 호위다. 두 형제가 눈앞에서 죽어갔어도 그 목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하주령의 보호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때.
감오형은 분루를 삼키며 소리쳤다.
“모두 마차를 보호하라!”
마차를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은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 게다가 적들은 상당한 무공을 익힌 자들. 말은 혼란의 이용물이 될 뿐이다.
십영의 나머지 일곱 명은 재빨리 마차 주위에 내려서고는 말을 한쪽으로 쫓아 시야를 확보했다.
숨을 한 번 몰아쉴 사이, 기대영과 경호승을 벤 적들은 이미 십 장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거리가 십 장 내외로 줄어들자 부채꼴로 퍼지며 공격을 시작했다,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탁인효도 마차 밖으로 나와 허리에 찬 검을 빼들었다.
잔뜩 긴장한 그는 반드시 누군가를 지킬 사명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혼신으로 검을 휘둘렀다.
“누구도 마차 안의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하지만 하주령의 마부석에 앉아 있던 하군상만은 싸우지도, 그렇다고 겁나 숨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숨 가쁜 그 시간에도 진용의 마차를 바라보며 양측의 힘을 저울질하기에 바빴다.
‘여기에 절정고수가 있다는 것을 네놈들이 알아? 모르는 이상 네놈들은 뜻을 이룰 수 없을걸? 흐흐흐…….’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진용과 친구하기로 한 결정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다.
조금 얻어맞은 것쯤이야 지금에 와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싸우다 보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 뭐. 어쨌든 내 친구가 있는 이상 네놈들은 다 죽었어! 이 멍청한 놈들아!’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즐거운 상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 뭐 해요! 탁 오라버니를 도와줘야죠!”